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자신의 업적 중 하나로 주저없이 꼽는 것이 유엔 조직 개혁이다. 과연 반 전 총장은 개혁가인가? 초기부터, 심지어 취임 전부터 본인은 자신있어 했고, 주변의 반응은 갈렸다. 예를 들어 반 전 총장이 사무총장이 되기 전에 쓰여진 미국 외교관들의 평가를 보자.
반기문 장관의 핵심 보좌관은 주한 미대사관과의 대화에서 반기문이 한국 외교통상부를 개혁하는 데서 거둔 성과를 강조했다. 반기문은 한국 대사들의 임기 제한을 강화해, 공관장 부임을 3~4회에서 2회로 줄이고, 외무공무원들에게 60세 정년을 도입했다. 또 해외 근무에서 돌아온 외교관들이 새로운 일을 맡기까지 허용된 1년의 기간을 4개월로 줄였다. 반기문의 보좌관은, 이런 것들은 외교통상부의 고참 직원들에게 인기가 없는 강력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중략)
그러나 반 장관의 스태프들은 그가 ‘개혁’에 뛰어나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가 외교부의 예산을 심각하게 삭감해야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한국 경제의 놀랄 만한 성장을 감안하면, 한국 외교부는 인원이나 비용을 감축할 필요가 없었다. 간단히 말해서, 반기문은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의 조직에서 큰 부분을 제거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6.7.18 미대사관 전문
(☞관련 자료 : FOREIGN MINISTER BAN'S UNSYG CAMPAIGN WEATHERING DPRK STORM)
하지만 미국의 회의적 관측에도 불구하고, '반기문식' 유엔 개혁의 성과가 없지는 않았다. 반 전 총장은 중간 관리자급 이상 고위직에 여성 채용과 승진을 대거 늘렸고, 유엔 사무처 직원들의 근무처를 정기적으로 옮기도록 하는 순환근무제를 도입했다. 출퇴근 시간 조정 등을 통해 근무 시간도 늘렸다.
특히 반 전 총장이 가장 강조하는 성과는 순환근무제였다. 한 지역에서 채용된 직원은 사실상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곳에서 정년을 맞는 이전의 유엔 인사 시스템을 개혁해, 한국 공무원들이 하듯이 지역별로 인사 이동을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비교적 선호받는 근무지인 미국 뉴욕과 스위스 제네바,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최장 7년까지만 근무할 수 있고, 이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또 내전이나 무력 충돌이 발생하는 위험 지역은 최장 3년까지, 기타 지역은 4년까지만 근무하도록 했다.
이 제도는 도입 초기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남정호 <중앙일보> 기자는 그의 책 <반기문, 나는 일하는 사무총장입니다>에서 "제도의 필요성과 목적에 대한 오해와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면서 "특히 뉴욕 본부에는 다른 곳으로 옮기기를 거부하는 직원이 적지 않았다. 이들은 유엔 노조를 움직여 반대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고 썼다.
그러나 순환근무제에 대한 유엔 내부의 저항을 무조건 기득권 지키기 차원의 '오해와 반발'로 보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다. 순환근무제 실시가 공식화된 것은 2014년 3월이었는데, 이에 앞서 2013년 가을부터 유엔 노조와 유엔 간의 교섭에서 마찰이 빚어지는 일이 있었다.
노사 간의 입장차는 이런 것이었다. 노조 격인 SCC(Staff Coordinating Council) 등은 순환근무제 도입을 노사 교섭의 대상으로 봤다. 반면 반 전 총장이 이끄는 유엔 사무국은, 순환근무제는 노사 협상의 대상이 아니며, 노사 간 교섭은 임금, 복지 등의 주제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SCC는 그러자 반 전 총장이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인정하지 않고 박탈하려 한다면서 노조 파괴(union-busting)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분히 감정적인 비난인 면은 있지만, 유엔 직원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를 단순히 '노조를 움직여' 벌인 '반대 캠페인'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직원들 입장에서 이동근무제를 더 받아들이기 힘들게 한 것은, 세계에서 분쟁은 늘어나는데 유엔의 예산은 삭감됐고, 결과적으로 유엔 직원의 안전 관리를 이른바 '민간 군사 기업', 사실상의 용병들에게 점점 더 많이 맡기고 있던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잉아브리트 알레니우스 전 유엔 감사실(OIOS) 실장도 순환근무제 도입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피력했다. 알레니우스는 2010년 여름, 반 전 총장을 비난하는 50페이지짜리 메모를 반 전 총장 앞으로 남기고 사임했다. 알레니우스는 "유엔은 투명성을 잃었고, 책임도 결여돼 있다"며 "당신(반 전 총장)의 행동은 개탄스럽고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워싱턴포스트>가 폭로한 알레니우스의 메모 가운데 일부다.
