메인화면으로
'게걸스러운' 빌과 '차가운' 버락이 만날 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게걸스러운' 빌과 '차가운' 버락이 만날 때

[안병진의 '오바마와 미국'] '쿨한' 두 대통령의 전혀 다른 내면

최근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구속됐던 여기자들을 구출하는데 성공함으로써 미국 최고의 매력남 지위로 복귀했다.

일각에서는 앞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간의 매력적인 파트너십이 발휘될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당 출신 전현직 대통령의 파트너십이 흥미로운 것은 둘 다 미국 역사상 가장 '쿨한'(Cool. 매력적인) 대통령의 계보에 속하기 때문이다.

▲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하지만 두 사람은 정치 스타일에 있어 너무도 다르다. 물론 하나는 베이비붐 세대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 베이비 붐 세대이기에 어느 정도 세대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기질에 있어서도 너무 다르다.

사실 이 정치스타일의 문제는 그저 호사가의 안주거리가 아니다. 선거나 국정운영의 상당 부분에 실제적 영향을 미치는 매우 중요한 측면이기 때문이다.

한 시대를 이끌고자 하는 정치인들은 이에 대한 연구를 굉장히 많이 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한국처럼 '쿨한' 정치스타일에 대한 고민이나 노력조차 극도로 빈약한 곳에서는 이곳에 '블루오션'이 존재한다.

정치광 vs 사회운동가

클린턴을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은 엄청난 정치광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걸어다니는 정치사전이며 그의 가장 큰 취미는 정치 전략이나 정치광고를 만드는 것이다. 정치 자체에 대한 클린턴의 열정과 집착은 셀 수 없는 에피소드를 남기고 있다.

이에 대해 존 해리스 기자의 책은 하나의 예를 들고 있다. 클린턴은 1987년 지독한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표 다지기를 위해 작은 비행기를 타고 아칸소의 길렛이라는 지역으로 가다가 비행기 사고를 당해 죽을 뻔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클린턴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는 생각은 잊고 표 다지기를 위한 행사장에 갈 수 있는 사실 자체를 너무도 기뻐한 것으로 알려진다.

▲ 버락 오바마는 가치와 대의를 내세우는 운동가적 면모가 강하다. ⓒ로이터=뉴시스
반면 오바마는 미국 주류 정치에서 매우 예외적인 기질에 속한다. 오바마가 상원의원이던 시절 기자들은 그가 마치 '범생이'나 교수처럼 퇴근 후에 인적 네트워크 관리보다는 집에서 조용히 책 읽는 것에 더 매진하는 것에 놀라워 했다.

물론 오바마는 교수라기보다는 정치가의 기질이 더 많다. 하지만 그가 정치에 접근하는 방식은 클린턴보다 더 사회운동가 모델에 가깝다.

즉, 부단히 가치와 대의를 상기하고 성찰하며 집단을 조직하려고 하는 점이 그러하다. 물론 이는 지역 운동가 경험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한국의 소위 386 출신들 중에 제도권 정치에 들어가서 쉽게 정치꾼으로 변질한 몇몇을 상기해보면 단지 그의 출신 배경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점이 있다.

따라서 오히려 그의 기질 자체가 사회운동가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오바마의 운동가 기질은 지난 선거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예컨대 그는 지난 대선 기간 자신의 선거를 캠페인이 아니라 사회운동으로 규정하고 싶어 했다. 그는 지금도 제도권 정치와 온‧오프 사회운동의 협력으로 새로운 21세기 국정운영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캠페인이란 말을 무척 좋아하고 캠페인 전략을 짜는 것에서 최대의 희열을 느켰던 클린턴과는 매우 다른 기질과 환경인 것이다.

생계형 당파성 vs 우아한 초당성

정치적 감각과 전략이 매우 뛰어난 클린턴이기에 그는 매우 일찍부터 주목을 받아왔다. 그래서 약간 과장하자면 대학 시절 가까운 친구들은 이미 그가 대통령 당선 후 정권인수위에 있는 것 마냥 그를 대했다. 힐러리는 클린턴이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100% 확신하기까지 했는데, 이를 본 그녀의 지도교수가 어처구니없어 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러한 클린턴이기에 그는 매우 일찍부터 극우보수 진영의 강력한 견제를 받아왔다. 그래서 클린턴 부부의 친구인 언론인 시드니 블루멘탈은 <클린턴 죽이기>라는 책에서 그들의 음모를 샅샅이 드러내기도 했다.

보수와 진보간의 양극화된 투쟁의 시대에 정치적 생존을 위한 당파적 투쟁은 클린턴 부부의 이중적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한몫했다. 이 이중성 중에서 하나만 이해한다면 결코 클린턴을 제대로 아는 게 아니다. 이는 마치 매우 당파적인 듯 보이면서도 동시에 '구시대의 막내'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중성과 유사하다.

즉, 하나는 자신을 정치적으로 죽이고자 하는 진영에 맞서 탁월한 당파적 전략과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극우세력이 오해 혹은 왜곡하는 것과 달리 남부 출신으로서의 중도적 정체성을 가지고 '구시대의 막내'를 벗어나고자 매우 초당적 행보를 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비준에 적극 나선 것에 대해 진보파들은 두고두고 그를 비난하고 있다. 부인 힐러리가 갈수록 중도화되고 상원의원 시절에는 매파로 변신한 것은 바로 이 후자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끝내 보수파들의 인정을 받지도 못했고, 진보파는 그녀 대신에 오바마를 선택했다.

