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시작 당시부터 논란이 된 4대강 사업 해결의 출발점에 섰다. 지난 달 22일 문 대통령은 4대강 16개 보 중 녹조 발생 우려가 큰 6개 보(낙동강 고령보, 달성보, 창녕보, 함안보, 금강 공주보, 영산강 죽산보)를 상시 개방하고, '4대강 민관합동 조사·평가단'을 구성해 1년간 생태계 상황을 조사해 2018년 말까지 보 철거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4대강 정책 감사 착수를 지시했다. 수량 관리 관할 부서는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이전키로 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강 사업 기조를 근본부터 틀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4대강 사업은 출발부터 온갖 논란에 휘말렸다. 이명박 정부의 강경 드라이브에 맞서 목소리를 높인 이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이다. 이 의원은 중앙대 교수 재직 당시 법학자로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중앙하천관리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강 관리 기조가 환경에서 개발로 옮아가는 과정을 가장 가까이 지켜본 이다. 이후 이 의원은 4대강 반대 세력의 상징적 인물의 하나가 됐다. 4대강 사업 위헌·위법 심판을 위한 국민소송을 주도했다.
생태계 파괴 논란, 부패 논란을 낳은 '4대강 적폐'의 출발선에 선 지금, 이 의원을 만나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를 물었다. 이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결정을 전반적으로 찬성하는 가운데, 특히 4대강 개발 논리를 제공한 학자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 감사가 마무리되면, 국회 차원의 청문회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밝혔다. 4대강 사업으로 피해를 입은 농·어민을 지원하는 법안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다.
6개 보 개방을 하루 앞둔 지난 달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이뤄진 이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정치 문제 아냐... 환경 조사 시급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가 정책감사 실시와 별개로, 환경오염 등의 부작용 해결을 위해 6개 보를 개방키로 했다. 하지만, 보 상시 개방 수준이 평균 수위 0.26m에 불과해 효과가 없으리라는 지적이 많다.
이상돈 : 6개 보 개방은 당장 녹조 현상 대처가 시급하니 내린 응급책이다.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문을 조금 연다고 녹조 현상이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새로운 정책의 출발이라는 상징으로 해석하면 된다.
시급한 건 대대적 4대강 환경 조사다. 4대강의 오염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4대강 사업 전에도 강 하류 일부분, 유속이 느린 곳에는 녹조가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곧 없어졌다. 이처럼 대대적으로 강이 오염된 건 4대강 사업 이후다.
하천 바닥 상태 조사가 필요하다. 지천과 본류가 만나는 지점의 오염 상태, 지천의 상태, 수변 생태계 파괴 정도에 관해서도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하다. 민관합동 조사·평가단의 역할이 막중하다.
프레시안 :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은 문재인 정부의 대응을 정치적 공세로 정의한다. 보수언론도 비슷한 입장인 듯하다.
이상돈 : 그야말로 정치적 변명이다. 4대강 오염 사태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달리 볼 수 없는 재해다. 자유한국당이 그런 입장을 고수하는 한, 그 당에 미래는 없다. 정부 반대 입장으로 보수층 결집에 집중한들, 소규모 지지층을 확보하는 데 그칠 뿐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서 이미 친환경 기조였는데...
프레시안 : 비판은 4대강 사업 시행 당시부터 거셌지만, 그에 관한 반론도 제기됐다. 현재도 가장 큰 소리로 나오는 반론이 가뭄 해갈 효과와 치수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상돈 : 거짓말이다. 가뭄 피해는 주로 강 상류 지역에 집중되고, 지천 부근에 집중된다. 보가 집중적으로 설치된 강 본류는 가뭄과 관련 없다. 지금 가뭄 피해가 심각한 지역을 보라. 보를 세워 물을 막아놓은들, 이 물을 가뭄 지역으로 보낼 방도도 없다.
한국이 그간 치수 사업을 고민한 건 맞다. 기후 특성상 여름에 비가 집중되고, 겨울은 갈수기이기 때문에 항상 물이 부족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역대 정부의 치수 사업 기조를 간략히 살피기만 해도 이를 알 수 있다.
