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3차 담화문'을 통해 임기 단축 카드를 던지자, 예상대로 새누리당 비박 진영과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국민의당 등 정치권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1일 오후, 서울시청 집무실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마주 앉았다.
박 시장의 메시지는 간명했다. 현 정국을 돌파해 내지 못하면 정치권으로 상징되는 "여의도"는 "촛불의 민심에 쓸려 나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추천한 총리를 임명하고 사임하는 것이라는 '깔끔한' 해법도 내놓았다. 그게 안된다면 당연히 탄핵이다.
야권이 혼란에 빠진 이유와 관련해 박 시장은 "우리 당(민주당)도 착각을 한다고 보는데, 다음에 (대선에) 우리 민주당이 이긴다는 착각"이라고 지적하며 2012년 "총선, 대선에서 (민주당이) 졌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박 시장은 "이번 대선도 환경이 유리하다고 반드시 그렇게(승리) 갈 수 있을까? 경각심을 가져야 될 때다. 끝나지 않으면 끝난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느냐"라며 "자만심 때문에 민심의 뜻을 수용하는데 머뭇거린다거나, 왜곡하거나 하면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야당의 오만, 그리고 각 '정파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박 대통령 탄핵을 앞두고 야권이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박 시장과 <프레시안> 인터뷰는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진행했다.
"여의도가 촛불의 민심에 쓸려갈 수 있다"
프레시안 : 야당이 계획했던 탄핵 일정이 종전 2일에서 다음 주인 9일로 미뤄졌다.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박원순 : 국민의 뜻, 즉 민심을 제대로 이행하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다. 그렇다면 지금 국민의 뜻은 어쨌든 박근혜 대통령 치하에서는 단 한시도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당은 이 뜻을 정확히, 신속하게 이행하는 것이 맞다. 특검도 있고, 국정조사도 있지만 탄핵을 하루 빨리 결의하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심판이) 빨리 끝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야당 내에서도 의견 차이와 분열이 있는데, 그 작은 차이를 넘어서 국민의 뜻에 부응해야 한다. 작은 당파적 이익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의도가 촛불의 민심에 쓸려 나갈 수 있다. 촛불의 민심이 여의도를 향해서 밀려올 지도 모른다. 그것을 엄중 경고하고 싶다.
프레시안 : 촛불집회 때 참여하고, 또 시민들도 만나셨는데, 직접 느낀 촛불 민심은 어떠한가?
박원순 : 어떤 사람은 바람이 불면 촛불이 꺼진다는 얘기도 했지만, 민심의 흐름을 잘 못 읽고 있는 것으로 본다. 광장에 나가보라. 촛불이 분노와, 갈망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축제와 같다. 시민들이 축제로 즐기고 있기 때문에 (촛불 민심은) 줄어들 수가 없다. 만약 의무적으로 나오는 것이라면 오래 못 갈 수 있겠지만, 다양한 형식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현 시국을) 패러디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이 나오고, 온갖 이벤트를 벌이면서 집회를 진행한다. 광장을 걸어보면 시민들이 너무 즐거워하는 게 보인다. 촛불 민심의 강도가 하루 아침에 사그러들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가 있다. 국민의 민심은 분노와 갈망, 크게 두 가지다. 먼저, 박근혜 대통령과 그들 (세력)의 국정 농단과 헌정 유린에 대한 분노의 감정, 그래서 대통령 즉각 사퇴라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갈망이라고 하는 부분을 보면, (시민들의) 발언들은 단순히 불만 표출이라기보다는 낡은 구시대 체제에 대한 분노다. 나라다운 나라로 바꿔달라고 하는 갈망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정치인들은 대통령의 퇴진 뿐 아니라 그 이후 우리가 어떤 사회를 지향해 갈 것인지, 어떻게 앙시앙 레짐(구체제)을 네오 레짐(신체제)으로 만들어가야 하는지 깊이 있게 성찰해야 한다.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에 몰두해야 한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3차 대국민 담화를 하면서 두 가지를 얘기했다. 첫째, 대통령 직을 굳건히 지키겠다, 즉 탄핵을 피해 가겠다는 것, 그리고 둘째, '나는 죄가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나.
