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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 '환경윤리'를 입에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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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 '환경윤리'를 입에 올리다

[민미연 포럼] 자연에 대한 인간의 마음가짐 바꿔야…

환경보호, 자연보호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을 이용해 환경과 자연을 개선하려고만 달려들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연에 대한 태도나 마음가짐, 그리고 삶의 양식을 바꾸어야 한다.(필자 주)

자살률 1위를 비롯해, 노인빈곤율 1위, 산재사망률 1위, 임시직노동자 비율, 노동시간, 복지비 지출, 출산율, 미세먼지농도 등 대한민국의 실상을 드러내 보여주는 여러 표징들을 보면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복지, 국방, 외교, 환경 등등 여러 측면에서 기형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고민해야 할 일이 많지만 이런 문제들을 다 고민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기도 하고, 또 이 모든 문제에 관심이 가는 것도 아니기에 애초 환경문제, 그것도 환경윤리 문제에 집중해 '민미연 칼럼'을 쓰기로 했다. 그렇다 보니, 요즘 들어 인터넷에서 '환경윤리'라는 말을 적잖이 검색하게 되었다. 게다가 올 초 데자르댕(Joseph R. DesJardins)의 <환경윤리> 책을 번역하기도 한지라, 더 자주 검색하게 된다. 그렇지만 전부터 지겹도록 보아오던 몇몇 도서 소개나 별별 시답지 않은 이야깃거리정도가 검색되기 일쑤다.

그런데 며칠 전 반가운 문구를 발견했다. '뉴스'란의 여러 기사에 '환경윤리'라는 말이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과 함께 무더기로 등장한 것이다. 미래창조과학부 미래준비위원회가 지난 4월 18일 '10년 후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산과 소비'라는 미래 전략보고서를 발간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생산과 소비의 혁신 대응 전략을 제시했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시스템 전환을 위해서는 '환경윤리 확립'이 핵심이라는 이야기다. 이것이 그토록 반가운 이유는 그동안 환경문제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로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늘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생각을 강력하게 지지해주는 사례가 있다. 실천윤리학의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피터 싱어(Peter Singer)는 <세계화의 윤리(One World: The Ethics of Globalization)>라는 그의 책 1장 첫머리를 "9.11테러 당시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를 들이받은" 얘기와 "연료를 많이 잡아먹는 SUV(sports utility vehicle) 차량이 달리면서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얘기로 시작한다.

싱어에 따르면, 9.11테러가 일어나자 그 즉시 많은 사람들(3130명)의 죽음을 가져왔고 잊기 어려운 충격을 남겼으며 그 장면이 전 세계로 생생하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SUV 차량은 기후변화를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변화는 전자와 같이 눈에 띄는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장치나 기구들을 활용해야만 겨우 탐지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SUV차량을 가진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야기하는 보다 미묘한 변화는 9.11테러(3130명)보다도 훨씬 더 많은 사람(수백만 명)을 죽게 하리라는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잘사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더 큰 것으로 바꿀 때 그들은 기후변화가 일어나게 하는데 한몫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곡식을 여물지 못하게 만들고, 해수면을 상승시키며, 열대성 질병이 퍼지게 하는 등등의 폐해를 가져다줄 것이다. 게다가 과학자들은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될 경우 수백만 명의 생명을 잃게 되리라는 증거를 속속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인 미국의 당시 지도자였던 조지 W. 부시는 다음과 같은 말을 지껄인다고 싱어는 지적한다.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치는 일은 어떤 것도 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최우선적인 것은 미국국민이기 때문이다."

