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의 최측근이었던 금태섭 의원이 17일 안 후보를 향해 정면으로 비판을 제기하고 나섰다. 안 후보가 지난 2014년 '안철수 신당'으로 불리던 구 새정치연합과 구 민주당의 합당을 통해 '새정치민주연합'을 만드는 과정에서, 신당 정강정책에서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언급을 삭제하자고 주장해 놓고도 이제와 그런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었다. (☞관련 기사 : 금태섭 "안철수 측, '6.15 삭제' 제안은 엄연한 사실")
금 의원의 지적은 크게 두 지점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안 후보는 2012년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일관되게 '안보는 보수' 입장을 견지해 왔다는 것이다. 2014년 민주당과의 합당 과정에서 6.15 및 10.4 선언을 빼자고 주장한 것은 안 후보의 이런 정체성과도 무관치 않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즉 금 의원은 안 후보를 향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계승하는 야권 후보가 맞느냐'고 묻는 것으로 보인다.
안 후보는 실제로 이번 대선을 앞두고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의 이슈에서는 보수적 태도를 취했다. 지난 9일자 <프레시안> 지면에 실린,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공약 비교 기사에서도 이 지점은 주요 비교 대상이 됐다. (☞관련 기사 : 문재인 진보, 안철수 보수? 팩트체크 해보니…)
(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역시 이 기사가 발행된 이후인 지난 11일 조건부로 "사드 배치 불가피", "남북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불가능" 발언을 내놓으면서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간의 외교안보 부문 공약은 변별력이 약해졌다. 두 후보가 여전히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외교안보 분야 이슈는 전작권 환수 정도다. 관련 기사 : 문재인 "북핵 도발하면 사드 배치 강행될 수")
덧붙이자면, 외교안보 분야에서 안 후보의 정책적 방향은 2012년에 비해 '더' 보수화됐다. 그는 2012년에는 "북방경제로 한국 경제의 새로운 2막을 열어가야 한다"며 "북방을 횡단하는 열차가 달리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북방경제로 한국경제의 제 2막 열어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해 우선 북측과 대화를 시작해 재발방지·사과 문제를 포함해 그런 부분을 의논하고, 재발 방지 확약을 받은 다음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고도 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금강산 관광 재개, 우선 남북대화 시작해야")
반면 올해는 '10대 공약'에서 "남북관계 개선-북핵 해결-평화체제 수립이 선순환하는 원칙에서 대북정책 구현", 대북 제재 지속하면서도 민족화해, 개혁개방, 통일 위한 대화와 협상 모색"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남북대화 재개 의지 등은 별달리 부각되지 않고 있다. 13일 TV 토론에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승할 것이냐"는 질문(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에 대해서는 "대화를 병행해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든다는 궁극적 목적에 동의한다"며 "모든 정책은 공과가 있다. 잘된 점은 계승하고 잘못된 점을 고치는 게 바람직하다. 저는 대화를 통해 평화를 만드는 방향은 맞다고 본다"고만 답했다.
둘째, '6.15 삭제'라는 논란의 '내용'이 아니라, 그 논란이 나오게 된 과정에 대한 것이다. 안 후보의 리더십과 관련된 문제이고, 금 의원의 말을 빌리자면 '소통' 문제다. 이 부분에 대한 지적은 사실 지난 2015년에도 나왔다. 금 의원은 당시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펴내며 안 후보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소통의 부재"를 제기했다. 금 의원은 책에서, 안 후보가 2012년 대선 과정에서 일관되게 책임 있는 소통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비판한다. 중요한 결정이 후보의 독단이나 '비선'인 박경철 원장의 영향력에 의해 내려졌다는 것이 금 의원의 주장의 골자다.
안 후보는 이에 대해 2015년 당시 "외부에 계신 분이 모두 '비선'은 아니다"라며 "(박 원장의 의견은) 많은 분들의 의견 중 하나"라고 반박했다. "진심캠프에서도 의사 결정을 할 때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본부장 레벨에서 의사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즉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핵심 당사자인 안 후보와 금 의원이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금태섭이 상기시킨 것 : 김호기, 김상조, 전성인, 최장집, 이범 등
그러나 17일 금 의원이 제기한 비판은, 금 의원 본인이 의도하지 않은 측면에서 오히려 안 후보에게 더 뼈아프게 작용할 수 있다. 금 의원은 2012년 안 후보가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전부터 그의 곁을 지킨 핵심 측근 중 하나였다.
그는 2012년 여름 '진실의 친구들'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안 후보에게 가해진 네거티브 공격 대응을 담당했다. '진심캠프'에서는 상황실장을 맡았다. 상황실의 주요 임무는 여론 파악과 이슈 대응이다. '안철수 신당'으로 불린 새정치연합 창당 과정에서는 대변인을 맡았다. 즉 금태섭은 안철수의 '소통 담당' 참모였다. 그런 그가 안철수를 떠나며 "소통의 부재"를 말했다는 것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금 의원의 책에서 '박경철 비선' 의혹과 관련해 제시된 핵심 사례 중 하나는 '의원 정수 축소' 논란이었다. 금 의원은 "안 후보에게 연설문이 박 원장의 작품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설마 했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라고 적었다.
