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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가 수렁에 빠진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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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가 수렁에 빠진 까닭

[박동천 칼럼] '마사지'만 하면 속아넘길 수 있을까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현재대로 처리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기사가 떴다 (☞바로보기). 내용을 보니 미국 최대노조인 AFL-CIO 대표들과 만날 예정인데, 그 전에 백악관 대변인이 밝힌 말이라고 한다. 뒤를 이어 "한국, 미 의회 탓 말고 FTA 협의 나서야"라는 기사도 떴다 (☞바로보기). 자동차와 쇠고기에서 오바마 정부가 본격적으로 한국을 압박하기 시작할 모양이다. 수렁에 빠진 한국 외교의 실상을 보여주는 일이다.

현재 한미 행정부 간에 체결되어 있는 자유무역협정안에서 쇠고기와 자동차 부분을 미국에게 좀 더 유리하게 고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오바마로서는 대통령 당선 전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FTA를 중요 업적 중 하나로 홍보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더군다나 요즘 미국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정까지 엄청 겹쳐 있으니, 십중팔구 이것은 미국의 요구가 반영되는 수정을 거쳐서 양국 의회의 비준을 받게 될 것이다. 조지 워싱턴 호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덩어리가 (조지 워싱턴이 직접 봤다면 자기 이름이 붙어서 반드시 즐거웠을까?) 서해 바다에서 시위를 벌인다고 하니, 그 값 또한 은연 중에 거기 계상되어 청구될 것이 뻔하다.

이제 이 시점에서 재작년말 전 세계적으로 한국 국회의 저질성을 광고했던 '전기톱-더하기-소화전-분말 국회'를 되돌아보자. 전기톱을 쓴 게 더 잘못인지 소화전 분말을 뿌린 게 더 잘못인지, 회의장 문을 잠근 게 더 잘못인지 그랬다고 문을 때려 부순 게 더 잘못인지는 접어두자. 그렇게 쌈박질을 할 이유가 어떤 차원이었을지만 캐물어보자. 우선 미국을 상대로 외교를 하는 차원에 그 쌈박질이 상관이 있었을까? 직접적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고, 간접적으로 보더라도 도움은 없고, 이명박이 유행시킨 유치한 단어로, "국격"이 깎였으니 있다면 손해만 있을 것 같다. 반면에 국내정치의 차원을 보면 직접적인 연관이 뚜렷하게 보인다. 공동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의 연관이 아니라, 어떻게든 눈앞의 상대를 꺾어버리겠다는 야만적이고 미숙한 동기로 가득 찬 연관이다. 국내정치의 목적 때문에 외교라는 실질 문제가 실종된 전형적인 사례다. 나는 작년 5월에 <프레시안>에 연재한 기사를 통해 (바로가기 ☞"한미 FTA의 민주주의적 해법"), 국회에서 육탄방어는 민족적으로 봐도 그렇고, 당파적으로 봐도 이익이 없음을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외교부의 잘못을 꾸짖는 방법으로서 육탄방어가 효과적일 수 없다는 말이었지, 정부가 잘 하고 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었다. 이제 다시 한 번 이 정권이 뭘 잘못하고 있는지를 짚어보자.

미국을 상대로 하는 관점에서 보면 한미FTA 게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에서 미국의 추가 요구를 얼마나 어떻게 수용할지("추가 요구는 수용 안 한다"는 소리는 강하게 나오면 나올수록 거짓말이라는 증거다), 그리고 그 대가로 어떤 다른 분야에서 어떤 요구를 해서 흥정을 맞출지가 미국을 상대로 해야 할 진짜 게임이다. 한국은 그 후 국내적으로 다시 이를 통해 이득을 얻는 산업분야에서 이를 통해 손해를 보는 산업분야로 이익의 재분배를 어떻게 할 것인지 묻고 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을 상대로 하는 개임에서 핵심과제인 것은 2008년 12월이든 2009년 4월이든 2010년 8월이든 시간이 지난다고 달라지지는 않는 불변적 상수에 해당한다.

그런데 한국의 외교부는 이 진짜 문제에 관해서는 마냥 자기들이 다 잘하고 있으니까 너네는 잔소리하지 말라는 식이다. 즉, 어차피 수정될 것이 분명한 마당에 한국 국회가 비준을 서둘 이유가 뭐냐고 했을 때, 외교부 당국자들은 수정은 없다는 뻔한 헛소리만 늘어놨다. 그러면서 한국 국회의 비준이 미국 의회에게 압박으로 작용한다는 또 하나의 헛소리를 지어냈었다. 지금 미국 정부가 한국으로부터 압박을 받아서, 한국에게 큰소리를 치고 있는가? 외교부라는 공공 직무를 차지하고 앉은 사람들의 머리에 대미 외교라고 하는 염불이 중요한 게 아니고, 국내 여론 호도라고 하는 잿밥이 가득 차 있는 셈이다.

외교문제를 국내정치용으로 이용할 생각밖에 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국정을 맡기는 사회는 앞날이 암울하기만 하다. 한말 우리 조상들이 그랬고, 인도나 중국이 국권을 상실하던 시기에 또한 그랬으며, 중세 북부이탈리아에서 나타났던 밀라노, 피렌체, 베네치아 등등, 공화정 역시 결국 같은 이유로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조지 W. 부시를 뽑아 국내정치 때문에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 또한 여기서 발을 빨리 빼지 못하고 시일을 끌면, 끌수록 국내외적으로 병이 더 커지기만 할 것이다. 국내의 정치투쟁에 모든 시야가 매몰되어 대외관계를 직시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자파의 이익 말고는 어떤 공동체의 이익도 인식할 능력이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외교문제를 국내정치에 악용해먹는 심성의 소유자라면, 여타 모든 국내정책도 말로만 "공익", "국익", "애국심"을 들먹이지만, 실지로는 철저하게 파당적이고 계급적인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얘기이다.

