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후 10% 초반대 지지율에 머물러 있는 자유한국당의 새 지도부를 뽑는 7.3 전당대회가 다가오고 있다. 주요 후보자들의 출마 선언문과 토론 발언들을 종합해 보면 "지방선거 승리"와 "강한 야당", "보수 재건" 등이 공통적인 슬로건이다.
그러나 홍준표·원유철 등 주요 당 대표 후보들과 이철우·김태흠 등 최고위원 후보들의 발언들을 꼼꼼히 살펴보면 각종 수사와 막말, 남 탓만 넘쳐날 뿐 정부·여당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대안 보수 야당'으로서의 전망과 구체적 로드맵은 찾아보기 어렵다.
물밑에서는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당권을 쥐기 위해, 각 주자와 이들을 떠받치는 계파 및 당내 세력들이 신경전과 수 싸움만 벌이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총선에서 친박계가 주도한 공천으로 20대 국회에 입성한 초·재선 의원들의 경우, 원유철 의원과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사이에서 갈팡질팡이다. 원 의원은 친박계의 물밑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고, 홍 전 지사는 지난 대선때 그나마 존재감을 보였다고 평가받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당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당에 대한 여론 주목도는 현저히 낮다. 관심이 청와대로 집중되는 새 정부 출범 초기라는 상황을 감안해도 여론은 보수를 표방하는 제1야당을 외면하거나 '청와대 발목 잡기'를 한다는 비난의 목소리만 보내고 있다.
착각에 빠진 한국당
현재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가장 유력한 당 대표 후보로 꼽히는 인물은 홍준표 전 지사다. 홍 전 지사는 '대선 패배 후보', '막말 정치인'이라는 딱지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당대회에 호기롭게 출마했다. "나 말고 누가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느냐"는 '홍준표 대안론'을 앞세워 자기를 당 대표 후보로 '셀프 추대'했다.
초·재선 의원 일부와 지방선거 공천을 얻으려는 일부 당협위원장들이 이런 홍 후보를 지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대선 때 홍 전 지사의 최측근 역할을 한 이철우 의원(3선·경북 김천)과 <조선일보> 출신으로 당내 '방송 장악 저지 투쟁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강효상 의원(초선·비례) 등이 앞장서 홍 후보를 돕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대선 전까지는 '친박계'로 분류되었지만,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는 친박계와 골이 깊은 홍 전 지사 쪽을 후방 지원하고 있다.
홍 전 지사에게 힘을 실어 주려는 이들은 '폐족'이 된 친박계가 지휘하는 당은 생존 가능성이 불투명한 데 반해, 홍 후보는 소위 '강한 야당'을 구축해 문재인 정권에 맞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한다. 지난 대선에서 '막말'일지언정 화제를 몰았던 홍 후보의 개인기가 당 재건에 보탬이 된다는 논리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과 구속, 친박계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 확산, 보수당(새누리당)의 분열, 보수 진영의 총체적 인물난 등의 문제들이 뒤엉킨 총체적 난국의 출구가 보이지 않자, 홍 후보의 '말발'로라도 일단 버텨보자는 심산이다.
한국당의 한 재선 의원은 "홍준표 특유의 '센 말'이 보수 진영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면은 분명히 있다"면서 "당장 1년 후인 지방선거에서 어떻게 이기겠나. 일단은 세 규합부터 하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센 발언'이 곧 당력의 복원, 또는 강한 야당으로의 변모를 의미하지 않지만, 일단 눈에 보이는 '쉬운 카드'라도 집어 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무엇을 위한 계산된 막말?
이렇게 '대안'으로 부상하자 홍 후보는 더욱 자신감에 찬 모습이다. 지난 20일 "문재인 정권은 주사파 운동권 정부다. 오래 못 간다"며 이제 문재인 대통령의 '중도 하차'를 예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샀다. 하루 앞선 19일에는 그의 최측근인 이철우 의원이 "(다음) 대통령 선거까지 안 갈 것 같다"며 탄핵 시사 발언 논란을 빚었다.
당내 경쟁자들에게도 그는 거친 화법을 구사한다. 홍 후보는 최근 잇따라 치러진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원유철 후보와 신상진 후보 모두에게 "당을 끌고 갈 역량이 보인다고 판단되면 제가 사퇴하겠다"고 조롱성 발언을 했다. 기자들을 만나서도 "나 말고 외연 확장할 놈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라고 또 다시 반말을 해 입길에 올랐다.
그러나 '막말'이 당력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이미 지난 대선 결과가 보여줬다. 홍 후보는 19대 대선에서 지역으로 보면 경상북도·경상남도·대구를 제외한 모든 지역에서 패배했다. 6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문 후보에게 뒤졌다. 특히 20~30대에서는 10%의 득표율도 얻지 못하며 다섯 후보 가운데 꼴찌를 했다.
