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는 엉뚱하게 다른 곳에 있다. 덴마크인들은 삶에서 기대치가 가장 낮은 시민들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와이너라는 작가는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22일자 칼럼에서 이 낮은 기대치가 덴마크인들로 하여금 삶의 질 수준이 비슷한 핀란드나 스웨덴보다 더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덴마크를 부러워할만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생의 행복처럼 정치에서도 때로는 정책보다 이 '기대치 게임'이 모든 것을 결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와이너 식으로 말한다면 '정치 만족감=낮은 기대감'이란 공식으로 집약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6개월간 직면한 가장 힘든 장벽은 민주당 의원들의 비협조나 공화당 주류들의 훼방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덴마크인들과 정반대로 지나치게 높은 미국인들의 기대치이다.
▲ 오바마에 대한 지지율이 취임 초 64%에서 현재 55%로 하향 조정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 있지만 최근중도층 사이에서 무려 20% 나 지지율이 빠지고 있는 것은 오바마가 만든 대중의 기대심리에 있다. ⓒAP=뉴시스 |
사실 기대치 게임의 틀을 벗어나서 오바마 행정부와 유사한 자유주의 정부인 클린턴 행정부의 첫 6개월을 비교하는 틀로 생각해본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리더십은 놀랍다.
미국 역사상 가장 '정치적 안테나'가 발달한 지도자 중 하나인 클린턴 전 대통령과 미국 역사상 가장 초보적 정치인의 범주에 해당되는 오바마 현 대통령의 비교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의 성공적 관리는 경이롭기까지 한다.
지난 6개월을 돌아보면 한국과 달리 미국의 자유주의 진영의 내공은 역시 탁월하다. 즉 과거 클린턴 시대 집권의 명암을 거치면서 이를 정교하게 해부하고 이후 성공의 디딤돌로 삼는 그들의 자세는 오바마 정부의 성공적 관리로 귀결되었다.
이미 인수위 단계에서 오바마 정부는 수많은 아젠다의 우선순위 조정에 실패한 클린턴 정부의 한계를 극복한 바 있다. 그리고 토마스 맥라티라는 '아마추어' 비서실장 주도로 인준청문회 정국에서 수많은 실수를 범한 클린턴 정부와 달리 오바마 정부는 램 이매뉴얼이라는 '프로' 비서실장이 청문회를 주도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작은 생채기만 내고 인준청문회 정국을 이끌었다.
아젠다 주도력을 상실하고 군 동성애 등 민감한 사회적 이슈에 휩쓸려간 클린턴 정부와 달리 오바마 정부는 동성애, 총기, 낙태, 인종 문제 등 '인화물질'들을 비교적 조용하게 처리해나가고 있다. 최근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하버드대 교수가 경찰에 체포된 사건 과정에서는 자신의 말실수를 신속하게 사과하고 맥주 파티를 가짐으로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상황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비록 앞으로 대전쟁을 앞두고는 있지만 의료보험 개혁 입법 과정에서도 클린턴 시대의 무수한 아마추어 스타일의 실수를 거의 범하지 않고 있다.
또한 역대 어느 정부보다 신속하고 대담한 규모의 경기부양책이나 온실 가스 감축 법안(현재 하원 통과)의 성공은 가장 가시적 성과들이다. 그리고 국제적 외교안보의 확고한 비전 제시 등은 취임 초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사이에서 좌충우돌한 클린턴 정부에 비해 미국 자유주의자들이 얼마나 진화해왔는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중도층 지지율 하락이 악성
하지만 미국인은 덴마크 국민이 아니고 또 그러기에는 삶이 너무 고단하다. 비록 천문학적 경기부양액 중 단지 563억 달러만 집행된 상태이지만 실업률 9%, 재정 적자 1조 달러 육박이라는 불길한 수치에 이미 중도층은 인내심이 고갈되고 있다.
