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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뜨거운 가슴', 바꾸느냐 무너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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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문재인의 '뜨거운 가슴', 바꾸느냐 무너지느냐

[프레시안-정치발전소 공동기획] ② 복합위기와 신정부의 과제

정치발전소,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프레시안의 공동주관으로 신정부 출범을 맞아 "새 정부, '무엇을', '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기획시리즈를 시작한다. 이 기획은 정권인수, 신정부 출범의 조건, 외교안보, 행정, 협치, 복지, 노동, 개헌문제 및 선거제도 등 신정부가 직면해야 될 다양한 과제와 조건에 대해 분야별로 총 10회에 걸쳐 진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기획 전편 보기

1. 특별함을 요구받는 신정부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사 中)

지난 10일 취임사를 읽는 문재인 대통령의 표정은 다소 긴장된 듯 보였지만, 자신감에 차 있었다. 취임사 말미에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대목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의 결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새롭게 출범하는 민주당 정부의 앞길은 '자신감'과 '결기'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민주화 이후 역대 어느 정부도 감당한 적이 없는 미증유의 위기와 과업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탄핵정국이 최고조에 달하던 지난해 말, 미국의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 예를 들면 재벌과 국가의 누적된 담합 구조의 위기, 둔화된 경제성장(sluggish growth) 및 조선 등 주력산업 산업의 위기로 표현되는 한국 경제의 구조적 위기, 세계 5위 규모의 심각한 가계부채(ballooming household debt), 미중 양국의 보호무역주의 압력 증대, 사드·북핵으로 인한 지정학적 안보 위기 등을 지적하며, 한국이 경제 불안과 불평등, 안보위기에 정치적 위기까지 맞물려 있는 "복합적 위기(compounded crisis)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비단 외부 관찰자의 시선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가 경험한 현실이 모든 것을 웅변한다.

지난겨울, 시민들은 집권세력의 책임을 묻는 주기적 선거가 아니라, 보수와 진보, 여야를 넘어선 압도적인 시민적 합의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다. 그 과정은 민주화 이후 최대 사건으로 기록될 만큼 폭발적인 사회적 에너지의 분출을 동반했다.

탄핵정국은 단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시민의 분노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시민들은 촛불시위를 통해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이제 임계점에 다다른 사회적 불평등과 불균형, 민주주의를 압도해온 권력과 재벌 간의 동맹 체제, 대통령과 청와대에 초집중된 통치체제의 문제, 자율성과 자생력을 상실한 대학을 비롯한 사회 전반에 만연한 무기력, 기능을 상실한 집권당과 취약한 정당체제의 문제 등 우리 사회에 만연된 구조적 위기가 더 이상 인내 가능한 수준이 아님을 강력하게 제기했다.

정권이 교체되고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다. 신정부는 초유의 복합위기와 변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시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 사이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도 감당하지 못했던 특별함을 요구받는다. 신정부의 특별함이란 복합위기 상황에서 새로운 민주적 통치 능력을 발휘하고, 이를 통해 숨겨진 기회 구조를 찾아가야 하는 막중하고 험난한 책무와 과업을 부여 받고 있다는 것이다.

2. 신정부 출범의 조건-복합위기

복합위기(conjuncture)는 사회구성체의 특정 영역에서 발생한 부분적 위기가 아니라 체제를 구성하는 두 가지 이상의 상호 연관된 국면(juncture)에서 동시에 위기가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따라서 복합위기는 그 성격 상 외과 수술식으로 특정 부분에 집중하는 단선적 대응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다. 복합위기의 엄중함은 그 해결 방식이 반드시 총체적이고 체제적인 차원의 해법을 요구한다는 데 있다. 우리 사회의 공적 영역, 구조, 정치질서와 시민들 사이의 관계 등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측면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복합위기(Compounded Crisis, Conjuncture)

복합위기는 특정 영역에서 부분적으로 발생한 위기(crisis)가 아니라 체제를 구성하는 두가지 이상의 연관된 영역에서 동시에 발생한 위기(conjuncture)를 의미. 일반적으로 복합 위기는 각 위기의 국면(juncture, crisis)이 상호 연관되어 함께 발생하는 것(conjuncture, compounded crisis)으로, 대증적 차원의 아이디어와 특정부분에 외과 수술적 방식의 솔루션으론 해결이 불가능하며 반드시 체제적 차원의 복합적 해법을 요구한다.


