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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친서민? 할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하고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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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MB의 친서민? 할 수 있는 것부터 해결하고 얘기하자"

[고성국의 정치in]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의 두 번째 인터뷰는 유쾌했다. 이 대표는 대표가 되기 전에 했던 첫 번째 인터뷰에 비해 훨씬 신중하게 단어를 골라 썼다. 즉답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고 걸러서 대답했다. 정치적인 문제뿐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그랬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배려가 필요하다는 느낌이었다.

"이번 인터뷰부터 프레시안 트위터를 통해 질문을 받았다. 첫 번째 트위터 질문이다. '남편을 대체 얼마나 사랑하시나요. 아직도 설렌다고 하셔서 묻는 질문입니다.(@PotovP)'"
"자주 설렌다(웃음). 지난 주말에 휴가를 냈다. 오랜만의 휴가였는데, 남편이 지방으로 사라져버렸다. 20년 전에 돌아가신 성대 최동 열사라는 분이 있는데 20주기가 됐다고 묘소에 간다고 하더라. 그날 혼자서 책을 보다가 이철수 선생의 판화를 봤다. 판화를 보면서 '맞아, 이렇게 새 두 마리가 밤을 새워 달을 물어 가는 것처럼 잘 살아야지' 생각하고, 남편을 넓은 마음으로 이해했다(웃음)."

이정희 대표는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스마트폰을 통해 이 판화를 보여 줬다.

▲ 이정희 민노당 대표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통해 이철수 화백의 판화를 보여 줬다. ⓒ이철수 화백 블로그

"'평소 수면시간이 어떻게 되나요(@hongsii)'라는 질문도 있는데, 프로필을 보면 4시간으로 나와 있더라"
"대체로 그 정도 된다. 좀 못 될 때도 있고, 주말에는 늘어날 때도 있다."
"평소 체력유지를 위해 뭘 하나?"
"매일은 아닌데, 될 수 있으면 108배를 한다"
"108배를 하면 어떤 느낌인가?"
"하다보면 그날 하루 동안 있었던 여러가지 복잡한 일들이 머리를 훑고 가면서, '그래 내가 그랬지…, 더 낮아지는 길은 뭘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할 때 어떻게 하시는지(@heezukheezuk)'라고 물은 독자가 있다. 이에 대한 답은 108배겠다.
"(웃음)그렇다"
"'10년 후 이정희 대표의 모습은 어떨까요(@zizibejs2)'라는 질문도 있다."
"10년 후면 52살인데, 글쎄 일단 그 때까지는 정치를 하고 있을 것 같다. 그래야 될 것 같다. 은퇴하기 전까지는."

▲ 이정희 민노당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헌법재판소를 통과할 수 있는 증세안, 내년까지 만들겠다"

몇 달 만에 다시 온 의원회관인데 구조가 확 달라져 있었다. 의원 방에 파티션이 쳐 있고 그 옆에 회의용 원탁이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자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었는데 이 대표와 보좌관이 각자의 책상에서 일어섰다. 의원과 의원을 '하늘같이' 모시는 보좌관이라기보다는 직급이 다른 동료처럼 보였다.