<AP> 통신 등의 조사가 지적하듯 오바마에 대한 지지율이 취임 초 64%에서 현재 55%로 하향 조정되는 것은 흔히 발견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중도층 사이에서 무려 20% 나 지지율이 빠지고 있는 것은 적신호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인내심 하락의 피 냄새를 맡은 낯익은 상어들이 오바마 대통령을 워털루의 나폴레옹으로 만들기 위해 속속 몰려들고 있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 같은 품위와 애국심을 가진 보수 인사들은 오바마 정부에 대해 근심어린 조언을 제기하는 반면, 과거 '클린턴 죽이기'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천민보수 전사들은 노골적으로 '오바마 죽이기'를 언급하고 있다.
이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오바마와 타협하지 말라고 선동하며 합리적 타협을 추구하는 공화당 인사들을 압박하고 있다. 즉, 애초부터 클린턴을 '문명의 적'이라 규정하며 탄핵 정국으로 몰아간 네오콘 전략가 윌리엄 크리스톨이나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이 오바마 집권 초 이제 초당적 시대가 왔다고 잠시 정치적 제스처를 취하다가 다시 노골적으로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오바마 대통령은 정치의 ABC에 해당되는 기대치 게임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는 취임 이후 부단히 과도한 기대감을 줄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해왔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현재 그가 직면한 기대치 게임은 시대적 불운과 그의 실수가 어우러져 매우 복잡한 문법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루즈벨트가 아니라 카터다
가장 중요한 그의 불운이자 제약은 미국인들은 자신들은 더 이상 미국을 황금기로 도약시킨 진보 루즈벨트(프랭클린)나 보수 루즈벨트(시어도어), 혹은 도약의 환상을 심어준 레이건(미국의 아침)이나 클린턴(신경제)을 가질 수 없음을 아직 선명히 이해하고 있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미국인들은 신용카드 사용과 집 크기, SUV(스포츠형 다목적 차량) 사용을 줄여나가며 자신 삶의 기대치를 재조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미국 경제의 어려움이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나 국제적으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깔끔한 철수나 강력한 개입 모두 불가능한 진흙탕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까지는 인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점차 오바마는 낙관적 영웅 루즈벨트보다는 예지력을 가지고 미국의 암울한 미래를 지적했지만 실패한 대통령으로 부당하게 규정당했던 지미 카터의 어려운 현실과 어떤 점에서는 더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아갈 것이다.
그간 미국 진보파의 과장된 기대치도 오바마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하며 이제야 현실적 조정 국면을 거치고 있다. 미국 진보파는 오바마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에 반대했던 이유를 그가 진보주의자라서가 아니라 예리한 현실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사실을 선명히 인식하지 못했다.
이는 마치 한국에서 천민보수의 어리석은 환상과 달리 햇볕정책이 사실은 진보주의자의 노선이 아니라 북한체제를 잘 이해하는 현실주의자의 노선이었던 것과 같다. 이후에는 이 햇볕정책을 둘러싸고 진정한 이념적 색채들이 드러날 때가 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바마의 외교안보 노선은 중도주의자답게 현실주의적 관리 노선의 색채를 강화하고 있다.
또 다른 난제, 우호적이지 않은 당내 보수파
상원에서 의사진행 방해에 휘둘리지 않는 슈퍼 다수당(무소속 포함해 60석 차지)의 지위가 된 것도 의도하지 않게 오바마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이미 경기부양책과 의료보험 개혁에서 오바마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듯 민주당 내 보수파 의원들은 오바마의 노선이 충분히 중도적 뉘앙스를 가질 때까지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초기 클린턴 정부의 진보적 노선에 힘을 보태다가1994년 중간선거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한 의원들의 악몽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에게 불운인 것은 미국은 커다란 이행기이고 자신에게 금융 대개혁, 지구 온난화 극복 등의 혁명적 과제들을 요구하지만, 의회는 매우 현상유지적이라는 사실이다.
미국 건국의 시조들은 상원을 미래지향적 숙고의 기관으로 설정했지만 상원은 지금 그다지 혁명적이라고 할 수도 없는 온실가스 감축 법안 통과에 필요한 수가 10표 이상이나 부족한 현실이다.
건국의 시조들과 달리 미국을 입법, 사법, 행정의 3부가 아니라 제4부로서 미래 유권자들을 대변하는 미래부라도 만들어야 할 정도로 시대적 기대치와 현실 사이에는 너무도 큰 간극이 존재한다.
