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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세계, '노가다 개잡부'의 삶을 인터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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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던 세계, '노가다 개잡부'의 삶을 인터뷰하다

[민미연 포럼] 박근혜 정부 이후 공고화된 노동 위계

Ⅰ.
"나도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대기업 L사 비정규직 출신 하층노동자의 말이다.

나는 건설노동현장에서 다양한 인생을 경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일한 노가다(건설직 막노동자)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그들이 겪은 참혹한 노동 현장은 나를 전율하게 한다. 아픈 사연이다. 그 아픈 사연을 듣다보면 21세기 한국의 대기업 비정규직, 대기업 하청 기업, 독립 중소기업 노동 현장은 19세기 산업혁명기 영국 노동자의 비참한 현실을 방불케 한다. 한국에는 이런 곳이 아직도 너무 많다.

몇 해 전, 경북 공업도시 구미에서 일하다 포항으로 돌아와 인력업체 소속 노가다로 일하고 있는 40대 중반의 C씨를 만났다. 그는 10여 년간 여러 곳에서 '공돌이'로 일하다가 대기업 L사 사내 하청 업체 비정규직으로 취직해 만 1년하고도 5일을 일하다 일도 힘들고 돈도 되지 않아 퇴사했다. 그는 지난 1년간 뼈 빠지게 휴대폰 제조 전 공정을 습득해 열과 성을 다해 일했다고 한다. 그러나 너무 적은 경제적 보상에 스스로 소모품이 되었다는 생각과 정규직의 갑질이 보기 싫어 퇴직금 224만 원을 받고 그만뒀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 어디에서 일을 하다가 노가다로 오게 되었나요?

경북 구미의 L사 사내 비정규직으로 1년간 휴대폰 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 거기를 그만두고 이사 와서 포항에서 노가다를 하고 있습니다.

- 그렇군요. L사는 대기업인데도 처지가 그렇게 열악했습니까? 공장에서 일은 얼마나 했나요? 노동 강도는 센 편이었습니까?

비정규직은 한 달에 한 번 쉬었습니다. 매일 오전 8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8시 30분까지 일했습니다. 그렇게 12시간을 공장에서 보냈습니다. 오후 5시 30분 정시에 퇴근한 적이 없어요. 토요일과 일요일은 물론이고, 공휴일에도 일했습니다. L사와 하청업체는 비정규직에게 죽도록 일을 시켰습니다. 휴대폰 공장에서의 노동 강도는 상당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노가다가 공장 노동자보다 노동 강도가 센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 휴대폰 공장은 노가다보다 힘들었습니다. 체력이 강한 제가 느끼기에 말입니다. 휴대폰을 만드는 일과 포장하는 일을 했습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한 공장에서 정규직의 지시를 받으며 일했습니다. 정규직은 우월감에 거들먹거리는 관리 감독자였습니다. 그러나 정규직도 노동 강도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 그렇군요. 다른 대기업 공장 정규직과 달리, 이곳에서는 정규직도 일이 힘들었군요. 한 달 동안 휴일이 하루밖에 안 되네요. 이건 너무 심합니다. '저주받은 노동'도 아니고. 급여는 어느 정도였나요?

네. 저주받은 노동, 맞습니다. 사는 게 '회사-집', '일-잠'으로 단순화되었습니다. 비참했어요. 회사 생활이 좋았으면, 내가 왜 그만뒀겠습니까. 취미나 여가 생활은 상상할 수 없어요. 공장 비정규직의 시급은 최저임금이었고, 잔업수당까지 포함해 한 달 평균 급여가 224만 원이었습니다(2013년 기준, 2016년은 최저임금 인상안은 이보다 올랐음). 1년 중 일이 가장 많았을 때 받은 급여는 세전 280만 원, 4대보험 등 세후 260만 원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쉬고 받은 돈이 고작 이백몇십만 원입니다. 상여금은 없었고요.

L사는 일이 많을 때는 비정규직을 많이 뽑았어요. 정규직도 재직하고 있는 정규직의 추천을 받아 조금 뽑았고요. 그리고는 잔업을 시켰습니다. 그러다 일감이 줄면 잔업도 줄고 급여도 줄었어요. 내가 볼 때, 휴대폰 회사인 L사는 비전이 없는 회사였습니다. 회사는 연구개발을 소홀히 한 채 휴대폰을 대량으로 생산해 중국 등 해외시장에 덤핑으로 팔았지요. 회사는 노동착취만 강화하고, 혼이 담긴 제품을 만드는 데는 관심 없었어요. 이런 회사가 무슨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관계는 좋았습니까?

