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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탄핵' 다음엔 '탈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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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2017년, '탄핵' 다음엔 '탈핵'이다!

[초록發光] "이제 '탈핵 정치'다"

영화 <판도라>의 기세가 무섭긴 한가 보다. 관람객 수가 증가하는 것에 맞춰 한국수력원자력과 원자력계는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는 해명을 여러 전문가와 기자의 입을 통해 내놓고 있다. 그러나 현실이 영화보다 스펙터클한 상황에서 공학적 설계 기준과 과학적 지식에 대한 호소는 다소 무기력해 보인다. 과학기술적 불확실성은 차치하더라도 '판도라의 상자'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체험적 지식이 되었기 때문일 게다. 급기야 야권의 유력한 대선후보인 문재인 후보마저 영화를 관람한 뒤 판도라의 상자 자체를 없애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탈핵, 탈원전 국가'로 나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2017년, 촛불시위에서 나왔던 구호처럼 '탄핵 다음 탈핵'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후쿠시마 사고 이후 5년, 변함없는 핵정책과 미약한 탈핵 비전

그러나 현실은 기대에 못미친다. 잠시 시계를 2012년으로 되돌려보자. 후쿠시마 사고 후 1년 뒤에 치러진 2012년 총선과 대선, 새누리당을 제외한 여러 정당들이 각자의 탈핵 비전을 제시했다. 당시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후보는 신고리 5~8호기 및 신울진 3~4호기 등 신규 원전 건설 중단, 고리 1호기 및 월성 1호기의 수명연장 중단을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수명 연장이 도래하는 원전을 순차적으로 폐쇄하는 방식을 근간으로 한 '2060년' 탈핵 구상을 내놓았다.

통합진보당과 녹색당은 신규 건설 중단과 노후원전 폐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설계 수명에 관계없이 원전의 가동 연한을 30년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를 바탕으로 통합진보당은 '2040년' 탈핵을 공약했고, 녹색당은 여기에 2030년 탈핵 국민투표를 통한 조기 탈핵 방안을 보탰다. '2012년 탈핵 원년' 구상에 대한 기대를 잠시 가질 만도 했다.


시간이 흘러 2016년 총선, 탈핵 비전은 별다른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별도의 탈핵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정의당은 기본적으로 통합진보당의 탈핵 구상을 이어갔으나 재생에너지나 전력수요관리 정책은 오히려 명시적인 목표를 제시하지 않고 에둘러 표현하는 데 그쳤다. 녹색당은 추가로 핵발전소의 가동률을 80%이하로 낮추는 안을 제시했으나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사이 신고리 3, 4호기와 신울진 1, 2호기 건설 공사는 착착 진행되었다. 또 신고리 5, 6호기의 건설허가 승인이 이뤄졌고, 마침내 신고리 3호기는 최근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이로써 설계수명을 기준으로 할 경우 탈핵은 지금 시작해도 앞으로 60년이 걸리는 장기 과제가 되었다. 신고리 5, 6호기, 나아가 건설허가 심의가 예정된 신울진 3, 4호기까지 정부의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2080년대나 되어서야 탈핵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삼척이나 영덕에 신규 원전을 짓지 않고 노후원전을 수명연장하지 않는다고 가정할 경우에! 폐로 과정까지 감안한다면 2100년까지 핵발전소를 목격하게 될는지도 모른다. 유일한 진전이 있다면 고리 1호기의 폐로가 확정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리 1호기의 폐쇄는 시민사회의 저항을 무마하고 영남 지역에서 정치적 지지를 유지하려는 것 외에도 이른바 폐로 산업 육성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과 같은 원자력산업계의 이해가 맞물려있다는 점에서 절반의 성공에 가깝다. 월성 1호기나 향후 예정된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중단한다는 계획은 아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2017년은 탈핵 원년이 될 것인가?


원자력계가 지진과 영화 <판도라>에 민감한 것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가던 탈핵 비전을 다시금 정치의 무대로 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야권의 몇몇 대선 주자들은 장기적인 탈핵 구상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추측컨대, 원자력계도 2017년 6월 고리 1호기의 운전 중단을 앞두고 있는 만큼 새로운 홍보 프레임을 제시할 듯 싶다. 정치적 파급력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후퇴하던 탈핵 비전은 2012년 경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관건은 '수사적인 탈핵'을 넘어서서 정치적 실천을 이끌어내고 탈핵의 시계를 앞당길 방안을 찾는 것이다.


