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박근혜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10일 제출한 '세월호 7시간' 관련 소명을 보면, 박 대통령 측은 사고 당시 관저에 있었던 것을 정당한 직무 집행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관저에서 집무를 봤다'는 취지의 주장을 했다.
박 대통령 측은 답변서에서 "관저 집무실은 피청구인이 업무를 보는 공식적인 집무실"이라며 "피청구인은 평소처럼 기상해 아침식사를 한 후 관저 집무실에 들어갔다. 이 집무실은 역대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빈번하게 이용해 온 사무 공간으로 책상과 컴퓨터, 서류철로 가득하며, 대통령이 그곳에서 전자결재를 하거나 주로 보고서를 읽고 행정 부처, 비서실 등과 전화를 하며 각종 보고를 받고 업무 지시를 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전문] 박근혜가 헌재에 밝힌 '세월호 7시간' 자료)
그러면서 이들은 "피청구인 박근혜 대통령은 특히 관저에 거주하는 가족이 아무도 없어서 다른 대통령보다 더 관저와 본관, 비서동을 오가며 집무하는 경우가 많았다. 피청구인에게는 관저가 '제2의 본관'"이라며 "역대 대통령들은 가족관계와 성향에 따라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달랐을 뿐 모든 대통령이 관저 집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했다"고 했다. 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령과 질병으로 평소 관저에서 집무할 때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에서 3년여 동안 청와대 부속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김한정 의원은 지난해 11월 21일 기독교방송(CBS) 라디오 인터뷰에서 "관저는 대통령의 휴식 공간"이라며 "서재나 응접실 정도"라고 일축했다. 김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일 오전이나 오후 시간에 관저 집무실에서 일을 보신 적 있느냐'는 질문에 "거의 없다. 있을 수 없다"며 "몸이 편찮거나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 휴식을 취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항상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했다"고 했다.
김 의원은 또 "저녁 이후에 관저에서도 필요하다면 비서실장한테 보고를 받는다든지, 또 외부의 지인들을 초청해서 민심도 듣고 하는 일들은 있다"며 "(이는) 직무의 연장"이라고 했다. 그는 "대통령도 공인이기 때문에 출근해야 된다"며 "김대중 정부 때는 '관저 집무실'이라고 하지 않고 '관저'라고 불렀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변호인단은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전 10시 이전 회의나 저녁 회의, 휴일 업무를 대부분 관저에서 봤다"며 "심지어 '관저 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치인이나 지인을 관저에 불러 대소사를 논의하는 일이 흔했으며 참모들과의 아침 회의를 관저에서 개최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당시 언론 보도 기사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관저에서 했다는 '아침, 저녁, 휴일 회의'와 세월호 사고 발생 및 대처 당시인 '평일 낮'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 김한정 의원의 말처럼 본관을 '회사', 관저를 '집'이라고 한다면, 아침·저녁·휴일에 회사 일을 집으로 싸가지고 가서 하거나 집으로 회사 동료를 초청해서 업무 관련 대화를 하는 것은 '연장(초과) 근무'다. 반면 평일 낮에 집에서 일을 처리하는 건 회사원이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고, 심지어 오전에 급한 일이 생겼는데 오후까지 계속 집에서 재택 근무를 하는 경우는 상상조차 힘들다.
또 이들이 근거로 든 언론 기사를 봐도 이렇게 돼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3일 "노무현 대통령이 관저 정치, 386정치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하며 시정을 요구했다. 노 대통령의 386측근인 안희정 씨가 전날 "일요일에 가끔 관저에서 대통령과 식사한다"고 밝힌 게 주된 계기였다. 열린우리당 김원기 의장이 최근 두 차례나 노 대통령과의 '개별 접촉'사실을 공개한 것도 빌미가 됐다.
