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18대 대선과 달리 보수 대 진보의 진영 대립으로 단순화시키기 어려운 구조다.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결이 역대 대선의 정치공학이었으나 이번 대선에서 이념적 프레임이 대선 전체를 좌우하는 결정적 변수는 아니다. 다자 구도의 선거가 이념적 다양화를 가져왔고, 정향이 같은 후보 간의 경쟁구도 등 선거 프레임이 선거의 변수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선거에서 후보의 이념지향은 중요하다. 이념은 국가공동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정책의 근저를 이루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결국 선거는 이념의 대결로 귀결된다. 보수와 진보의 스펙트럼은 연령별지지 성향의 분화로 나타난다. 이는 후보별 차별화로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은 표의 확장성을 의식하여 중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으나 선거 막판에 다시 적폐청산을 꺼내들었다. 안철수는 보수표를 흡수하기 위해서 안간 힘을 쓰지만 그럴수록 미궁에 빠진다. 홍준표는 통상적인 보수와 진보 대신 좌파와 우파를 선거프레임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안보 보수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 하는 전형적 갈라치기 전법을 구사한다. 심상정은 경제와 안보, 복지에서 진보적 어젠다를 일관되게 구사한다. 유승민의 안보관은 극우에 가깝다. 그러나 그는 경제에서 문제의 정곡을 찌른다.
이번 대선은 후보의 이념적 위상에 따라 공격의 수위와 대상을 조절하고 수시로 변경해야 하는 고차원의 정치방정식이 개입되는 선거다. 선거가 프레임의 전쟁이라지만 유난히 선거공학이 난무하는 이유이다. 선거 전체를 관통하는 대형 이슈도 눈에 띠지 않는다. 후보들의 이념지향의 차이는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지만 어젠다를 둘러 싼 치열한 논쟁보다는 네거티브에 가렸다.
촛불은 민심을 의미했고 19대 대선은 민심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압력에 의해 치러지는 선거다. 1987년의 6월 항쟁이 권위주의 정권을 타도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한 혁명이었다면 지난 해 10월에 시작된 '촛불'은 실질적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혁명이었다. 중첩적으로 진지화된 기득 동맹을 타파하고 사회경제적 격차와 모순을 해소하라는 민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막상 선거 국면에서 이러한 대전제는 깡그리 무시되었다.
여타의 선거처럼 그저 네거티브와 선거공학, 인물영입이 선거의 주제가 되는 한국정치 문법에 충실한 선거다. 상대적으로 더욱 시대정신을 망각한 선거로 진행됐다. 사드가 새벽에 기습 반입되어도 이를 잘된 일이라고 평가하는 홍준표와 유승민, 단지 환경영향평가가 생략됐기에 절차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안철수. 미국 대통령이 사드 비용으로 1조 원이 넘는 돈을 요구해도 한미 합의가 그렇지 않았으므로 괜찮다는 안철수와 홍준표, 유승민 등의 안보 보수 후보들. 이러고도 그들이 주권국가의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선거를 이념 대결과 지역구도가 완화되었다고 보는 분석은 본질을 꿰뚫지 못한다. 여전히 안보와 경제, 복지, 노동에서 확고한 보수가 강고한 블록을 유지하고 있다. 계급투표의 성향과 맹목에 가까운 심정적 보수는 여전히 특정 지역과 고령층에서 위력을 발한다.
문재인을 막기 위해 안철수를 차용하려 했던 보수의 시도는 퇴행적 사고와 시대착오적 언어로 보수표를 결집하려는 홍준표로 이동하고 있다. 강성 귀족노조와 좌파 종북 및 전교조가 한국사회를 멍들게 한다는 그의 분석은 놀랍다. 과연 그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보수와 진보를 갈라치기 함으로써 표를 얻으려는 치밀한 계산된 발언인지는 중요치 않다.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국정농단이 가능했는지, 구조적으로 똬리 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적 요인들을 어떻게 제거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생략됐다. 통합을 얘기하지만 불평등이 시정되지 않고, 사회를 정의롭다고 인식하지 않는 상황에서 통합은 얼마나 공허한지를 정직하게 얘기하는 후보가 없다. 적폐를 뒷받침 했던 정치세력도 통합의 대상이라면 '촛불대선'은 이미 존재가치가 없다.
적폐가 마치 특정 계층을 겨냥한 듯해서 금기시 되는 선거는 적폐 청산을 요구했던 민을 배신하는 것이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적폐 청산이 되어야 한다. 어설픈 '정치공학'에 의존하려는 시도는 '정치공학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선거 막판에 터져 나온 임기단축 공약, 자유한국당과도 같이 하는 것이 통합이라고 얘기하는 후보는 시대정신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후보다. 결국 시대정신이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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