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주화운동(이하 5.18) 37주년을 맞는 오는 18일을 일주일가량 앞두고 이 사건의 진실을 최초로 알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황석영·이재의·전용호 지음, (사)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엮음, 창비 펴냄)가 출간 32년 만에 분량을 대폭 보강한 전면개정판으로 출간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저자들은 1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이 책의 의의를 되새겼다.
기자간담회에는 황석영 작가를 비롯해 이재의 전 전남나노바이오연구원 원장, 전용호 광주전남소설가협회 회장 등 책의 주요 저자를 비롯해 정용화 광주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정상용 전 국회의원(개정판 간행위원장)이 참여했다.
독재 군부가 광주 시민의 항쟁을 북한의 사주에 따른 시민 폭도의 만행으로 날조하고, 200명이 넘는 시민을 무차별 학살한 계엄군의 만행을 자위권 행사로 포장한 가운데 주류 언론이 이를 살포함에 따라 사건의 진실이 파묻힐 위험에 처한 당시, 1985년 발간된 5.18에 관한 최초의 체계적 기록물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대학가와 사회 운동권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읽히며 긴 시간 '지하 베스트셀러'로 자리했다.
5.18 이후, 광주에서 막 출소한 조봉훈 전 광주시의원을 비롯하여 광주항쟁을 기록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당시 서울의 봄 사건과 관련해 광주로 피신 중이던 한국외국어대 학생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는 조봉훈의 도움으로 1980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5.18 참여자들의 증언과 관련 자료를 토대로 광주항쟁의 시작부터 전개 과정, 그리고 그 종결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 기록은 서슬퍼런 철권 통치 속에서 유언비어로 몰리거나 혹은 정권의 역공을 당하지 않기 위하여 사실관계의 고증에 최대한 힘을 쏟았다. 그리고 마침내 1982년 고 김근태 의원이 살던 인천 구월동에서 지인들과 함께 <광주백서>라고 칭해졌던 42쪽 분량의 팸플릿을 인쇄하여 전국에 배포함으로써 광주항쟁 비극의 전말을 전국적으로 그리고 최초로 알렸다. <광주백서>는 최초의 5.18 관련 기록물로서 당시 운동권학생들이 골방에서 숨을 죽이며 몰래 읽고 80년대 학생운동을 지펴내는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광주 진압을 위한 군대 이동을 미국이 승인한 내용을 기록하여 이후 미국의 광주학살 방조 책임을 제기하는 근거가 되면서 거대한 반미운동을 일으키는 기폭제의 역할도 했다. <죽음을 넘어 어둠의 시대를 넘어>는 <광주백서> 집필에 쓰인 자료와 내용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책이다.
당초 소설가 황석영이 집필한 것으로 알려진 이 책의 영문판이 1999년 미국에서 출간되며 주 집필자인 이재의 전 원장의 존재가 드러났다. 정용화 이사장이 1982년 석방된 후 이 책의 출판이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정상용 전 의원은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이재의 전 원장을 주요 집필자로 정했다. 이 전 원장은 고교 동창이던 조양훈 우리식물연구소 소장 등과 함께 책을 집필했다. 이 전 원장을 비롯해 주요 자료를 모으고 초판을 쓴 이들은 출간 후 군부에 끌려갈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제대로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무명의 저자들이 쓴 책의 신뢰도가 낮아질 것을 고려, 집필 팀은 최종 데스크를 찾았고 어려움 끝에 황석영 작가가 이 책임을 떠맡았다. 당시 집필자들은 황 작가에게 원고를 넘기기 전 "참여할 경우 감옥에 가실 것"이라고 했으나, 황 작가가 이를 흔쾌히 수락해 어렵게 이 책은 풀빛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군부는 황 작가를 잡아들였으나, 곧바로 풀어주고 외국으로 떠나보냈다. 당시 정식 재판이 진행될 경우, 군의 치부가 공공연히 알려질 것을 우려했으리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전면개정판은 계엄군의 군사작전 관련 문서, 피해보상 등 행정기관 문서, 1868건의 항쟁 참여자 증언자료, 5.18 재판 자료, 검찰수사기록, 청문회 자료 등을 바탕으로 신군부의 내란 모의부터 가해자들의 불법 행위에 이르는 법률적 판단 등 상당량의 사실을 5.18을 중심으로 보강했다.
"이명박근혜 집권기 5.18 왜곡 지나쳐 개정판 내"
한 팀으로 우리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기록물 중 하나를 만든 이들은 이번 개정판 출판 기자간담회에 다시 모여 "30년이 지난 사건을 되새기는 게 고통이었으나, 보수 정권의 사실 왜곡이 지나쳐 이 책을 다시 쓰기로 했다"고 개정판 출간 의의를 밝혔다.
