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서고 가장 인권 친화적이고 싶어하는 조직이 있다. 바로 경찰이다. "수사권 조정의 필수적 전제로 인권 친화적 경찰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해 경찰 자체로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달라." 청와대 민정수석의 이 한마디로 경찰은 인권과 가까워질 수 있는 모든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경찰교육원은 인권 과목을 편성하겠다고 밝혔으며, 경찰청은 집회·시위 현장에서 채증 기준을 개정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 인근 천막 농성에 아무런 제지 조치가 없다는 점도 눈에 띈다.
경찰청장 이철성은 지난 6월 9일 남영동 대공분실 자리였던 경찰청 인권센터에 방문해 박종철 열사를 추모하고 "잘못된 선배들의 역사 반복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갔다. 지금까지 경찰에게 인권을 보장하라는 요구는 끊임없이 제기해왔다. 꾸준히 제도를 개선하고, 경찰청 인권위원회를 만드는 등 경찰이 인권과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왔다. 그럼에도 경찰의 태도는 새삼스럽다. 그래서 다시 한번 질문하게 된다. 인권 친화적인 경찰은 가능할까?
인권 친화적 경찰 어떻게 가능할까
경찰 조직이 하고 있는 일은 그 자체가 인간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일이다. 수사, 구속, 검문, 단속 등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방식으로 누군가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은 필연적으로 인권 침해와 분리되기 어렵다. 그래서 법으로 경찰의 권한을 제한하는 영장주의를 규정하고, 피의자가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 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원칙들이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는지 굳이 살피지 않더라도, 경찰의 권한이 강력하기 때문에 생겨났다는 사실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그래서 결론을 이야기하면 인권 친화적인 경찰, 쉬운 일은 아니다.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은 경찰의 권한을 '○○을 할 수 있다'라고 명시한다. 집회 금지를 통보할 수 있고, 차벽을 설치 할 수 있고, 살수차를 동원할 수 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찰은 대규모 집회마다 금지를 통보했다. 살수차로 백남기 농민을 쓰러뜨려 죽음에 이르게 했고, 세월호 유가족을 차벽에 가뒀다. 집시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집회와 시위에 관한 권리를 적극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조치만을 선택해온 경찰이었다. 집회와 시위가 아니더라도, 광범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는 사람은 서슴없이 사찰했다. 세월호 유가족, 쌍용자동차 노동자, 철거민, 대학생 등 누구든 가리지 않았다.
이런 조치를 명령한 책임자들의 현재는 어떨까? 용산참사의 진압을 명령한 김석기는 공항공사 사장을 거쳐 지금 국회의원을 지내고 있다, 쌍용자동차 진압을 지휘했던 경기지방경찰청장 조현오는 경찰청장까지 승진했다.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을 제압한 이성한은 한국전력의 상임감사라는 보은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성한과 같이 밀양 할매들을 들어냈던 당시 경남청장 이철성은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거쳐 경찰청장이 되었다. 역대 임기를 채운 경찰청장은 단 두 명뿐인데, 그 중 한 명이 백남기 농민을 살수차로 쓰러트릴 당시 경찰청장이던 강신명이다. 이외에도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경찰들이 처벌은커녕 인권을 제압하고 영전을 거듭했다.
경찰이 진심으로 인권 친화적 경찰로 거듭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스스로 잘하겠다는 말이 아니다. 인권 침해와 경찰과의 불가분성을 파악하는 일이다. 그저 잠시 자세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경찰의 행동 하나하나가 얼마든지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경찰 개인이 의도하지 않더라도 인권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의지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경찰은 여전히 자신이 지닌 인권 침해 가능성에 대해선 외면하고 인권 친화적 '쇼맨십'을 벌이고 있는 듯하다.
