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은 남북관계에 두 가지 의미가 있다. 1999년 6월 15일, 제1차 서해교전이 일어났다. 1년 뒤 2000년 6월 15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 공동선언이 발표됐다.
북한군인 30~40명이 물에 빠져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서해교전 기념일을 며칠 앞두고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가 북한을 한사코 '북괴'라 불렀다. 북한군이 북방한계선을 넘어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결의를 드러낸 것 같다.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보수극우 세력을 의식해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드러낸 모양이기도 하다. 그러나 군인 출신 국방장관 후보로서는 결코 쓸 수 없는 말이다.
'북괴'는 '북쪽의 괴뢰국가나 정부'라는 뜻이다. '괴뢰 (傀儡)'는 꼭두각시, 허수아비, 망석중, 주구, 앞잡이 등의 다른 말이다. 남의 조종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나 조직을 가리키는 것이다. '괴뢰국가'나 '괴뢰정부'는 형식적으로는 독립된 것처럼 보여도 실질적으로는 다른 나라에 종속이나 예속된 것 같이 자주성이 없는 국가나 정부를 일컫는다.
따라서 '북괴'라는 말엔 한반도 북쪽에 세워진 소련의 앞잡이 노릇하는 비자주적 국가라는 뜻이 담겨 있다. 북한을 정부나 국가가 아닌 반국가 (反國家) '단체'라고 규정하는 국가보안법 조항과 비슷한 셈이다.
북한을 '주적'으로 삼아도 괜찮다. 북한의 주적 또는 '백년 숙적'이나 '철천지 원쑤'는 미국과 일본이라도. '깡패 국가'라고 비난해도 좋다. 미국이야말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200번 이상 다른 나라를 폭격하거나 침략한 인류역사상 최고 최대의 깡패 국가이지만. '거지 국가'라며 깔볼 수도 있다. 1970년대까지는 남한보다 잘살았거나 비슷했어도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빌어먹고 굶어죽을 지경에 처해 외부의 지원을 많이 받았기에. '독재국가'로 비판해도 마땅하다. 남한에서도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뿐만 아니라 최근의 박근혜까지 독재정치를 폈지만.
그러나 어떤 경우든 무슨 일이 있어도 북한을 '괴뢰국가'로 부를 수는 없다. 1960년대부터 소련과 중국 사이에서 주체를 내세우며 어느 쪽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주외교와 자주국방을 실현해온 나라 아닌가. 과거엔 정치적으로나 외교적으로나 미국에 종속되다시피 했고 아직도 군사작전권을 미국에 맡겨놓은 비자주적 남한이 어느 나라보다 주체와 자주를 강조해온 북한을 '괴뢰'라고 부르는 것처럼 가소로운 일이 있을까.
남과 북의 통일방안 가운데 공통점을 바탕으로 통일을 지향해 나가자고 합의한 역사적 남북정상회담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에 핵과 미사일 '도발'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면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핵과 미사일 개발 중단이라는 꽤 어려운 조건을 내걸며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는 것은 큰 모순이다. 핵과 미사일 개발 포기를 이끌 수 있도록 대화와 협상의 장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6.15 정신을 중시하겠다는 대통령이 대화를 제안하며 '도발'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참 부적절하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는 현실은 불만스럽다. 미국을 겨냥하는 것일지라도 남한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도발'이란 말을 쓰는 것은 곤란하다. 미국은 각종 핵무기와 미사일로 북한을 위협해왔다. 남한에 핵우산을 제공하며 핵무기를 실은 다양한 함정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배치해놓았다. 1990년대엔 폭격할 뻔했다. 2000년대엔 핵무기로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협박하기도 했다.
요즘엔 김정은의 목을 따겠다는 이른바 참수(斬首) 작전을 포함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남한과 합동으로 실시한다. 그래도 우리는 미국이나 남한이 '도발'한다는 말은 꺼내지 못한다. 북한을 '자극'한다는 말조차 삼간다. '연례훈련'이라는 고상한 표현만 고집할 뿐이다.
이런 터에 북한이 미국에 맞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북한엔 주한미군 같은 외국군대가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의 핵우산도 받지 않고 있다. 남한과 미국은 해마다 10번 안팎의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이지만, 북한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끌어들여 단 한 번도 합동군사훈련을 갖지 않는다. 북한 국방비는 아무리 많이 잡아도 남한의 5분의 1을 넘지 못하고 미국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재래식 군비경쟁을 도저히 할 수 없기에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달리지 않겠는가.
많은 인민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큰돈 들여 핵과 미사일 개발에 힘쓴다고 비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걸핏하면 북한을 폭격하겠다고 위협하는 가운데 북한 지도부를 제거하겠다는 '훈련'까지 지속하면서,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것을 '도발'로 규정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요즘 유행하는 속된 말로 '내로남불'이랄까.
진정 남북관계를 개선하려면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북괴'의 '도발'을 중단하라고 촉구하기 전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위협부터 멈추라고 요구하는 자주성을 지니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야말로 조건 없는 남북대화가 하루빨리 시작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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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봉
원광대학교 교수
pbpm@hanmail.net
이재봉 교수는 1983년 동국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94년 미국 하와이대학교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1996년부터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2018년 현재 '남이랑북이랑' 공동대표, '통일경제포럼' 공동대표, '함석헌학회' 회장 등을 맡고 있습니다. 저서로 <두 눈으로 보는 북한>, <이재봉의 법정증언>, <문학과 예술 속의 반미>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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