정상용 전면개정판 간행위원장은 "이명박근혜 정권 9년간 5.18의 역사 왜곡, 폄훼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며 "여러 왜곡된 사실에 관한 진실을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1985년 첫 출판 당시에 비해 새로운 많은 사실이 알려졌기에, 이 책을 새롭게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정 위원장은 "보수 정권 들어 줄기차게 진행된 역사 왜곡의 배후에 국가 권력기관이 개입했다고 확신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황 작가는 "북한군의 남파설, 북한의 지령에 의한 시민 폭동설이 거짓임은 당시 현장에 있던 외신기자는 물론, 한국 기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당장 현장을 취재한 조갑제 씨도 '(북한 조작설을) 부인할 수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며 "5.18은 국민 주권을 찬탈한 군부 쿠데타를 비판하고 민주 회복을 주장한 광주 시민의 국민 저항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전면개정판은 지난 2013년부터 준비됐다. 2014년 개정판 간행위원회가 구성됐고, 국민성금을 바탕으로 개정판 집필이 추진돼 3년 만에 출간됐다.
저자들은 왜곡에 맞서기 위해 당사자들의 증언뿐만 아니라 계엄군의 작전 기록 등 구체적 기록을 확보하려 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대부분 기록의 공개를 군이 거부해 시간이 지체됐다.
황 작가는 "당초 개정판은 지난해 5월 18일 출판이 목표였는데 늦춰지던 중 촛불시민혁명이 일어났다. 제가 촛불집회에 참여하다 독감에 걸렸는데, 폐렴으로 발전해 3개월가량 정양하느라 더 늦춰졌다"고 개정판 발간이 늦춰진 이유를 설명했다.
이 전 원장은 "초판은 당시 한계상 주로 항쟁 당사자 중 생존자 40~50명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개정판은 범위를 넓혀 당시 군부가 어떻게 작전을 짰는지 등을 보안사 자료 등을 중심으로 보강했다"며 "우리가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수집해 철저히 근거를 밝혀 왜곡 원천을 뿌리 뽑겠다는 일념으로 개정판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특히 개정판은 계엄군의 최초 집단 발포가 자행된 21일 오후 1시 전남도청 앞 학살보다 더 큰 규모의 학살이 20일 밤 광주역 앞에서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내용을 비중 있게 실었다. 저자들은 5.18의 가장 큰 규모 전투는 이날 밤 일어났다고 평가한다. 개정판에 따르면 20일 밤 광주역 전투에서 총탄 등에 맞아 숨진 사람은 5명이고, 부상자는 최소 11명이 넘는다.
이 같은 보강 작업에 따라 당초 원고 750매 분량이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개정판은 원고 2000매 분량으로 늘어났다. 그나마 초고 4000매 분량을 절반 가까이 줄인 결과다.
이에 청소년의 접근이 쉽지 않으리라는 판단 하에 집필팀은 청소년용 책을 따로 준비할 예정이다. 영문판과 유럽판 작업 역시 계획 중이다.
"전두환 회고록 잘 나왔다"
질의응답 시간에 집필자들은 긴 시간을 들여 5.18의 의의를 설명했다. 이 가운데 일부 집필자는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다.
집필팀이 목소리를 가장 높인 순간은 최근 논란이 된 전두환 씨 회고록과 관련된 질문이 나온 순간이었다. 전 씨의 아들 전재국 씨 소유 출판사인 시공사 산하 임프린트에서 나온 회고록에서 전 씨는 자신이 발포 명령을 내리지 않았고, 자신은 5.18의 제물이라고 망언했다.
정 간행위원장은 "저는 전두환 회고록이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교훈을 주기 때문"이라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이 회고록을 통해 앞으로 국가적으로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을 함부로 사면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며 "잘못을 저지른 이를 사면하려면 정말 국민 대다수가 원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어 "5.18의 피해자들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언제든 용서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지만, 학살 책임자 누구 하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저는 전두환 회고록을 보고 분노가 치밀기 이전에 슬픔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문재인 정부에 바라는 바가 없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이 전 원장은 더 많은 기밀 자료를 공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1980년 당시 재판 자체가 매우 격렬했는데, 관련 기록이 여태 공개되지 않았다"며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도 많은 중요 자료가 군사기밀을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전 원장은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라도 여태 묻힌 수많은 자료가 공개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간행위원장은 계엄군의 양심선언을 요청했다.
그는 "여전히 행방불명자가 60명이 넘는데, 저희는 그들 대부분이 암매장됐으리라고 추정한다"며 "이에 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당시 계엄군이 나서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는 당시 부당한 명령에 따라 현장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도 엄청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피해자라고 생각한다"며 "이분들이 새로운 정부 아래에서 편하게 진실을 밝히실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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