"들어올 때 책상에서 뭐하고 계셨나?"
"(웃음) 공부했다. 요즘은 기후변화를 공부하고 있다."
"역시 트위터를 통해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SeonWha83)'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최근에는 프란츠 알트의 <지구의 미래>를 열심히 읽었다. 역시 기후변화와 관련된 내용이다. 지난 6월에 '민주포럼'이라는 곳에 갔다가 숙제를 받았다. 진보정당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큰 틀에서 대안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하시더라. 그 때 빠른 시간 안에 숙제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숙제 내주시는 분들이 많나?"
"많다(웃음)."
"당에서도 숙제를 주나?"
"아무래도 대표를 하니까….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나눠서 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공부할 게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상임위는?"
"기획재정위다. 작년 5월에 결원이 생겨서 갔다가 안 바꾸고 계속하고 있다."
"상임위에서 중점을 두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2008년부터 가져 온 생각이 있다. 헌법재판소를 통과할 증세안을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복지의 확대를 이야기한다. 지방선거에서도 그랬고, 박근혜 전 대표도 복지국가를 말씀하시지 않나. 그렇다면 실제로 복지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확대될 수 있을까. 국방비를 줄여 가능하다? 그런 방향으로 노력은 해야하지만, 당장은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본다. 4대강을 하지 않고 복지로 돌리자? 그렇다고 해도 자원은 한정돼 있다. 결국 수도권과 지역의 균형을 높이는 방안, 사회적 형평성을 높이는 방향의 복지체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의 문제다."
"부유세같은 것인가?
"부유세보다는 기존의 조세체제를 훨씬 더 세밀하게 파고드는 증세안을 만드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는 탄소세를 도입하는 방향이다."
"사회적 형평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전반적인 증세안을 만드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나?"
"그렇다."
"헌재에 가더라도 이길 수 있는?"
"세제가 만들어지면 무조건 헌재로 간다고 생각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를 무너뜨린 게 종부세 아닌가. 정부가 유지되려면 그런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언제쯤 나오나?"
"내년 중반쯤으로 생각하고 있다."
"기초는 끝났겠다."
"소득세 개정안은 이미 작년에 냈고, 지금 종부세를 보고 있다. 탄소세 부분은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증세안으로 민주당과 정책연대가 가능할까?"
"작년에 고소득자 증세를 말씀드렸다. 회의 때는 공감하는 분들이 많았다. 민주당부터 한나라당, 자유선진당까지…. 모든 정당이 동의하더라(웃음). 하지만 실제로는 민주당에서 증세는 부담스럽다고 하더라. 감세유보는 할 수 있는데, 증세는 부담스럽다는 것이었다. 복지예산을 늘리자고 하면서 증세까지는 가지 못하더라. 그것을 뛰어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뛰어넘으면 합당도 가능하겠다."
"좀 더 복잡한 문제가 남아있다. 비정규직 문제 같은…. 복지문제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가 증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복지문제만 갖고 합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프레시안(최형락)

"MB의 親서민? 할 수 있는 일부터 하고 이야기하라"