현재 신정부가 직면한 복합위기는 크게 세 가지로 특징지을 수 있다.

첫째는 위기의 총체성이다. 사회를 구성하는 특정 요소나 영역(예를 들면, 경제 또는 정치 분야처럼 특정 부분)에서 단절적으로 발생한 위기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외교안보, 통상 등 각 분야의 위기가 복합적으로 상호 연결된 총체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위기의 중대성이다. 현 위기는 임시적이고 부분적인 해법이 작동할 수 없는 전면적인 개혁과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사이에 놓인 "바꾸느냐 아니면 무너지느냐의 위기(Make or Break Conjuncture)"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는 새로운 체제를 위한 복합적 개혁의 분기점에 놓여 있고, 신정부는 그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퍼펙트스톰(Perfect storm)

원래는 기후학 용어, 위력이 세지 않은 태풍이 다른 자연현상을 만나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태풍으로 변화는 현상을 의미하는 개념이었음. 그러나 미국 금융위기를 예견한 경제학자 누니엘 루비니(Nouriel Roubini)에 의해 두 개 이상의 부분적인 위기들이 동시에 발생함으로써 직면하게 되는 파국적 상황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음.

셋째는 위기의 예외성이다. 현재의 위기는 한국 사회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복합위기이다. 물론 이전에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과거의 위기-대표적으로 민주화를 둘러싼 87년의 정치위기, 외환위기로 인한 97년의 경제위기-는 복합위기는 아니었다. 따라서 정치적 민주화나 IMF 구제금융 등 부분적 처방만으로 위기 극복이 어느정도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외교안보, 사회 등 사회 주요 구성 요소의 위기가 상호 증폭되는 예외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전례 없이 중첩된 위기의 심각성과 복합성은 신정부에게 관성의 경계를 넘어설 것을 요구한다. 신정부는 위기의 총체성, 중대성, 예외성에 대당하는 체제적 차원의 전환적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이는 정권만 바뀐다고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민주화 이후 누적된 체제 전반의 위기를 총체적으로 점검하고, 이를 넘어서기 위한 정치적, 사회적 역량을 효과적으로 결집시켜 나가는 새로운 통치 원리에 기반한 과감한 개혁 프로그램을 그 해법으로 요구하고 있다.

신정부는 선거과정에서 과잉 쟁점화된 퇴행적 정치담론인 적폐청산론을 넘어 적극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신정부 국가 개혁 담론'으로 전환해야 한다. 탄핵국면과 선거과정에서 심화된 화해 불능의 적대를 통한 상호 분열이 아니라 '더 민주적인 나라 만들기'를 위한 건설적 타협과 협력을 추구하는 개혁의 신구상을 적극적으로 제시해 나가야 한다.

3. 신정부가 직면한 위기의 구조

위기(危機)는 위험(危)과 기회(機)의 통합체이다. 위기 속에 기회가 공존한다는 말의 의미는 새정부가 보여줄 통치의 내용에 따라 현재의 복합 위기 역시 한국 민주주의의 질적인 도약의 기회로 전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의 <표1>은 신정부가 직면하게 될 대표적인 위기의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시민들은 촛불정국과 탄핵의 과정에서 상호 모순적인 광범위한 개혁요구를 정치권을 향해 투사하고 있으며, 개혁의 기대 수준 역시 정상적 임기 만료로 집권한 여느 신정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높다. 대다수 시민들은 대통령을 파면한 것을 폭군을 내쫓은 일종의 명예혁명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다음 정부는 명예혁명 이후의 새로운 질서를 주조해야 하는 비상한 책무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나 위기의 비상함과 과업의 막중함에 비춰 신정부의 조건은 가혹하다. 당선자 인수위조차 구성할 수 없는 절대적 시간과 준비의 부족, 여소야대로 인한 의회권력의 취약성 등 물리적 한계로 인해 운신의 폭은 크게 제한받게 될 것이다. 신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도 손대지 못했던 국가-재벌 담합(동맹)체제의 해체뿐만 아니라 권력과 자원의 재분배를 통해 사회적 불평등과 불균형을 해소해 나가야 한다. 이는 더 이상 미를 수 없는 목전의 문제이다.