오바마의 실책은 지나친 장밋빛 낙관
이러한 불운에다가 오바마는 자신의 실수로 지형을 더 악화시켰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댈럭은 백악관과 역사학자들 간의 회동 이후 오바마 대통령이 큰 그림을 보고 있다고 만족감을 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달콤한 칭찬에 동의할 수 없다. 지나치게 경기회복의 가능성과 경기부양책의 효과를 과장한 것이 정치적으로 기대치 게임에서 가장 치명적 실수이며 그 배경은 그가 아직 미국의 시스템이 망가져가는 심연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 실업률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은 망가진 미국 경제 시스템의 심연을 징후적으로 잘 드러내 준다. 예를 들어 실업률에 대한 기존 관습적 예측 모델들은 그 무능을 드러내며 이미 연방준비위원회는 10% 초과를 예상하고 있다.
그리고 표피적 수치만이 아니라 그 내용에서도 심상치 않다. <뉴욕타임스> 26일자 보도가 잘 지적하듯 일반적인 불황기 패턴과 달리 기업들이 소위 잉여인력들만이 아니라 핵심 역량들까지도 손대고 있고 심지어 이른바 '구직 이동성'의 저하도 신기록을 보이고 있다.
이 이동성이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미국 경제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지표였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임금이 저하하고 있는 현실은 오바마 대통령의 경제자문인 로라 타이슨 교수의 제안처럼 곧 2차 경기부양 조치의 절박성을 시사한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에 합의해 낼 정도의 정치적 자본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더 곤혹스러운 것은 설령 가능하다 해도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지적처럼 추가부양책을 시행해도 초인플레이션의 큰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악화되는 실업률이 미국 국내 시스템에서 오바마의 낙관론에 대한 경고라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 북한 등에서의 교착 상태는 오바마의 외교안보 영역에서의 낙관론에 대한 경고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아직 이란, 북한, 러시아 및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 등에서 클린턴, 부시 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굴곡을 과소평가해왔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이러한 어려움은 흔히 대통령들에게 큰 좌절감과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살인적 일정 속에서도 되는 일은 없고 시민들이 자신의 탁월한 정책성과를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는 것에 자주 화를 폭발시키곤 했다. 즉, 시민 탓으로 모든 문제를 돌려버리는 심리가 생긴 것이다.
이념의 폭을 넓히고 장기적 플랜을 짜야
앞으로 본격적인 대회전을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은 심리적으로나 일정에 있어서 지혜로운 조정 국면을 거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지난 6개월에 대한 반성 속에서 행보는 비록 정치 지형상 대담하기 어려워도 큰 그림에 대해서는 장기적이고 근본적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처럼 관성적 프레임 속에서 표피적 추세만을 보는 이들의 이야기만 듣는다면 오바마는 이후에도 기대치 게임에서 부단히 실패하고 정치자본은 바닥날 것이다.
이제는 그의 주변 인물들의 이념적 폭을 보다 넓히고 이후 경제 악화나 호전 등의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한 다양한 예방적 전략들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마 이후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그의 광범위한 아젠다에 대한 재조정의 필요성일 것이다.
어쩌면 그는 진보파들을 실망시키면서까지 의료보험안을 보다 후퇴시켜야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개혁 자체의 무산은 그의 정치적 자본에 너무도 치명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사회연금 개혁 등에서 고통스러운 결정에 직면해야만 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정치가 언제나 그러하듯이 그가 위기에 봉착하자 지지층들이 다시 긴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2일 자 한 칼럼에 따르면 리버럴 민주당원들은 오바마에 대한 불평에도 불구하고 취임식 당시 90% 지지율에 비해 현재 96%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오바마의 개인적 정치자본은 충분히 잔고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의료보험 개혁이 실패를 할 경우를 가정했을 때 시민들은 그 책임을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험회사에 30%, 무조건 반대만 일삼는 공화당에 22%, 무능한 민주당에 11%,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바마 대통령에게 단 4% 돌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향후 오바마 정부의 운명은 6개월의 기대치 게임에서의 제약과 실수를 성찰하고 향후 이 게임을 얼마나 지혜롭게 관리해나가는가에 달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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