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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사실상 '부산 소녀상 옮기라'…日 손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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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사실상 '부산 소녀상 옮기라'…日 손 들어줬다

황교안 체제 굴욕적 '외교 참사'…'이면 합의' 있었나?

일본이 연일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평화비(소녀상)를 문제 삼으며 한국에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정부가 부산 동구청과 시민단체 등에 부산 소녀상의 이전을 사실상 종용했다.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의 요구대로 끌려다니는 외교 참사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10일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부산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과 관련 "정부와 해당 지자체, 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들이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 및 관행을 고려하면서 위안부 문제를 역사의 교훈으로 기억하기에 적절한 장소에 대해 지혜를 모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부산 소녀상을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뜻으로, 지난해 12월 30일 부산 일본 총영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진 이후 외교부가 내놓은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의 압박과 국민적 반발 사이에서 외교부가 일본 정부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 이후 줄곧 소녀상과 관련해 "민간에서 설치한 것으로,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선을 그어왔다. 그간 민간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일어난 일에 대해선 간섭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에서도 크게 후퇴한 셈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부산 소녀상 설치를 계기로 '외교공관의 보호와 관련된 국제예양 및 관행'이라는 논리를 들고나온 것은 기존 입장과 달라진 것 아니냐는 질문에 조 대변인은 "정부 입장이 변한 것이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현 정부도 일본 정부와 마찬가지로 부산 총영사관 앞에 설치된 소녀상이 일본 공관의 안녕을 해친다고 보는 것이냐는 질문에 조 대변인은 "이미 밝힌 그대로다"라고 말해 사실상 일본 정부와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음을 시사했다.

일본 정부가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을 근거로 들며 소녀상이 부산 총영사관의 위엄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관련, 부산에서 소녀상이 세워진 위치가 빈 협약에서 적시하고 있는 영사구역에 해당되느냐는 질문에 조 대변인은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또 정부가 부산 소녀상의 이전이나 철거 등을 위해 '해당 지자체, 시민단체 등 관련 당사자'들이 지혜를 모아달라고 입장을 밝힌 것과 관련, 해당 지자체인 부산 동구청과 소녀상 문제에 대한 소통이 이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조 대변인은 "그 사항에 대해서는 언급할 것이 없다"고 답변을 피했다.

한국 정부가 지난 2015년 합의 이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로우 키(low key, 소극적으로 대응)'로 일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조 대변인은 "오늘(10일) 국무회의 시 권한대행이 이미 말한 것으로 안다"며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한일 양국 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이해 당사자들이 합의의 취지와 정신을 존중하면서,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는 일본뿐만 아니라, 소녀상을 설치한 측에서도 소녀상 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중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필요 이상으로 저자세를 보이면서 일각에서는 공개되지 않은 '이면 합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조 대변인은 "이면 합의가 존재한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위안부 합의는 양국 외교장관이 합의 당시 발표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영사관 담장 앞에 세워진 소녀상. 오른쪽 30여m 뒤에 영사관 후문이 보인다. ⓒ연합뉴스

한편 <교도통신>은 이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일본으로 일시 귀국한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 모리모토 야스히로(森本康敬) 부산 총영사와 만나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들 대사와 영사가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시점과 관련,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향후 여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본이 대사와 영사를 무작정 붙잡아둘 수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통신은 "귀국 기간은 수일부터 1주일 정도로 보이지만 그 사이에 소녀상 철거 움직임이 있을 전망은 없다"며 "일본 정부는 나가미네 대사의 서울 임무 복귀 시기를 둘러싸고 어려운 판단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통신은 "국회의 탄핵 소추로 박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한국은 국정 마비 상태"라며 "여론의 저항이 강한 상태에서 (부산 소녀상) 철거에 나설 힘이 한국 정부에 없다"고 진단했다. 일본이 대사와 영사를 소환하는 초강수를 뒀지만, 사실상 아무런 소득 없이 이들을 한국으로 복귀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예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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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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