신정부를 둘러싼 심상치 않은 갈등 상황도 문제다. 탄핵이후 일시 움츠러든 보수적 반대파는 정권 교체 이후 새롭게 자신의 영향력을 재구축하기 위해 적대적 갈등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촛불시위 vs 태극기 시위로 상징되는 정치적 양극화 역시 차기 정부의 정치적 조건으로 내연해 있다. 개헌론과 같은 강력한 갈등적 이슈들 역시, 다른 정치적 쟁점들과 함께 선거 이후 본격적으로 제기될 가능성이 크다. 전반적으로 정치·사회적 갈등 양상은 강도가 높고, 적대적이며, 동원되는 사회적 에너지도 크게 덩어리져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신정부의 어려움은 이러한 내정적 요소들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대외적, 지정학적 외교안보 리스크 역시 신정부를 위협하는 요인이다. 특히 이들 요인이 국내정치적 불안정성과 결합할 경우, 위기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앞서 퍼펙트 스톰(perfect storm)의 우려를 제시한 것은 이러한 위기의 모든 측면이 상호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따라서 신정부는 특별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 전환적 과업을 부여받은 신정부에게는 역대 어느 정부도 시도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과 건설적 타협과 통합을 통해 개혁을 추진해야 하는 능력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새로운 민주적 통치관, 통치 능력을 발전시킬 때 가능하다.

신정부는 통치주체인 집권당과 함께 무엇보다 여소야대의 불안정한 다당 체제를 효과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여소야대의 다당체제가 서로 분열적인 세력들 간의 적대적 권력투쟁이 아니라 각각의 존재를 상호 인정한 기반 위에서 민주적 게임원칙과 통합원칙에 의해 움직일 수 있도록 건설적으로 타협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분열하는 정치, 사회적 힘들을 개혁의 일관된 방향으로 조정 통합할 수 있다면, 위기적 정치 환경조차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질적 도약의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으며, 통치의 안정성도 높일 수 있다. 설사 일부의 적대적 반대세력이 존재한다 하더라도 정당 간 민주적 게임원칙과 통합 원칙이 다당 체제의 기초로 작동한다면, 그 영향력을 최소한의 범위로 묶어둘 수 있다.

우리 정치에서 다당체제에 기초한 여소야대 분권정부가 항상 위기적 결과를 낳은 것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여소야대 상황에서 출범한 6공화국 초기 사례가 그렇다. 민주화 과정에서 형성된 극대화된 정치 갈등 속에서 출범한 6공화국에서 여소야대의 4당체제는 정당 간 타협과 경쟁을 통해 적대적 갈등을 완화하고, 한국 정치 최초로 청문회제도 도입, 각종 권위주의 악법을 개폐, 북방정책 추진 등 개혁과제를 실현했다. 정치 밖의 운동적 힘에 의한 압박이 컸고, 동시에 집권세력 내부에서도 권위주의적 요구가 강력하게 온존했던 점을 감안하면 6공 초기의 이러한 성과는 정치의 힘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2004년 열린우리당 사례는 그 반대의 경우이다. 열린우리당은 17대 총선을 통해 민주화 이후 최초로 단독 과반정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의미 있는 개혁의 성과를 만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집권기간 내내 반대파의 거친 도전으로 인해 통치의 안정성조차 담보하지 못했다.

상반되는 두 가지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문제는 위기 그 자체가 아니라 '기회 구조를 확대시킬 수 있는 통치 능력'이라는 점이다.


<표2>는 신정부의 위기 속에 함축된 새로운 기회의 구조를 보여준다. 당선자 인수위 없는 정권 인수의 문제는 민주당이 갖고 있는 집권 경험과 누적된 준비 역량을 효과적으로 집중함으로써 정당정부의 책임성을 높일 기회의 측면을 갖고 있다.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형성된 시민들의 높은 기대 수준은 정권의 개혁 추진을 위한 사회적 에너지이며, 탄핵정국에서 형성된 시민사회 내부의 적대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기초를 가진 다원적 정치질서의 발전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는 기회의 구조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개헌문제 역시 의회를 중심으로 질서있고 체계적인 개헌 숙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회이며 이를 통해 개헌에 대한 정치, 사회적 공감대를 폭넒게 형성해 나갈 수 있다. 개헌은 주장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시간의 요구하는 과정이다. 따라서 개헌에 대한 체계적이고 실질적인 숙의는 '개헌론의 정치'가 아니라 '실제로 개헌을 향해 가는 정치'를 실현하는 유일한 방도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온 국가-재벌 담합 구조, 사회경제적 불평등은 시장의 자율성, 조정자로서 국가의 능력을 구별 정립되는 전환적 사회경제체제를 형성시킬 수 있는 기회의 장을 조성하고 있다. 특히 적대적인 노사관계를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으로서 노동의 대표성 또는 시민권을 인정하고 이를 토대로 한 사회적 동반자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노사정 대타협의 실현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계기이다.

