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가 너무 많아요. 한국인들이 일할 데가 없어요."
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은 살짝 이지러지는 듯했다. 비록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진보적 지식인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그로서는 이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다시 그는 소주 잔을 들이킨다. 슬픈 미소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의 눈은 이미 충혈되었다. 외국인노동자와 일자리를 경쟁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은 듯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몇 년전 친한 후배가 하는 독서모임에서였다. 그는 좋은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다. 평범하던 그의 인생은 30대에 들어서 꼬이기 시작했다. 불쑥 그의 앞에 나타난 인생의 걸림돌은 그의 삶과 가정을 흔들었다. 결국 그는 생계를 위해 막노동을 시작했다. 그 당시 그를 보았을 때 그는 자신만만했다. 자신의 노가다를 인생에서 한번 해보는 체험 정도로 생각했다. 몇 년간 노가다 인력시장에서 전전한 그를 다시 만났다. 그에게 보이던 패기는 삶이 주는 상처들로 사라지고 없었다. 노가다 인력시장이 체험학습의 장이 아니라 생계를 유지할 유일한 방편이 될 때 인터내셔널리스트인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외국인노동자가 너무 많아요."
평등노동네트워크가 얼마 전 주최한 외국인노동자문제 토론회에 참가했다. 민주노총 건설지부 간부로 일했던 노동자 한 분은 패널로 참석해서 건설업계는 외국인에 의해서 거의 점령당하다시피 했다고 하소연했다. 민주노조의 오랜 투쟁의 결과 돌아 온 것은 외국인노동자의 일자리뿐이라고 한다. 최근 작업에 들어간 공사현장에서 3팀중 1팀만 한국인으로 구성된 팀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한국인노동자들이 일을 잡은 것도 민주노총의 산하였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완벽히 외국인으로만 구성해서 혹시나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 기업의 구색 맞추기용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만약 민주노총이라는 우산이 없었다면 자신들을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자조적인 말을 내뱉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들어 왔다. 들어와도 너무 많이 너무 급격히 들어왔다. 누군가는 말한다.
세계화시대에 외국인은 들어오고 한국인은 나가고 이것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한 것 아니냐고.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간과되는 것이 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일하는 건설업과 요식업의 일자리는 한국인에게 과연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한국자본주의는 1960년대 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된 이래 비약적인 고속성장을 지속해왔다. 무한정 유지될 것 같던 고속성장은 1990년대 초 이래 꺾이기 시작한다. 성장률둔화와 분배악화가 동시에 진행되기 시작한다. 이런 한국경제의 새로운 흐름은 탈공업화 때문이었다. 중국의 급속한 공업화로 노동집약적 비교우위에 기반하던 산업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노동집약적 제조업에 근무하던 많은 노동자들이 건설·음식·숙박업 등의 서비스부문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제조업고용이 줄어들면서 소득격차가 확대되는 모습은 이미 선진국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제조업의 생산성향상은 보통 작은 고용인원으로 높은 매출을 올리는 것을 의미하므로 기업이 생산성향상에 나서면 제조업고용은 자연히 줄어든다. 제조업에서 밀려난 노동력이 모여드는 저임금서비스산업은 낮은 생산성으로 인해 저임금일자리만을 제공할 뿐이다. 게다가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로 공장을 옮기는 일이 많아졌다. 한 연구에 의하면 제조기지를 해외로 이전해서 사라진 제조업일자리가 약 100만개로 추정된다.
한국 제조업 취업자수는 서비스업 취업자수의 지속적인 증가 추세와는 대조적으로 1991년(516만명)을 정점으로 감소추세가 지속되었다. 제조업고용이 총취업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1년 27.6%에서 2007년에는 17.6%로 줄어들었다. 2016년 8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수출 부진과 구조조정이라는 악재가 겹치며 제조업 고용비중이 약 3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2016년 8월 제조업 취업자 수는 전체 취업자(2천652만8천명) 중 16.7%를 차지했다. 서비스업의 평균임금은 제조업의 절반을 조금 상회한다. 줄어든 제조업에서 퇴출된 사람들이 찾는 것이 건설현장의 막노동, 식당의 주방 같은 저임금일자리다.
이런 일자리는 복지가 부족한 한국에서 서민들에게 복지의 대체재다. 예전에 화이트칼라 회사원들이 하던 말이 있었다. "골치 아픈데 회사 때려 치고 식당이나 하나 하지" 그러나 장기적인 저성장국면은 자영업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다. 자신이 고용한 알바보다 못한 돈을 벌어가는 편의점 사장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경제환경에서 자영업 도전이 한번 실패할 경우 바로 극빈층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런 경계선상의 사람들이 주로 들어가는 사업장이 건설현장과 식당이다. 그런데 이런 곳은 이제 외국인노동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정부는 하층노동자를 위한 마지막 안전판마저 제거해버린 것이다.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세계화에 따르는 당연한 부작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는 각 국가마다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부여한다. 무역장벽이 사라지고 평평한 세계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각 나라의 기득권층의 이익을 증가시키는 쪽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다. 세계를 무대로 뛰는 대기업에게는 많은 수익을 보장하지만 그 나라의 하층서민에게는 큰 이익을 보장하지 못한다. 때로 서민을 대변하는 정치적 힘이 미약할 경우는 살아있는 지옥이 되기도 한다.
