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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낙하산 감사'가 3년 간 눌러쓴 감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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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느 '낙하산 감사'가 3년 간 눌러쓴 감사일지

[기고] "<공기업 판도라의 상자 1, 2>를 권한다"

국정감사가 한창이다. 국정감사의 이념은 견제와 균형, 즉 권력균형에 있다. 통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염려, 입법·사법·행정 간의 억제와 균형을 통한 권력분립의 원칙이 그 정신이다. 그래서 일찍이 영국 의회를 연구했던 우드로 윌슨은 "행정부에 대한 빈틈없는 감독은 입법만큼이나 중요하다(1885)"고까지 했다.

기업에는 감사제도가 있다. 공기업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사기업과 마찬가지로 내부감사가 있고, 외부감사가 있다. 여느 기업이건 맨 먼저 발동돼야할 감사의 기본 틀은 내부감사다. 내부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곳에 부패가 시작된다. 공기업에 대한 외부감사 중 하나가 바로 국회의 국정감사다.

3년 임기 동안 꾹꾹 눌러 쓴 감사일지

저자 강동원은 노무현 행정부 시절 국정감사의 피감기관인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감사로 일했다. 스스로 무능한 '낙하산'을 자임하며 3년 임기를 채운 저자는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공개를 작심하고 3년 동안 감사일지를 적었다. 감사일지는 이번 국정감사를 앞두고 「공기업 판도라의 상자 1, 2(북스익스프레스)」라는 이름으로 출간됐다. 책 제목 그대로 판도라의 상자다. 공기업을 둘러싼 온갖 혼란과 모순, 부정과 부패, 갈등과 음모가 살아 숨 쉰다. 단지 희망만이 덮여 버린 듯하다.

저자는 1967년 이후 14번째 농수산물유통공사의 감사였다. 지금까지 대부분은 군인 출신이었다. 물론 군 출신이 감사능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전문성은 문제였다. 정치적 엽관주의, 정실주의, 연고주의가 똬리를 틀었다. 견제와 균형은 온데간데 없었다. 특유의 연고주의와 일사분란한 조직원리가 강조되는 곳에서 저자는 철저한 이단아였다. 저자는 스스로를 "반칙의 관행에 반기를 든 감사"라고 표현했지만, 어느 누구도 여기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일 제대로 하려는 감사에 대한 안팎의 도전

먼저 감사실. 2004년 12월 27일 월요일 아침 9시, 취임 후 첫 주례회의를 소집했다. 보고를 요청했다. 모두가 묵묵부답이었다. 회의자료도 없었다. 누군가가 말문을 열었다. "감사님, 사실 그동안 감사께서 주재하신 회의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늘이 처음입니다."

다음은 사장. 2005년 4월 18일, 확대간부회의가 열렸다. 공개회의 석상에서 연신 반말로 사장의 막말이 계속 됐다. "나는 우리 공사가 전문경영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당당하게 1등으로 들어왔어. 공채로 들어와 일을 의욕적으로 하려는데 감사는 앞으로 깝죽대지 않았으면 좋겠어."

다음은 공사 직원. 2007년 10월, "야 너 해임이라며,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래, 감사 그 자식 날려버려. 내가 그 자식 비리 다 알고 있어. 이번 기회에 개망신 줘버리자고." 결국 내부통신망에 감사에 대한 음해성 유언비어가 떴다. 최근 징계처분과 관련된 불만이었다. 대학원 학자금 지원문제, 사택문제 등이 공격대상이었다.

다음은 노동조합. 2005년 7월 20일, 노동조합은 감사실을 주시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수개월동안 감사의 노력으로 개선된 것이 무엇이고, 실적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감사의 역할이 공사의 정책적 집행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때문에 감사역할의 한계를 분명히 해 줄 것과 비효율적인 자료 요구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농림부. 2005년 7월 하순경, 농림부에서도 감사에 대한 공격이 감지되고 있었다. 임원들이 서로 티격태격하고 지휘체계가 일사분란하지 못한데, 그 중심에 감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급기야 박홍수 장관이 차관과 담당 국장에게 우려를 나타냈고, 후속조치로 차관이 임원들과 저녁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다음은 감사원. 2007년 1월 29일, 감사원 특별조사본부에서 특별감사가 나왔다. 내부 투서였다. 감사는 적극 협력하기로 했다. 문제는 소문이었다. 마치 감사에게 커다란 비리가 있어 감사원 특조본부의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정치인. 2006년 11월 20일, 감사실 주례회의를 막 마치는 순간 이름만 들어도 천하가 다 아는 거물급 정치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공사의 시설관리용역 계약 기간이 12월에 끝나는데, 현 용역 업체와 수의계약으로 재계약해달라는 청탁이었다.

