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사드 배치의 주요 타깃이 될 북한은 조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도입과 관련해 향후 강경한 대응을 벌일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이를 두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이게 바로 사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때문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일갈했다.
정 전 장관은 "사실 북한으로서는 사드 배치가 악재만은 아니다. 오히려 북한은 이번 사드 배치를 계기로 북중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것"이라며 지난 1일(현지 시각)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만남을 갖고 중국과 북한의 '우의' 관계를 재확인했다는 데 주목했다.
그는 "리 부상이 중국의 초청으로 방문했다고 하는데, 북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이 먼저 요청했다고 한다"며 "북한이 먼저 중국에 가겠다고 했고 중국이 여기에 호응하면서 우호적인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은 사드 배치로 잃을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득을 보고 있다. 중국이 자신의 편으로 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드 배치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이행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물론 외형적으로는 단둥에서 대북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도 하고 중국이 북한의 석탄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이건 중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라며 "중국은 석탄 말고도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북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게다가 지금은 북한을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 전 장관은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를 통해 중국 역할론을 추동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엄청나게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 됐다"고 평가했다.
사드 배치를 뒤집을 만한 가능성에 대해 그는 "한국이 상황을 주도하거나 변화시킬 동력이 없어 보인다. 또 선거철이라서 야권이 이 문제를 세게 치고 나갈 가능성도 높지 않다"며 "4월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야당의 주요 대선 주자들이 사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내는 이유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그것이 설사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지라도 북한을 공격하거나 압박하는 내용이 아니면 '종북' 프레임으로 몰아 버린다"며 "참 비극적인 상황" 일고 안타까워 했다.
인터뷰는 지난 14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습니다.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상황에 직면했는데요. 그런데도 박근혜 대통령 없는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한미 양국은 사드 일부 포대를 한국으로 들여와 오는 5월 대선 전에 배치를 끝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북한은 사드에 대해 별다른 반응이 없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때문에 사드 배치를 한다고 하지만, 대상이 되는 북한은 정작 거세게 반발하지 않는 이상한 형국입니다.
정세현 : 이게 바로 사드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때문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입니다. 대신 중국이랑 러시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죠. 북한은 이미 이를 간파한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북한으로서는 사드 배치가 악재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북한은 이번 사드 배치를 계기로 북중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겁니다.
지난 1일(현지 시각)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리길성 북한 외무성 부상과 만나 양국의 우호관계가 굳건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른바 '중조 우의' 관계를 재확인했습니다.
중국의 초청으로 방문했다고 하는데, 북중 관계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리 부상의 방문은 북한이 먼저 요청했다고 합니다. 북한이 먼저 중국에 가겠다고 했고 중국이 여기에 호응하면서 우호적인 모양새를 연출한 것이죠. 이렇게 중국과 북한 관계가 긴밀해지는데 역할을 했던 접착제는 다름 아닌 사드였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사드 배치로 잃을 것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득을 보고 있습니다. 중국이 자신의 편으로 설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겁니다.
만약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이나 김정남 피살과 관련해 경고나 불만을 표시하려 했다면 굳이 리 부상을 불러서 사진까지 찍으면서 친밀함을 과시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우리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으로 하여금 북한에 압력을 넣게 해달라는 이른바 '중국 역할론'을 기대했을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중국이 북한을 끌어안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문제에서도 북한은 기존보다 유리한 위치에 섰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관련해서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사드 배치로 인해 중국이 북한을 끌어안아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중국의 대북 제재도 상당히 완화할 수밖에 없는 국면이 펼쳐질 겁니다.
물론 외형적으로는 단둥에서 대북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도 합니다. 또 중국이 북한의 석탄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북한에 대한 제재의 고삐를 바짝 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그건 중국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입니다. 중국은 석탄 말고도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북한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를 통해 중국 역할론을 추동하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엄청나게 밑지는 장사를 한 셈이 됐습니다. 정부의 외교‧안보 팀들이 이런 상황을 냉철하게 정리해서 대통령에게 보고했어야 했는데 감히 이걸 하지는 못했을 겁니다.
