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권 보장을 요구하는 '고교무상화'재판이 오랜 심리를 끝내고 일부 지역에서 판결을 앞두고 있다. 이 재판투쟁은 도쿄, 아이치, 오사카, 히로시마, 후쿠오카의 다섯 지역에서 진행되어 왔는데, 오는 7월19일 히로시마에서 판결이 예정되어 있고, 이어서 28일에는 오사카에서, 그리고 다소 간격을 두고 9월13일에는 도쿄에서 판결이 선고될 예정이다. (아이치, 후쿠오카는 아직 결심에 이르지 못했다.)
'무상화'제도에서 배제된 조선학교
2010년 4월에 실시된 '고교무상화'제도란 교육의 기회 균등을 목적으로 공립 고등학교의 수업료를 받지 않고, 사립 고등학교 등의 학생들에게 공립 고등학교 수업료에 상당하는 금액의 '취학 지원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외국인학교 학생들도 제도의 적용 대상이라서 당초 일본 전국의 조선고급학교 10개교 학생들도 포함하는 것으로 상정되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외국인학교 중에서 조선고급학교 학생들만 교부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제도의 이념과 본래의 규정에 입각한다면 당연히 조선고급학교에도 신속하게 '고교무상화'제도를 적용되는 것이 마땅했다. 하지만 이 제도를 도입한 민주당 정권 당시에 북한과의 외교 문제 등을 이유로 제도 적용이 연기되어, 최종적으로는2012년 12월에 자민당이 재집권해 제2차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이 성립된 뒤 제도 자체가 개악되어 제도 부적용이 결정되었다.
아베 자민당 정권이 부적용 방침을 밝힌 뒤, 2013년 1월 24일 오사카에서는 조선학교의 운영모체인 학교법인 오사카조선학원이, 또 아이치에서는 아이치 조선중고급학교 고등부 학생과 졸업생 5명이 일본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일으켰다. 그후 8월 1일에는 히로시마에서, 12월 19일에는 후쿠오카에서, 그리고 이듬해 2014년 2월 17에는 도쿄에서도 재판이 시작되었다. 각각의 소송은 지역 사정이나 변호인단의 방침에 따라 ①재학생과 졸업생을 원고로 하는 국가배상청구 소송(아이치, 후쿠오카, 도쿄), ②설치자(조선학원)를 원고로 하는 행정소송(오사카), ③양쪽(①과 ②)을 함께 진행하는 소송(히로시마)의 세 가지 부류로 나눠지는데 물론 제도 부적용의 부당성과 조선고급학교 학생들에 대한 취학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는 내용은 공통적이다.
부당한 배제의 논리
먼저 조선 고급학교는 왜 '고교무상화'제도에서 배제된 것인가? 제2차 아베 내각에서는 발족 당초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부 장관이 납치문제의 진전이 없는 점, 또 조선학교가 조선총련과 밀접한 관계에 있고, 교육 내용과 인사, 재정에 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고교무상화'제도의 적용 대상으로 하는 것은 국민의 이해를 얻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북한을 적대시하고 조선총련을 경계하는 정치·외교상의 이유로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리고 조선학교를 배제하기 위해 아베 자민당 정권은2013년 2월 20일 조선고급학교를 지정하는 근거가 되는 문부과학성령의 규정 삭제라는 비열한 수단을 사용해 일본 전국의 조선고급학교 10개교에는 부지정 통지가 송부되었다. 통지서에는 부지정 이유로 ①규정이 삭제된 점과 더불어 ②법령에 근거한 적정한 학교 운영을 정한 '규정'(문부과학부 장관 결정) 제13조에 대해 "적합 인정이라는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상세한 내용은 졸고,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무시한 아베 신정권: 조선학교에 대한 '무상화 교육' 배제의 부당성', <프레시안> 2013.01.09, '日 우익의 조선학교 탄압, 65년 지난 지금도… : 제네바로 날아간 조선학교 어머니들의 두루미', <프레시안> 2013.05.17, 등을 참조.)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조선고급학교 지정의 근거가 되는 규정의 삭제(이유①)가 조선고급학교 학생만을 취학지원금 지급의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한 차별 조치였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일본정부가 재판장에서 이렇게 주장하면 "교육의 기회 균등"을 강조한 고교무상화법은 물론 일본국헌법 제26조가 정한 학습권, 국제인권법이 정하는 소수자의 교육의 권리 등을 위반하게 된다는 것을 일본정부 스스로가 고백하게 된다.
