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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법치'와 '정략적 중도'의 결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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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법치'와 '정략적 중도'의 결말은?

[법치의 표리(表裏)]<16> 진짜 '중도 시민'을 떠나게 할 뿐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민심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이, 검찰과 국세청이라는 양대 권력기관의 책임자에 대한 인사권의 행사로 표출됐다. 내용인즉슨 '공안통'에게 검찰총장의 중책을 맡기고, '측근'을 국세청장에 앉히는 것이다.

이로써 소위 '근원적 처방'의 실체도 그 일각을 드러낸 셈이다. 편향적인 이념의 늪에 빠진 시국선언 지식인들이나 이들에 현혹된 무지한 국민들은 구제불능이므로 그들의 지지일랑 시궁창에 버리는 것이 속 편하다. 오히려 여전히 변치않을 묻지마 지지층에게 안정감을 주면서 최소한의 국정운영에 필요한 작전세력으로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충청권의 지역감정을 활용하면 된다.

거기다 '중도서민'노선으로 떡고물을 좀 흘리면 30%에서 요지부동인 지지율은 대선수준으로 상향될 것이라는 생각이 또아리를 틀고 있는 듯하다.

상투적 '조중동 프레임'이 노리는 효과들
▲ MB표 중도가 강조되는 동시에 서울 한 복판 경찰의 주둔지도 늘어나고 있다ⓒ프레시안

MB정부와 권력을 분점하고 있는 보수언론은 예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수법으로 '파격'과 '쇄신'의 겉옷입히기에 나서 양대 권력기관에 드리워진 '공안'과 '측근'의 본질을 물타기하기에 바쁘다. 지엽적인 경제지표를 들먹이고 중도노선의 실체에 대한 구름잡기식 받아적기에 전념한다.

이런 상투적인 '조중동 프레임'이 노리는 바는 분명하다. 우선 묻지마 지지층과 열독층에게는 후속 인사태풍이나 뒤이은 개각의 방향에 대한 추측기사로 일상의 무료함을 달랠 가십거리를 안기는 것이다. 누가 후배 기관장의 활동력과 조직의 안정을 위해 용퇴할 것이고 누구 누구가 어떻게 요직으로 이동할 것인지의 소소한 이야기거리가 지겨운 대국민 사과나 담화타령, 인적 쇄신의 메아리, 소통을 향한 광장의 외마디들을 가려줄 수 있다. 자리가 중요하지 민생이니 복지니 다 무슨 소용이랴!

파격인사의 포장술이 의도하는 또 다른 노림수는 전체적인 작전지도와 결합해야 해독이 가능하다. 인사에 뒤이은 PD수첩 제작진에 대한 기소, PD수첩 작가의 사생활에 대한 이메일 공개, 언소주 광고불매운동에 대한 검찰의 의법처리검토, 청와대 대변인의 MBC경영진교체 공개 지침 하달, 친위대 48인 의원들의 MBC 사장 사퇴 성명, 한나라당의 단독국회소집 시도.

이로써 조중동과 재벌이 원하는 방송과 신문의 겸영, 산업자본의 방송시장 참여의 길을 위한 마지막 입법전쟁의 서막은 올랐다. 국회에 다시 돗자리를 깐 야당의 무도함을 부각시켜 미디어법만 통과시키면 조중동이 그렇게 추구하던 방송진출과 '좌파언론'의 주요거점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과거와 달리 소시민에 불과한 교수들이야말로 '중도 시민'

그러나 이러한 거대 정치공학이 눈앞의 작은 이익에 현혹되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2008년 촛불로, 2009년 추모열기와 시국선언으로 표출된 진정한 중도 시민의 민심이다.

MB정부의 실수는 촛불과 추모열기를 불순한 배후세력의 조작된 민심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87년의 6월 항쟁이 그러했듯이 소위 한 줌도 안되는 배후세력이 민주화의 중심일 수는 없다. 소시민의 일상에 묶여있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에 촛불과 국화송이를 들고 거리로 나서는 중도 시민이 실체다.

중도 시민의 실체를 가늠하려면 시국선언에 참여한 대학교수들의 면면을 보면 된다. 과거 4.19, 6.3, 5.18, 6.10 시기의 대학교수와 2009년 6월의 대학교수는 그 사회적 위상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번 시국선언은 한국사회의 변화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수 있다.

