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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전 나쁜 공장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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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 전 나쁜 공장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다

[하늘로 올라간 사람들 ②] 목숨 건 목소리, 들어야 하지 않나

2017년 4월 14일 광화문 역 7번출구 세광빌딩 옥상 위 광고탑에 6명의 노동자가 올랐다. 이들은 곡기를 끊고 물과 소금만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왜 고공에 올라 단식까지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프레시안>에서는 고공단식농성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 그리고 그들을 옆에서 지켜본 이들의 글을 통해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이 오십 다섯에 다시 공장을 찾아다녔다. 칠 년 동안 아팠던 아내를 치료하면서 빚진 돈을 갚기 위해서였다. 공장은 나이든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다. 몇 군데를 돌아다녀도 선뜻 손을 잡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다 입사한 곳이 합판공장이었다.

톱밥먼지가 휘날리고 매연이 쿨럭쿨럭 뿜어져 나오는 공장에서 합판을 들었다 놨다 해가며 최저생계비를 받았다. 합판과 합판을 붙이는 본드 냄새가 머리를 띵하게 만들고, 기침을 뱉을 때마다 까만 가래침이 타르 찌꺼기처럼 튀어나왔다. 돈 몇 푼에 몸이 상할까봐 할 수 없이 옮긴 공장이 호떡공장이었다.

호떡 공장의 노동자들은 평균 나이 육십이 넘는 대부분 나이든 아줌마들이었다. 간혹 젊은 사람들이 오기는 했지만 그네들은 이틀을 못 견디고 나갔다. 이백 도 온도로 끓는 철판 위에서 쉴 틈 없이 호떡을 만들어 내는 게 힘들기 때문이었다.

사장은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이든 아줌마들이 다른 공장으로 이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그네들을 함부로 대했다. 작은 공장에 시시티브이를 이십 개나 매달아 놓고 사무실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불량이 나오거나 생산량이 부족하다 싶으면 이층 사무실에서 달려 내려와 동작이 느린 아줌마에게 소리쳤다.

"그런 식으로 일하려면 나가요!"

심지어 사장은 스마트 폰에다 모니터를 연결시켜 집에서도 거리에서도 차안에서도 전화를 걸어 실장을 통해 아줌마들을 괴롭혔다. 일이 많으면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을 모집해 썼고, 유기농 밀가루가 부족하면 일반 밀가루를 쓰라고 강요했다. 청소는 뒷전이라 기름때가 곳곳에 누렇게 달라붙어 있어도 상관하지 않다가 위생과 등에서 환경조사가 나오는 정보를 알아내고 청소를 시켰다. 쥐가 갉아먹고 똥과 오줌을 싼 밀가루를 채에 걸러 쓰게 했으니, 그 악행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칠 년을 일했다는 아줌마의 월급은 최저생계비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나 역시 그 모든 것을 보면서 입조차 열지 못했다. 궁핍한 삶을 해결해 줄 수 없는 최저생계비라도 받아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허망했다. 한때 노동문화운동을 했고, 소설을 썼던 내 삶은 그야말로 비루한 늙은 노동자의 삶으로 전락했다. 아내가 아프면서 소설도 달아났고, 내가 이어오던 많은 인간관계도 끊긴 상태였다.

나는 나를 위로했다. 죽을 것 같은 아내가 살아난 것만으로도 고맙게 여기며 살자고 다독였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눈앞에 보이는 공장의 현실은 내 몸에 병을 심었다. 그 병이 깊어져 혼자 울고 혼자 미친놈처럼 욕을 퍼부었다. 왜 삼십 년 전의 나쁜 공장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는지, 왜 삼십 년 전의 노동자처럼 우리는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지, 이런 삶에 입을 닫고 사는 누구인지.

죽을 것 같이 목구멍까지 가득 차오른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공장일기를 썼다. 화를 삭이고 삶의 여유를 찾고 싶어 시작했는데, 어느 날 소설이 다시 써지기 시작했다. 하루 열 시간씩 일하며 일 년 동안 중단편 다섯 편을 썼다. 한 편을 쓰고 나면 다른 소리들이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들을 붙잡은 채 호떡을 뒤집으며 머릿속에 써놨다가 휴일 날이나 명절날 집에 틀어박혀 글로 끌어냈다. 그렇게 몸을 혹사해 가며 쓴 소설들을 모아 책으로 낸 게 <폐허를 보다>라는 소설집이고 96년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소설책을 내고 의미가 큰 문학상을 받았으나 화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폐허는 봤지만 폐허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은 아득했다. 나는 다시 장편소설에 매달렸다. 내가 살아온 세월 속에서 희망이라는 답을 찾고 싶어 내가, 혹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봤다. 그렇게 쓴 글이 이번 창비에서 나온 <건너간다>라는 소설이다. 때마침 전혀 예상도 할 수 없었던 광화문 광장 촛불을 보면서 나는 사람이 사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사람뿐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사람이 만들어 온 사회를 그 구성원인 사람이 만들지 않으면 누가 만들어낼 것인가.

그런데 지금 광화문 네거리 광고탑 위에서 여섯 명의 노동자들이 허공에 목숨을 매단 채 소리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일방적인 정리해고 중단과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노동삼권 완전 보장을 외치고 있다.

우리는 박근혜 정권이 저질러온 악행을 소름끼치도록 봤다. 청년 일자리는 줄어들고, 가계 빚은 우리 경제를 위협할 정도로 늘어났다. 젊은이들은 헬지옥, 이망생, 흙수저라는 말을 토해놓으며 삶의 의지를 꺾고 있다. 노동자들 역시 비정규직으로 내몰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으며, 노동조합 활동조차도 보장받지 못한 채 폭력에 시달려 며칠 전에는 갑을오토텍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암담한 사회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

다행스럽게도 박근혜는 구속되고 새롭게 희망을 만들어낼 대통령을 뽑고 있다. 유력 대선주자들은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들의 목소리에서 믿음을 보지 못한다. 최소한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주겠는 의지가 있다면 광화문 광고탑 농성 현장을 찾아가, '내가 여러분들의 요구를 해결하기 위해 애를 쓰겠다'라는 따뜻한 손길을 내밀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문 방송을 비롯한 모든 언론도 마찬가지다. 기자의 눈이 살아 있다면 절박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글과 방송으로 담아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그들은 십육 일째 소금과 물만으로 버티며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바라고 있다. 그 요구가 너무나 간절하기 때문에 목숨을 내놓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한 사회의 운명은 그 사회 구성원에게 달려 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사회가 바뀌지 않고, 사회의 변화가 없으면 그 속에 사는 사람도 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존중하며 더불어 함께 사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면, 바로 광화문 광고탑 위에서 목숨을 내건 목소리부터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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