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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언소주' 불매운동에 합법적 길 찾아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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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검찰, '언소주' 불매운동에 합법적 길 찾아줘야

[법치의 표리(表裏)] 법은 '금지'만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

이런 상상을 한번 해본다. 일단의 네티즌들이 몇몇 언론기관의 논조와 기사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곳에 광고를 내는 회사의 제품에 대해서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한다. 어찌 보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그들로부터 지목된 언론사들은 화들짝 놀라며 '망나니짓'이니 '자살특공대식 불매운동'이니 '세금도 쥐꼬리만큼 내는 사람들'이니 하는 비난을 쏟아낸다.

당장 불매운동의 합법성 여부에 대해서 뜨거운 논란이 벌어지고 외국의 사례들이 소개된다. 과연 특정한 신문이나 방송에 광고를 의뢰하는 기업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여도 되는 것인지, 어떤 방식은 가능하고 어떤 방식은 허용되지 않는 것인지 의견이 분분해서 답을 찾기가 어렵다.

이때 법무부가 나서서 친절한 설명을 해준다.

"언론기관의 보도에 대해서 찬반론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히 가능하고 그 방법으로 불매운동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행위는 기업의 업무를 방해하는 것이기에 불법행위로서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한 행위를 하면 형사상 처벌을 받거나 민사상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합법적인 불매운동을 하려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해야 합니다"

법, '하고 싶은 일'을 뒷받침하는 도구가 되어야

물론 법무부의 발표에 대해서도 찬반양론이 있겠지만, 이제 불매운동을 하려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위법에 대한 걱정 없이 안심하고 자신들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지 알게 된다. 광고를 하는 기업이나 언론의 입장에서도 그러한 가이드라인을 벗어나는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처벌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불매운동 자체의 합법성 여부라는 기초적인 차원에서 머물던 논쟁은 한 단계 성숙해서 실질적인 문제, 즉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사안을 보는 시각과 언론의 역할로 옮겨간다. 법무부에 이런 역할을 기대하는 것은 상상으로만 해볼 수 있는 것일까.

최근 다시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광고주불매운동 논쟁을 보고 있으면 법의 역할에 대하여, 또 수사와 사법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기관의 할 일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게 된다.

법이란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도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애초부터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범죄적 행위나 반사회적 행위가 아니라면 법은 어떻게 하면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길을 제시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법무부나 검찰은 바로 그런 일을 하라고 존재하는 기관이 아닐까.

"세금도 작게 내는데 왠 불매운동"이냐는 시각도, 있을 수는 있다

▲ 캡쳐는 8일 조선일보사 앞에서는 <조선일보> 광고 기업 광동제약에 대한 불매운동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언론노조

광고주불매운동을 보는 시각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 일정한 압력을 행사해서라도 해당 언론사의 논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 관계자 등 현재 광고주불매운동에 직접 뛰어든 사람들과 이에 동조하는 의견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일부에서는 단순히 논조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왜곡보도의 문제도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반론이 있을 수 있으니 일단 논외로 하자).

이와 마찬가지로 언론기관이 각양각색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냥 내버려두고 보도를 보는 사람들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또한 언론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는 허용되어서는 안 되며,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닌 '세금도 쥐꼬리만큼 내는 사람들'이 광고주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은 절대적으로 금지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세금 운운 부분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데, 누구나 광고주불매운동을 하면 안 된다는 주장은 그렇다고 쳐도 재산이나 소득의 다과에 따라 허용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고 해석될 수 있는 주장은 '정론지'를 표방하고 있는 신문에서 보기에는 좀 민망하다)

문제는 광고주불매운동이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행동은 아니라는 것이다. 광고주불매운동을 벌인 사람들에게 유죄판결을 선고한 1심 법원마저도 판결문에서 "언론매체의 소비자인 독자는 언론사의 편집정책을 변경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갖고 … 그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게재하지 말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의 의사를 전달하고 홍보하며 인터넷 사이트에 광고주 리스트를 게재하거나 게재된 광고주 리스트를 보고 소비자로서의 불매의사를 고지하는 등 각종 방법에 의한 호소로 설득활동을 벌이는 것은 … 합법이다."라고 일정한 방식의 불매운동은 허용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 합법의 공간을 찾아 자신의 의견을 밝히려는 시도는 당연히 적법한 것이고, 법은 어떤 식으로든지 그런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다수가 찬성하는 의견이건 소수의 목소리에 불과한 주장이건 합법적인 방법으로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보장되어야 할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길을 제시하는 역할을 법무부에서 한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많은 사람들이 법무부에 신뢰를 보내게 될 것이다.

'조사'와 '예의주시'보다 앞섰어야 할 일들

최근 광고주불매운동이 다시 시작되면서 검찰에서는 언소주가 강요죄, 협박죄 등 위법행위를 한 것인지 여부를 조사하고 업무방해와 같은 구체적 피해사례가 있는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보도되었다. 물론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수사를 하고 재발을 방지해야 하겠지만, '조사'와 '예의주시'에 앞서 먼저 합법적인 방식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발상의 전환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검찰의 활동의 목적이 결국 불법행위를 근절하고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보호하려는 데 있다면 자칫 반발심을 불러올 수 있는 엄포보다는 적법한 행위를 뒷받침하겠다는 방식의 접근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와 검찰은 국민들에게 보다 가깝게 다가가고 신뢰를 높이기 위하여 수년간 '대친절운동'을 펼친 일이 있다. 누구나 겁을 먹기 쉬운 권력기관에서 친절운동을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국민들의 마음에 와 닿기 위해서는 단순히 인사를 잘하거나 존댓말을 쓰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이 안심하고 자신의 권리를 적법하게 행사할 수 있도록 법무부와 검찰이 도움을 준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법무부와 검찰은 국민들에게 사법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신뢰를 받게 될 것이다.

수사의 정당성, 당위성을 스스로 얘기하다가 호되게 비판을 받는 검찰의 모습을 보면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서 발상을 전환할 수는 없을까, 사람들로 하여금 법무부, 검찰이 '우리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게 행동으로 보여줄 수는 없을까 아쉬워하는 것은 비단 검찰 출신인 나만이 느끼는 안타까움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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