신정부는 가혹한 정치환경에도 불구하고, 기회구조를 확대하고, 이를 통한 전환적 성과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폭넓은 공동 통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는 구두선이나 구체성이 결여된 담론적 접근을 통해서는 실현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둘러싸인 위기요인들 안에서 가능성을 확장해 나가는 실질적인 노력이다. 즉, 적대와 분열에 기초한 사회적, 정치적 힘을 통제하고 건설적 타협과 협력을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새로운 통치 원리와 능력이다.

4. 통치의 문제가 중요하다

※ 통치란?

통치를 의미하는 government는 '배의 키를 잡다'(steering)는 뜻의 고대 희랍어에서 유래함. 이후 라틴어 goberno(쿠베르노)를 거쳐 영어의 government로 정착됨. government를 politeia의 조정, 지휘 등 통치의 의미로 비유적으로 사용한 최초의 인물은 플라톤임. 통치(government)는 거대한 함선을 이끌 듯이 정체(政體, politeia: 국가공동체) 전반의 조정, 집행, 조율, 운영 등을 포괄하는 책무를 의미함. 반면 통상적 의미의 '집행부'는 통치의 관료제적 행정적 차원의 개념인 'adminstration'으로 구별해 사용.


현재의 복합위기는 본질적으로 민주화 이후 30년간 누적된 체제적 긴장과 갈등에 기초하고 있다.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되지 못한 통치체제의 문제가 그 핵심이다. 즉 촛불정국을 통해 표현된 대한민국 복합위기는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심화되어 온 "초집중화된 위계적 통치체제(박정희식 발전국가 체제)와 민주화 이후 증대되는 정치, 경제, 사회 등 사회구성체 각 영역의 민주적 통치 능력의 요구 사이의 누적된 모순의 표현이자 그 결과이다.

촛불정국을 집약하는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슬로건이 담고 있는 함의는 민족주의적 감흥에서 비롯된 과거의 운동적 구호의 연장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본질적으로 갈등하는 낡은 통치체제-국가모델에서 벗어나 '민주주의'다운 새로운 통치의 방향과 원리를 제시하라는 요구이다.

따라서 신정부는 한국 민주주의를 체제적 차원에서 민주화하는 새로운 비전, 즉 "어떤 민주주의, 어떤 나라, 어떤 정부인지"를 포괄하는 통치의 원리와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자유, 평등, 인간다움 등 고유의 이상과 가치를 의미하는 이데올로기 이전에 정치, 사회 전반을 규율하는 하나의 질서(Ordnung)이자 통치체이다. 하나의 통치체로서 현대 민주주의는 선거와 정당을 중심기제로 작동되며, 광대한 현대 국가에서 시민 속에 뿌리 내린 정당만큼 중요한 통치주체는 없다.

※ 민주주의 또는 민주정체(democracy)

- 민주주의는 시민(demo)과 통치체(cracy)가 합쳐진 개념으로, 현대 민주주의는 주권자인 시민이 선출한 대표들에게 통치를 위임하는 하나의 통치체제(government)임. * 시민을 의미하는 demo는 지역의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음. 따라서 분권은 수의 평등과 지역의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정체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임.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이 정부가 되어 나라를 통치하는 체제라고 정의할 수 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은 정부라는 조직화된 집합체를 통해 대한민국 사회구성체 전반을 '정치적 지배-통치'의 관점에서 다루고, 다양한 집단적 이해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책임있게 구현해야 한다.

※ 통치의 중요성
최선의 정치공동체(politeia)를 만들고자 하는 실천적 행위인 통치는 정치의 가장 중심적 개념이다. 고대 철학자들은 통치를 에로스(Eros)로 표현하기도 했음. 즉, 좋은 사회구성체를 실현하고, 이 과정에서 좀 더 자유롭고 선한 삶을 살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하는 행위를 가장 에로틱한 것으로 인식.