첫 관문은 예상대로 신규 원전 건설과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 중단이 될 것이다. 문제는 건설을 중단할 신규 원전을 어디로 설정할 것인지, 탈핵을 실현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를 실제로 구축할 것인지, 나아가 탈핵을 사회경제적 체제 전환과 결합시킬 것인지라 할 수 있다. 2017년 탈핵 비전은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신규 원전 건설 문제에 대한 명확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2012년 계획 중이던 것이 현재는 실행되고 있는 만큼 상황은 더 어렵지만, 이를 외면한 장기적인 탈핵 구상은 문제를 회피하는 것에 불과하다.

예컨대 논란이 되고 있는 신고리 5, 6호기와 신울진 3, 4호기까지만 확정지어도 원전산업계는 향후 수년간 사업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미 투자된 것을 이유로 신울진 3, 4호기까지 건설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역설할 수 있는 여지는 더 커졌다. 삼척 또는 영덕으로 압축되었던 신규 부지 선정은 공식적으로 철회하지 않을 경우 차차기 정부에서 언제든 부활할 수 있는 유예안이 될 것이다. 노후 원전의 경우, 설계 수명을 기준으로 할 경우 차기 정부에서 수명 연장 심의를 해야할 원전이 사실상 없다. 월성 1호기와 고리 2호기가 각각 2020년과 2021년까지 수명 연장 신청을 해야하지만 언제든 무력화될 수 있는 신청 기한일 따름이다. 구체성이 결여된 장기적인 탈핵 비전을 정치적으로 활용하기에 이만큼 좋은 시점이 없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탈핵 비전이 진정성을 갖기 위해서는 신규 원전과 노후 원전 수명 연장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단기적인 법제도의 개선과 장기적인 사회경제체제 전환의 비전을 포함해야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5년 만큼 늦추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만회할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동안 법제도 개선이 다양하게 논의되어왔지만 국회 입법안으로 계류 중이거나 폐기된 것이 대부분이다. 안전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제안된 원자력안전법이나 원자력안전위원회와 관련된 법안들이 단적인 예이다. 지방정부나 지역 주민들에게 부분적으로 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안들도 여기에 포함된다.

다양한 안들이 나왔지만 결국 핵심은 의사결정 과정을 개방하여 시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반영해서 탈핵 비전은 두루뭉술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 어떻게 에너지 민주주의를 재구축할 것인지를 담아야한다. 나아가 이것은 수출 대기업 중심의 사회경제체제를 생태적 사회경제로 전환시킬 비전을 품고 있어야 한다. 핵발전은 수출 산업과 대기업을 보조하며 성장주의를 이끌어온 중요한 동력(動力)이었다. 여기에 일반 국민들도 핵발전을 통해 공급되는, 사회생태적 비용이 외부화된 값싼 전기 소비에 편승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 지점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탈핵 구상이 장기적인 체제 전환의 비전과 유리된다면, 탈핵은 끊임없이 '현실적 불가피성'을 이유로 유예될 것이다. 따라서 좁게는 전력수요 축소를 위한 전기요금 개편, 넓게는 에너지 수급 및 산업구조의 전환을 탈핵 비전과 결합시키고, 이를 실현할 정치적 의지를 분명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2017년, 시기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어떻게든 정리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명박근혜 정부의, 나아가 보수 세력의 소위 '부역자'까지 정리하고 체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할 것인지는 결국 촛불이 결정할 것이다. '탄핵 다음 탈핵'의 향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곧 다가올 '수사적인 탈핵'의 시간을 앞두고 '어떻게 박정희가 시작한 핵발전을 박근혜와 함께 정리할 것인지'를 계속 캐물어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다양한 탈핵 비전들이 제시되고, 구체적인 방안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어야 탈핵열차가 시동을 걸 수 있다. 박정희 시대에 건설하기 시작한, 앞으로 10년 안에 설계 수명이 만료되는 원전 10기와 박근혜 정부가 추진한 신규 원전이 탄핵 선물로 뒤따라오길 꿈꾸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탄핵 다음 탈핵'이 스쳐가는 우스갯소리가 아닌 훗날 2017년을 기억하는 구호로 남길 바란다.

▲영화 <판도라>의 한 장면.ⓒ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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