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주일만에 대한민국은 경천동지할 변화를 겪었다.
국민 알기를 왕조시대의 천민 보듯이 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3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기만에 가득찬 그의 사과는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급기야는 그를 의법처단하라는 국민의 목소리에 놀란 국회에서 탄핵안을 발의하기에 이르렀고, 12월 9일 표결키로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내시를 자처해온 새누리당은 시민항쟁의 쓰나미 앞에서 이 순간을 모면하려 잔꾀를 부리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분노한 대중은 '새누리당 해체'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가장 평화롭고 온건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광장과 SNS의 촛불시위가 대한민국과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헬조선이라는 말에서 풍기는 좌절과 절망스런 분위기는 사라지고, 시민이 대한민국의 주인이라는 자각과 동시에 이 힘으로 우리 사회를 정상화시켜야겠다는 자신감이 무럭무럭 커지고 있다. 행동하는 양심과 깨어있는 시민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면 과장일까?
시민항쟁은 우리나라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똑똑히 보여주었고, 민심이집권자를 언제든지 배를 뒤집어 물 속에 익사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탄핵이 통과되든 부결되든 그것은 부차적이다. 촛불민심은 박근혜가 즉각 퇴진하는 순간까지 더욱 가열차게 나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혁명으로 돌진하고 있는 항쟁의 몇 가지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특정한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권의 보스가 대중의 지도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현장의 집회를 주관하는 단체가 지도부인 것도 아니다. 다수의 시민들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광장으로 나아간다.
둘째, 지도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집단지성이 눈에 보이지 않는 지도력을 발휘한다. 평화적 의사표시, 시위의 구호, 집회 마무리 후 청소에 이르기까지 시민의식이 집단지성의 형태로 발현된다. 200만 대군이 오합지졸이 아니라 집단지성으로 잘 조직된 시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셋째, 시위의 진화 과정을 통해 항쟁의 가치와 목표가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모든 참가자들이 공유하는 가치관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민주공화국에 대한 자각, 시민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국민주권의식, 그리고 민주공화주의에 입각한 전면적인 개혁에 대한 요구 등이다.
지금까지 정치권의 다수는 이와 같은 대중의 변혁적 열기를 앞장서 대변하기 보다는 이에 적당히 편승하는 모습을 보였다. 오늘의 혼란을 초래한 직접적 책임이 있는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야권 역시 이 국면을 앞장서 타개하기 보다는 자신의 주도권과 정파적 이익에 더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4.19 혁명이나 6월항쟁의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재주는 항상 시민이 부리고 돈은 정치권이 가로채간 역사가 있다. 이번에는 어떨까?
국회무대에서 탄핵, 국정조사,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면을 정치인에게 모두 맡길 수는 없다. 그들은 언제라도 국면을 이탈하거나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광장과 SNS의 시민들은 우리사회의 본질적인 변화로 눈을 돌리고 있다. 대통령 하야 => 대통령 퇴진 => 대통령 처벌 => 대통령 구속으로 발전하고 있고, 새누리당 해체와 한국사회의 전면적인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시민혁명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이 항쟁의 목표는 무엇일까? 시발은 대통령의 불법과 부정부패로 시작되어, 이제는 우리 사회의 판을 뒤엎자는 혁명적 문제제기로 이어지고 있다. 그것은 앙시앙레짐(기존체제)의 해체와 새로운 체제의 준비다. 즉 시민정부의 집권으로 이때까지 한국사회에서 미완의 과제였던 민주개혁으로의 전면적 변혁을 추구하는 것이다.
앙시앙레짐을 한마디로 기득권카르텔이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범위를 좁힌다면 입법, 사법, 행정의 3축을 가르킨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시민항쟁이 헌법적 규정과 질서를 최대한 존중하면서 진행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할 지점은 행정권과 입법권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재구성할 것인가의 문제다.
행정권은 박근혜의 즉각 퇴진을 쟁취하여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함으로서 일차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새로운 대통령은 시민항쟁의 가치와 에너지로 충만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범야권이 현재의 야권 구도의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범야권과 시민항쟁의 대연대라는 틀에서 후보경선을 실시하여 그 후보가 압도적인 승리로 시민혁명에 걸맞는 새 정권을 출범시켜야 할 것이다.
입법부의 재구성은 훨씬 더 큰 어려움이 있다. 현행 헌법 하에서는 국회를 해산시킬 방법이 없다. 설혹 야3당이 전원 의원직 사퇴를 하더라도 정족수 미달로 국회 의사일정은 마비시킬 수 있지만, 결국 보궐선거로 귀착되어 버리고 만다.
그래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차기 대통령을 선출하면서 국회 해산에 관한 국민투표안을 동시에 실시하는 것이다. 국민투표가 다수결로 통과되면, 신정부 출범 후 예를 들어 3개월 이내에 총선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때 치러지는 총선은 현재의 소선거구제를 독일식으로 정당득표율에 비례한 의석배정 방식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선거구제는 개헌사항이 아니라 법률 개정 사항이다. 현재의 승자 독식 소선거구제가 민의를 극단적으로 왜곡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음에도 새누리당의 결사반대로 번번히 손도 대보지도 못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지금이 소선거구제를 바꿀 절호의 기회다. 시민혁명의 열기로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몰아내고, 여세를 몰아 선거구제를 변경한 다음 총선을 통해 한국정치의 판을 바꿀 때다. 시민항쟁이 재주만 부리고 돈은 정치권이 가로채갔던 지금까지의 역사적 한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할 때만 군사독재세력의 후신이며, 한국정치를 냉전수구의 틀속에서 퇴행시켜온 새누리당을 헌법적 질서 하에서 해체하고 보수세력의 발전적 재편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보수세력도 이제는 민주공화주의의 원칙을 신봉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시 세워질 필요가 있다. 건전한 보수정당의 존재가 대한민국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이유는 파시즘적 정치세력을 추방하는 것이 시민혁명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독일이 오늘날 선진국으로 존경받는 이유는 히틀러를 추종하는 파시즘을 완벽하게 청산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반대로 군사독재세력의 후예들이 주인처럼 행세해 왔다. 이제는 민주공화주의를 신념으로 가진 사람들이 진보건 보수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진보에서도 극단적인 폭력 세력이 지양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수에서도 냉전극우세력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평화시위를 통해 명예혁명을 추구한다고 해서 혁명의 과제가 말랑말랑한 것은 아니다. 시민항쟁의 뜨거운 열기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전면개편하여 시민정부를 수립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어야 한다. 파시즘의 잔재가 청산된 그때서야 대한민국의 새판을 짜는 백년대계를 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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