대규모 치수 사업의 출발은 사실상 박정희 정부 때다. 소양강댐, 안동댐을 비롯해 치수용 댐을 대거 건설했다. 이 사업 덕분에 한강과 낙동강 홍수 조절이 가능해졌다. 이후 김영삼 정부 때까지 한국은 댐 건설을 통해 전력을 확보하고 홍수를 조절했다. 환경론자들은 긴 시간 이어진 댐 건설을 안타깝게 볼지 모르지만, 적어도 김영삼 정부 때까지 댐 건설을 통한 하천 수량 관리가 어느 정도는 분명 필요했다. 댐 대부분이 상류 부근에 지어진 이유도 수량 관리를 위해서다. 교과서적 정책이었다.
그런데 4대강 사업의 핵심은 강 중류, 하류에 만든 보다. 역시 치수 차원의 목표라 했다. 거짓말이다. 보에 물을 가둬서 가뭄을 해결하고 홍수를 만든다? 강 하류에 소형 댐(보)을 지어 홍수를 막는다는 건 헛소리다. 이 때문에 일부 지역은 지류가 말라버렸고, 일부 지역은 지하수가 넘쳐 농사 자체를 못 짓게 됐다.
한국의 치수 정책은 이미 김대중 정부 들어 친환경 기조로 바뀌었다. 김영삼 정부 말기 영월댐(동강댐) 건설 여부가 큰 화두로 떠올랐다. 김영삼 정부는 결국 결정을 김대중 정부로 미뤘다. 김대중 정부가 이 사업을 백지화했다.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이 너무 크다는 판단이었다. 이때부터 한국 물 관리 정책 기조는 친환경으로 바뀌었다. 바꿔 말하면 1990년대 말 이미 한국은 물 부족 국가가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진 셈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한국의 웬만한 수자원 관련 교수가 전부 참여해 새로운 치수 정책 청사진을 그렸다. 이제 하천 건설 개발은 끝났다, 기존 보유한 물을 효과적으로 쓰는 게 21세기 수자원 계획이라는 게 결론이었다. 노무현 정부 들어 하천법이 친환경 정신을 담아 개정된 이유다.
어용 지식인 국민 앞에 무릎 꿇려야
프레시안 :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친환경 치수 기조는 4대강 개발에 밀려났다. 왜 이처럼 갑작스러운 기조 변화가 일어났을까?
이상돈 : 어용 지식인 때문이다. 놀랍게도 정권이 바뀌자마자, 전 정부에서 하천 개발이 필요 없다던 교수 일부가 이명박 정부에 붙어 4대강 사업 개발 논리를 만들었다. 하천법 개정안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태도를 바꿨다.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이명박 정부까지 나는 중앙하천관리위원회 위원을 6년에 걸쳐 두 차례 지냈다. 정권이 바뀌자 어용학자들이 어떻게 변했는가를 바로 곁에서 지켜봤다. 4대강 사업 실행을 위해서는 하천기본계획을 바꿔야 했고, 이를 위해서는 중앙하천관리위원회가 관련 사업을 통과시켜야 했다. 4대강 사업 착수를 위한 정부의 질주에 학자들이 속도를 더했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생략됐고 하천법에 따른 하천기본계획 등 세부 계획도 모두 건너뛰었다. 2년이 걸린다던 환경영향평가는 4개월 만에 끝났다. 어용학자들이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다.
멀쩡했던 학자들이 정권이 바뀌자 곧바로 입장을 바꾸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잔여 회의를 모두 보이콧했다. 기막힌 일이다. 4대강 사업의 근거를 만든, 곡학아세한 학자들을 국민 앞에 무릎 꿇려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얼마 안 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정회성 박사를 자르고 박태주 교수를 앉혔다. 코드 인사였다. 박태주 교수는 운하정책 환경자문단에서 경부운하 낙동강 분과의 밑그림을 그린 이다. 당시 정회성 박사는 환경정책학회 회장까지 지낸 전문가였다. 전문가가 빠지고 대운하 이론을 제공하던 이가 온 후,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4대강 사업 타당성을 제공하는 데 앞장섰다.
이런 일이 곳곳에서 일어났다. 김대중 정부 때 친환경 수질 관리 프로젝트에 참여해 연구비를 받던 교수 중 4대강 사업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이론을 내고 연구비를 받은 이도 있다.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나쁜 자들이다.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2013년 2월 19일 발표한 '4대강 찬동인사 인명록' 자료를 보면, 심명필 전 4대강 추진본부 본부장,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 원장, 박재광 위스콘신대 교수를 비롯해 상당수 학자가 곡학아세한 학자로 분류되었다.)