부시의 이 말은 경제를 위해서라면 SUV차량의 대량 판매로 인한 온실가스 문제가 대수냐는 이야기로 들린다. 이렇듯 환경문제는 그 중요성과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경제나 테러 등과 같은 직접적 문제들보다 등한시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지식공감
환경에 대한 인식이 대체로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환경위기의 주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었던 이른바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 산하 미래준비위원회(위원장 이광형)에서 '환경윤리 확립'이라는 이런 목소리를 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10년 후 대한민국,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산과 소비'라는 미래 전략보고서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변화를 우리 생활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생산과 소비'라는 키워드로 풀어내고 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 제시된 이런 전략 방향은 차기 과학기술기본계획 등에 반영하여 정책으로 연계할 계획이고, 이 보고서는 정부부처, 공공기관 외에도 국민 누구나 미래준비에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이 보고서는 현재 누구나 미래부, KISTEP, KAIST 미래전략대학원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다운로드해 볼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 미래준비위원회는 먼저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의 지능정보기술이 초고속의 초연결 플랫폼을 스마트하게 생성함에 따라, 생산과 소비의 전 과정도 실시간으로 똑똑하고 긴밀하게 연결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즉 앞으로 생산과 소비가 결합하여, 생산자는 소비자의 요구를 실시간으로 기획, R&D, 제조 등에 반영하여 재고 없이 스마트하게 생산하고, 소비자는 원하는 제품과 서비스를 적기에 제공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그리고 위원회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이러한 생산과 소비의 혁명적 변화를 우리 경제의 위기이자 기회로 보고, 이에 대한 변화 트렌드와 우리 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가, 기업, 사회 등을 포함하는 폭넓은 관점에서 전략 방향을 제시한다. 먼저 기업은 기획·R&D·제조·마케팅을 데이터 중심으로 신속하고 유기적으로 연계·혁신하고, 플랫폼 생태계를 선도하기 위해 주도적으로 플랫폼을 구축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 산학연 등 혁신 주체들은 혁신 역량을 높이기 위해,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을 확보하고 개방형 혁신을 확대하는 한편, 창의적 미래인재 양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개인정보 보호, 공정경쟁, 지식재산권 등의 제도를 정비하고, 미래가치 원천이 될 데이터와 제조 혁신의 기반인 스마트공장 인프라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래의 생산과 소비를 풍요롭게 만들기 위해 사회는 경쟁이 아닌 신뢰와 상호협력의 문화를 조성하고, 지속가능한 순환경제 시스템으로 전환하기 위해 '환경 윤리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산과 소비는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고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면서 생산과 소비는 사회·문화를 변화시키고, 사회·문화는 다시 생산과 소비를 변화시키는 상호작용을 이루기 때문에 미래에 생산과 소비를 발전시켜 가면서도 이로 인한 혜택을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문화와 윤리를 사회에 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특히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신뢰가 낮은 수준이며 경쟁 위주의 문화가 만연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신뢰 수준을 포함하여 측정한 사회자본(social capital)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32개국 중 29위로 매우 취약하게 나타났다는 점, 그리고 학교 교육에서부터 경쟁에 길들어 서로를 경쟁자로 보는 시각이 만연해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경쟁이 아닌 신뢰와 상호협력의 문화 조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보고서는 또 한 가지 지속가능한 생산과 소비를 뒷받침하는 윤리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한데, 그중에서도 기후변화와 자원 고갈의 위협을 극복할 수 있는 환경윤리의 확립이 매우 시급하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에 따라 환경 친화적 생산과 소비가 이루어지는 순환경제 시스템 도입의 필요성이 강력하게 제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순환경제 시스템의 도입은 사회에 환경 친화적 윤리의식이 확립되어 국가와 기업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때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보고서는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과학자들의 목소리는 반갑고 쌍수를 들어 환경할 일이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다른 주제와 달리 환경윤리를 언급하는 부분은 비교적 환경윤리 확립을 강조하는 선언적 주장에 그치고 그와 관련한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수십 명의 필진 중에 눈을 씻고 봐도 윤리나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 영역의 학자가 눈에 띄지 않는 점으로 보아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소비주의·물질주의로 인한 환경위기 등 다중적 위기의 시대에 인류 전체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적 삶의 방식 중 하나인 '단순한 삶' 혹은 '자발적인 소박함(voluntary simplicity)의 삶'의 방식 등에 대해서도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구체적으로 연구해볼 일이다.

어쨌든 과학기술자들이 혹은 정책전문가들이 환경문제의 해결을 위해 과학기술에만 의존해 먼저 환경을 개조하려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환경윤리라는 말을 입에 올리고 그것의 확립을 통해 인간의 태도나 마음가짐을 변화시키며 이를 토대로 다시 자연환경과 삶의 방식을 바꾸어나가고자 하는 시각의 변화 조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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