반면 오바마는 이러한 적과 아의 치열한 문화투쟁 세대에서 다소 벗어나 있다. 그리고 그가 주로 기반하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레이블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래서 비단 오바마만이 아니라 다른 젊은 흑인 세대 지도자들도 과거 알 샤프톤 목사 등과 달리 맺힌 것도 적고 상대적으로 매우 초당적이고 실용적이다.

더구나 놀라울 정도로 상대의 입장에 공감하는 오바마의 기질은 그의 초당성을 더 두드러지게 한다. 그래서 오바마가 진보주의자들이 혐오하거나 경멸하는 도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에 대해 다소 우호적으로 언급했을 때 민주당의 기존 세대들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 바 있다.

당시는 선거 과정이라 그랬기도 했지만, 오바마는 맥락을 떠나서 레이건에 대한 자신의 긍정적 언사 자체를 비난하는 이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이들 민주당 인사들의 느낌은 마치 과거 박정희 시절 고문실에 거꾸로 매달렸던 한국의 민주당 인사들이 오늘날 박정희 열풍을 볼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을 것이다.

방만함 vs 금욕

클린턴은 최고의 '정치 DNA'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절제력 결여에서는 최악의 DNA를 가지고 있었다는 명암이 있다. 그의 방만한 스타일은 국정운영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콜린 파월 전 합참의장이 혀를 차면서 '방만한 커피 하우스의 토론'이라고 비난했듯이, 클린턴 임기 초 백악관은 마치 운동권 학생들 세미나의 장을 방불케 했다. 클린턴은 피자의 치즈 조각을 입에 물고 심야 회의를 즐겨 개최하곤 했다. 이후에는 역으로 자신 의중을 잘 드러내지 않는 스타일로 주변을 매우 혼란스럽게 하곤 했다.

▲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기 통제력이 약하기로 알려져 있다. ⓒ로이터-뉴시스
클린턴의 방만함은 여러 분야에서 일관된다. 그는 자기 통제력이 부족해 성질을 자주 폭발시키기로 악명 높다. 아침에 그를 깨우러가는 것은 저승사자를 만나러 가는 일과 같았다고 한다. 그가 전략가인 딕 모리스와 뒤엉켜 뒹굴며 주먹다짐까지 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래서 그의 핵심 측근 스탠리 그린버그 조차 클린턴의 자기 통제력 부족을 대통령이 되기에는 너무 심각한 결격사유로 여길 정도였다.

후에 부통령이 된 고어는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백만장자이자 대중영합주의자인 무소속 로스 페로 후보의 러닝메이트가 될 건지를 검토했을 정도였다.

클린턴의 방만함의 극치는 음식과 여자에 대한 광적 집착으로도 나타난다. 그의 보좌관들은 음식과 여자로부터 클린턴을 격리시키는 것에 언제나 큰 어려움을 겪곤 했다.

그는 여자관계로 인해 겪을 수도 있는 정치적 치명상을 잊고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수하곤 한다. 결국 그의 정사에 대한 위험한 본능은 그의 집권 2기 아젠다를 사장시키고 단지 섹스 스캔들 방어에 '올인'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리고 클린턴은 스트레스가 심하면 엄청난 식욕으로 이를 풀곤 했다. 대변인 조지 스테파노플러스는 이를 목격하곤 경악을 금치 못한 바 있다.

반면, 오바마는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자기 통제력의 달인이다. 그의 적절히 통제된 회의 스타일은 과거 루즈벨트와 케네디의 정제된 리더십을 연상시킨다. 그는 다양한 안의 장단점을 정교하게 재단하고 참여한 모든 이의 에너지를 흡수해낸다.

난상토론이지만 모든 이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없는 클린턴의 회의와 달리 오바마의 회의에 참석하는 이들은 자신의 머리를 반드시 쥐어짜내어 회의에 기여해야만 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오바마의 아젠다가 너무 방만하고 많다고 그의 리더십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그가 방만하기 때문이 아니라 현재가 전반적으로 대전환기라는 상황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정교한 회의 방식은 측근들로서는 매우 부담되겠지만 오바마의 성격 관리에서는 측근들은 행복해할 것이다. 왜냐하면 오바마는 웬만해서는 냉정함을 잃어버리는 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지난 선거 중반 고전을 면치 못했을 때 주변에게 성질을 부리며 책임을 전가하는 클린턴과 달리 담담하게 자기 책임을 인정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음식과 여자 문제에서도 오바마는 클린턴에 비해서 매우 금욕적이고 철저히 통제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그는 헬스클럽에서의 운동을 마치 종교적 행사처럼 여겨 그가 얼마나 자기 통제를 중시하는 가를 엿보게 한다.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드라마 '웨스트 윙'에서 클린턴 시대에 대한 아쉬움을 자신의 이상향을 등장시키며 드러냈다. 마틴 쉰이 열연한 바틀리 대통령이다. 그는 대중과 소통 잘하고 정치적 리더십을 잘 발휘하면서도 클린턴이 빠진 그 무엇을 가지고 있다. 때로는 성찰하고 가족적이며 종교적이고 애국적인 자유주의자로서의 면모다.

지금까지의 오바마의 스타일을 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원했던 보다 이상적인 자유주의자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자유주의자들은 스타일에서도 진화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과연 한국의 진보와 보수 대통령 스타일의 진화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