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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완벽한' 살인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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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완벽한' 살인을 하다

[의료와 사회] 영화 <패솔로지>와 백남기 농민 사건을 통해 본 부검

"비록 위협을 당할지라도 나의 지식을 인도에 어긋나게 쓰지 않겠노라."
- 세계의사회 제네바 선언(Declaration of Geneva, Physician's Oath, 1948) 중 발췌

영화 <패솔로지(Pathology)>(마크 쇼엘러만 감독, 2007)는 두 사람의 남녀가 오르가슴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아니 정확히 이야기하면 두 시체 사이의 대화이다. 일군의 의사들이 시체안치실에 있는 시체의 턱을 손으로 움직여 마치 말하는 것처럼 모양을 낸 다음 성적 대화를 나눈다. 결국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교성으로 이어지고, 시신은 내던져진다. 다음 장면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자막으로 나오며 오프닝을 장식한다.
이것은 의사의 전문가적 양심에 관한 이야기이다.

▲ 영화 <패솔로지> 스틸컷.

의사와 환자 사이에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이 발생한다. 즉, 의학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아무리 인터넷을 통한 정보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해도 의사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의 불균형 상태는 권력 관계를 동반하게 된다. 쉽게 말해 의사가 내리는 지시를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환자는 쉽사리 거부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의 일반적 관계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에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환자는 자신의 신체를 의사에게 맡길 수밖에 없다. 이 지점에서 의사의 전문가적 윤리가 시작된다.

하지만 의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질병·손상·이상 등을 진단하고 치료해 궁극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을 업으로 하는 의사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 더 나아가 죽인다고 생각해보라.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의사 살인자로는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Josef Mengele)를 들 수 있겠다. 그는 나치 친위대 장교로 아우슈비츠 및 비르케나우 수용소의 내과의사였다. 그의 역할은 병에 걸리거나 다친 수감자들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수용소에 도착한 수감자들 중에서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강제노역에 동원할 것인지를 결정했다. 또한 멩겔레는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한 악명 높은 생체실험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에 못지않은 생체실험이 '마루타'로 잘 알려진 일제의 731부대에서 행해졌는데, 그 부대의 별칭인 이시이 부대는 부대장이자 교토제국대학 출신 엘리트 의사인 이시이 시로(石井 四郎)의 이름을 딴 것이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 ⓒgoogle.com

그런가 하면, 지난 2000년 영국에서는 해럴드 쉽먼(Harold Shipman)이라는 동네 의사가 최소 15명의 환자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나중에 밝혀진 것에 따르면, 그는 24년간 최소 215명의 환자를 모르핀 과다 투여 등의 방법으로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그를 믿고 그에게 몸을 맡긴 사람들을 말이다. 이에 따라 그는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사람을 죽인 연쇄 살인범으로 기록되었다. 그는 살해 순간 흥분을 느낀다는 불분명한 동기만을 밝힌 채 2005년 감방에서 자살했다.

영화 <패솔로지>는 쾌락과 게임을 위해 자신의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완벽한' 살인을 저지르는 의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하버드 의대를 수석으로 졸업한 테드는 메트로폴리탄 대학 메디컬 센터의 병리학 프로그램에 합류한다. 그는 이 병원에서 가장 뛰어난 실력을 지닌 제이크를 알게 된다. 제이크와 그 일행은 날카로운 통찰력을 바탕으로 부검 소견을 피력하는 테드를 견제하는 한편, 그들의 무리로 끌어들여 게임에 참여시킨다. 그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 중 한 명이 돌아가면서 살인을 저지르면 나머지 사람들이 (대부분 환각 상태에서) 사인(死因)을 맞추는 것이다.

사실 이 영화는 이전에 소개한 영화들과는 달리 그다지 보라고 권할 정도는 아니다. 영화는 환각 상태, 노골적인 부검 장면, 시체 옆에서의 섹스, 일행마저 살인 게임의 대상으로 삼는 잔혹함, 죽은 약혼자를 직접 부검하는 장면, 뮤직비디오를 연상케 하는 커트 편집 등을 통해 시나리오의 너무나도 부족한 개연성을 메우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땜질용 자극적 신(scene)을 제외하면 거의 남는 것이 없을 정도이다. 남는 것은 영화의 제목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의 제목인 'pathology(병리학)'는 질병의 본질적 성질을 연구하는 의학의 한 분야로서, 특히 병을 일으킨 신체의 조직이나 기관의 기질적 변화 및 기능적 변화를 연구하는 학문을 뜻한다. 이 학문은 신체의 병적 요인을 판단하여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원인을 규명하는 법의학적 근거를 마련해준다. 영화는 나름의 병리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의사들이 그것을 바탕으로 '완벽한' 살인을 저지르고, 또 마찬가지로 다른 의사들이 부검을 통해 상대방의 살인 방식을 알아맞히는 게임을 한다는 것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프레시안 자료 사진

한국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300여 일이 넘게 투병하다 결국 사망한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와 부검에 관한 논쟁일 것이다. 그것은 정치권의 공방은 말할 것도 없고, 의사 사회에서도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침에 어긋나고, 사망의 종류를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病死)'로 기재한 사망진단서를 두고 일각에서는 서울대병원과 백남기 씨의 주치의 백선하 교수에게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물대포에 의한 '급성 경막하출혈'에 의한 사망보다는 지병에 의해 사망했다는 의학적 소견이 '국가폭력에 의한 살인'이라는 정치적 부담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부검도 마찬가지이다. 물고문에 의한 사망을 심장마비로 조작하려다 부검의의 양심선언으로 진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1987년 박종철, 시신 탈취에 이은 강제부검을 통해 의문사를 자살로 급히 마무리 지은 1991년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 등과 같은 역사적 사실로 미뤄 판단해 봤을 때 부검으로 진상을 규명한다는 것은 미명에 불과할 수도 있다. 이미 많은 의학적 기록이 남겨져 있기 때문에 부검을 원하지 않는다는 유가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극구 부검을 하려는 이유가 논란의 사망진단서와 맞닿아 있다는 추측도 무리가 아닌 것이다.

권력에 부화뇌동하여 사인을 조작하고, 불의에 침묵한 소시민적 전문가들을 글의 서두에 언급한 살인 의사들, 또 영화에서 죄책감 없이 살인을 일삼는 의사들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전문가적 양심을 가지고 돌봐야 할 환자들 편에 서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그들은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고통과 상흔을 남겼다는 점도 기억해야만 한다.

외압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여전히 많은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우리 사회는 이것에 답해야만 한다. 현직 대통령의 전 주치의가 병원장인 병원, 조작된 황우석 줄기세포 논문에 공동저자로 등록한 이력이 있는데다 가족이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를 강행한 전문가적 사명감이 결여된 의사. 의료 기록과 공개된 폐쇄회로 영상을 무시하고 부검을 하려는 공권력. 극우 사이트 '일간베스트(일베)'의 논리를 그대로 주장하는 정치인. 지금도 이 사회를 병들게 하는 요인들은 차고 넘친다. (사회)병리학적 지식과 경험을 통해 부검해야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 사회의 사망진단서야 말로 '병사'로 기록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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