납치살인이 난무해 국가기능이 부재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멕시코는 국가수준의 전체경제는 순항중이다. 80년대와 같은 외채위기도 없다. 다만 신자유주의의 도입에 따른 이익은 기득권층이 피해는 하층서민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만들어졌을 따름이다. 한국은 어떨까? 기업들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이익을 만끽해 왔다. 이류에 머물던 한국제품은 세계일류제품으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신자유주의의 수혜자의 이익을 국가는 최우선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의 피해자인 하층노동자들의 이익은 어떻게 되었을까?
신자유주의 세계화시대에 대부분의 국가는 노동유연화와 복지를 동시에 추구한다. 노동유연화는 세계화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복지는 세계화가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복지가 불충분 상태에서 노동유연화는 공기업과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무제한적으로 도입되었다. 부족한 복지를 겨우 보충해 온 것이 건설과 요식업일자리였다. 그러나 이마저도 정부는 암묵적으로 완전개방하고 말았다. 하층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어디에도 없었다는 증거다.
한 국가가 자국의 하층노동자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는 자신의 노동시장을 어떻게 보호하는가와 직결된다. 통계가 하나 있다. 인구 1억3천의 일본에는 불법체류자가 6만명에 불구하지만 인구 5천만에 불과한 한국의 경우 22만명에 이른다. 인구 대비 8배의 차이다. 이 8배의 차이는 하층노동계급을 바라보는 두 나라 기득권층의 배려의 크기에 다름 아니다.
교수, 공무원, 교사, 변호사 전문직들로 가득한 한국의 진보대중들은 외국인노동자라고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사장님 나빠요"를 외친다. 개그프로그램의 대사였던 "사장님 나빠요"는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거부감을 주제로 공전의 히트를 쳤다. 20여년 전부터 경기도 가난한 외곽에 살면서 외국인노동자들을 많이 봤다. 가끔 한국인 사장에게 맞아서 얼굴을 찌푸린 채 다니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동네에서 영어가 되는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나에게 이런 저런 억울함을 하소연하기도 했다. 나는 그들에게 공감하면서 한국인들의 지나친 배타성을 같이 욕하곤 했다. 그런데 여기서 좀 더 생활하자 눈에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 들어왔다. 강남에 살 때는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던 손가락 잘린 사람들이 종종 보였다. 동네 아주머니들 중에는 평생에 걸친 노동으로 관절마디가 성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이 아주머니들은 고통을 없애고자 판피린같은 진통제를 상시적으로 복용하고 있었다. 외국인노동자들이 하소연하는 고통과 학대는 하층서민들의 경우 일상의 삶이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나이 든 노년층만 겪었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작년 대기업의 1차하청인 제조업회사의 조직문화에 관해서 컨설팅을 한 적이 있다. 기업의 대표는 하소연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왜 오래 일하지 않는지 몰라요? 연봉도 4천이나 되면 적지 않은데 말이죠" 제조업의 대표적인 생산방식인 토요타방식은 많은 기업들이 따라하고 싶어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토요타방식은 말처럼 쉽지 않다. 토요타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현장노동자의 고숙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노동자의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자신의 일만이 아니라 주위전체의 생산과정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이것은 결국 현장경험이 축적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 회사의 현장노동자는 특히 신입직원은 2,3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해서는 현장노동자의 숙련은 언감생심이었다.
현장노동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현장은 생산부장의 전적인 관리하에 통제되고 있었다. 노동자들이 절절하게 말한 것은 인격적 모독이었다. 생산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주먹다짐이 있었고 고성이 오갔다. 노동자들은 생산현장에서 주눅 들어 있었고 오로지 시간만 가는 것을 바랄 뿐이었다. 20,30대 성인노동자들이 욕을 듣고 멱살을 잡히는 현장분위기에 익숙해지면서 그들은 생산현장의 주체가 아니라 방관자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기업대표는 이런 문화를 철저히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른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말하는 학대는 그들만을 타깃으로 한 것이 아니라 한국 하층 노동자들이 일상에서 흔히 겪는 일일 뿐이다.
한국인들이 일하지 않아서 외국인을 들여와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은 노동의욕이 없고 편하게 사는 데 익숙해서 또는 기득권층이 말하듯이 배가 불러서 일을 기피하는 것이 아니다. 도저히 일할 수 없는 근무환경은 개선하지 않고 "왜 일하지 않느냐"라고만 다그친다. 그런 후 기득권층은 외국인노동자를 불러 온다. 외국인들은 아직 의욕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그들이 한국에서 일하는 유일한 이유는 자신의 국가와 한국과의 환율 차이 때문이다. 외국인노동자들은 몇 년간만 고생하면 힘든 삶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한국인들은 저임금노동을 통해서는 삶의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가 없다.
비숙련 중장년층의 마지막 버팀목인 저임금노동시장 이곳은 이미 헬조선으로 넘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부여한다. 기회와 위기를 앞에 두고 각 국가들은 자신들 나름의 국가전략을 짠다. 국가의 전략은 국가 내부의 정치역학에 따라 달라진다. 노동자와 서민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곳에서는 세계화의 추세를 외면하지는 않으면서도 혹시나 있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 그러나 서민들의 눈을 의식할 필요가 없는 곳 즉 민중들의 의사가 대표되지 않는 곳에서는 서민들의 복지는 철저히 외면 받는다.
복지가 부족한 한국에서 서민일자리는 복지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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