이정희 대표는 민노당 비례대표다. 민노당은 원칙적으로 비례대표 연임을 제한하고 있다. 형평성과 신인의 정치 진출을 고려한 결과다. 따라서 이정희 대표도 정치를 계속하려면 다음 선거에서는 지역구에 출마해야 한다. 강기갑 전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2년 후에는 지역구 출마를 해야할텐데, 어디인가?"
"의논하고 있다."
"수도권인가?"
"그렇다. 서울, 경기 중에서…."
"자신 있나?"
"자신감이 커져 간다. 얼마 전까지는 불안감이 더 많았다. 요즘에는 여러가지 일로 많은 분들과 접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참 넓은 분들이구나' 생각하게 된다. 내가 믿는 것을 열심히, 최선을, 진심을 다 하면 분명히 움직여주실거다. 따지려고 하지 말자. 그냥 믿자…. 그렇게 생각한다."
"민청학련 세대, 4.19 세대들 중 생전에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거라고 생각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대중과 역사를 믿고 다 던졌다. 그런데 민주화 이후에도 그런 절박한 마음으로 정치를 한다는 것인데, 어떤 대목이 그렇게 절박한가?"
"얼마 전에 서울대 병원에서 간병하시는 분들하고 점심을 먹었는데, 간병일을 하는 분들이 창틀에 밥을 놓고 식사를 하더라. 매일 삼시세끼를 다 그렇게 서서 드신다더라. 병원에는 환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밥차가 있지 않나.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밥차와 창틀 사이 딱 1미터 정도 되는 좁은 공간에 서서 식사를 한다. 그 밥을 같이 서서 먹는데, 정말 속이 상했다. 사람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느낌? 요즘 청소 노동자들 보면 화장실 옆에서 드시는 분도 있지 않나. 창틀에 서서 먹는 밥은 오히려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을 흔드는 그런 상황에서 내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되더라. 그런게 잘 사라지지 않는다. 변호사를 할 때는 법이라는 방식, 소송이라는 방식으로 풀고 싶어 했는데, 지금은 캠페인이든 법이든 규정이든…, 풀어보려고 한다."
"그런 절박함을 갖고 정치를 하면, 좀 편한 생활, 예컨대 국회의원으로서 호텔에서 식사하고 자가용타고 다니는 그런 생활하고는 잘 안 맞을 것 같다."
"호텔 밥을 먹을 돈은 없다(웃음). 사실 저만 해도 크게 쪼들리지 않고 산다. 그런데 지역에 내려가서 노동조합 하는 분들을 보면 '애들 학원을 끊었다', '보험을 해지했다'는 분들이 많다. 중소기업에 가면 40대의 건장한 노동자들이 과연 이런 밥 먹고 하루 10시간 동안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의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것을 보면 마음이 안 좋다. 나는 생활 걱정은 크게 안 하고 사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명박 대통령의 친서민 정책을 보면 어떤 느낌인가?"
"할 수 있는 일은 좀 하고 말씀하셨으면 좋겠다. 요즘 친서민 정책으로 주로 나오는 이야기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인데, 그 동안 계속 관련 상임위에 있으면서 이야기했던 분야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원자재값 문제는 중소기업의 이윤율이 떨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다. 중소기업의 원자재값이라고 해 봐야 뻔한 건데, 납품가에서 올려받지 못하면 결국 노동자의 임금을 줄이거나, 해고하는 방식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실제로 가장 큰 어려움이 중소기업 노동자들에게 가는 것이다. 대기업도 정규직을 계속 사내 하청으로 바꾸니까…. 군산에 가면 타타대우 상용차라고 있다. 인도 자본인데, 그래도 조금 협상의 여지가 있다더라. 그래서 노조가 사측과 이야기해서 매년 100명 씩 정규직으로 전환을 하고 있는데, 그래도 계속 비정규직이 늘어난다고 하더라. 거제에 가면 도시를 이끌어가는 기업이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이다. 그런데 삼성중공업은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정규직의 1.5배를 넘는다고 한다. 거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봐도 무방하다. 최근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도 있고, 원자재값을 납품가에 반영하는 납품가 협의제를 공공기관이 나서서 하면 나름대로 선도할 만한 부분이 있는데, 공공기관 협의율이 더 떨어지더라. 실제 원자재값이 인정되는 비율을 보니까 100% 인정되는 경우가 5%가 채 안 되더라. 그런 게 제대로 안 된다. 정부가 노력할 수 있는 것을 안 하면서 친서민을 이야기한다. 저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책임있게 이행하고 먼저 실천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당은 친서민이 자신들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원조논쟁까지 벌어질 판이다."
"원조 할매국밥이든 뭐든지 간에 원조를 따지자면(웃음)… 민노당만 할까. 하지만 저작권을 주장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법안을 내고, 실천해 나가고, 성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민주당이 원조다? 좋다. 다만 하나는 결말짓고 갔으면 좋겠다. 가령 SSM 문제같은 것이다. 17대 국회부터 이야기했고 민주당도 다 동의했고, 한나라당도 일부 동의해서 4월에 지경위까지 통과됐다. 그런데 갑자기 법사위에서 입장이 바뀌어서 한나라당이 통과 못 시킨다고 하더라. 그 이유가 통상교섭본부가 버틴다는 것이다. 한-EU FTA 협상을 하는데, 여기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을 우선하느냐, 결국 가치판단의 문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풀어줬으면 한다."
"지난 주말 KBS 심야토론에 나갔는데 거기서 한나라당 원희룡 사무총장이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과 논쟁하면서 '정권 10년 동안 뭐했나. SSM 규제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시점조정을 하고 있고 곧 통과시킬 것이다'라고 하더라."
"한-EU FTA 협상 때문에 어렵다는 것까지는 들었다. 원희룡 사무총장이 그렇게 말했다면, 그대로 되면 좋겠다."
"누가 됐든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노동관계법 문제도 그렇고, '10년 간 뭐하다가…', 이런 말씀들을 많이 하신다. 하지만 어쨌든 책임은 여당이 지는 게 아닌가.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최형락)

"자신감과 책임감, 점점 커져 간다"

"현장에 자주 다니는 것 같다."
"많이 다니게 된다. 민노당의 특성이기도 한데,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듣고, 느껴보려고 한다. 그건 당의 권장사항이기도 하다. 직접 보는 것과 언론을 통해 보는 것은 굉장히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많이 가보려고 노력한다."
"얼마나 자주 다니나?"
"국감 때는 거의 못 가는데, 다른 때는 지역강연, 노조방문, 현장방문 등이 한 달에 서너 번 정도 된다. 선거 때는 일주일에 서 너 번 이상이고."
"현장과 결합해 진행하는 당 차원의 프로그램이 있나."
"현장체험을 한 달에 한 번씩 하려고 했는데, 오래 지속하진 못했다. 저는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협의해서 여성 노동자들과 점심을 먹는 '도시락데이'를 한다. 두 달에 한 번 정도다. 간병 노동자들과 식사한 것도 그 일환이었다."
"우리 지역에서 출마해달라는 요청은 없나?"
"그런 이야기를 안 듣는 때보다 듣는 때가 많다. 내가 수도권에 사니까, 수도권에 계신 분들이 '왔으면 좋겠다'는 말씀들을 자주 하신다."
"인기를 실감하나?"
"기대가 커지는구나, 하는 느낌을 갖는다."
"현장에 가면 사진찍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나."
"현장 분위기에 따라 좀 다르다. 남성 노동자들이 쭉 모여있다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고(웃음). 작년에 울산 노동조합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인사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 한 분이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더라. 그리고 와서 사진 찍자고 하더라. 그런 분들이 많이 늘어나는 것 같다."
"기분 좋은가?"
"저 분들이 저를 계속 보고 계실텐데, 하는 책임감을 많이 느낀다. "

