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8일 밤 자강도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급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새벽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긴급 소집하고 북한의 도발에 상응하는 강력한 대응 조치를 지시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밝힌 문 대통령의 4가지 지시 사항은 "▲북한의 전략적 도발에 대한 대응 조치로 한미연합 탄도미사일 발사 등 보다 강력한 무력시위를 전개할 것 ▲사드 잔여발사대 추가배치를 포함, 한미간 전략적 억제력 강화방안을 즉시 협의할 것 ▲UN 안보리 소집을 긴급 요청해 강력한 대북 제재안 마련을 추진할 것 ▲북한의 추가도발에 대한 대북 경계태세를 강화할 것"이다.
문 대통령이 NSC 전체회의 직후 지시한 이 같은 대응조치는 지난 4일 북한이 ICBM급인 화성-14형을 발사했을 때와 사뭇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 4일 NSC 상임위를 주재한 자리에서 내놓은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정부는 북한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이며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재확인한 양국의 견고한 연합방위태세와 긴밀한 대북 공조를 더욱 강화시켜 나가겠다"는 원론적 언급이었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NSC 전체회의를 거쳐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위협할만한 기술적 완성도를 갖춘 ICBM으로 판단하고 강도 높은 조치를 지시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정부가 이날 새벽 발표한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발사에 대한 정부성명'도 "북한은 지난 7월 4일에 발사한 미사일보다 진전된 ICBM급 미사일"이라고 규정했다.
성명은 "지난 7월 4일 북한의 도발에 대한 안보리 차원의 논의가 진행 중인 상황에 감행된 이번 도발은 안보리 관련 결의의 명백한 위반일 뿐 아니라 한반도는 물론 국제 평화와 안전에 대한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에서 정부는 이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합동참모본부도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미사일이 지난 4일 발사했던 화성-14형을 뛰어넘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합참은 "고도는 약 3700km, 비행거리는 1000여km로서 사거리 기준 시 지난번 보다 더 진전된 ICBM급으로 추정되며 추가 정보에 대해서는 한미가 정밀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일본 NHK 방송 역시 정부 관계자를 통해 "북한 미사일의 고도는 3000Km를 초과했을 가능성이 있고, 45분 간 비행해 미사일이 떨어진 곳은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북한이 지난 4일 화성-14형을 발사한 뒤 최대고도 2802km, 비행거리 933km, 39분을 비행했다고 밝혔던 것에 비해 이번 미사일이 최대고도와 비행시간 등에서 확실히 진전된 것으로 평가된다.
관건은 북한의 ICBM 기술이 완성단계로 진입했는지 여부를 가를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다. 앞서 화성-14형의 기술적 평가와 관련해 지난 5일 한민구 국방장관은 "대기권 재진입 기술이나 그 외의 것들은 확인되지 않았다"며 "재진입 기술에 성공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한 바 있다.
한미 당국이 그동안 북한의 ICBM 기술을 완성단계로 간주하지 않은 주된 근거였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이번 미사일 발사를 통해 확보한 것으로 확인될 경우, 북핵‧미사일 문제는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지난 4일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한미 정상이 협의한 평화적 방식의 한반도 비핵화 구상에 호응하지 않고 레드라인 넘어설 경우 우리(한국과 미국)가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다"며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한 바 있다.
비핵화를 위한 대화와 협상을 강조한 '베를린 선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대화 제의를 일축하고 추가 도발로 응수한 점도 문 대통령의 고강도 대응 조치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입지가 좁아진 문 대통령이 미국 측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대북 무력시위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는 성명에서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책임 있는 당사자로서 인내심과 끈기를 갖고 한반도의 비핵화 및 평화·안정을 위한 노력을 중단 없이 경주해 나갈 것"이라며 "북한은 우리 정부가 베를린 구상의 후속 조치로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과 긴장완화를 위한 회담에 지금이라도 호응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밝혀 대화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뒀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사드 잔여발사대 추가 배치 협의를 미국 측과 진행하라고 지시한 대목은 적지 않은 파장을 낳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드가 북한 미사일 방어에 효과적인 군사적 수단이 아니라는 지적이 적지 않은 데다 중국과 외교적 갈등으로 번질 가능성도 다분하기 때문이다.
현재 사드 발사대 2기와 엑스밴드 레이더가 상반기에 이미 경북 성주에 실전 배치됐고, 나머지 발사대 4기는 한국에 반입돼 실전 배치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국방부는 28일 사드 부지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 실시를 결정하면서도 사드를 운용하기 위한 기지 조성 절차도 함께 진행하기로 해 언제든 나머지 발사대 4기가 추가 배치될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문 대통령의 지시로 한미 간 협의를 통해 잔여 발사대 추가 배치가 결정될 경우, 환경영향평가와 별개로 사드 포대가 배치 완료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될 경우 한반도 전체가 군사, 외교적으로 격랑에 휘말릴 것이란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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