민주당 유종필 대변인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자청 "노 대통령이 386측근을 관저로 불러 맞담배를 피며 국정을 논하는, 안방 정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국무회의나 비서실 회의는 장식용이고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중략) 유 대변인은 또 "이광재 씨도 관저에 간 것을 부인하지 않았고, 정윤재 씨와 같은 부산 386측근 등 다른 사람들도 많다"면서 (중략) "노 대통령은 당장 관저 식사 모임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 [한국일보] 한나라·민주당 "盧, 관저정치 중단하라")
그러니까 이들이 '관저 정치'라며 들고 있는 사례는, 노 전 대통령이 "일요일에 가끔" 안희정 현 충남지사 등 측근을 관저로 불러 식사한 것 등 "식사 모임"이다. 평일도 아니고, 업무시간도 아니고, 현안 관련 업무도 아니다.
특히 박 대통령 측이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든 사례 중 김선일 씨 사건 관련 부분은 사실 왜곡 우려마저 있다. 이들은 "2004년 6월 이라크 무장단체가 우리 국민 생명을 담보로 촌각을 다투던 '김선일 씨 납치 사건' 당시도 관저에 머물며 전화와 서면으로 보고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에게 김선일 씨 납치 사건이 처음 보고된 시각은 2004년 6월 21일 오전 6시였다. 이 시각은 사실 통상적인 '출근 시간' 이전이라는 게 사회 통념이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은 오전 6시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과 권진호 국가안전보좌관에게 보고를 받은 뒤, 거의 바로 '출근'을 했다. 청와대 본관에서 이 차장 등에게 종합 보고를 들었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현재의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김선일 씨 납치 사건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공식 발언을 했다. 이 회의가 열린 시각은 아침 9시였다. (☞관련 기사 : 盧 "파병은 적대행위 아니라 재건 지원")
또 이들은 김병준 전 노무현 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의 회고록을 인용해 "대연정 제안 직전에는 3일 동안 관저에서 두문불출, 한 발자국도 안 나오고 면담도 일절 하지 않았던 적이 있다. 비서실장이나 정책실장도 안 만나니 뭘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 제안을 처음 언급한 것은 2005년 7월 4일이고, 한나라당을 향해 공식적인 제안 형태로 발표한 것은 같은달 28일이다.
그런데 이 중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이건 "직전 3일 동안 두문불출했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먼저 2005년 7월 4일 "직전 3일" 가운데 2~3일은 주말이었다. 하필 처음으로 주5일제를 시행했던 주말이라 기사까지 많이 남아 있을 정도다. (☞관련 기사 : [동아일보] 대통령 칼같이 쉰다) 7월 1일에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민주평통 회의를 주관했다. 이 역시 하필 '첫 민주평통 화상회의'였다.
만약 2005년 7월 28일 "직전 3일"을 말하는 것이라면? 하루 전날인 27일, 노 대통령은 11개 부처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이 인사에서 외교부 2차관으로 승진한 이가 나중에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장관을 지내게 되는 '유명환 차관'이었다. 그리고 이 인사와 관련해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김만수 대변인은 이번 인사 발표가 예정보다 조금 늦어진 이유에 대해 "노 대통령이 3시부터 보고 검토에 들어갔는데, 하나하나 꼼꼼히 따져보면서 필요한 경우 부처 장관과 직접 전화 통화도 하면서 결정하느라 늦어졌다"고 밝혔다. (☞관련 기사 : 권태신 재경부 제2차관 등 11개 부처 차관급 인사)
또 2005년 7월 25일에는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열었고, 이 회의에서는 구 안기부의 불법 도청 의혹 사건에 대해 "국정원의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를 주문했다. "관저에서 두문불출"을 하지도 않았지만, 설사 그랬다 한들 이 "3일 동안" 국정은 큰 탈 없이 굴러갔다. 반면 '7시간'은?
물론 변호인단들은 이렇게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오후 3시, 피해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인식한 즉시 중대본 방문을 결심하고 준비가 완료된 시점에 중대본을 방문해 동원 가능한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구조에 최선을 다하도록 지시하는 등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였습니다." (헌재에 제출한 답변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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