"김태호 내각, 진심으로 성공하길 바라지만…"

"박근혜 전 대표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많이 접해보거나 깊은 말씀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다만 짧은 느낌은 있다. 열심히 고민하시는 것 같다. 그 분이 생각하는 방향이 제가 생각하는 것과 같든 다르든 당신의 방식으로 미래를 책임지기 위해 열심히 준비하고 계시는구나, 그런 느낌이다."
"김태호 총리 내정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잘 하시길 바란다, 정말로. 정운찬 총리가 내정됐을 때도 그런 마음이었다. 아직 안 해보신 것이고, 그래서 이 분이 실패할 것이라거나, 견습이라거나 그렇게 보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우려되는 바는 있다. 특임장관으로 이재오 의원이 가시는 것으로 돼 있고, 아무리 본인의 결정이 아니라고 해도 외교·국방·통일 장관이 한 명도 교체되지 않은 상태다.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심각한 문제 중에 민주주의 후퇴, 인권파괴, 소통의 부재 이런 것들도 있지만, 특히 외교관계-남북관계는 심각하게 후퇴하고 있다. 과연 이런 내각 진용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
"김태호 내정자를 두고 '서민총리'라고도 하더라. 동의하나."
"정운찬 총리도 서민이라고 하지 않았나. 이명박 대통령은 '나도 서민, 총리도 서민이니 잘 해보자'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40~50대 이상 세대는 아주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면 다 어렵게 살았던 과거를 가졌던 게 아닌가. 그 과거를 갖고 지금의 행동을 평가할 수 있나? 결국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신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 내에서 과연 무엇을 했는지를 갖고 평가받아야 하지 않나. 김태호 내정자가 친서민 정책으로 인상적인 성과를 낸 걸 본 기억이 없다."

ⓒ프레시안(최형락)

"'윤금이 사건'의 충격…한미동맹도 따질 것은 따져야"

"통일·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 같다. 최근 라디오 토론에서는 '6.25를 남침으로 보느냐, 북침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끝까지 답변을 하지 않았는데."
"청취자 질문이었는데, 따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겠다고 했었다. 그 뒤에 두꺼운 책을 한 권 샀다. 공부 좀 하고 말씀드리려고…. 답변은 아직 안했다."
"통일·외교·안보에 대한 관심은 어떻게 생겼나?"
"법조인이 되려고 했던 게 '윤금이 사건' 이후다. 동두천에 있는 미군 기지촌에서 벌어진 일인데, 1992년 10월26일이다. 26세인 윤금이 씨는 동두천 성매매업소에 있던 여성이었는데, 미군이 살해했다. 범인은 한국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15년 형을 받고 중간에 10년 정도 형을 살고 본국으로 송환됐다. 그 재판권을 행사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굉장히 논란이 많았다."
"최초로 재판권을 행사한 사례인가?"
"최초는 아니고 재판권 행사율이 당시 0.7%였다더라. 다행히 재판권은 행사 됐다. 이 사건을 보면서 굉장히 복잡한 문제란 생각이 들었다. 성매매 문제를 국내적으로 해결한다고 해서 과연 주한미군 기지촌이 없어질까? 그런 생각을 했다. 또 혹시 주한미군이 철수한다고 하면, 그럼 여기 있는 여성들은 성매매를 그만두게 될까? 그런 고민이었다. 2000년에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발생한 다다음 날 현장에 갔다. 거기서 이모부 분을 뵙고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현장에서 미군 트럭행렬이 40분 넘게 멈춰 있었는데 앰뷸런스도 안 부르고 경찰도 안 불렀다더라. 그래서 이모부가 앰뷸런스를 불렀다고 한다. 언론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분인데, 그런 것이 굉장히 가슴에 많이 남더라. 당시 의정부 경찰서에서는 주한미군 사건이라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없다, 이런 식으로 접근했다. 그런데 다시 협정을 보니까 재판권 협조를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이 버젓이 명시돼 있었다. '아, 보장된 권리도 못써먹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군을 어떻게든 편하게 주둔할 수 있도록 해줘야겠구나, 그런 생각 때문이다. 국방부에 오래 근무하신 분으로부터 정확하게 들은 이야기다. '미군을 불편하게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한미관계는 기본적으로 군사동맹 관계다. 하지만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 돈이 얼마가 든다? 이만큼 드니까 갑시다라고 하든지, 아니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안 되겠다고 하든지…. 그런데 얼마가 드냐고 물어보면, '얼마 안 될 겁니다', '미국이 알아서 해줄 겁니다',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라고 한다. 이것이 외교실무를 다뤘던 분들의 태도다. 이렇게 해서는 밖에 나가서 아무리 외교를 열심히 해도 국내에서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국민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건 협상의 걸림돌이 아니라 지렛대가 될 수 있다. 그것을 활용하지 못한 상황에서 계속 일방적으로 양보를 거듭하는 게 과연 합리적인지 납득이 안 된다."
"윤금이 사건 등의 문제로 미국과 직접 대화를 한 일은 있나?"
"대사관과 직접 대화할 기회는 당시에는 주어지지 않았고, 2005년 쯤에 한국에 관심이 있는 미국 분들하고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SOFA 문제를 한국인의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하니까 굉장히 놀라더라. 못 들어 본 이야기라면서…. 합리적으로 대화하면 한미 간에 풀릴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그 동안은 정치적인 문제와 얽히면서 제대로 잘 안 풀렸던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는 외교통상 분야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대화할 기회는 없었다."
"대화할 용의는 있나?"
"그렇다."