유감스럽게도 사무국은 부패하는 과정에 있다. 사무국은 단지 붕괴하는 게 아니라 표류하고 있다. 무관심으로. 전략적 방향 제시와 리더십의 결여는, 단지 조직의 변화와 개혁에서의 실패가 아니라 조직 자체를 일종의 임시 조직으로 만들었다. 파편적이고 부적절한 "개혁"에 대한 생각은 적절한 분석이나 전체적 조망, 이해 없이 밀어붙여졌다. 제안된 이동성 개혁(mobility reform. 순환근무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임 : 옮긴이)은 전략적 노동력 (조정) 계획, 지속적 계약, 책임 체계, 기업 자원 계획, 내부 통제 체계 등 사무국이 추진하는 여러 다양한 계획 가운데 단지 하나일 뿐이다. 이런 계획들을 모두 통합해서 모든 책임을 지고 업무 수행을 해낼 수 있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명백한 요구가 있음에도, 여기에는 어떤 시도도 행해지고 있지 않다. -2010.7.14. 알레니우스의 메모
또 2016년 3월에는 앤서니 밴버리 전 사무차장보가 유엔을 떠나면서 <뉴욕타임스>에 '나는 유엔을 사랑하지만, 유엔은 지금 실패하고 있다'는 글을 기고했다.
거대한 관리 미숙 때문에 유엔은 실패하고 있다. (중략) 내가 관료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지만, 나조차도 사무차장보로 발령받았을 때 조지 오웰 식의 질책과, 루이스 캐롤 식의 논리가 뉴욕 유엔본부 사무실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에는 놀랐다. 설사 사악한 천재들을 실험실에 가둬 놓고 개발하게 시킨다 한들, 그렇게 미친 듯이 복잡하고, 엄청난 노력을 요구하면서도 의도하는 결과는 만들 수는 없는 관료제를 설계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 시스템은 세금과 인간의 열정을 잡아먹는 블랙홀이다.
첫 번째 주요 문제는 경화성 인사 시스템이다. 유엔은 세계의 가장 뛰어난 인재를 채용해 바로 투입할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 유엔이 누군가를 채용하려면 평균 213일이 걸린다. 더욱 우려스럽게도, 유엔은 2016년 1월에는 이 기간을 1년 이상으로 늘릴 것만 같은 새 채용 시스템을 채택했다. (중략) 이 조직은 스마트폰 세계에서 구식 레밍턴 타자기와도 같다. 만약 유엔이 평화, 인권, 개발, 기후 문제에서 진전을 가져오고 싶다면, 진정한 개혁을 할 리더가 필요하다.
2016년 12월 <포린폴리시>는 "10년 전 반 전 총장이 조직 개혁에 착수했으나, 유엔은 현재 여러 모로 (개혁) 시작 전보다 더 악화된 모양새가 됐다"며 "케케묵은 인사 시스템이 유엔 평화유지군과 직원들의 노력을 헛되게 했고, 감시 네트워크의 붕괴로 부패를 근절시키지 못했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성 추문까지 불거졌고, 내부고발자도 보호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반기문은 유엔을 더 효율적인 조직으로 바꾸고 부패를 근절하기 위한 개혁을 추구하는 데 실패했다"며 "부패 근절 임무를 맡은 유엔 내부 조직(OIOS를 지칭)은 반기문의 리더십 아래에서 와해됐다. 반 총장이 선발한 감사관은 사임했다"고 지적했다.
또 이 매체는 "반 총장은 유엔 직원들의 존경과 신뢰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직원 대다수는 그가 역량 이상의 일을 벌였다고 생각했다"고 꼬집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부패 방지, 내부고발자 보호, 업무 효율 등을 위해 반 전 총장도 나름 노력을 기울이기는 했겠으나, 임기를 마치는 시점에서 보면 온전한 성과라고 남은 것은 이동근무제 하나뿐인 셈이다.
게다가 그 이동근무제마저도 논란의 여지가 제기되고 있다. 조직 내부의 개혁 문제에서는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중요하다는 면에서다. 반 전 총장이 추진한 이동근무제 '개혁'이 설사 옳은 방향이었다 해도, 노조를 포함한 직원 다수의 반발이 일었던 것, 유엔 내부 개혁에 대한 평가 가운데 부정적인 평가가 다수라는 것은 반 전 총장이 뛰어난 개혁가로서의 자질을 갖춘 사람인지에 대해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특히나 이런 민감한 문제에 대해 노조가 문제를 제기했을 때 '이건 노조와의 협상 사안이 아니다'라는 식의 대응을 한 것은 서투른 대응이었다. 그가 '조용한 외교'에 들이는 조심성과 노력의 일부라도 발휘했다면 과연 이런 식의 대응이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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