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보장의 전통적 의미?
'안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게 무엇일지 궁금해서 몇몇 지인에게 물어보았다. 다양한 대답이 나왔지만, '국가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라는 점에서 대체로 공통되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다. 우리나라에서는 '안보'를 '국방'의 대체 용어로 사용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안보'는 안전 보장의 줄임말이다. 안전 보장에 대해 다음(Daum) 사전은 '다른 나라의 침략이나 위협으로부터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로, 네이버(NAVER) 사전은 '국가가 외부로부터의 공격과 침략에 대비해 자국의 안전을 유지하고 확보하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안전보장은 UN의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물리적·군사적 위협에 대해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안전 보장은 냉전시대의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각 국가들은 전쟁 대비에 힘을 쓸 수밖에 없었고,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주권을 지키는 일이었다. 국가의 다양한 역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군사력 강화였고, 안전 보장을 위해 다른 것들은 덜 중요해지거나 때로는 무시당했다. 그리고 냉전이 끝났다.
인간 안전 보장의 탄생과 몰락
세계는 냉전으로 가로 막혔던 동서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군사적 긴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냉전이 끝남과 동시에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안전 보장의 역할이 약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안전 보장을 위해 덮어두었던 다양한 문제들은 국민의 삶과 국가의 주권에 새로운 위협을 가져왔다. 경제, 환경, 자원, 식량은 물론 남북 문제(적도를 경계로 국제적인 빈부격차 문제) 등의 군사적 위협이 아닌 새로운 위협이 국가의 존망을 위협했다.
나아가 국가 단위에서 논의되던 안전 보장이 새로운 문제들에서는 국민 개개인의 삶의 차원으로 내려왔다. 안전 보장은 많은 논의를 거치고, 더 복잡한 형태를 띠게 된다. 그 결과 안전 보장은 '인간의 안전 보장'(이하 인간 안보)이라는 새로운 모습을 가졌다. 인간 안보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 차원에 대해 논의하도록 합의를 이룬다. 인간 안보는 새로운 정의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유엔개발계획(UNDP: 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은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렸다.
"안보란 지속적인 기아, 질병, 범죄, 억압 등으로부터의 안전이며, 가정이나 직장 등 사람들의 일상을 갑작스럽고 고통스럽게 파괴하는 위협으로부터의 보호이다."
위의 정의를 보면, 전반부인 '지속적인 기아, 질병, 범죄, 억압 등으로부터의 안전'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면서 직면할 수 있는 사회적 위협에 대한 안전을 말한다. 후반부인 '일상을 갑작스럽고 고통스럽게 파괴하는 위협'은 전쟁과 같은 군사적 위협에 대한 보호라 해석할 수 있다. 즉, 전통적 안전 보장의 정의에서 국가와 국민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던 것은 군사적 위협이었지만, 인간 안보에서는 사회적 위협과 군사적 위협 모두가 고려 대상이다.
전통적 안보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우리 사회에서는 인간 안보라는 개념 자체가 굉장히 생소하다. '국방≒안보'라는 전통적인 프레임에 갇혀서 안보 문제에서는 양극단의 선택지 말고는 선택하기 어렵다. 선택지 또한 극단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인간 안보의 측면에서 생각하면 고려의 대상이 훨씬 많아진다. 논의할 수 있는 부분도 많아지고 부분과 부분의 논의와 합의를 거쳐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생기기도 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극단적인 갈등을 보이고 있는 안보 문제는 아마도 '사드(THAAD)' 문제일 것이다. 사드 문제 역시 전통적 안보 측면에서는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고 있다. '죽느냐, 사느냐'의 극단적인 선택지만이 존재하며, 가운데 항목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사드는 배치해야만 하며, 이를 위한 희생은 당연한 것이 된다.
그러나 인간 안보로 사드 문제를 바라보면 쟁점이 훨씬 많아진다. 전통적 안보 문제의 해결 절차는 물론이고 다른 논쟁점들도 포함된다.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나타난 중국과의 관계, 수십 년간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존권, 전자파로 파괴되는 자연 환경 등으로 논쟁점이 훨씬 많아진다. 그리고 이런 논의를 통해 양극단만 존재하던 사드 문제의 해결 방법을 다각도에서 고려할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또 다른 선택지가 등장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과 외교적 교섭을 통해 미사일 도발의 가능성을 낮추고, 중국과 미국에 대한 외교를 통해 사드 문제를 해결하고자 시도한다. 이는 지난 박근혜 정부가 전통적 안보의 입장에서 '무조건 배치'만을 주장했던 것과는 다른 행보이다. 그리고 이런 접근은 정부가 국가의 안전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국민의 안전까지 고려했던 결과로 나타난 행동인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 사회의 인간 안보를 위하여
사드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 문제에서도 인간 안보의 시사점은 많다. 우리나라는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삶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사회안전망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비극적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구의역 사건'이나 살인적인 근무시간으로 인한 잇따른 집배원 사망과 타인의 생명까지 빼앗고만 고속도로의 졸음운전은 노동이 삶을 영위해주지 않고,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있는 사례이다.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하는 아이들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4배가 넘는 노인 빈곤으로 인한 괴로움으로 자살하는 어르신들도 많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기본권이 짓밟힌 결과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선 인간 안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자본 우월주의에 기반을 둔 시장 만능주의 체제 때문일 것이다. 황금 제일주의의 무한 경쟁 사회는 인간의 기본권보다 자본의 이익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여기서 노동은 제 값을 받지 못한다. 개개인의 삶의 고통을 사회적 안전망과 제도로서 보호하고 구제하기는커녕, 철저한 승자독식의 시장주의 질서 아래에서 우리들은 스스로 자유로워지고 안전해져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이 사회에서 도태되고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전통적 안전 보장의 틀 속에서 국가나 사회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할 것이 아니라, 인간 안보의 틀에서 개인의 삶을 보장하고 나아가 국가와 사회의 안전도 보장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복지국가다. 국민의 안전은 어느 안전보장의 개념에서도 국가가 보장해야 하며,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국민의 삶이 위협받는 것은 국가의 직무유기에 해당한다.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 바로 가기 : '죽음의 일터' 집배원들의 눈물을 보라)
(팟캐스트 <이상이의 칼럼 읽어주는 남자>는 국민라디오와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함께 만드는 정책 시사 방송입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