이런 홍 후보가 당권을 쥐고 그의 '입'이 주 엔진이 되어 당이 운용된다면 자유한국당에 대한 젊은 층의 외면과 '대구경북당'이란 속박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는 지난 대선에 앞서 2016년 4.13 총선 패배의 핵심 원인으로 당 안팎에서 누차 지목됐던 내용이다.
선거는 홍준표의 법정 투쟁 도구?
더욱이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한 홍 후보의 목적이 성완종 사건 '법정 투쟁'과 무관치 않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 홍 후보는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게 불법 정치 자금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권은 홍 후보가 당권을 쥐면 '야당 탄압'이라는 반발을 우려해 사법부가 쉽사리 유죄 판결을 내릴 수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뒤집어 말하면, 홍 후보가 대선에 이어 개인의 법정 투쟁에 전당대회라는 '공(公)'적인 선거 공간을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 대표에 출마한 신상진 후보는 지난 20일 당 대표 후보 토론회에서 홍 후보의 "재판이 만약 잘못되면(유죄 판결 및 실형 선고) 당이 또 뒤집어쓴다.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홍준표 대안론' 기세는 쉽게 꺾일 분위기가 아니다. 이미 같은 조건에서 홍 후보는 지난 대선 한국당의 후보로 선출되었고, '돼지 발정제 사건'과 같은 과거의 심각한 도덕적·법적 일탈 행위마저 드러났음에도 대선 레이스를 완주했다. 이대로면 한국당은 통째로 홍 후보 법정 싸움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좀비 친박에겐 플랜B 있다?
홍 후보에 맞서 '수도권·40-50대를 중심으로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는 원유철 후보와 '당내 세대교체'를 외치는 신상진 후보는 '홍준표로는 지방선거에서 진다'고 호소한다. 홍 후보의 '막말 릴레이'도 비판한다.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아 보인다. 이미 '한국당은 경쟁력만 있다면 금도를 넘는 막말도, 성범죄도 용인하는 당'이라는 족쇄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한 홍 후보가 얼마 전 원 후보를 '신박(新朴-새로운 친박계)'이라고 비판 한 것처럼, 원 후보는 '친박계의 지원을 받는 후보'라는 딱지가 붙어있다. 친박계가 의도적으로 친박 핵심인 홍문종 의원 대신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원유철 의원을 위장 후보로 내세웠다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원유철 카드가 실패할 경우, 친박계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원외 당대표'를 했을 때처럼 홍 후보를 원내에서 '왕따'시키는 수순을 밟을 거란 얘기도 나돈다. 당 대표를 제치고 친박계가 당을 좌지우지할 '플랜 비(B)'를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전당대회 최고위원 출마자 중 대부분(김태흠·박맹우·윤종필)은 친박계다. 당연직 최고위원이 되는 차기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까지 친박계가 장악하면 홍 후보는 사실상 고립된다. 친박계 최고위원들에게 둘러싸여 때마다 고난을 겪었던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 친박계의 '홍준표 흔들기'는 더욱 거세질 수 있다.
시간은 자유한국당 편일까?
이처럼 겉으로는 '지방선거 승리'와 '강한 야당'을 모토로 새 지도부 선출 과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재판·당권·공천권 등 개인과 계파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수싸움만 치열하게 벌어지는 상황이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의 속살이다. 내부 갈등을 봉합하는 고전적인 수단, 즉 대여 강경 투쟁이 금도를 넘어선 배경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고 지난 1달가량 한국당이 대여 공세로 꺼내놓은 비판은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 수렴된다. 새 정부가 내놓은 고위 공직자 후보의 위장 전입이나 논문 표절, 부적절한 여성관과 같은 '도덕성 부족 비난'과 문재인 정부가 '일방통행' '국회 무시'를 하고 있다는 반발이 대표적이다.
국회 파행을 서슴지 않는 태도와 선진화법이라는 강력한 무기로 시간을 끌면 입법으로 뒷받침 되지 못한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결국 좌초할 거란 계산이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초부터 국정을 파행으로 이끄는 한국당에 대한 여론의 시선이 오히려 싸늘하다. 현재의 여야 지지율 격차가 이를 증명한다. 대중들으로부터 '비판의 자격'을 얻지 못한 한국당으로선 문재인 정부 발목잡기가 장기적 이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런 만큼 7.3 전당대회는 그 어느 때 보다 쇄신과 인적 교체, 자기 반성이 앞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폐허에 선 보수의 재건을 고민하며 절치부심하기에 앞서 금도를 넘는 막말과 계파 신경전만 난무하는 한국당의 당권 경쟁을 언론과 국민들이 외면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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