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파내지 못한 줄기세포 사태의 뿌리
2005년 황우석 사태를 둘러싸고 '황우석 게이트'라고 불러야 한다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황우석은 '얼굴마담'에 불과하니, 그를 앞세워 권력과 돈을 탐했던 실체를 파헤쳐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황우석이라는 인물이 가진 상징성은 강했다. 단적으로 현재 촛불에 기름을 붓고 있는 정치인, 언론인, 학자들조차 당시 황우석 사태를 정확히 판단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결국 황우석의 가면을 벗겨냈지만, 한국 사회는 그의 맨 얼굴을 마주하기 꺼렸다. 제보자 류영준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는 데만도 8년이 걸렸다. '황금박쥐'(황우석, 김병준(청와대 정책실장), 박기영(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 진대제(정보통신부 장관))가 거론되긴 했지만, 그 실체를 파헤치기엔 한국 사회 전체가 너무 지쳐있었다.
결국 잘못된 뿌리로부터 다시 자라난 줄기
황우석 사태 이후 일본은 난자를 사용할 필요도 없는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역분화줄기세포라고도 함)를 만들어냈다. 이로써 윤리적 문제도 상당히 벗어났을 뿐 아니라, 줄기세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열며 2012년 노벨상까지 거머쥐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연구의 기반을 새롭게 다지지 못했다. 황우석 사태로 잠시 숨죽이던 상업적·정치적 움직임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2000년대 우후죽순 등장한 바이오벤처들이 황우석의 빈자리를 대체했다. 그리고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정권이 이들을 위해 발 벗고 나서며 다시 거품이 쌓이기 시작했다.
첫 신호탄은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이 쏘았다. 2009년 10월 자가유래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해 안전성 평가(임상1상)만 받으면, 조건부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통상 임상시험은 3상까지 거쳐야 한다). 한마디로 자가유래 줄기세포 치료제의 경우 효과가 확인되지 않아도 일단 팔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대놓고 기업을 지원해주자는 안이었다. 왜냐하면, 업체로서는 막대한 돈을 들여 임상시험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통과된다는 보장도 없고) 거꾸로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오히려 안전하고 효과 있는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저해할 수 있는 안이었다(일단 판매되면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 환자가 돈을 지불하는 거 자체가 플라시보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다행히 식약처(당시 식약청)가 올바른 입장을 내놓으며 개정안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식약처가 말을 듣지 않자, 이명박이 직접 나섰다. 그는 2011년 9월 16일 '줄기세포 R&D 활성화 및 산업경쟁력 확보방안 보고회'에 참석해 "너무 보수적으로 하면 남들보다 앞서갈 수 없다"며 식약처에 업계를 지원할 수 있는 제도 개선책을 내놓으라고 주문했다. 대통령의 강력한 주문은 바로 효과를 냈다. 2011년 말부터 2012년 초까지 세 개의 줄기세포 치료제가 전 세계 최초로 허가됐고,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이 규제 완화됐다. 또한 희귀의약품지정 대상이 확대되었고(희귀의약품으로 지정되면 임상시험 완료 전에 판매할 수 있다), 직접적인 바이오벤처 기업에 대한 지원이 확대되었다.
아예 몸소 실천하여 거품을 키운 박근혜
이명박 정권의 줄기세포 업체들에 대한 지원사격은 박근혜 정권으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특히 박근혜-최순실이 무료로 줄기세포 치료를 받았다고 알려진 RNL바이오는 이 사이 마음껏 비행을 저질렀다. 2009~2012년 말까지 1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수천 수억의 돈을 받고 법망을 피해 일본, 중국에서 줄기세포를 주입했다. 이 중 2명이 사망하고 나서야 그 실체가 겨우 드러났지만, 처분은커녕 제대로 된 조사조차 진행되지 않았다. 주가조작, 정치권 로비, 성추행 등 온갖 범죄혐의가 드러났지만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심지어 정치권 로비 과정에서 김종률 전 의원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했지만 이 또한 묻혔다.
각종 피해사례가 드러나도 박근혜의 줄기세포 사랑은 줄지 않았다. 새롭게 또 한 종의 줄기세포 치료제를 허가해주었으며, 신의료 기술 평가 간소화, 임상시험 규제 완화 등 줄기세포와 관련된 온갖 장벽을 허물어 주었다. 또한 각종 '바이오산업 육성 전략'을 통해 수천억 원을 관련 기관과 업체들에게 지원해주었다. 아예 자신과 관계가 있는 줄기세포 업체들을 위한 맞춤형 규제 완화도 진행됐다. 알츠하이머(치매), 뇌경색 분야를 꼭 집어 임상시험을 규제 완화해주었고, 황우석 사태 이후 금지해왔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허용하였으며, 제대혈의 상업적 활용을 추진했다. 이런 발표들이 나올 때마다 관련 줄기세포 업체들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뛰어올랐고 CEO들은 재계 상위권 순위에 진입했다.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
잘못된 거품은 결국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 된다. 전 세계에서 허가된 줄기세포 치료제 중에 우리나라 것이 4개라며 자랑스러워 할 일이 아니다. 해외 유수의 잡지들은 이미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한국의 허술한 심사를 통과한 줄기세포 치료제를 믿을 수 없단 얘기다. 상업성에 치중해 시판 허가를 받기에만 급급한 현재의 시스템은 장기적으로 접근하며 수많은 실패를 거듭해야 하는 기초연구를 양성할 수 없다. 결국 효과도 제대로 입증 안 된 줄기세포 치료제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다. 부자들의 미용을 위한 지방줄기세포시술만 판을 치면 다행이겠지만, 진짜 큰 피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난치병 환자들에게 전가된다. 실제 RNL바이오가 주된 타깃으로 삼은 대상은 뚜렷한 치료법이 없는 뇌경색, 파킨슨병, 버거씨병, 자가면역질환에 효과가 있다며 환자들이었다(일본 후생성 조사보고서 참조). 즉, 이 잘못된 순환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줄기세포 업체들은 'VIP'들에게 무상으로 미용과 '정력'을 관리해주었던 것이고, 현재 우리는 그 장면의 일부를 겨우 목격하게 된 것이다.
잘못된 줄기를 쳐내고 썩은 뿌리를 뽑아야
비리가 캐도 캐도 끝이 없으니, 이제 웬만한 비리는 국민들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다. 문제의 '7시간'과의 연관성이 제기되며 줄기세포가 집중되나 싶더니, 며칠 사이에 가십거리로 삼기에도 부적절한 '비아그라'에 묻혔다.
그러나 앞으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을 파헤치는 지난한 과정을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은 황우석 사태 때와 달라야 한다. 물론 상황은 녹록지 않다. 심지어 민주당은 줄기세포 사안이 터져 나오던 시점(11월 9일)에 첨단재생의료법을 발의했다. 사실상 해외 원정으로 행해지던 그 줄기세포 치료를 한국에서 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법안이다. 결국 현재로서 답은 하나밖에 없다. 모든 적폐가 드러날 수 있도록 양심 있는 전문가들이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국민들이 더 큰 압력을 넣는 것 말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얼마나 많은 우리의 세금과 우리의 시간이 낭비될지 모른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효과도 입증 안 된 줄기세포 치료제에 돈을 부으며 희망 고문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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