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대화를 타진하는 북한이 단순한 개인 방문을 허가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의 남편이라는 점도 이번 방북이 백악관과 평양의 사전 조율이 있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백학순 위원은 이번 평양행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클린턴 전 대통령의 위상을 먼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클린턴은 1994년 북미 기본합의서와 2000년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통해 한반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시도한 인물"이라며 "북한은 그의 위상을 생각해 이번 방북을 허락하고 향후 대화 국면을 마련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백 위원은 2000년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이끈 클린턴 개인에게도 이번 방북이 자신이 남겨진 '숙제'를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이 클린턴에게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할을 해달라고 권유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향후 북미관계에 대해 백 위원은 "이번 방북으로 그동안의 대결과 긴장 구조 국면이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 국면으로 들어섰다"며 구체적인 경제 및 군사 관련 협상이 이어질 것이라 내다봤다.
그는 "클린턴이 여기자 문제만을 다루려 했다면 북한이 받아주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특히 북한의 '21세기 생존과 번영 전략'을 위해 북한도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을 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4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양형섭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뉴시스 |
프레시안 : 이번 방북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
백학순 연구위원 : 전반적으로 북미관계가 클린턴 방북으로 대결과 긴장 구조 국면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 국면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클린턴 방북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1994년 1차 북핵 위기 당시 문제 해결을 위해 간 것에 비견할 수 있다. 아니 그걸 넘어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카터 때에는 미국이 영변 핵시설을 선제공격을 거론할 정도로 위기가 고조된 상황이었다. 또한 클린턴 당시 대통령의 지원도 없었고, 백안관은 카터의 행보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개인 자격으로 평양에 가서 북미관계에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는 강경 드라이브 속에서 북한의 행동을 처벌하는 '제재와 압력'의 방식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다. 북한에 대해 2트랙 방식을 내세워 처벌과 대화 방침을 제시했었는데, 대화 쪽으로 모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클린턴 방북의 궁극적 목적은 명확하게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다. 북한에게 '협력적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방향으로 정책 노선을 바꾸고 있는 상황에서 방북을 한 것이다.
특히 개인 자격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로 갔다고 볼 수 있다. 오바마 정부와 긴밀한 협력 하에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바마가 북한과의 강력한 대화 의지를 클린턴을 통해 표시한 것이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부인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카터처럼 백악관과 조율이 없이 간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다.
프레시안 : 왜 클린턴 전 대통령인가?
백학순 위원 : 클린턴 개인의 위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클린턴을 북한이 어떤 식으로 인식하는가도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방북이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클린턴은 북미 양국 관계 역사상 가장 근본적으로 관계를 전환하는 합의를 이뤄낸 대통령이다.
1차 북핵 위기에서 합의한 제네바 기본합의는 탈냉전 시대에 북미관계를 어떻게 규정하고, 어떻게 관계를 모색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틀이었다.
2000년 북미 공동코뮈니케는 북미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핵과 미사일 문제가 나오는 근본적 원인인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났을 때 2000년 당시 임기 말이어서 북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에 대해 통한스럽고 아쉬웠다는 소회를 밝혔다. 따라서 이번에 방북을 한 것은 자신이 끝내지 못한 숙제를 마무리하는 의미도 있는 것이다.
2000년 10월 북미 코뮈니케 당시 대전환의 기조를 이끌어 냈지만, 부시 정권 이후 북미관계는 거기에서 더 이상 발전이 안됐다.
얼마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이 클린턴에게 옛날로 돌아가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데 역할을 해 달라고 권유했다. 이 두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서로 업적을 낸 인물이다.
단순히 여기자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간 게 아니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등 근본적인 해결을 하지 않고는 현재의 북핵 문제, 미사일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이번 방북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인가?
백학순 위원 : 북한은 상징성이 있는 특사가 방북해 주기를 요구해왔다고 알려져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를 통해 대북 압박이 심화되면 될수록 핵문제는 현실적으로 멀어지는 것을 양국이 알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현실적인 딜레마를 느끼고 정책 변화를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특사 방문 의향을 북한에 전달한 것이다. 여기자 사건을 카드로 북미간의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
워싱턴에 있던 지인을 통해 최근 사정을 들었는데, 백악관은 이번 방문을 마지막까지 부정했다. 그런데 백악관의 후원이 아니라면 북한은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 여기자 문제만 다루자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북한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클린턴은 대화를 재개하려는 양국의 조건에 부합하는 인물이다.
프레시안 : 향후 전망은?
백학순 위원 : 북한은 클린턴의 위상에 맞게 대접할 것이다. 북한도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대외협력의 틀을 짜야하기 때문이다. 북한이 가진 '21세기 생존과 번영의 전략'을 감안한다면 북한도 이번 특사를 원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클린턴에게 두 가지 큰 대접을 할 것이다. 한 가지는 김정일과 회동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선물을 주는 것이다.
선물이란 여기자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되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북미관계를 개선을 위해서 해결해야 할 현안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적극적으로 풀어나가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제시된 포괄적 패키지의 하나의 형태이다. 큰 맥락을 볼 때, 비핵화와 미사일 문제, 한반도 평화정착 등과 관련된 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포괄적 패키지의 구체적 내용은 앞으로 우리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포괄적 패키지는 북미 기본합의, 9·19 공동성명에 이어 세 번째에 해당한다. 이번에는 9.19 공동성명에서 더 추가된 내용이 될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사일 문제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9·19 공동성명에 언급은 됐지만, '당사자들이 관련 포럼에서 논의한다', 1:4 주고받기 등과 같은 실무적인 내용만 담겨있다. 이번에 논의가 이뤄진다면 북핵 문제뿐 아니라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서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평화 정착 외에도 북에서는 자신의 체제를 보장할 수 있는 군사적인 보장에 대한 '북미 군사회담', 국제 금융시스템에 북한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북미 금융회담' 등을 통해 현안들을 다룰 것이다.
▲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프레시안 |
부시 행정부 8년과 오바마 초기 몇 개월의 혼란을 극복해 내고, 드디어 옛날 클린턴이 주도한 북미 공동코뮈니케로 대전환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맥을 이어가는 큰 방향 설정이 가능하게 됐다.
한반도 비핵화가 가능하려면 높은 주고받기기 있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옛날 클린턴 정부가 남겨뒀던 당시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북미관계 대전환 및 한반도 전쟁종식과 평화구현을 기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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