안 후보는 지난 2012년 10월 23일 인하대 특강에서 "국회의원 수를 줄여서 정치권이 먼저 변화의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국회의원 대폭 줄여야" 파장 일 듯) 이에 대해 당시 <프레시안>이 안 후보 캠프의 정치 전문가들에게 확인한 결과, 이들은 안 후보가 사전에 이런 내용을 상의한 적이 없다고 했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정치개혁안', 후보 독단? 캠프 내부서도 반발)
당시 '의원 정수 축소' 논란에 붙은 불을 끈 것은 안철수 캠프 정치혁신포럼 좌장이던 김호기 연세대 교수였다. 안 후보가 2012년 내세운 '정치혁신', 2013년부터 지금까지 내세우고 있는 '새 정치'의 많은 부분은 김 교수 등과 함께 토론으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김 교수는 지금 문재인 캠프의 '새로운대한민국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호기 교수뿐 아니다. 안 후보의 안랩 신주인수권부사채(BW) 문제와 관련해 가장 전면에서 비판을 하고 있는 이들 중 하나는 '재벌개혁 전도사'로 불리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다. 김 교수는 대선캠프나 정당에 몸담는 식으로 안 후보를 도운 적은 없지만, 2013년 안 후보가 무소속 의원으로 당선된 후 '정책네트워크 내일'이라는 싱크탱크를 만들 때 창립 세미나에서 기조 발제(경제 분야)를 했었다.
김 교수는 2012년 당시 안철수 캠프에 몸담았던 전성인 홍익대 교수와 함께 정운찬 전 총리의 제자이면서 진보적 경제학자 그룹을 대표하는 인사로 여겨진다. 전 교수도 대선 이후인 지난 2013년 안 후보의 정책 자문을 그만두겠다고 밝혔다. 전 교수는 2012년 대선캠프에서 경제민주화 포럼 대표로 활동했었다.
경제 분야에서 2012년부터 계속 안 후보를 돕고 있는 이는 장하성 고려대 교수 정도다. 그러나 장 교수가 2012년 처음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던 때를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당시 안 후보는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기업들이 주주 중심주의라는 고립된 개념 아래 사회성과 공익성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면서 국가, 노동자, 소비자, 지역 주민 등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외면하는 경향이 커졌다"는 의견을 밝혔었다. 때문에 '안철수 원장'의 관점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주장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장하성 교수가 안 후보의 경제정책을 맡는다고 하니 "안철수의 선택은 주주자본주의 강화인가?"라는 비판마저 나왔다. '안철수 원장'의 '진보성'이 희미해지는 것 아니냐는 방향의 우려였다. (☞관련 기고 : 안철수-장하성 조합, 걱정된다)
2017년 현재 안 후보는 여전히 재벌 개혁과 정경유착 근절을 내세우고는 있지만 '규제프리존법' 찬성 입장을 밝힌 데 이어,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을 경제특보로 영입했고, 법인세 증세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명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면서 오히려 후보 본인이 장하성 교수보다 더 '보수'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장 교수는 법인세 증세에 찬성하는 입장이고,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론 역시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정치·사회 분야에서도 안철수의 곁을 떠난 이들이 있다. 2013년 여름 김상조 교수가 경제 분야 기조 발제를 했던 '내일' 창립 세미나에서, 정치 분야 발제를 맡았던 것은 당시 '내일' 이사장이었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였다. 최 교수는 언론 인터뷰와 창립 세미나 정치 분야 기조 발제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를 방향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최 교수는 안 후보와 불화설 끝에 이사장직에서 물러났고, 2014년 '새정치연합' 창당 과정에서는 진보적 자유주의라는 말 자체가 완전히 사라졌다. 윤여준 새정치연합 창준위 의장은 2014년 3월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진보적 자유주의 노선에 대해 "논리는 맞지만, 우리 정치 현실에서 실현하기 어렵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안 후보의 '학제 개편' 공약을 맹렬히 비판한 이는 '스타 강사' 출신 교육 운동가로 유명한 이범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전 '메가스터디' 이사)였다. 이 전 부원장은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정책보좌관을 지냈고, 2012년에는 안철수 캠프 교육정책폴럼을 이끌었다. (☞관련 기사 : 안철수 교육정책 총괄에 '스타강사' 출신 이범) 교육은, 5년 전이나 지금이나 안 후보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다.
이 전 부원장의 회견 역시 단순히 안 후보의 학제개편안 비판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 전 부원장은 "유치원 파문에서 드러난 것처럼, 안 후보의 학제개편안 또한 현장의 상황과 정서를 전혀 모르고 '아웃소싱'한 내용을 내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들은 '새 정치'처럼 내용 없는 이미지 정치에 속지 말고 올바르게 판단해야 할 것이고, 안 후보는 껍데기가 아닌 내용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아웃소싱', '이미지 정치', '껍데기' 등의 언사는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안 후보로서는 억울한 면도 있을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틀어지는 게 온전히 어느 한 쪽의 책임이라고는 보기 어렵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 캠프나 싱크탱크에 영입했던 인물 한 사람을 잃는 것은, 그 사람을 보고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까지 같이 잃게 한다는 점에서 정치인에게는 허용되기 어려운 실책이다. 안 후보 본인이 인용한 이영표 선수의 말처럼 "국가대표는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이고 대통령 자리도 이와 같"기 때문이다. 금태섭 의원 등 한때 자신이 가까이 두고 의지했던 이들이 자신에게 칼을 겨누는 일은 지난 5년 간의 '안철수 정치'가 받을 성적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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