경찰이 인권과 가까워지기 위해
2015년 11월 14일, 경찰의 물대포로 사람이 죽었다. 하지만 당시 경찰청장 강신명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사람이 죽은 집회를 두고, 평화를 넘어 준법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던 강신명은 2016년 8월 명예롭게 임기를 마쳤다. 지금까지 경찰은 집회·시위를 탄압하는 일과 주요 인사들을 사찰하는 일을 실적으로 삼아왔다. 그렇게 쌓인 실적으로 승진하고, 퇴직 후 공사 사장 취임하고, 국회의원 공천받으며 경찰 조직의 생리를 형성했다. 시민에게 법보다 '경찰 폭력'이 가까울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경찰의 생리를 끊어낸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이 인권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 어떤 인권 침해를 일으켜왔는지 포착하고 앞으로를 점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경찰 인력도 축소 혹은 재편해야 한다. 집회, 시위 관리를 주요 업무로 하는 경비, 사찰 논란이 끊이지 않는 정보, 의전 담당하는 경무, 대공을 담당하는 보안까지 이 네 가지 업무에만 약 2만 명 이상이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말이 2만 명이지 실제 지구대나 파출소 인원을 끌어오는 관행까지 포함하면 더 많은 인원이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업무들이 경찰에서 중요하게 담당해야 할 업무인지 점검해야한다. 특히 경비, 정보, 보안은 인권 침해의 최전선에 있는 업무다. 경찰이 인권 친화적이기 위해 해나가야 할 일들을 선별하고 과감하게 선을 긋자. 인권에 반하는 업무는 과감히 축소 혹은 폐지해서 경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력 구조 개편에 나서야 한다.
수사나 단속, 검문과 같은 과정에서 제기되는 절차상 인권 침해들도 점검해야 한다. 2015년 구파발 검문소 의경 총기 사망 사건이나 2010년 양천 경찰서에서 발생한 고문사건 등 은 그저 실수나 사고로 치부할 수 없다. 민정수석이 인권 친화적 경찰로 거듭나길 바란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발생한 민간인 폭행 사건도 마찬가지다. 실제 피의자라 하더라도 경찰이 해선 안 될 폭력이 발생했지만 경찰은 가해자를 구속조차 하지 않았다. 경찰의 인권 의식을 의심케 하는 사건들이 꾸준히 발생해왔다. 경찰의 내부 시스템에서 인권이 중요한 지표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개혁에는 셀프가 없다
권력기관은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다. 검찰도 그랬고, 국정원도 그랬다. 무엇보다도 지난 박근혜 정권이 '셀프 개혁은 없다'를 확실히 보여줬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경찰 혼자 변화하고 개혁할 수 없다. 그래서 지금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인권친화적 경찰로 거듭나라는 주문은 쇼맨십을 용인하고 있다. 수사권 조정과 인권은 거래할 수 없다. 수사권 조정하지 않아도 경찰은 인권 친화적이어야 한다. 정부는 경찰이 인권 친화적이기 위한 다른 의지를 보여야 한다.
먼저 법·제도 개선해야 한다. 경비, 정보, 보안 업무가 작동 가능하도록 만드는 근거들 제한해야한다. 촛불 집회로 등장한 정권을 자처하려면 집시법을 개정해야 한다. 2017년부터는 물대포, 차벽은 집회와 시위 현장에서 등장하지 않도록 금지시켜야 한다. 또 사상·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 보안 업무를 중단해야 한다. 그 근거가 되는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폐지에도 앞장서야 한다.
또 인사 시스템 역시 재정비해야 한다. 인권 침해의 행위자로서 경찰이 과거를 청산하려면 보상과 징계의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집회, 시위를 강경 진압하고 소환장을 남발하며 공포를 조장하는 경찰에게 '집회 관리를 잘했다'는 말보다, 인권 침해의 가해자로 지목할 수 있는 인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해왔던 경찰청 인권위원회를 새롭게 꾸리든, 새로운 경찰 감사시스템을 마련하든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괼 수 없다
검찰에 대한 신뢰가 그 어떤 공권력보다 낮기 때문인지 경찰의 문제는 후순위로 밀리는 것일까. 하지만 개혁의 우선순위가 필요성을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공권력은 결국 같이 개혁되어야 한다. 경찰 개혁의 과제 함께 진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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