다음은 정치권. 2007년 국정감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연례행사였다. 코드인사, 낙하산 인사, 보은인사는 전가의 보도였다. 정치인 출신이라는 이유였다. 연봉은 터무니없이 과장됐다. 소득조차 확인하지 않고 발표한 국정감사자료가 대부분이었다. 감사직은 늘 낙하산 인사의 꽃으로 묘사됐다.

법이 아니라 관행이 문제였다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과 정부투자기관감사직무규정, 공사정관은 감사는 업무와 회계감사를 한다고 규정했다. 따라서 감사는 업무감사권을 통해 이사의 직무집행을 감사할 수 있도록 했다. 감사는 언제든지 이사에게 영업에 관한 보고를 요구하거나 회사의 업무와 재산을 조사할 수 있으며, 직무집행의 적법성과 타당성까지 감사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는 충분했다.

문제는 법이 아니라 관행이었다. 법만 만들어놓고 지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그래서 입법부가 법을 제정했다 하더라도 그 법이 원래의 취지에 맞게 잘 집행되고 있는지 감사할 권한이 입법부에 주어지지 않는다면 집행권력은 통제되지 않는 권력이 되고, 견제와 균형의 권력은 마치 유명무실한 권력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였다. 감사라는 제도의 법적 근거와 업무범위를 한껏 규정해 두고도 현장에서 감사의 권한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면 회사의 직무집행에 대한 통제는 마치 없는 것과 마찬가지고, 공기업 현장에서의 견제와 균형의 원칙은 철저히 사상되고 마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내부고발은 건강한 행위로 평가받지 못한다. 조직의 신뢰를 저버리는 이단아일 뿐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조직을 파는 매판행위일 뿐이다. 이런 연고주의와 조직원리 앞에 공정성을 무너지고 공공성을 지향하는 공기업의 본래 목적은 부패해 갔다.

그렇다고 늘 절망뿐인 것은 아니었다. 내부가 아닌 외부의 평가는 제법 공정했다. 국가청렴위원회가 32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05년도 청렴도 측정결과 농수산물유통공사가 1위를 차지했다. 2007년 청렴혁신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는 저자가 발표한 전자감사시스템 구축 사례가 최우수상을 차지했고, 전자감사시스템은 2008년도 모든 공공기관에 도입해야할 최우선 과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재직한 3년 동안 유통공사는 3년 연속 국가청렴도 1위 기관으로 선정됐다. 공사를 떠난 지 6개월 후인 2008년 6월 25일, 2007년도 감사직무실적 평가가 발표되었는데 전체 54개 공기업 중 저자가 1등을 차지했다. 이 정도면 저자에 대한 노고는 충분히 보상된 셈일까.

한계는 있지만 장점이 그 한계를 덮는 기록

물론 이 책의 한계도 엿보인다. 저자의 개성만큼이나, 원칙에 대한 타협불가를 추구하는 품성이 이 책을 관통한다. 설득력에 대한 한계로 작용할 염려가 있다. 이 책은 철저한 논픽션이다. 저자의 직무집행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자료와 글들은 나름 충분해 보인다. 문제는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 사장을 비롯한 상대방의 반론권이다. 법률가적 입장에서 때로는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저자는 본문 중 이름과 직책과 기관명 등은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일부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기업과 정부의 특성상 특정해 내기가 별반 어렵지 않다. 그렇다면 이 책에 거론된 상대방들은 반론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자칫 일방적일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좀 더 압축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책이란 늘리는 것보다 줄이는 게 더 힘든 일이다. 저자의 욕심은 책의 곳곳에서 묻어난다. 실무자들을 위한 교범으로 삼기에는 한편 사적인 서술이 강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소개하고자하는 의도는 이렇다. 제목만큼이나 이 책은 공기업 내부 모순의 실체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어느 감사가 이렇게 충실히 기록물을 남겼으며, 자신의 직무수행에 대해 정당성을 자신할 수 있으며, 세상의 평가에 떳떳함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이것만으로도 공기업 감사 역사의 중요한 진전이다.

더구나 새 정부 들어서도 공기업의 개혁과 구조조정, 민영화는 화두다. 그럼에도 별개 차원의 승자독식과 코드인사, 정실인사는 계속 중이고 저자가 근무했던 직장도 결코 예외는 아닐 성 싶다. 그렇다면 저자가 지적했던 공기업의 문제점들은 모두 시정되어 가는 과정이고, 감사의 독립성은 보장되고 있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가깝게는 국정감사의 근거자료로서, 조금 멀리는 이 정부의 공기업 개혁에 대한 참고자료로서, 더 멀게는 우리 사회의 공정성에 대한 기준자료로서 이 책의 가치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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