박원순 : 대통령이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본인의 잘못이나 사태의 본질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고, 본인이 어떤 행동을 어떻게 취해야 할 것인지도 전혀 파악을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써 마지막 남은 과제는 본인의 잘못에 대한 철두철미한 인정, 그리고 사과다. 나아가 여야가 합의하는 국무총리를 임명하고, 본인이 빨리 사퇴시한을 정해서 물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잘못을 하나도 인정하지 않고, 사과를 제대로 한 것도 아니고, 안정적이고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하는 계획을 아무것도 제시한 바 없다. 본인이 사임하겠다고 했지만, 언제 어떻게 사임할지 제대로 밝히지 않고 있다. 본인에게 요구되는 것을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대통령 뿐인가, 새누리당은 도대체 이 상황에서 왜 이러나. 친박은 말할 것도 없고 비박도 대통령이 성명 냈다고 흔들릴 이유가 없는 것이지 않나. 총리나 국무위원들도 마찬가지다. 이 사태는 대통령에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대통령만의 책임은 아닌 것이다. 책임 있는 사람들 중에 내가 책임 있다고 스스로 물러난 사람이 있는가.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이 상황이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다음 단계(퇴진 이후)로 가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든다고 본다.
프레시안 : 새누리당이 4월 말 퇴진, 6월 말 대선을 당론으로 정했다. 4월 말 퇴진의 의미란 게 뭘까?
박원순 : 국민은 4월까지 기다릴 인내가 없다. 다시 말하면 지금 대통령이 새로운 총리를 임명해 내각을 구성하고 바로 물러나야 한다는 것인데,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든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이라든지, 이런 일을 앞으로 계속 하겠다는 것 아닌가. 국민들이 대통령을 불신했다고 하는 이유는 최순실의 악행 때문만이 아니다. 이를테면, 성과연봉제를 포함한 잘못된 노동 개혁, 외교적 현안 처리, 일본구 위안부 (졸속) 협상 등, 그리고 수많은 권위주의적 행태 그 모든 것에 대한 분노다. 그래서 국민들의 의지는 즉각 퇴진이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대구 서문시장에 간 것도, 지금 국민들이 '대통령이 와 줘서 고맙다. 위로가 된다' 이렇게 생각할 상황이냐는 것이다. 이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어떤 도덕적 윤리적 자격까지도 상실했다. 대통령이 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은 (오히려) 국정의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프레시안 : '질서있는 퇴진'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4월 대통령 퇴진 6월 대선, 이것이 과연 '질서 있는 퇴진'으로 볼 수 있을까?
박원순 : 대통령이 사임을 하면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로 간다. 문제는 지금 총리는 국민이, 야당이 동의할 수 없는 분이다. 그러니 그것을 빨리 정리해주고, 대통령이 가능한 빨리 사임해야 한다. 그게 국민의 요구다. 그렇게 되면 60일 이내에 대선을 치러야 한다. 어찌보면. 저희같이 아직 한참 국민을 설득하고 노력해야 하는 후보들 입장에서 보면 조기 대선은 굉장한 손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결국 국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다. 국민의 요구는 즉각 사임이라는 것이다. 4월까지 국민은 인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대통령의 즉각 사퇴 이후 60일 안에 대선을 치를 수 있을까?
박원순 : 헌법이 규정을 해놓은 것 아닌가. 헌법의 규정에 따라서 하는 것이다.
"민주당 '다음 대선 이긴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프레시안 : 국민들이 정치권에 대해 분노하고 실망하는 게 여권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야권에 대해서도 문제제기를 한다. 야당도 국민들의 바람을 제대로 실현시키지 못하는 것 아닌가?
박원순 : 지금 현명하고 바르게 정국을 리드하고 이끌어간다고 말할 수 없다. 오늘 이 사태도 마찬가지다. 본래 2일 (탄핵) 또는 늦어도 9일을 얘기했는데, 2일은 물건너가고 있는 상황이다. 국민들은 일주일 늦어지면 수백명이 생업을 두고 추운 겨울에 나와야 한다. 왜 그렇게 만드느냐. 야당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 과거 (지난 4월) 총선 때, 저는 야당이 표를 구할 염치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본다. 어쨌든 야당이 분열하는 상황이었지 않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어찌됐든 민주당을 제 1당으로 그리고 국민의당을 상당한 선전을 할 수 있는 구도로 만들어줬다. 야권을 다수당으로 만들어줬다. 그러면 야권이 힘을 합쳐서 연대와 협력으로 상황을 이끌어나가야 했다. '박근혜 게이트'는 이번에 폭로됐지만 이미 그 전에 (박근혜 정권의) 압정, 권위주의적 통치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이미 하늘에 닿아 있었지 않나. 그것을 해결했어야 했다. 이를테면 매국적인 한일 위안부 협정, 세월호 진상규명 등 국민들의 보편적 요구가 있었지만, 그것을 막거나, 진실규명을 못하고 끌려온 것 아닌가. 그런 면에서 물론 박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가장 크지만, 국민들이 야당에 대해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있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 지금 1차적인 목적인데, 이 목적을 위한 공조도 불안해진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야권이 정권 교체까지 이끌어갈 수 있을지, 국민들은 더 불안해하는 것 같다.