'부당한 지배'론의 쟁점화
그래서 일본정부는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유①에 대해서는 애매한 설명으로 얼버무리고, 부지정의 또 하나의 이유인 '규정'(문부과학부 장관 결정) 제13조 부적합(이유②)을 강조하는 방향--교육에 있어서 '부당한 지배'를 쟁점화한다는 방침을 명확히 했다.
'규정' 제13조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법령에 근거해 적정하게 학교를 운영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 일본정부는 여기서 가리키는 "법령"으로서 교육기본법 제16조의 "교육은 부당한 지배에 종속되지 않고 이 법률 및 기타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행해져야만 하는 것"이라는 조문을 근거로 삼고 있다. 요컨대 조선학교는 조선총련의 '부당한 지배'를 받고 있으므로 지정 기준에 적합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부당한 지배'라는 것은 원래 제2차 세계대전 전 일본의 군국주의 교육에 대한 반성에서 교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해진 것이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부당한 지배'를 꾀하는 존재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국가권력 내지 정치권력이며, 일본정부가 '부당한 지배'를 내세우며 민족교육의 권리를 유린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민족교육에 대한 '부당한 지배'로 향하는 길을 여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한국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은 도쿄한국학교는 '고교무상화'제도의 적용을 받고 있지만, 그 설치자인 학교법인 도쿄한국학원의 이사장은 민단 중앙본부 단장이 맡고 있고 이사진에도 민단 중앙본부나 도쿄본부의 임원들의 이름이 올라 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도쿄한국학교가 한국정부나 민단의 '부당한 지배'를 받고 있다는 주장은 들어본 적이 없다.
'민족차별'의 관점에서
일본정부는 '고교무상화'정책에 있어서 조선학교만 적용에서 제외하고 다른 민족교육 기관에는 적용함으로써 노골적으로 분단을 조장해 왔다. 더구나 한국계 민족학교에는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조선학교에 대한 부적용이 "민족차별이 아니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란 국가의 의사 결정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조선학교에 대해 '고교무상화'제도에서 배제를 강행한 점은, 일본정부가 적대시하고 있는 것은 북한이나 조선총련뿐만 아니라 실은 조선학교의 존재 그 자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민족교육을 통해 조선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함양하는 행위 그 자체를 일본정부가 경계하고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학교에 대한 차별정책 실시는 조선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인종차별주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고교무상화'제도에서 조선학교를 배제한 것에 대해 유엔 사회권 규약위원회는 이를 명확히 차별이라고 인정했으며(2013년 5월), 또 유엔 인종차별 철폐위원회도 '무상화'제외와 지방자치체 보조금의 중단 축소에 우려를 나타내며 이를 시정하도록 요구했다(2014년 8월). 이러한 국제인권기관의 일본정부 비판과 아울러,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몽당연필, 지구촌동포연대(KIN),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한국에서의 지원 운동이 크게 확대된 것은 일본에서의 운동에 큰 용기를 주고 있다.
역사의 심판장에서 평가받을 만한 판결을
재일조선인의 민족교육에 대한 공적 지원은 과거의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다한다는 의미에서 일본이 국가로서, 또 사회적 책임 아래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과제이다. 그리고 이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고 배외주의와 싸운다는 의미에서 오히려 일본사회 스스로의 모습을 되묻는 문제이기도 한다. 특히 조선학교에 대한 '고교무상화'제도 부적용, 지방자치체의 보조금 정지 등의 조치는 "조선학교는 차별받아도 당연하다"는 메시지가 되어 위로부터의 '헤이트 스피치'로써 기능해 왔다고 비판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 1월의 오사카 조선학교 보조금재판에서 오사카 지방법원은 최악의 부당판결을 선고했다. 이에 원고 오사카 조선학원은 즉시 항소해 오는 8월7일에 오사카 고등법원에서 항소심 제1회 변론이 열릴 예정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졸고, '오사카 조선학교, 운명의 재판 판결을 앞두고: '인종 차별 반대'과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프레시안> 2017.01.23, '오사카 조선학교의 투쟁은 계속된다: 오사카 보조금재판의 부당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 <프레시안> 2017.01.31, 등 참조.)
이렇듯 사법부가 정부 측에 손을 들어 주는 판단이 우려되는 것이 현재 일본의 상황이라서 재판의 결과를 낙관할 수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토 헤이트 스피치 재판에서는 조선학교에 대한 배외주의단체의 위법행위가 인정된 바, '고교무상화' 재판에서도 '인권의 최후의 보루'로서의 사법의 역할을 기대한다. 사법부에는 이번이야말로 그 본령의 임무를 발휘해 역사의 심판장에서 평가받을 만한 판단을 내려 주기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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