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저녁 8시(현지시간)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후 네 번째 가진 TV 연설에서 강력한 의료보험 개혁 의지를 천명했다. 공화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보수파 의원들이 의보 개혁에 대해 거부 입장을 밝히고 있는데 대한 정면돌파인 셈이었다.
오바마는 이날 연설에서 "경제 회복은 의보 개혁에 달려 있다"며 "반드시 연내에 개혁을 단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의보 개혁이 재정적자를 악화시킨다는 공화당의 주장에 대해 "오히려 미국인들에게 더 큰 안정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받아쳤다.
그는 "이번 개혁안은 의료비를 낮추고 모든 미국인에게 보험 혜택을 보장하는 것"이라며 "만약 의료보험을 개혁하지 않는다면 매일 1만4000명의 미국인이 (높은 비용을 감당 못해) 보험 가입자에서 이탈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22일 백악관에서 의료보험 개혁에 관해 연설중인 오바마 미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
지지율 하락 속 '승부수'
취임 6개월을 맞은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지지율 하락과 의보 개혁을 둘러싼 정치권의 거센 공방으로 커다란 위기에 직면했다. 오바마와 미국인들의 '허니문'이 이미 끝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자연스레 나왔다.
미 <CBS> 방송의 지난 13일 보도에 따르면 취임 초 80퍼센트에 이르렀던 지지율은 최근 57퍼센트로 곤두박질쳤다. 또한 미 역사상 최대 규모였던 7870억 달러의 경기 부양책도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로 재정적자는 6월 들어 1조 달러를 돌파했으며, 실업률은 9퍼센트를 상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의 핵심 공약 중 하나였던 의보 개혁은 향후 오바마의 정치적 명운을 건 승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4600만 명의 미국인이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타개하고 전국민 의료보험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강한 파급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향후 정국의 주도권을 잡는 문제에서도 오바마의 능력을 검증할 계기가 된다.
공화당 거센 반발…민주당 내 보수파도 가세
그러나 본격적으로 '오바마 때리기'에 나선 공화당은 의보 개혁을 계기로 오바마에게 '조기 레임덕'을 안겨주겠다는 기세로 칼을 갈고 있다.
마이클 스틸 공화당 전국위원장은 20일 기자회견을 통해 "오바마의 건강보험 개혁안은 사회주의 정책"이라며 색깔 공세에 나섰다. "대통령이 경제를 위협하는 위험한 실험을 하고 있다"고도 공격했다.
공화당의 짐 드민트 상원의원 역시 17일 "의료보험 개혁 문제는 '오바마의 워털루'가 될 것이다"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1815년 나폴레옹이 영국과의 전쟁에서 마지막 승부수를 던졌다가 패배한 워털루 전투에 의보 개혁 시도를 빗댄 것이다.
미 의회는 향후 10년 간 1조 달러 이상이 소요될 전국민 의료보험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놓고 격론을 계속하고 있다. 누진세율을 적용해 부유층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겠다는 구상을 두고, 공화당은 "부유층을 희생양으로 삼는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내 보수파인 '블루 독'(blue dog) 의원들의 선상반란도 만만찮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는 20일 "오바마의 가장 큰 두통거리는 공화당이 아니라 민주당"이라며 여당 내 분열상을 전했다.
대표적으로 지난 17일에는 미 하원 세입위원회에서 3명의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공화당에 가세해 의보 개혁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안은 소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당내의 분열상은 오바마에게 난관으로 작용할 조짐이다.
당초 민주당 지도부는 8월 의회가 휴회에 들어가기 전 상하원에서 법안 표결을 모두 끝낸다는 방침이었지만, 당내에서조차 의견이 갈리면서 휴회 전 표결의 가능성은 점차 낮아지고 있다. 21일 <뉴욕타임스>는 "공화당 성향의 지역구에서 선출된 많은 민주당 하원들은 증세에 투표하길 꺼린다"고 전했다.
의료보험 개혁안이 대규모 재정적자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면서 민심도 다소 돌아서는 분위기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이 20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의보 개혁에 대한 지지율은 4월 57퍼센트에서 49퍼센트로 떨어졌다.
기로에 선 오바마…8월 휴회 전 통과 난망
일각에선 초당적인 협력을 강조하며 대통령직에 오른 오바마가 이번 의보 개혁안 논쟁에서 어떤 행보를 취하느냐에 따라 민주-공화 양당의 관계가 좌우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레이건 행정부 1기에서 입법 전략을 총괄했던 케네스 두버스타인은 22일 <뉴욕타임스>에 "오바마는 의회를 압박하는 것에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며 "8월 휴회 전에 끝내겠다는 오바마의 계획은 성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또 여전히 인기 있는 정치인인 오바마가 공화당에 '악역'의 이미지를 덧씌우면서 의보 개혁안을 추진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했다. 의보 개혁안을 '워털루 전투'에 비유한 드민트 상원의원에 대해 오바마가 "내가 아니라 당신들에 관한 얘기다"라고 반격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신문은 "결국 오바마가 대중적 인기를 발판으로 야당을 압박한다면 향후 어떠한 초당적인 협력도 증발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민주당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오바마가 '힘의 줄다리기' 위에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 당선을 도와준 보수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에게 압박 카드를 사용할 것이냐, 혹은 의보개혁을 포기할 것이냐가 오바마에게 주어진 또 다른 숙제라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오바마가 의보 개혁안 통과를 민주당 의원들에게 강하게 밀어붙인다면, 장기적으로 보수적인 지역구의 의석수를 잃게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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