ⓒ프레시안(최형락)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대의 문제' 고민하길"

이 대표는 민노당 내에서는 대표적인 연합론자로 통한다. 정치연합 문제는 6.2 지방선거, 7.28 재보궐 선거에서 연이어 야권 최대의 이슈였다. 이 문제는 2012년 정국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이슈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6.2 지방선거와 7.28 재보선 등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민노당의 정치연합 전략에 대한 찬반양론이 뜨겁다. 당내에도 이견이 있나?"
"검토해 봐야 할 지점이 있다는 평가는 있다. (선거연합이) 모든 지역에서 언제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구체적인 상황을 놓고 그 때 그 때 판단해야 한다. 2012년까지 여러 변화가 있을 수 있지 않나. 민노당을 키우고, 단단하게 만들어 가면서 2012년까지의 상황에 따라 여지를 두고 넓게 보자, 이런 의견들이다. 대체로 6.2 지방선거에서의 야권연대에 대해서는 민노당이 국민으로부터 믿음을 얻어간 과정이라고 보고, 성과도 있었다."
"7.28 재보선은 어떤가. 은평을 연대는 정당했다고 보나?"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주민들을 만나보면 말씀이 거의 일치하더라. 야당이 돼야 된다는 판단을 하시는 분은 '단일화 해야지, 안 하고 어쩔건데'라는 이야기를 거의 빠지지 않고 하시더라."
"경쟁력 테스트 방식의 연대로 민주당을 이길 수 있을까?"
"2012년에는 그렇게 해서라도 이길 수 있는 곳이 생겨 날 것이다. 광주 남구에서 보여드린 것은 전혀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늘 과정이 똑같다. 처음에는 연대가 어렵다고 하다가, 각자 공천을 하고 나면 더 어려워진다. 이후에는 단일화를 하라고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또 경쟁력 테스트밖에 없지 않나. 그러면 작은 정당으로선 연대를 해도 다 양보하는 것밖에 안 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효과도 잘 안 살아나게 된다. 연대라는 것은 감동을 만들고 더 큰 힘을 만들어내자는 것인데 그 가능성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선 상당히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안에서도 광주를 양보하고, 다른 지역에서 좀 더 시간 여유를 갖고 명분을 쌓아가야 했다는 의견도 있더라. 단일화 협상도 해봤을 텐데, 그런 정도의 정치력을 민주당에 기대할 수 있나?"
"기득권에 얽매이신 분들이 많더라. 그것을 뛰어넘어야 민주당이 2012년 정권교체에서 하나의 축을 담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7.28 선거에 아쉬움이 많았겠다."
"그렇다."
"하지만 민주당 전당대회 과정에서 그런 부분에 대한 반성, 연합론 재정립, 그 평가에 근거한 새로운 원칙 등의 논의가 진지하게 이뤄지는 것 같지는 않은데…."
"(웃음)물론 당내 민주주의는 중요하다. 굉장히 중요한 가치이고…. 그런데 국민의 관심은 여러 갈래로 있는 야당들을 어떻게 단결시켜서 2012년에 정권을 바꿀 것인가, 정권을 바꿀 수 있는 인물과 주자를 키워낼 수 있는가…. 이게 아닌가. 그러려면 민주당이 전당대회를 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 가장 크게 비판받았던 연대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를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때로는 가장 가까운 사람을 주저앉힐 수도 있고, 때로는 손해를 감수할 수도 있고…. 그렇게 보다 크게 나아가는 민주당의 새로운 인물이 어떻게 커 나가느냐,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광주에서 민주당 의원들께서 정말로 과거로 돌아가는, 연대의 정신을 흐리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를 두고는 '한나라당의 2중대', '대책 없는 반미정당'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그 중에는 굉장히 촉망받는 의원들도 있었다. 당시에는 워낙 급하니까 사과도 못했을 수도 있지만 민주당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치인들이라면 그 문제가 어떻게 극복되고 있는지,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민노당으로서는 상당한 상처였겠다."
"그날이 7월26일이었다. 은평을 단일화 합의문에 서명하는 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단일화 할 수 있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10분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정리를 했다. 우리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지역주의에 발목 잡힐 생각 없다. 전국적 범위의 연대를 할 것이다. 광주를 바꿔주시면 2012년에 나라를 바꾸겠다고 약속했는데, 여기서 발목 잡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길로 서울에 올라와서 합의문에 서명하고 지원유세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께서 당시에 사과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말씀이 없으시더라."
"선거연대 외에 야권 지도부가 모여서 일상적으로 정국 인식을 공유하는 자리가 있나."
"없다. 상황별로 만나 의논하는 경우는 있지만 그 때 그 때 사정에 따라 달라지고, 입장과 사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큰 폭의 연대를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지는 앞으로의 정국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그런 것을 야당의 힘만으로 성사시킬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정당들은 워낙 자기의 입장이 강하기 때문이다. 결국 시민사회가 상당한 집중력을 발휘해서 야당이 그런 틀을 유지할 수 있도록 끌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5+4 같은 것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 야당들 사이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사실 많다. 비정규직 문제, 한미 FTA…. 시민사회가 끌어내고 중재하고, 이런 것이 필요하다. 4대강 사업도 혼란스럽게 비춰진 면이 있다."

