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이 지난 90일에 걸친 수사 최종기록을 6일 발표한 가운데,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문화체육관광부 차원을 넘어 청와대 최고위층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범행"임을 확인하고 이를 '권력형 범죄'로 규정했다.
수사 결과, 특검은 청와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직권을 남용해 관련 공모사업 중 문화·예술 분야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들의 공모 355건을 지원 배제하도록 지시했음을 확인했다.
이날 특검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신동철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정관주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김상률 전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 김소영 전 대통령비서실 문화체육비서관 등 7명을 피의자로 적시하며 이같이 밝혔다.
특검은 이들 피고의 공소사실을 크게 6가지로 정리했다.
블랙리스트로 총 355건 공모 부당 배제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특검은 김기춘 비서실장, 조윤선 당시 정무수석, 김상률 교문수석, 김소영 문체비서관, 김종덕 문체부장관, 신동철 정무비서관, 정관주 국민소통비서관이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 정책을 반대하거나 야당 인사를 지지한 문화·예술계 개인·단체 지원을 배제하기로 순차 공모해 지난 2013년 9월부터 2016년 9월 사이 '민간단체보조금 TF'를 운영, 정무수석실 주도로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같이 정리된 블랙리스트는 교육문화수석실을 통해 문체부에 하달됐다.
블랙리스트가 특정 문화·예술인 배제에 활용된 경과는 다음과 같았다. 문체부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예술위),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출판진흥원) 등의 공모 사업 신청 결과를 취합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을 거쳐 정무수석실에 보냈다. 정무수석실은 이 자료 중 지원 배제 명단을 정리하는 한편, 지원 배제 리스트를 계속 축적했다.
지난 청문회에서 '모르쇠'로 일관하던 조윤선 전 장관이 당시 재직 중이던 정무수석실이 김기춘 비서실장과 함께 이번 사건의 핵심 몸통이었던 셈이다.
이를 통해 이들은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는 연간 약 2000억 원 규모의 문예기금 등 국가 문화 보조금을 정파적 지지자에게만 공급해, 문화예술인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소비자인 국민에게도 피해를 입혔다"고 특검은 적시했다.
이들 피고가 이같은 방법으로 "예술위, 영진위, 출판진흥원의 지원 심사 결정에 부당 개입"했다고 적시한 특검은 블랙리스트 사건 결과 구체적 피해 사례도 적시했다.
특검에 따르면 블랙리스트에 따라 예술위 책임 심의위원 후보 19명이 부당한 방법으로 위원 선정에서 배제됐다. '블랙리스트 심의위원'이 배제된 예술위는 예술가 공모사업 중 325건의 지원을 배제했다. 영진위는 예술영화전용관 지원 등과 관련해 8건의 지원을 배제했다. 출판진흥원은 22개 도서가 세종도서 선정에서 배제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김종덕 문체부장관은 2014년 9월경 부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은 문체부 공무원 최규학, 김용삼, 신용언 실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당시 이들은 해당 직위로 인사명령을 받은 지 불과 수개월밖에 지나지 않은데다, 시기상 국정감사와 예산심의 등 국회 일정을 목전에 둔 때였다. 매우 이례적인 인사 명령이 가동된 원인으로 특검은 블랙리스트 압박 지시에 저항했다는 점을 꼽았다.
특검 "블랙리스트 단순 이념적 정책 아니야"
특검에 따르면 블랙리스트에 오른 출판사 중 문학동네는 세월호 참사에 관한 글을 모은 <눈먼 자들의 국가>(김애란·김행숙·김연수·박민규·진은영·황정은·배명훈·황종연·김홍중·전규찬·김서영·홍철기 지음)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좌편향 출판사'로 낙인찍혔다. 이로 인해 2014년에는 25종의 출판물이 세종도서로 선정됐으나, 이듬해에는 그 수가 5종으로 줄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문학동네 등 문예지에 지원되던 10억 원 규모의 예술위 산하 '우수 문예지 발간 지원사업' 자체가 폐지됐다.
특검은 이 사건을 예로 들며 “세월호 참사와 같이 학생들이 포함된 선량한 국민의 희생을 추모하자는 의견을 밝힌 것만으로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념이 이유가 아님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고 야당 인사를 지지한 특정 문화·예술인도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과 관련해 "이러한 움직임은 이념적인 것이 아니라, 정파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사건을 "'정부, 청와대의 입장에 이견을 표명하는 세력은 '반민주' 세력으로 규정한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해, 정권에 관한 일체의 비판ㅇ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흔들려는 행위로 바라보는 시각에 기인"해 일어난 것으로 평하고 "헌법의 본질적 가치에 위배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이 "해당 위원회의 자율적 판단을 침해하는 명백한 위법 행위"라며 "이는 마치 대통령이 행정심판위원회의 결정이 편향되었다고 인식해 행정심판위원회 위원을 자기가 원하는 사람으로 갈아치우고 개별 결정의 결론을 정해 그대로 하라고 지시한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화이트리스트' 존재
특검은 수사 결과 '화이트리스트'의 존재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해당 리스트 수사는 시간의 한계로 인해 마무리되지 못해, 관련 내용을 검찰로 넘겼다고 밝혔다.
특검에 따르면 2014년 청와대 특정 수석실을 중심으로 한 이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특정 단체 활동비 지원을 요구했다. 이를 통해 삼성, LG, 현대차, SK 등 재벌로부터 지원받은 자금과 전경련 자체 자금을 합한 약 24억 원이 청와대가 지정한 22개 단체에 흘러들어갔다. 화이트리스트는 약 3년에 걸쳐 지속됐다. 2015년에는 31개 단체가 약 35억 원을 지원받았고, 2016년에는 22개 단체가 약 9억 원을 받았다. 총 지원 자금 규모는 약 68억 원이다.
특검은 화이트리스트의 존재 사실을 전경련 임직원 등에 대한 조사 결과 밝혀냈다고 밝혔다.
김기춘 등 위증 공소사실에 적시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에게 사직서를 강요한 사실 역시 특검은 공소사실에 포함했다. 특검에 따르면 김상률 교문수석과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2013년 3월~2016년 5월경 정유라가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서 준우승했다는 이유로 대한승마협회 감사를 지시했다.
하지만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이 이에 이의를 제기하자, 김상률, 김종덕은 노 전 국장을 좌천시킨 후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강요했다.
특검은 지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한편, 중요 의혹에 관해 ‘모르쇠’로 일관한 이들 피고의 위증 사실 역시 공소사실로 적시했다. 청문회에서 위증하더라도 이를 현실적으로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목소리가 있었으나, 특검은 이를 법으로 다스려야 함을 명확히 했다.
공소 이유로 블랙리스트 관련 위증 사실이 확인된 이는 김기춘, 조윤선, 김종덕, 정관주다.
특검은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 문체부 산하기관의 독립성 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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