현대에 들어와서도 통치는 정치학의 중심 개념임. 대표적으로 미국의 하버드대 정치학과의 이름은 흔히 정치학과의 이름으로 통용되는 department of political science가 아니라 department of government임.


5. 분권과 협치를 민주적 개혁의 기본 원리로 재정의하자

필자는 새로운 정부의 통치 원리로서 '책임과 자율에 기반한 분권과 협치'를 제안한다. 주지하다시피,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분권과 협치'의 담론은 주로는 통치와는 무관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 사이에서 작동하는 비정치적이며 행정적인 것으로 수용됐다. 민주화 이후 '분권과 협치'라는 언어는 무성해졌지만, 통치구조, 즉 위계적이며 중앙집중적인 권력구조는 오히려 강화되어 왔다.

제안하는 것은 '분권과 협치'를 본래적 의미, 즉 통치의 관점과 시야를 담지한 체제전환적 담론으로 재정립하고, 위계적이며 중앙집권적인 권력구조를 재구성하는 전환적 함의를 갖는 강력한 정치언어로 복원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첫째는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초집중화된 국가체제를 '책임과 자율에 기반한 분권과 협치의 민주적 국가공동체'로 전환하고, 둘째, 분권과 협치를 기존 중앙정부와 지방자차단체, 또는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라는 비정치적 범위를 갖는 담론이 아니라 사회구성체 전반을 포괄하는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통치의 범위를 갖는 민주적 정치담론으로 재정의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통해 대통령-청와대로 집중된 권력구조를, 정당을 포함한 정치, 사회, 경제 각 부분의 중간조직들이 파트너쉽을 형성하고, 다원적인 공동 통치 영역(condominium)을 확장해 나가는 민주적 통치구조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
더 넓은 통치 원리로서 분권

분권(decontralization)은 약한 분권(deconcentration)과 강한 분권(devolution)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약한 분권은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이다. 즉 중앙정부의 자원 일부를 '지방자치단체'로 분산하는 것이다. 반면 강한 분권은 권한의 위임을 기본으로 한다. 중앙의 자원뿐만 아니라 기능과 역할을 중앙의 다른 레벨로 위임하고, 자율적 의사결정의 권한과 책임을 갖게 하는 것이다. 강한 분권에서는 권한 위임의 대상이 지방에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 사회, 경제 전 영역에 걸친 자율적 시민적 결사체가 그 대상이 된다.

※ 분권(decentralization) 개념의 분류
- deconcentration : 분권의 가장 약한 형태로, 중앙권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중앙의 사무, 기능, 자원 등을 지방(low-level)으로 분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같은 지방분산은 중앙정부의 통치기술적 필요에 복무하는 경향이 있다.

- develution : 연방주의를 제외하면 분권의 가장 강력한 개념이다. 중앙정부로부터 사무, 기능, 자원 및 자율적 결정권한을 지방을 포함한 다양한 자율적 사회 결사체로 위임-이전(transfar)하는 것이다. 권한을 위임받은 지방정부 및 자율적 결사체들은 위임된 영역에 대한 독립적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는다. 실질적인 권력구조가 중앙집중적 위계구조에서 다원적 권력 구심간 파트너쉽에 기초한 공동통치 영역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전환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분권'은 약한 분권만을 의미했다. 주로 '중앙vs지방'의 일면적 시각에서 중앙정부의 자원을 떼어내 지방자치단체로 나누는 행정적 수준에서 다뤄졌다. 지방자치제 도입 이후 중앙의 자원은 지방으로 꾸준히 분산되어 왔으나, 주로 수직적 성격에 머물렀고, 따라서 분권이 중앙집중적인 위계적 권력구조에 준 충격이나 영향은 거의 없었다. 분권이 협소하게 정의되고 실행되다 보니,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자들이 정치과정에 개입할 유인은 거의 없었고, 다양한 자율적 시민 결사체의 실질적 활성화에도 기여하지 못했다.

특히 참여정부 이래 지역균형발전이란 이름으로 공공기관 및 공기업 지방 이전, 혁신도시개발 등이 추진되었지만, 권력구조의 변경 없는 지역개발 사업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것도 하나의 사례이다.