"진보신당과는 여유를 갖고, 서로 기분좋게 통합했으면"

야권연대 논의가 나오면 항상 따라 나오는 것이 진보연대 얘기다. 이제는 어느 쪽으로건 결론을 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이 대표의 답변은 여기에 상당한 기대를 갖게 했다.

▲ 인터뷰를 진행 중인 고성국 박사 ⓒ프레시안(최형락)
"진보신당과의 관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통합해야 한다. 늦어도 총선 전에 해야 한다. 2011년 말 정도에는 이뤄져야 총선을 치룰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대화가 시작됐나?"
"진보신당이 지금 향후 방향을 토론하고 있지 않나. 약간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쪽이 입장을 다 정하면 더 힘들어지지 않나?"
"공식적으로 그렇다는 것이고, 생각의 교환은 늘 있을 수밖에 없는 사이다."
"진보신당이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있다. 명분이든 빠져나갈 구멍이든 민노당이 능동적으로, 대승적으로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음…, 몇 가지 생각은 하고 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양보? 그런 것으로만 가능한 것이라면, 이미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열어놓았다, 다만 몇 가지 문제에서 앙금이 채 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그런 점에서 최대한…, 뭐랄까. 너무 급하게 상황과 사태를 끌고가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 서로 여유를 갖고 충분히 생각해서 기분좋게 합칠 수 있었으면, 그런 생각으로 공식적인 논의에 약간의 여유를 두고 있는 것이다."
"트위터 팔로워가 몇 명쯤 되나?"
"트위터는 2만 명이 조금 넘고, 페이스북은 만든지 열흘 됐는데 450명 정도다."
"하루에 얼마나 하나?"
"주로 차를 타고 다니는 시간에 한다."
"트위터에 오늘 인터뷰 한 것도 올릴 건가?"
"그럴 것이다."
"기왕이면 재미있었다고 올려 달라."
"(웃음)정말로 재미있었다. 그렇게 올리겠다(웃음)."

오랜만에 유쾌하게 진행했던 인터뷰였고, 마지막까지 기분 좋은 인터뷰였다. 트위터 질문이 주는 현장감도 좋았다.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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