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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반기문은 "대선 출마 안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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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13년, 반기문은 "대선 출마 안한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반기문 팩트체크] '퇴임 직후' 조기 대선, 유엔 결의안 논란 재점화될듯

12일 오후 귀국 예정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여론의 관심이 쏠리면서, 반 전 총장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한 궁금증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 나이로 74세에 '정치 신인'으로 혜성(?)처럼 등장한 반 전 총장에 대해 알려진 공식 기록들은 꽤 많다. 그러나 10년 간 한국을 떠나 '리버럴'한 생활을 해왔던 그가 과연 '한국 특유의 정치' 문화에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한다. 반기문 전 총장 귀국을 맞아, 그의 지난 10년간 행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려 한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 합한 지난 70년간의 행적도 차근차근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

[반기문 팩트체크] 이전 기사 74살 '정치 루키' 반기문을 해부한다

12일 귀국한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곧 정치 참여를 선언하고 대선 출마까지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반 전 총장이 마주해야 할 장애물은 적지 않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제1차 유엔총회 결의안 문제다. 1946년 1월 24일 제1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결의안 '유엔 사무총장 지명에 관한 약정서(Terms of appointment of the Secretary-General, 결의안 번호 A/RES/11(I))'에 따르면, 사무총장은 여러 나라들의 비밀을 취득할 수 있는 직위이기 때문에 최소한 퇴임 직후에는 회원국의 어떤 정부 직위도 맡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돼 있다.

4-(b)항. 사무총장은 여러 정부로부터 비밀스런 상담역을 하기 때문에, 모든 회원국은 그에게, 적어도 퇴임 직후에는, 그의 비밀 정보가 다른 회원국을 당황시킬 수 있는 어떠한 정부 직위도 제안해서는 안 되며, 사무총장 자신으로서도 이런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을 삼가야 함이 바람직하다.
(Because a Secretary-General is a confident of many governments, it is desirable that no Member should offer him, at any rate immediately on retirement, any governmental position in which his confidential information might be a source of embarrassment to other Members, and on his part a Secretary-General should refrain from accepting any such position.)

이 조항은 외신에 의해 몇 번 언급된 바 있고, 한국에서는 지난해 5월 <프레시안>이 처음으로 보도했다. (☞관련 기사 : 반기문, 대선 출마하면 UN총회 결의안 위반)

물론 과거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사람들이 특정 국가 대통령이나 총리 등의 직위를 지낸 전례가 없지는 않지만, 이들은 퇴임 후 4년 이상 시간이 흐른 뒤 해당 공직을 맡아 '퇴임 직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크다. 제4대 유엔 사무총장인 오스트리아 출신 쿠르트 발트하임은 1981년 퇴임 후 1986년 대선에 출마했다. 페루 출신인 5대 총장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는 1991년 퇴임 이후 2000년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 하야 후의 혼란상을 수습할 과도 정부의 총리직을 맡았다.

반면 반 전 총장은 사무총장 퇴임 후 '회원국' 공직 취임까지의 시간이 상대적으로 너무 짧다. 지난해 5월 <프레시안> 보도 직후에는 외교부 관계자 등이 익명으로 "반기문 총장이 2017년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돼 취임하더라도, 사무총장 임기 종료 후 1년이 흐른 시점이기 때문에 결의안에 명시된 '퇴임 직후'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기 대선은 이제 2017년 12월이 아니라, 오는 4~5월께가 되리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일각에서는 '유엔 총회 결의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과는 달리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력은 없다'며 별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이는 '위반이냐, 위반이 아니냐'와는 전혀 무관한 문제다. 반 전 총장의 출마 때문에 한국이 유엔으로부터 제재를 받는 일은 당연히 일어나지 않겠지만, '유엔 결의안을 위반한 전직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도덕적·정치적 부담은 고스란히 반 전 총장 본인의 몫이다.

또 일각에서는 결의안에 '회원국이 제공(offer)하는 직위'라고 돼 있는 점을 들어, 지명직이 아닌 선출직 공무원에게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애초에 제한 규정을 둔 취지 자체가 "다른 회원국을 당황시킬 수 있는 민감한 정보" 때문인 점을 생각하면, 외교·통상·정보 관련 업무를 하는 직위나 이들을 지휘하는 직위는 당연히 제한 대상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일부 언론 등에서는 결의안 조항 자체가 회원국 시민의 권리에 대한 침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는 반 전 총장이 유엔과 그 회원국의 관계에 대해 가졌던 입장과는 모순된다. 반 전 총장은 그간 국제사회의 합의에 대해 '주권 침해'라고 비난하며 저항하는 이들을 비판해 왔다.

