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문재인 정부가 제안한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에는 무응답으로 일관하면서 또다시 탄도미사일을 쏘아 올린 것은 분명 규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는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한미 양국이 '조건부 대화론'에 집착하고 제재 강화에 몰두하는 것으로는 결코 북한의 행태를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던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ICBM 발사에 대응해 내놓은 대책들도 대단히 우려스럽다. 문 대통령은 “북한 정권도 실감할 수 있도록 강력하고 실질적인 조치를 다각적으로 검토하길 바란다”고 했고, 이에 따라 정부는 다양한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유엔 안보리 회의 소집을 요청하면서 추가적인 대북 제재를 요구했고, 독자적인 제재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또한 한국의 탄도미사일 탄두 중량을 현재 500킬로그램(kg)에서 1톤(t)으로 늘리고, 아직 성주 롯데 골프장에 배치되지 않은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발사 차량 4대를 임시배치하는 방안도 미국과 협의키로 했다. 미국의 전략자산을 전개해 무력시위를 강화하고 군사적 대응 옵션도 검토하겠다는 소식마저 들린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대응조치들은 이명박-박근혜 시기에 지겹도록 봐왔던 것들이다. 정권은 바뀌었지만 정책은 거의 바뀐 것이 없다는 개탄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이러한 강경 대응의 대부분이 북한 정권에게 고통을 주는 게 불가능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잉태하는 반면에, 한국이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북한의 경제적 고통을 극대화하는 제재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현실화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 설령 이러한 제재에 돌입하더라도 근본적인 질문에 봉착하게 된다. 북한 정권이 심각한 고통을 느낄 정도로 제재를 가하면 북한 주민이 겪게 될 고초는 어느 정도일까? 북한 정권이 고통을 느낀다고 과연 핵을 포기할까? 제재에 끄덕하지 않겠다며 더욱 도발적으로 나오지는 않을까?
반면 우리가 직면하게 될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사드 '임시배치' 입장이 대표적이다. 사드 배치가 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미일동맹과 중러협력체제가 맞닥뜨리고 있는 전략적 경쟁의 한복판으로 한국을 인도하게 된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북한은 이 틈을 노려 핵·미사일 개발을 향해 더욱 질주할 공산이 크다.
누누이 강조하지만 사드로는 결코 북핵이라는 혹을 떼어낼 수 없다. 오히려 북핵이라는 혹을 더 키우고 중국, 심지어는 러시아의 위협이라는 더 큰 혹마저 달게 될 위험이 크다. 도대체 이를 감수할 만한 실익이 무엇이 있을까?
더구나 사드 임시배치 결정은 정부의 모순을 여실히 드러낸다. 정부는 지금까지 사드는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체제(MD)와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북한의 ICBM 발사를 이유로 임시배치를 결정했다. 이게 사드가 곧 MD의 일환임을 실토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현실적인 문제도 큰 걱정거리이다. 사드 발사대는 개당 40t 안팎에 달해 헬기로 수송할 수도 없다. 육로로 운송해야 하는데, 이게 과연 순탄하게 이뤄질까? 성주-김천-원불교 및 이들과 연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현장에서 결사 저지를 다짐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드 배치 강행시 현장에서의 물리적인 충돌도 불가피해질 위험이 크다.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면, 촛불 시민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와 현장 주민 및 진보적 시민사회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수구 세력이 이틈을 호재로 이용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문재인 정부에 거듭 호소하고 싶다. 자해적인 사드 배치 결정을 유보하고, '조건 없는 대북 대화'에 나서자고 미국을 집중적으로 설득해달라고 말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얼굴도 붉힐 수 있어야 한다. 격렬한 토론이 부재한 한미 공조는 실패한 정책의 되풀이와 악순환의 확대 재생산을 예고해줄 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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