2009년의 대학교수는 과거처럼 지식인의 훈장을 달고 여론주도의 우월적 권위를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전형적인 중도 시민의 민심을 보여주는 가늠자라 보는 것이 적절하다. 대학교수직은 소시민의 전형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으며 과거의 저항형 지식인은 줄어들고 있다. 이번의 대학교수 시국선언이 중도 시민의 인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수 있는 이유다.

유치한 숫자놀음으로 자위하기보다 선언교수들의 면면과 성향을 들여다 보라. 거기에서 침묵하는 중도 시민의 여론을 읽지 못할 때 MB정부의 중도노선은 헛다리를 짚은 것에 불과하다.

깨져버린 공안과 인권의 상호보완 관계

"공안이 잘 보장돼야 인권도 잘 보장되는 만큼 똑같이 소중히 다뤄야 한다"거나 "공안부 검사만 공안이 아니고 검찰에 몸담은 사람이 다 공공의 안녕에 대해 기본적인 사명감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일성이 MB중도노선의 실체라면 공안통치를 씨실로 하고 정치공학적 중도노선을 날실로 하는 국민분할통치전략(divide and rule)직조를 공공연히 천명하는 셈이다.

인권은 인권에 의해 한계지워지며 질서없는 인권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서 질서있는 인권의 최대한의 보장을 위해 헌법을 만들고 국가권력에게 제재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헌주의의 기본원칙은 질서와 인권을 중립적으로 이해할 때 성립하는 것이다.

공안이 특정 세력에 편향적인 질서를 추구하거나 특정 세력에 유리한 인권에 자의적으로 우호적일 때 공안과 인권의 상보관계는 역전된다. 법은 특정 계층과 세력의 억압적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무죄추정, 자기부죄금지, 자백강요금지라는 명문화된 헌법정신을 무시하는 범죄행위인 피의사실공표를 밥먹듯이 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하여 수사기록을 공개하라는 법원의 명령을 거부하기를 서슴지 않으며, 피의사실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개인의 사적 이메일을 언론에 공개하고, 소비자의 불매운동을 범죄시하며, 요건이 구비되면 보장하는 것이 원칙인 집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집회참가자에 대하여 기소권을 남용하여 얻어지는 공안이 인권과 민주주의와 함께 할 수는 없다.

원칙이어야 할 국민의 자유를 오히려 예외로 하는 법현실과 자의적인 법집행이 버무려질 때 공안과 인권은 같이 가지 않고 어긋나게 되는 것이다.

정략적 'MB표 중도노선', 진짜 중도를 떨궈낼 것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해 어긋난 공안통의 시각은 추모열기와 시국선언에 숨어있는 중도 시민의 여론과는 거리가 멀다. 소시민들의 결기는 분명하다.

좌든 우든 어렵사리 쟁취한 인권과 민주주의의 기초를 허무는 70~80년대식 공안통치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 경찰, 국세청, 국정원의 권력기관을 정권의 수족으로 되돌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정권력은 정치로부터 독립되어야 하고 서로와 서로를 견제하는 분권적 긴장관계를 가지라는 것이다. 사정권력 자체의 사정을 위한 제도화를 이루라는 것이다. 권력화한 제도언론의 한계를 인식하고 힘없는 소시민이 촛불에 기대어 평화롭게 광장에서 소통할 수 있는 자유를 원래 수준으로 보장하라는 것이다. 정치화한 제도언론의 획일화를 더욱 강화하고 산업자본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미디어법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이비 법치와 버무러진 정략적 중도노선은, 역설적이게도 진정한 중도시민의 반MB여론을 더욱 증폭시킬 것이다.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한 중도 시민이 원하는 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코 하루 하루 변하는 민심이 아니다.

이들이 참여정부를 출범시킨 주력 세력이며 이들이 또한 MB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세력의 일부를 구성하였다. 이들이 비판적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는 속마음을 드러내었음에도 MB정부가 여전히 시대착오적 공안통치에 의존하려할 때 중도시민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 것이다.

이들의 민심은 제도권언론의 조작된 민심과는 달리 한국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조직화해 낼 것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제도권과 갈등 속에 추구되는 변화가 가져올 사회적 비용 때문이다. 치르지 않아도 될 비용을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여전히 제도권력의 정점에 있는 MB정부와 여당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오히려 지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긴 호흡으로 민심의 흐름을 직관하라. 4대 권력기관의 친위화가 사이비 법치와 정략적 중도가 아닌 진정한 법치민주화를 위한 고육책임을 증명해 주길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원하는 순진한 중도 시민의 충정을 외면하지 말라. 자유와 민주의 이름으로, 헌법의 이름으로 간절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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