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공불락으로 보였던 선두 페이스가 균열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불안의 독소가 생겨난다. 그러한 기운은 번지기 마련이고, 지지자들의 마음을 좀먹으며 결국 대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선거는 심리전이기도 하다.
명백히 현재 문재인 후보 진영은 위기 국면에 돌입하고 있다. 문과 안의 호각지세를 애써 무시한다 해서 현실이 호전되지는 않는다.
캠페인이란 특정 목표 달성을 위해 조직화된 방식으로 실행되는 대대적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말한다. 설득을 가르치는 선생이니 정치캠페인과 상업적 브랜드 캠페인이 뭐가 다른가 내게 묻는 사람이 있다. 본질적으로 똑같다 대답한다. 모든 캠페인은 결국 메시지를 수용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작용하는 설득이기 때문이다.
즉 정치캠페인에 있어 특정 후보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형성시키고 그것을 투표행위로 연결시키는 모든 과정은 유권자들의 마음 속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그러한 숨겨진 마음을 우리 것으로 되돌려놓지 못하면 선거에서 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사람들의 분산된 마음을 집중시켜 하나의 틀로 구성해 내는 것이 캠페인 프레임(frame)이다.
프레임이란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특정 “단어”로 규정하여 인식의 틀(frame) 안에 가두는 작업이다. 따라서 적확하고 강력한 캠페인 프레임은 이슈와 관련된 모든 이해와 해석을 장악하고 대중인식을 휘어잡게 된다.
문재인 진영이 몇달 동안 제기해왔고 아직도 지속하는 프레임은 '적폐청산'이다. (감옥에 들어간) 박근혜로 상징되는 부패 기득권 세력에 대한 처별과 개혁을 뜻하는 담론이다. 이 프레임은 확실히 지난 촛불혁명을 통털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문재인을 지난 몇 달 간 대세 후보로 만들어낸 핵심적 도구였다.
하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강력한가?
유권자들의 '심리 상황'이 급속히 바뀌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적폐청산' 네 글자는 촛불과 탄핵 국면에서 쓰나미처럼 파괴력이 컸다. 하지만 (평균적 유권자들의 대중심리 속에서) 박근혜와 최순실, 이재용과 김기춘 그리고 기타 '적폐' 관료들의 구속을 통해 일단 '청산의 매듭'이 한번 지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닌가?
이 과제는 누가 보더라도 보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차원에서 이뤄질 정치경제적 목표다. 따라서 급속히 대선국면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추상적이고 먼 목표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10년에 걸쳐 누적된 '적폐청산'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모르는 중도 + 개혁지향 유권자들은 없다. 하지만 대선투표일이 한달도 남지 않는 현재, 냉정히 평가해서 유권자 심리 속에 생생한 파괴력과 현장성이 줄어든 프레임이란 점도 사실이다.
특히 문제점은 1대 1 대결구도가 명확해진 지금, 안철수와 그 지지 유권자들을 덤태기로 몰아 적폐청산 프레임에 가두는 작업은 불가능에 가깝다.
왜 그런가?
첫째 유권자들이 보기에 문, 안 그룹은 하나의 야당에서 갈라진 세력이다. 지역적 기반이 다르고 이념 지향이 다소 다를 뿐 서로 겹치는 부분이 다대한 것이다.
둘째, 현재까지 안철수 후보가 명시적으로 과거 새누리당 기반의 두 정당, 즉 자유한국당 및 바른정당과의 연대 혹은 연합을 주장한 사실이 없다는 점이다. 다만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을 지지했던 (그러나 차마 박근혜의 유산까지는 받아들이기 힘든) 보수성향 지지자들이 문재인에 대한 대체재로서 안철수에게 급속히 쏠리고 있을 뿐이다. 조갑제가 "문재인을 안철수로 막으면 절반의 성공"이라 주장하는 지점이 정확히 그곳이다.
셋째, 더욱 중요한 것은 진정한 적폐청산 대상이 엄연히 현실적 경쟁 상대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유한국당 후보로 공식적으로 선출된 홍준표 말이다. 백보를 양보하더라도 '적폐청산' 대상에 더 가까운 세력은 안철수보다는 오히려 유승민 후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문재인 진영이 안철수 진영에 '적폐청산 대상'의 프레임을 덮어 씌우는 작업이 무리라고 본다. 오히려 현재와 같은 안철수=적폐청산의 프레임을 지속시키는 한, (이미 광범위하게 표출되고 있듯이) 안철수를 지지하고 있거나 그에게 잠재적 호감을 지닌 중도유권자들에게 심정적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리 된다면, 대세를 그르칠 수 있는 큰 패착이다.
'적폐청산'과 '새로운 미래'라는 양대 프레임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모두가 촛불혁명의 완성을 담보하는 핵심적 목표다.
하지만 현실을 봐야 한다. 두 가지 가운데 지금 파괴력이 떨어지거나 혹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프레임은 버려야 한다. 이를 대신하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프레임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
전설적 카피라이터 클로드 홉킨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감기약을 사는 것은, 그것이 자신의 병을 없애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은 경쟁 후보가 악질적이고 문제가 많기 때문에 우리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후보가 진정으로 "나와 가족의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을 때 비로소 표를 던지는 것이다.
선거일이 고작 29일 밖에 남지 않았다.
전략 전환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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