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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의 '학습된 무기력', 건물주 못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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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입자의 '학습된 무기력', 건물주 못 이긴다

[구본기의 구체적 젠트리 ③] 분쟁조정위원회의 부재

많은 임대인이 임차인을 합법적으로 내쫓아, 그들의 것인 권리금을 약탈하고 있다. 임대인의 재산 증식 도구로써 사용되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대중이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필자가 택한 글쓰기 전략은 '역접근'이다. 현장에서 임대인이 부동산 법률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아 임차인을 내쫓는 것처럼, 본 연재 안에서의 '나'는, 임대인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컨설턴트가 되어 '합법적으로 임차인을 내쫓는 방안'에 대해 조언한다. 이를 통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반증하고자 한다.

좀 뻔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어느 특정한 곳에서 크고 작은 다툼이 일상적으로 발생한다면, 또는 그러할 우려가 있다면, 합리적인 우리는 반드시 그곳에 효율·공정·신속을 추구하는 중재기구를 두어 그 분쟁들로 말미암은 사회경제적 비용 및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당연한 사고의 발로로 만들어진 것이 바로 각종 법률에 기초한 분쟁조정위원회입니다. 네이버에 '분쟁조정위원회'라고 입력해보세요. 바로 검색되는 분쟁조정위원회만 해도 이렇게 많습니다.

(☞ 바로가기 아래 클릭)

모두 각각의 법률에 의해 설립의 근거가 조문으로 존재하는 분쟁조정위원회들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에는 '저런 분쟁조정위원회도 있어?' 하는 생각이 드는 곳도 있을 겁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제 이상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어째서 네이버는 60만 자영업자와 관련된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는 검색해주지 않는 걸까요? 단순합니다. 지금 그런 기관이 '없어서'입니다.

몇몇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분쟁을 조정함에 있어 어떠한 강제력도 없기에 실제로는 있으나 마나 하여 '없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법적 구속력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분쟁조정위원회의 결정에 구속력이 없다는 것은, 결국 그 결정은 권고사항에 다름 아니므로 그냥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뜻이거든요.

이에 관한 사항은 서울시가 운영하는 상가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가 실제로 어떤 실적을 내는지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2016년 한 해 동안 서울시에 접수된 상가임대차 상담 건수는 1만1125건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숫자지요? 그만큼이나 상가임대차 분쟁이 많이 발생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럼 이 중에서 상담을 거쳐 분쟁조정위원회로까지 접수가 된 건 얼마가 될까요? 고작 44건입니다. 그리고 다시 여기서 결국에 조정까지 성사된 게 겨우 16건입니다. 서울시 전체를 통틀어서 겨우 한 달에 1건 정도의 조정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되네요. 참으로 형편없는 실적이지요?

건물주와 세입자, 즉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갈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 및 피해의 상처가 곪아 터진 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에는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갈등을 원만히 중재하기 위해 '어떤 기구'를 두어야 한다는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이 '이상한 사실'을 염두에 둔 채로 위에 예시한 수많은 분쟁조정위원회의 이름을 보노라면,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그냥 '방치되었구나'라는 느낌마저 듭니다.

이러한 현실은 임차인에게는 불행, 여러분에게는 행운으로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구속력 있는) 임대차 분쟁조정위원회가 없는 까닭에 임대인과 임차인 간의 분쟁은 늘 숨 돌릴 틈 없이 법정 다툼으로까지 치닫거든요. 이러한 '야만'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영세한 자영업자(임차인)에게는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그들이 과연 법정에 서본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을까요? 여러분 휴대전화에 적어도 한 명 이상씩 저장되어 있을, 그 흔하디흔한 변호사 전화번호도 그들에겐 없을 겁니다.

보통의 임차인에게 법정 다툼이란, 피하고 싶은 귀신 또는 전염병에 다름 아닙니다. 실제로 저는 임대인과의 소송이 부담스러워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싸움임에도 '항복'을 선언하고 순순히 점포를 비우는 임차인을 수도 없이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권리금을 빼앗긴 후 주위 사람들에게,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나까지 똑같은 놈이 되기 싫었어요" 따위의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가며 초라하게 슬픔을 자위합니다(이건 재산을 약탈당한 사람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나요?).

이처럼 거의 모든 임차인이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오랜 기간 남의 건물에 세들어 살면서 임대인에게 '갑질'당하는 법, 패배하는 법을 꾸준하게 학습했으니까요. 그들은 임대인과 싸우기에 앞서 질 생각부터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임차인은 절대로 여러분의 상대가 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의 임차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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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기

'나는 나와 내 친구, 우리 이웃이 왜 돈에 쪼들려 사는지를 연구합니다'를 모토로 하는 <구본기생활경제연구소> 소장으로 상위 10%의 부자들이 아닌, 90%의 보통 사람들을 위한 금융, 보험, 부동산, 소비연구 및 컨설팅에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합법적으로 임차인을 내쫓아드립니다> <당신이 믿고 가입한 보험을 의심하라> <월급을 경영하라> <우리는 왜 소비를 줄이지 못하는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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