약한 분권이 노정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중앙집중적 위계적 질서가 지방 차원에서도 그대로 복제된다는 데 있다. 중앙의 자원을 이전 받은 지방자치단체는 지방의회나 다양한 중간조직을 우회해 무정형의 시민을 직접 포괄하는 방식으로 행정력을 강화해 왔다. 이것은 분권이 지향하는 민주적 원리를 훼손할 뿐만 아니라, 지방정치 내의 분권적 구심 형성 및 활성화를 가로 막는 요인이다.

더 넓은 통치원리로서 분권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다뤄져온 약한 분권의 한계를 뛰어 넘어 통치의 다원적 기반을 강화하고, 사회구성체 차원의 균형발전과 협력을 통해 중앙집중적 권력구조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는 '강한 분권(devolution)'을 의미한다. 강한 분권은 중앙집중적 위계구조를 정당을 포함한 다양한 시민 결사체들이 권력적 중심이 되고, 이들 사이의 파트너쉽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동통치의 구조로 변경하는 것이다.

강한 분권은 분권화된 공동통치 영역들 간의 수평적 책임성을 강화한다. 수평적 책임성은 통치영역을 서로 분립시켜 상호 견제시키는 것을 말한다. 삼권분립은 대표적이지만,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당간, 자본과 노동, 지방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지방 안에서도 지방정부와 지방의회간의 균형, 정부 내에서도 청와대와 내각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

국가와 사회 사이의 다양한 집합적 행위자 또는 이해관계자들이 통치 영역의 권한을 위임받고, 이를 통해 통치에 참여하게 됨으로써 사회 각 부분의 다원적 활력을 높여나가고, 초집중화된 국가체제를 분권화된 국가체제로 대체하게 된다. 강한 분권의 체제 하에서 정부는 일방적 결정자가 아니라 다원적 구심간의 조정자로서 자기 위상을 재정립하게 된다.


<그림1>은 위계적 통치구조가 강한 분권 하에서 어떻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준다. 강한 분권의 체계에서는 최고 통치자인 대통령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권적 구심이 형성되고, 이들 사이의 협력을 통해 공동 통치 영역을 확대하는 촘촘한 그물망식 구조가 만들어진다.

강한 분권은 크게 네 가지 영역에서 위계적 중앙집권적 통치체제를 분권적 공동통치 체제로 전환한다.

첫째는 정부 vs 정부의 관계를 가지는 지방 분권이다.
중앙에 종속된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승격시켜 중앙과 지방의 위계적 관계를 '정부 대 정부'의 대등한 관계로 전환시킨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단순한 집행기관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치적 역량과 결정권한을 가진 통치주체이자 국정의 동반자로서 재정립 된다. 또한 중앙정부 역시 위계화된 권력구조의 정점이 아니라 외교안보, 장기적 국정 개혁과제 중심의 국정운영 등 특수한 역할을 하는 하나의 지방정부로 자기 위상을 설정함으로써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과 책임을 분산할 수 있다. 일상적 국정 운영의 많은 부분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공동통치 영역을 통해 협력적으로 처리된다. 이미 민주당은 지방자치단체장이 참여하는 제2국무회의 구상을 밝힌 바 있다. 이를 새로운 공동통치 모델로 구체화 시킬 필요가 있다.

둘째는 강한 의회를 통해, 정부와 의회간의 균형을 실현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이 중심이 되는 통치체제이지만, 한국정치에서 의회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한 적은 거의 없었다. 권위주의 때는 말할 것도 없지만, 민주화 이후에도 의회는 정부에 대해 수동적 비판자 이상을 하지 못했고, 집권당 역시 정부입법을 보조하는 역할을 이상을 하지 못했다. 입법부의 역할을 다시 일깨운 것은 시민들이었다. 대통령 권력이 사실상 정지된 탄핵정국에서 시민들은 정치의 중심으로서 입법부의 역할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헌정중단에 준하는 정치적 대혼란이 탄핵, 특검 등 제도적 경로를 따라 차분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데는 통치기구로서 의회의 책임과 권한을 재발견한 것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강한 의회는 능력 있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정당은 그자체로서 하나의 통치기구이자 대안정부이다. 의회는 오늘의 통치자와 내일의 통치자가 국정에 대한 책임을 나누고 협력하는 장이다. 통치에 있어서 입법부의 위상을 되찾고, 정부와 의회간의 균형과 협력은 우리 민주주의의 핵심적 과제이다.