이 결의안 조항에 대해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지난해 5월 31일 '1946년 결의에는 유엔 사무총장이 퇴임 직후 정부직을 맡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있는데 지금도 적용되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물론이다. 반 총장은 그 결의에 대해 알고 있다"고 답했다.

정치 참여 언급


반 전 총장이 정치에 대해 과거에 했던 언급과 최근의 발언이 엇갈리는 것도 해명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12월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1월이 되면 나와 가족, 내 국가에 대해 봉사할 방법을 생각하겠다"며 "한국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한국의 상황을 큰 우려를 갖고 긴밀히 주시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이 좌절해 있고, 때로 매우 화가 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귀국 전 여러 경로를 통해 전해진 그의 발언과 함께, 이 인터뷰는 반 전 총장이 정치 참여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사실 그 이전에는 '정치 안 한다'는 취지로 해석될 만한 말을 더 많이 했다. 이를테면 2013년에 출간된 미국 언론인 톰 플레이트의 <반기문과의 대화>라는 책에는 이런 대화가 담겼다.

(플레이트가 물었다.) "누군가 반기문이 한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아니다, 반기문은 이제 쉴 거다'라고요."
그가 즐거운 듯 호탕하게 웃는다
"맞습니다. 저를 아시네요! 교수님 말이 맞습니다!"
"아마도 회고록을 쓰고, 아내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멋진 강연을 하러 다닐 거라고 얘기했죠."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한 몸짓과 함께 그가 말을 잇는다.
"저는 저의 자질을 잘 압니다. 저는 타고난 외교관입니다. 정치요? 국내 정치에 전념할 분들은 저 말고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플레이트 <반기문과의 대화>

반 전 총장은 또 지난 2015년 4월 17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는 "국내 정치에 관심이 없고 그럴 여력도 없다"고 했고, 같은날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한 만찬 연설에서는 "은퇴 후 아내와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먹거나, 손자손녀들을 돌보며 살고 싶다"고 했다. 이랬던 그가 갑자기 왜 "몸을 불태우겠다"고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설명도 나온 바가 없다.

'검증'

이처럼 1946년 결의안 문제, 정치적 비전 문제 등 상대적으로 고상해 보이는 장애물들도 있는 반면, 꽤 많은 진흙이 묻어 있는 장애물들도 물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언론과 정적들에 의해 제기됐거나, 제기될 소지가 있는 것들이다.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금품을 받았다는 주장 : 지난달 <시사저널>이 보도했고, 반 전 총장 측은 해당 보도를 언론중재위에 제소했다.

△성완종 게이트 : 고 성완종 전 의원(전 경남기업 회장)은 자신이 반 전 총장을 대선주자로 만들기 위해 포럼을 만드는 등 노력했다고 생전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주장했다. 반 전 총장은 이에 대해 당시 "충청포럼 등 공식 석상에서 성완종을 본 적 있고 알고 있지만, 특별한 관계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가족 : 가족들의 행적도 정치권의 단골 '검증' 대상이다. 그의 친가와 외가는 모두 충북 지역에 오랫동안 살아온 집안이다. 조부는 한의원을 운영했고, 숙부는 군수도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외가도 지주 집안으로 전해진다. 처가에 대해서도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반기문의 세 자녀도 대강의 직업 등은 알려져 있지만, 재산 형성 과정 등은 밝혀진 바 없다.

△친척 : 반 전 총장의 큰남동생 반기상 씨와 조카인 반주호 씨가 경남기업 관련 부동산 매각 사기 의혹 등으로 인해 미국 법정에 고소된 것으로 최근 알려졌다. 반 전 총장은 이에 대해 대변인을 통해 "현지에서 수사 중이니 적절한 결과가 나오면 그에 따라 후속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재산 : 반 전 총장은 2006년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 관보를 통해 재산을 공개했고, 2007년 유엔 사무총장 취임 후에도 유엔 홈페이지에 재산 내역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서울 양재동 토지 매입 목적은 무엇인지, 부동산 구입 자금은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등은 알려진 바 없다. 반 전 총장이 장관이 된 것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제도가 시행되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팬클럽 : 최근 정치권의 다른 사례에서도 보듯, 반 전 총장은 '측근'이나 지지자를 자처하는 이들의 언행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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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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