프레시안 :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북한의 핵 미사일 발사 중단이라는 중재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정세현 : 북한이 지난 2015, 2016년에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사실 이건 북한의 제안이라고 봐야 합니다. 왕이 부장은 비핵화와 평화협정이라는 최종 목표를 이야기한 것이고, 북한은 핵 동결과 평화협정을 이루려면 한미 합동 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수 정부에서는 이건 절대 받을 수 없는 카드입니다. 현 상황에서 북한이 핵까지 만들어놓은 상황이기 때문에 훈련 중단은 어렵습니다. 다만 현 상황에서 훈련 축소 정도는 가능할 수 있습니다. 실제 지난 1992년에는 한국 정부가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려면서 북한이 가장 싫어하는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한 바 있습니다.
프레시안 : 한편으로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나타나고 있는 중국의 경제 보복도 대국답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세현 : 맞습니다. 중국이 이렇게 하면 자국에도 도움이 될 건 없습니다. 한국에서 반중국 정서가 일어나는 것이 중국에 유리할까요?
물론 한중 관계가 나빠져서 우리가 받게 될 경제적 불이익의 크기와 중국이 감수해야 할 불이익의 크기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긴 합니다. 당연히 우리가 받는 불이익이 훨씬 큽니다. 우리는 절박하고 중국은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괜찮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지난 2013년 6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때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구축하자고 했습니다. 그런 나라가 이런 행태를 보이는 것은 대국답지 못한 일입니다. 물론 사드라는 것이 중국에 미치는 불이익 혹은 피해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의 행태는 중국의 전통적인 외교와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중국은 이럴 때일수록 한국과 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합니다. 물론 중국 입장에서 볼 때 사드는 중국 인중에 비수를 들이대는 격입니다. 그리고 중국에 비수를 들이댄 손이 한국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팔목을 잡고 있는 것은 분명 미국입니다. 미국에 팔을 붙잡혀서 우리가 비수를 들이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따라서 물밑 접촉을 통해서라도 중국은 한국과 만나서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물론 시 주석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만났을 때 두 번이나 사드 반대 방침을 이야기했고, 황교안 총리에게도 사드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논의된 바 없다'고 했던 황 총리의 발언이 있은 직후 일주일 뒤에 남한은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합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따귀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반응이 격하게 나올 만한 요인이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런 식의 보복을 하는 것은 더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다고 해서 이렇게 한국을 흔드는 것이 과연 '중화 부흥'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외교 철학인지는 의문입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올해 한미 합동 군사훈련에는 첨단 무인공격기 그레이 이글이 실전 배치됐고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던 미국 해군의 특수부대도 참가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또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인 <38노스>는 북한이 지난 5차 핵실험보다 10배 강한 실험을 준비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이 커지고 있는데요. 이 와중에 이번주에는 미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이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합니다. 동북아 정세가 예측하기 힘든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일단 미국이 훈련의 강도를 높이는 것은 북한을 자극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김정은을 제거하려면 소리 소문없이 해야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일단 이런 방식으로 북한을 건드려보고, 북한이 여기에 저항하거나 반발하면 미국으로서는 사드 배치의 명분도 더욱 확고해지고, 남한이 국방비를 증액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습니다. 여러 가지 차원에서 미국에 남는 장사죠. 그런 계산이 있다고 봅니다.
한국의 요청일 수도 있습니다.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유도해서 거기서 이익을 챙기려는 계산이죠. 특히 이번 대선을 이른바 '사드 대선'으로 몰고 가려면 훈련 기간 동안 북한을 자극할 수밖에 없는 일을 벌려서 북한이 일을 벌리게 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드를 차기 정부로 넘기라는 말도 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틸러슨 장관의 방한은 미중 정상회담 준비 차 중국을 가기 위해 들르는 수준인 것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의 6차 핵실험은 실제로 핵실험을 준비하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 접촉 시간을 당기려고하는 것인지 좀 더 두고봐야 합니다.