셋째는 자본과 균형을 이루는 노동의 강화이다.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인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생산자 집단은 자본과 노동이다. 따라서 자본과 노동사이의 균형은 한 사회의 통합과 협력을 가능케 하는 사회경제적 토대이다.민주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재벌의 담합(동맹)체제는 우리 민주주의를 압도했다. 국가와 동맹한 재벌은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반면, 핵심 생산자 집단인 노동은 사회경제적 시민권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노동이 자본과의 관계에서 균형 있게 대표되지 못한 결과가 심각한 사회경제적 불평등 및 불균형이다. 이러한 조건에서 정치공동체의 통합과 협력은 불가능하다. 노동이 일정한 경제적 시민권을 획득/부여받고, 사회와 생산체제에서 주요하고도 정당한 행위자로서 인정되어야 한다. 이에 기초할 때만이 노-사간 대등한 협상과 타협이 가능하고, 노사정 대타협 모델도 실현될 수 있다.

넷째, 청와대와 균형을 이루는 내각의 책임성 강화이다.
청와대가 모든 권한과 정보를 틀어쥐고, 국가-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체제는 이제 시대착오적인 것임이 분명해 졌다. 같은 맥락에서 청와대가 개혁의 진지가 되어 사회를 일거에 변화시키겠다는 발상도 실현 가능하지 않다. 신정부는 내각과 함께, 내각을 통해 일해야 한다. 내각 위에서 군림하는 청와대 각 수석을 포함해 정부 안의 정부로 비대해진 비서실 체제 전반을 축소 재편해야 한다. 대통령이 기본적으로 내각의 보좌를 받아 내각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내각 역시 영역별로 내각간 협력에 기초해 자율적인 권한을 부여받고, 책임있게 일할 수 있도록 재편성되어야 한다.

비단 네 가지 방향의 분권뿐만 아니라 국가와 사회 사이의 중간 조직, 자율적 결사체들과 통치의 권한과 책임을 나누는 다양한 공동통치영역을 형성할 수 있다. 분권적 체계 아래서 정부는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전반적인 조정자로서의 정치적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것은 정부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분권은 통치의 권한과 책임을 분담케 함으로써 신정부에 쏠린 과도한 부담과 위험을 줄이고, 확산된 공동통치 영역을 통해 사회구성체 전반의 활성화할 수 있다. 또한 적대적 반대연합의 최소화해 개혁을 위한 정치 사회적 기반을 두텁게 만든다.


정부와 사회의 협력적 통치를 지향하는 협치(governance)

협치를 뜻하는 governance는 통치(government)와 동일한 어원을 갖고 있는 정치언어이며, 본질적으로 통치의 특정한 방법이다. 협치는 통치의 잔여 개념이 아니며 중앙집권적 위계적 통치와 다른 통치의 방법이다. 협치는 정부와 사회 사이의 자율적 권한과 책임을 가진 강력한 분권적 구심들 간의 협력적 통치와 이를 촉진하는 정치적 실천이다. 따라서 강한 분권은 협치의 전제이다.

그러나 통치의 방법인 협치가 기업, 인터넷, 국제기구, 지방자치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각자의 필요에 맞게 변용되어 사용되면서 개념상의 혼란이 크다. 협력이나 교류 그 자체를 협치로 규정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는 무정형의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것을 협치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협치는 주로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무정형의 시민들을 행정체계의 말단에 참여시키는 것 또는 기존 시민단체들을 행정기관의 예산과 기획에 종속시키는 '관치의 민영화'로 다뤄져 왔다. 이 과정에서 행정체계는 시민의 대표 기관인 의회(지방의회)와 지방의 자율적 결사체를 우회해 직접 시민들과 대면함으로써 의회의 정치적 기능을 축소시켜 왔다. 이것은 협치가 아니라 일종의 포퓰리즘에 가깝다.

이런 접근은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이다. 즉, 공적 업무를 축소, 민간에 이전함으로써 중앙집중화된 위계체계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관료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다. 이는 온전한 의미의 협치라 할 수 없다.

현대 민주주의는 시민의 자율적 결사 및 집합적 행위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적 통치 모델로서 협치는 무정형의 시민이 아니라 공공정책의 수요자 및 관련 이해당사자들이 관한과 책임을 나눠 갖고 국정 운영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종래의 정부의 역할은 전환된다. 협치체제에서 정부는 기존 중앙집중적 위계적 체제에서의 정책 결정자 또는 일방적 지시자에서 다양한 사회적 이해관계자 사이의 협력과 타협을 촉진하는 조정자로 그 역할과 성격이 변화한다.