정책감사 반드시 필요
프레시안 : 4대강 사업을 간단히 정의한다면?
이상돈 : 절대 시작해선 안 되는 사업이었다. 의도부터 불순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계천 사업에 고무돼,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한반도 대운하에 집착했다. 촛불집회로 인해 대운하는 4대강 사업으로 변질돼 실시됐다.
대규모 환경오염을 초래한 사업 결과도 문제지만, 결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 22조2000억 원이 들어간 사업이라고 하는데, 사후 보전 비용 등을 고려하면 3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돈이 쓰인 것과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재앙이다. 이처럼 거대한 사업이 우리 건설업 구조에서 투명하게 진행됐으리라 믿는 이가 있겠나.
프레시안 : 이명박 전 대통령이 왜 4대강에 집착했을까?
이상돈 : 나도 모르겠다. 합리적으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가 현대건설 출신이라는 점, 현대건설이 4대강 사업의 주관건설사라는 점에서 합리적 의혹을 가질 뿐이다. '4대강 사업이 왜 시작되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에 관한 답은 여태 나오지 않았다. 근본적 차원의 감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소리다. 문재인 정부가 정책감사를 실시키로 했는데, 이 물음에 관한 답을 얻어야 한다.
프레시안 : 이전 정부도 국민적 여론이 거세자 감사를 실시했다. 하지만, 사업 실시 과정에 관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상돈 : 기껏해야 4대강 사업에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느냐 없느냐는 수준에 그쳤기 때문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 관한 감사는 여태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서 4대강 청문회 열어야
프레시안 : 이제 4대강 문제를 풀어야 할 때다. 어떻게,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이상돈 : 정책감사가 출발점이다. 감사 결과가 나오면 국민 여론이 올바른 해법을 내릴 것이다.
프레시안 : 국회의 역할도 중요할텐데?
이상돈 : 국회는 여론을 받아 안으면 된다. 이 시기가 되면 정치공세라는 식의 변명은 무의미해질 것이다.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책임자 청문이다. 감사 결과 일부 미진했던 일이 있다면, 국회 환노위가 처리할 수 있다. 4대강 사업 책임자를 불러 진실을 밝혀야 한다. 일종의 국민 법정을 열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 문재인 정부의 4대강 사업 관련 대처 중 물 관리를 환경부가 전담토록 하는 내용도 중요하다. 치수 정책 프레임을 건설에서 친환경으로 바꾼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잇는 철학의 반영으로 읽힌다.
이상돈 : 긴 시간 돌아왔지만, 그럴 때가 됐다. 한국의 하천 관리 뼈대는 일본을 본땄다. 일본은 여름에 호우가 집중되고, 그 후 갈수기가 왔다. 물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과거 일본 정부는 수질 관리와 인프라 건설 부서를 분리 운용했다. 자연히 주도권은 인프라 건설에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그간 건설 부서와 수질 관리 부서가 분리됐다. 사실상 건설부서가 하천 관리를 전담하는 구조였다. 환경부는 1994년에야 생겼다.
하지만, 이제 한국도 댐 건설 중심에서 기존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방향, 환경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바꿀 때다. 물을 많이 쓰는 산업의 비중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섬유업이 더는 한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에게도 수질 관리가 중요하다. 굳이 물 관리 정책에 국토부가 관여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국토부는 4대강 사업의 주범이다. 책임을 져야 할 부서다. 물 관리 업무의 환경부 이전 결정에 백퍼센트 찬성한다.
프레시안 : 지난해 '4대강 사업에 따른 농어업인 피해조사 및 보상에 관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국토교통부 산하에 보상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물 관리 업무가 환경부로 이전하면 해당 위원회도 환경부에 설치돼야 하겠다.
이상돈 : 환경부로 넘어오면 된다. 큰 문제가 없다.
그간 감사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어민·농민 피해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휴업 보상 정도 외엔 그들이 보상받은 적이 없다. 정부 부처가 4대강 사업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어서 그렇다.
4대강 사업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농민, 어민이 상당수다. 강이 오염돼 물고기가 잡히지 않으니 어업을 놓아버린 분이 많다. 지하수가 올라와 농사를 망친 이도 상당수다. 정부가 사실상 이들 먹고 살 길을 막아버리곤, 뒷짐지고 있다. 이들의 생계보상, 폐업보상을 정부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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