중국이 이번에 리길성 부상을 불러서 경고든 조언이든 하지 않았겠습니까? 북한 너네들이 긴장을 고조시키면 죽도 밥도 안된다고, 너희들이 사고치면 사드 배치는 기정사실로 되고 그러면 중국이 곤란해진다고 이야기했을 겁니다. '핵실험을 하려는 제스처까지는 괜찮은데, 실제로 하면 곤란해' 정도의 메시지를 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중국이 리 부상과 왕이 부장의 만남을 그렇게까지 대서특필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즉 중국은 밖으로는 사드를 배치하면 북한 편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안으로는 북한을 자제시키는 외교술을 펼쳤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종북' 프레임에 묶여있는 야당, 출구는?
프레시안 : 그런데 야당에서도 사드는 막을 수 없는 사안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국가 간 약속이기 때문에 뒤집기는 쉽지 않지만, 사드를 포함해서 한일 '위안부' 합의, 개성공단 폐쇄 등 외교안보적인 차원에서 위험한 정책들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정세현 : 사드 배치를 서두르는 것이 안보라는 측면에서는 국민들한테 설득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불이익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야권이 소극적인 대응을 하는 이유는, 이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른바 '종북' 프레임에 걸려든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개성공단 폐쇄와 관련해서도 야권 후보들이 종북이나 '반미' 프레임에 걸려들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에 쓰인다고 규정을 해버린 상황이라 야권 주요 주자들의 발언이 더 신중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더구나 이번 탄핵 국면에서 친박 세력들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박근혜 정부에서 취해졌던 정책들에 반대하면 마치 태극기에 대해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부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운신의 폭이 더 좁아진 측면도 있습니다.
야당 주자들이 이미 합의한 사항을 무시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며 사드 배치를 인정하자고 발언하자 이번에는 진보 진영에서 비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결국 나온 방안이 "차기 정부로 넘기라" 일텐데요. 우리나라 정치에서는 북한 문제와 관련해 설사 문제 해결 방법론이라고 할지라도 북한을 공격하거나 압박하는 내용이 아니면 종북 프레임으로 몰아 버립니다. 이게 참 비극적인 상황인 겁니다.
프레시안 : 지금은 사드가 마치 안보의 대명사처럼 돼버렸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사드가 북한의 공격을 막을 수도 없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만 키우고 있습니다. 무기 체계 하나가 안보를 보장하는 것은 아닌데 사드가 모든 것을 막아줄 것처럼 일종의 '신격화'가 돼버린 듯 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공격을 막는 것만이 안보라고 생각하지만 진짜 안보는 이보다 넓은 범위로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야당에서 이렇게 넓은 의미의 안보라는 개념을 가져와서 안보가 곧 민생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뭔지 참 의아합니다.
정세현 : 야권에서 논리를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죠. 정치적 현실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는 겁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사드가 국방의 전부이고, 이것이 안보의 전부인 것처럼 등식이 성립돼있습니다. 하지만 사드는 국방의 일부일 뿐이고, 국방은 안보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국방부가 국가 안보를 주로 담당하지만, 전체 국가 안보에는 국방뿐만 아니라 외교, 통일이 모두 포함되는 겁니다.
일례로 노태우 대통령 집권기인 1990년 남한은 러시아와 수교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30억 달러를 차관으로 주는 조건으로 수교를 체결했습니다. 이를 두고 노태우 정부에서는 북한의 강력한 배후 국가인 소련과 지금 수교를 해두면 북한의 대남 공격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기 때문에 안보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중국과 수교를 한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직접적인 국방뿐만 아니라 국제관계를 잘 조율해서 북한의 대남 공격력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킬 수 있는 외교 환경을 만드는 것도 안보의 중요한 영역입니다. 안보는 국방부가 한다는 생각이 안보라는 개념을 너무 협소하게 정의내리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힘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갑자기 사드를 한반도에 들여오는 것이 박근혜 정부의 요청으로만 이뤄졌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오히려 4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삼기 위해 빨리 들어온 건 아닌가 싶습니다.