협치의 가장 대표적인 모델은 정부가 조정자로서 참여하는 핵심생산자집단 간의 타협 모델인 노사정 모델이다. 스웨덴, 독일 등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경우, 노사정의 협약은 법률에 준하는 제도적 효력을 가질 만큼 국정운영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대비, 산업 및 경제 정책에 있어서도 사회의 중요한 이해당사자-정당(의회), 기업, 노동조합, 대학 및 연구기관 등-이 공동으로 협력해 그 방향과 내용을 설정하는 방법도 이미 서구 민주주의에서는 모델화 되어 있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협력의 촉진자, 조정자으로써 사회를 더 단단하게 결합시킨다.

협치는 공동통치 영역에 참여하는 기존의 사회집단 외에 정치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하는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자율적 결사를 촉진함으로써,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조직적으로 대표될 수 있도록 추동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그림2>는 협치의 체계와 원리를 표현한다.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권력주체들이 분권의 원리에 따라 조직되고, 이를 토대로 통치의 관점을 공유하며 서로 협력함으로써 사회가 보다 폭넓고 균형있게 통합되도록 한다. 시민들은 정당과 자율적 결사체를 통해 자신의 이해를 통치의 영역에 반영하고, 사법부나 지방정부는 정부의 위계적 질서하에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쉽을 갖고 정부와 협력함으로써 수평적 책임성을 구현하게 된다. 기업 역시 과거와 같은 권력과의 담합(이것은 기업의 출혈 역시 수반한다)을 통해 시장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적 주체로서 동등하게 노동조합, 정부 및 사회의 다양한 결사체들과 협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6. 새로운 통치의 시간-새로운 국가체제를 만들자

정당간 경쟁과 대립이 극대화되는 선거는 끝났다. 이제 새롭게 출범하는 민주당 정부가 마주해야 하는 것은 통치의 시간이다. 통치는 조직적으로 분출하는 다원적 갈등을 조정 조율 통합함으로써 공동체의 안정적 변화를 형성해 가는 정치의 중심적 기예이다. 통치는 비단 집권당의 문제만이 아니라 대안정부로서 미래의 통치자가 되고자하는 모든 정당에게 해당되는 문제이다.

통치의 시야와 능력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것은 여-야, 진보-보수에 관계없이 책임 있는 정당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부과된 의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통치의 가장 주체로서 신정부는 이제 정권 교체의 좁은 시야를 벗어나 새로운 국가 체제를 만드는 보다 근본적이며 전환적인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분권과 협치에 기반해 국가와 사회 전 영역에 걸쳐 조화와 협력을 이끌어 내는 민주적 통치의 시야와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경쟁정당들, 시민의 자율적 결사체들은 물론이고 집권 세력 내부조차도 체계적으로 적대하고 배제시켜온 기존 통치 모델의 위태로운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 박근혜 정권이다.

탄핵정국에서 우리 시민들은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강화되어 온 대통령-청와대를 중심으로 초집중화된 위계적 권력체제 끝내라는 거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아 주었다.

이제 정치,사회의 다원성에 기초한 새로운 통치질서를 통해 새로운 국가체제를 형성하는 것은 신정부를 포함해 우리 사회 공통의 과제가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것이 구두선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조급해서도 안 된다. 먼저 체계를 세우고 체계가 자율적인 힘을 갖고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온건 다당제를 통한 타협과 협력, 내각을 포함한 입법부 사법부와의 협력, 기업 노조의 협력 국가와 사회의 협력 등 정치사회적 협력을 촉진함으로써 절반의 승리를 모두의 승리로 바꿔 낼 수 있는 공동통치 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 신정부가 새로운 국가체제를 주조하는 실질적 조정자이자 촉진자로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분권과 협치의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역사적 과업을 참착하고 끈기 있게 수행해 나가길 바란다.

※ 이 기획은 <전국 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분권과 협치의 대한민국 국가 운영 모델 연구"의 일환임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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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2002년부터 진보정당에서 일하며, 부대변인, 전략기획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2년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정치교육, 교류, 연구의 공간인 <정치발전소>를 설립했다. 현재는 정치발전소 대표와 정치기획사인 파워플랜트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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