L사 공장의 정규직은 성실하지 않았어요. 정규직 노동자 중 일부는 항상 비정규직 노동자 위에 군림하려고 했습니다. 같은 노동자라는 동질성보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작은 특권에 안주하며 비정규직을 경멸했습니다. 회사도 싫었지만, 이 회사의 정규직 태도가 정말 싫었습니다. 정규직 노조도 어용 노조였습니다. 이들은 비정규직에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노조는 임금 협상 대행회사나 용역회사와 비슷했어요. 노동자 조직이라기보다는 회사에 빌붙은 이권 집단이었습니다.

- 그렇군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이 가슴 아프네요. 노동자로 단결해 스스로의 권익을 찾아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정규직 입장에서는 아쉬울 게 없는데 가능하겠습니까. 현장에서 정규직에 대한 비정규직의 적대감이 높았습니다. 대기업 L사 정규직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정규직만큼 연봉을 많이 받는 것도 아닙니다. L사에서 오래 근무한 정규직 연봉은 7000만 원에서 8000만 원 수준입니다.

- 비정규직에게 제공되는 직장 복지 혜택이 있나요?

복지요? 비정규직에게는 복지 혜택 같은 것 없습니다. L사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생활은 앞날에 대한 희망이 없습니다. 물론 중소기업 공장 생활도 일만 죽도록 하고, 암울하지요. 지옥이 따로 있나요? 열악한 공장이 바로 지옥입니다. 대기업 정규직이 아닌 이상, 노동자는 다 비참해요. 인생, 참 서럽습니다.

- 맞습니다. 우리나라는 노동이 극심하게 분단되어 있습니다. 공무원과 공기업, 대기업 정규직이 아닌 노가다(대기업 하청 비정규직이든 중소기업 공장 노동자든)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험한 노동에 다들 힘들어요.

Ⅱ.
이제 나의 노동 이야기를 해보겠다. 20대 청년 한 명과 함께 한반도 동쪽 맨 끝인 포항 남구 대보 호미곶 등대박물관 옆에서 종합 잡부로 일한 적이 있다. 우리는 관광명소인 호미곶의 고래 형상 건축물 신축 공사장에서 시멘트와 석고 가루, 그리고 먼지를 뒤집어쓴 채 철근과 돌 등 건축폐기물을 나르고 벽돌을 쌓아야 했다. 김 군과 나는 그렇게 '개잡부'가 되어 쉴 틈 없이 온갖 잡일을 다했다.

사용자인 중소건설회사의 관리자(과장으로 추정)는 독한 사람이었고, 인상도 좋지 않았다. 그는 회사의 충견(忠犬)으로, 노예 감독관을 방불케 했다. 그는 따라다니면서 이 일 저 일을 시켰고, 우리가 혹시 태만할까 봐 전화하면서도 감독했다. 주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노가다 건설 현장의 건설회사의 반장, 과장 등 관리직 노동자가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회사의 '충견'으로서 숙련공과 단순 비숙련 노동자에게 엄청난 노동을 부과하는 자들은 상당히 많다. 그들은 지쳐가는 노동자에게 쉼 없이 일을 하라고 명령하며, 잠깐의 휴식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공사 강행군을 위한 회사의 돌격대장이다.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 또 승진하고 인정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충성한다. 물론 간부의 지시도 있을 테지만.

나와 김 군은 '개잡부' 일을 마치면서 경치 좋은 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포항으로 돌아왔다. 그 날, 너무 피곤해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몇 년간 노동 현장에서 일하면서 한국이 노동신분제 사회로 변모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민주노동운동이 1997년 이후 투쟁으로 이룩한 '성취'는 사실상 노동신분제 사회였다. 집합적 대형사업장과 노동 현장은 정직원(공무원/공기업/대기업 원청 정규직) 아래, 직영 비정규직 또는 계약직(임시직), 그리고 하청 정규직 밑으로 하청 일용직으로 노동 위계가 형성됐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민주 노조든 어용 노조든 할 것 없이 자본의 파트너로 전락했다. 이들은 노동계 내부의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며,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데만 골몰했다.

노동신분제 사회에서 공무원과 공기업 노동자는 신과 교류하는 천사급이며, 다음이 대기업 정규직이다. 이들 역시 노동자 계급의 상층에 속하는 특권적 노동자이다. 국가와 자본이 분할한 중심부(1차) 노동시장과 주변부(2차) 노동시장에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 분단선'이 있다. 지금 이 분단선은 심연이 되어 버렸다. '분단 노동시장'은 한국 사회의 모순과 양극화를 집약적으로 표현한다.

"전반적인 진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노동시장과의 연계가 약하다. 노동시장의 변두리 집단과 특혜 집단 간의 간격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2013년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약칭 사민당) 강령 중)

스웨덴에서도 노동시장의 중심부와 주변부 집단과 간 간격이 점점 더 커지고 있지만, 땅과 하늘 차이인 한국의 상황과 비교되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 이후 더 심해진 노동 양극화와 격차 해소는 한국 사회가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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