지금 이명박 정권의 행태가 그렇다. 북한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협박하는 짓은 단지 김대중-노무현의 집권에 대한 복수심 이외에는 그 어떤 이유로도, 도덕으로도, 실용으로도, 원칙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일 아닌가? 김정일이 다른 사람의 충고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이명박 본인의 심성을 살펴보면 더 이상 분명할 수가 없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인권위는 국제인권위원장 자리를 포기한 이후 완전히 일손을 놓고 놀고 먹는 기관으로 전락했고, 통일부는 없어질 뻔했다가 살아남은 후 마치 유령이기라도 한 것처럼 실체 없는 장관이 취임해서 복지부동이 곧 최선의 정책이라는 악령의 목소리에 충성을 바치고 있다. 북한 약 올리기를 최고의 임무로 삼는 한국의 외교관(아니면 첩보원)들은 리비아에서까지 국내정치용 행보로 활개를 치려다가 망신을 샀다.

그리고 천안함을 보라. 누구든 그런 사고가 나면 맨 먼저 북한을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느닷없는 파란 글씨 "1번"이 "스모킹 건"이 될 수는 없다. 북한이 아무리 의심스럽더라도, 국제사회에서 떳떳하게 호응을 얻으려면 증거가 되는 것을 가지고 증거라고 내놔야 한다. 합조단이 건져 올렸다는 쇠뭉치는 아주 엄격한 재조사가 이뤄져서 증거능력이 갖춰지기 전에는 아무 증거도 아니다. 러시아와 중국이 그렇게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것이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없음을 다 안다. 유엔 안보리 의장성명과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에서 이미 그것이 결정적일 수 없다는 의미는 분명하게 드러났지 않은가?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선거를 코앞에 둔 5월 20일에 서둘러 엉성하게 짜맞춘 결론을 발표하는 만용을 부렸다. 선거 때문이 아니었다고 아무리 변명을 해도, 합조단과 국방부 언저리의 모든 과학자들이 다 자격미달이 아닌 한, 과학의 이름으로 그런 발표를 할 리가 없다는 것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수준의 뻔한 얘기다. 수정이 명약관화한 한미FTA를 2008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수정은 없다는 식으로 무지르고 넘어가는 권력문법일 뿐이고, 실상은 그렇게 말을 하는 당사자가 바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인 것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실상을 숨기고 번지레한 말로 "마사지"만 하면 멍청한 국민들은 속아 넘어 간다는 배짱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제 한국 정부는 아무 곳에서나 서툴게 스파이짓을 벌이다가, 여차하면 뇌물로 해결하는 정부로 알려지고 있는 모양이다. 인권에도 무감각하고 진실 따위는 애당초 없다고 믿는 권력에게 묵종하는 백성으로 한국인들은 국제적으로 알려지고 있는 모양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e북으로 읽을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대충 마사지해서 넘어갈 수만 있다면 넘어가고, 걸리면 또 대충 변명해서 넘어가면 된다고 믿는 정권에게 여전히 40%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인질로 잡혀서 스톡홀름 신드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게 매달려서 중국을 약 올린 결과, 중국에게 장차 갚아야 할 빚이 날로 쌓이고 있다는 것은 차라리 작은 문제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런 식으로 미국에게 매달린 결과 갈수록 미국에게 한국이 예속되는 것도 차라리 작은 문제일 수 있다. 국제적으로 대한민국 민족의 도덕적 위상이 크게 손상을 입는다는 것도 자체로 비록 막대한 부담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미래에 우리의 늠름한 후손들이 충분히 지불할 수 있으리라고 애써 자위하고 넘어가도 괜찮을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를 담당한 자가 외교를 뒷전으로 미루고, 인권을 담당한 자들이 인권에 무관심하고, 통일을 전담하기 위해 예산을 쓰는 부서가 통일을 먼산 쳐다보듯 대접한다는 것이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겨도 이렇게까지는 안 될 것이다. 고양이는 배가 부르기만 하면 생선을 더는 망치지 않겠지만, 이 권력의 못된 버릇은 배부를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 버릇을 지금 우리가 못 고치면서 우리 후손이 늠름해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명박이 이 모든 문제의 직접적인 원인이다. 이명박의 심리가 편협한 계급이익과 국내정치의 복수심으로 차있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맡은 바 임무를 게을리하는 하수인들의 허물이 덮어질 수는 없다. 차제에 고위공직자들의 직무유기에 관해 공정하지만 명확한 처벌 기준을 만들어서, 장차 엄격하게 적용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민족과 인류에 대한 범죄의 경우, "시켜서 했다"는 변명이 통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또 이명박이 집권하도록 무책임하게 지지한 다수 유권자들의 책임도 면할 수 없다. 민주정치에서 유권자들이 지지후보를 자율적으로 정하는 것이 주권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이 정권이 나라를 어떻게 말아먹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무지한 국민들은 성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공동체에게 무엇이 이익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잘못은 개인적인 무지 정도가 아니라 반드시 공동체에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천안함의 진실을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 인생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 4대강 사업의 정상화를 위해서 목숨을 건 투사들은 이러한 투쟁을 통해 이명박을 계급의 왕초로 섬기는 어리석은 유권자들을 향해 단견과 미혹을 꾸짖고 있다. 진실과 인권과 생태계는 사치가 아니라 공동체가 살아남기 위해 필수적인 생존의 요건이라는 것을 깨달으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깨달은 사람이 주류는커녕 소수에 그쳐서 박해를 받게 된다면, 한국 사회에 미래는 없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는 심보는 안 그래도 암울한 미래를 확실히 지옥으로 빠뜨리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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