저는 야당, 우리 당(민주당)도 착각을 한다고 보는데, 다음에 우리 민주당이 이긴다는 착각이다. 물론 새누리당이 주저앉은 상황이라 합리적 예측일 수 있지만, 과거 상황을 보자. 제가 처음 서울시장에 당선된 2011년을 보면, 저는 무소속이었다. 아무런 정치 세력도 없는데, 거대 정당인 한나라당을 이겼다. 그리고 (2012년)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이길 것이라는 예측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한나라당(새누리당)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실제로는 안했지만 혁신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등 노력을 했다. 그래서 총선, 대선에서 (민주당이) 졌다. 이번 대선도 환경이 유리하다고 반드시 그렇게(승리) 갈 수 있을까? 경각심을 가져야 될 때다. 끝나지 않으면 끝난 게 아니라는 말도 있지 않나. 자만심 때문에 민심의 뜻을 수용하는데 머뭇거린다거나, 왜곡하거나 하면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다.
프레시안 : 일단 현재 상황에서는 야권이 우세한 지형이긴 하다. 야권 주요 대선 주자들도 있고 기대를 받고 있는데 박 시장도 그 중에 한 분이다.
박원순 : 제가 그렇게 포함되나요.(웃음)
프레시안 : 내년 대선 일정이 빨라질 것 같은데 포부가 있나?
박원순 : 글쎄, 저는 우선 이 상황에서 국가와 사회가 벼랑끝 위기에 처해있는데, 개인적 이해나 당파적 이해를 내세울 수 없다. 위기가 해결 되고, 파국이 정리되는 상황에서나 (대권 도전을) 고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시대에는 시대 비전이라는 게 있고, 국민적 요구라는 게 있고, 하늘의 소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콜링(요구, 소명)'이 있을 때 저는 (대선 도전이)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비전이 있는지 성찰해야 하는 때다.
"대선 주자들, '개헌 방안' 비전 발표 방식으로 선거 치를 수 있다"
프레시안 : 지금 박근혜 정권 퇴진과 함께, 또는 별도로 개헌이 논의되고 있다. 개헌을 한다면 1차적이고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박원순 : 대통령의 퇴진 평화로운 권력의 이행은 형식적으로 굉장히 중요하다. 나아가 낡은 구체제의 청산과 새로운 체제의 이행이라는 부분이 있다. 현상적으로 보면 개헌이라는 이슈다. 1987년 체제에서 2017년 체제로의 전환과 이행은 굉장히 중요하다. 권력구조를 어떻게 분권형으로 만들지, 국민기본권을 강화하고, 사회적 관심을 헌법에 어떻게 반영할지, 통일과 남북 관계에 관한 부분, 또 지방 분권에 관한 부분을 어떻게 포함시킬지 하는 부분을 논의할 분위기가 농익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여야간 견해가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당 안에서도 생각이 다 다르다. 이 국면 속에서 합의가 될 수 있으면 최고로 좋다고 본다. 이런 기회에 헌법의 개정도 함게 이뤄지면 좋겠다 생각은 하는데, 그게 과연 쉬울까 하는 생각이 한편으로도 있다. (개헌이 안되면) 다음 정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 후보들이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개헌 비전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대선을 치를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경제적 돌파구가 전혀 없는 상태고, 핵 위기도 있고, 미국의 권력 교체기도 있다. 99대 1의 사회를 해체하고, 보다 평등하고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비유할 바는 아니지만 예전에 명청 교체기에 우리는 위기에 처했다. 미국 정권 교체와 관련해 트럼프 정부를 설득해 남북 관계를 잘 풀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지금은 리더십의 공백기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물론 새롭게 선출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지만, 그 대통령이 도대체 어떤 정치, 어떤 비전을 갖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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