사드에서 미국이 조금 양보를 해주는 대신 경제 문제에서 중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것과 같은, 일종의 협상 전략 차원에서 사드를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되면 미중 정상회담에서 사드를 둘러싼 '거래'가 이뤄질 수도 있습니다.
프레시안 : 보수 세력은 사드에 찬성하냐 반대하냐라는 이분법적인 논리로만 상황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돌파할 의지를 가지고 있는 대선 주자는 없어 보입니다.
정세현 : 역대 대통령을 지켜본 경험을 통해 이야기해보자면 대통령 본인이 확실히 공부가 돼 있으면 논리를 가지고 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반격했을 때 다시 대응할 수 있는 논리나 이론이 있으면 자신의 뜻대로 밀고 나갈 수 있죠. 이건 참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영역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야에 남다른 식견이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종북이나 안보 프레임으로 몰고 가도 반격하기가 쉽지 않은 겁니다.
프레시안 : 남북관계는 1970년대 수준으로 후퇴했고, 남한 내 대북인식도 굉장히 나빠졌는데 여기에 대응할 수 있는 지도자급의 역량은 약한 상황인 것 같습니다.
정세현 : 북한이 남한에서 화해 협력 정책을 추진하려는 사람들의 입장을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습니다. 북한은 지난해 5차 핵실험을 하면서 기술적으로 핵 탄두를 소형화‧경량화‧다종화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미국 정보 기관에서도 북한의 주장이 나름 일리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구요. 그러다 보니 저런 북한이랑 무슨 대화를 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프레시안 : 남한의 대북인식이나 정치적 환경에 의해 사드 배치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을 내려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정권이 바뀐 다음에 다시 살펴봐야 하는 문제일까요? 정말 사드 배치가 기정사실이라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최소한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한국이 상황을 주도하거나 변화시킬 여지보다는 4월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가닥이 잡히지 않겠나 싶습니다. 남한에는 이를 변화시킬만한 동력도 없고, 선거철이기도 해서 야권에서 이 부분을 세게 치고 나갈 준비가 돼있지 않습니다.
만약에 선거가 없고, 야권에서 집권을 한 상태였다면 정부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미국, 중국과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구요.
지난 1960년대 미일 간 안보 논쟁이 일어났을 때 당시 일본 언론은 하나같이 일본 정부를 도와줬습니다. 미국이 너무 일본을 찍어누르면 안된다고 지적했죠. 일본 외무성은 일본 내에서 반미감정이 일어나면 미국 국익에 손해라고 말했구요. 미국도 일본의 입장을 수긍해서 결국 일본의 요구를 많이 들어줬습니다. 당시 일본의 언론은 보수‧진보를 떠나 하나같이 정부 입장을 옹호했습니다.
우리도 선거철이 아니라면 미국과 중국에 좀 더 강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안보는 민심이 중요한 것이니 미국과 중국 모두 자제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구요.
프레시안 : 사실 따져보면 지금이 차기 대통령의 정권 인수위원회 기간입니다. 일반적인 선거였다면 지금부터 준비를 해야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인수위 과정이 없는 상태죠. 그래서 누가 되더라도 제대로 준비를 못했을 거고, 집권 두 세달 안에 코너로 몰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정세현 : 인수위가 있다면 내각도 구성하고 경제 정책도 차분하게 단계별로 계획을 세울 수 있을텐데 그게 어려운 상황입니다. 결국 야권이 집권한다고 하면 야권 공동 정부 같은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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