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주류 친박계와 정진석 원내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가 야3당과 당내 비박계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처리에 각종 지연·방해 전략을 쓸 조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탄핵 처리 소요 시간을 최대한 늘려보려는 듯한 각종 정치적·법적 논리를 만들어 유포함과 동시에, 물밑에서는 탄핵 표결의 '익명성'을 걷어내 '숨겨진 찬성표'를 아우팅(outing·강제 노출)시키는 전략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내 비주류는 '비상시국회의'를 구심점으로 해서 탄핵 지연 시도에 반발하고는 있지만, 여러 한계점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어쨌거나 야당과의 협상을 지휘할 지도부는 친박계라는 점, 또 그런 친박계와 '반기문'이라는 공통 이해를 가진 정진석 의원이 현직 원내대표라는 점, 그리고 128명의 현역 새누리당 의원들 중 과반이 친박계로 분류된다는 점이 번번이 비주류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당권도, 다수 여론도 갖고 있지 못한 비주류가 친박계의 탄핵 부결 시도를 대파하지 못한다면 현재 확보해 놓았다고 전해지는 찬성표 40개가 표결 일자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정현 "특검 후 부결" 주장 2일 후…정진석 "질서 있는 탄핵"
친박계가 '탄핵 지연' 전략을 수집했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은 이정현 대표의 지난 23일 기자 간담회에서였다.
당시 이 대표는 "검찰의 수사 내용으로 탄핵한다면 나는 특검할 이유가 없다.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한다면 지금 탄핵하면 안 된다"며 '특검 후 탄핵 추진'을 공개 요구해 논란을 일으켰다.
'즉각 하야'라는 국민적 요구와 동떨어져도 한참 떨어진 이 대표의 이날 주장은 '새누리당이 아직도 정국의 엄중한 정도를 모른다'는 빈축으로 이어지기에 충분했다.
이에 더해 25일에는 자칭타칭 '낀박'이라고 했던 정진석 원내대표도 사실상 같은 주장을 공식 석상에서 꺼내놨다.
정 원내대표는 당내 비주류의 요청으로 이날 오전 열린 의원 총회에서 "우리 당은 12월 2일 또는 9일 탄핵을 처리하자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면서 헌법재판소법 51조를 거론했다.
2011년 개정된 헌재법 51조(탄핵 심판 청구와 동일한 사유로 형사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경우에는 재판부는 심판 절차를 정지할 수 있다)에 따라 탄핵 소추안 처리 절차를 늦춰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정 원내대표는 "무조건 의결하는 것은 하책"이라면서 "헌재법 38조에 '180일 시간 규정'이 있지만 구속력이 없고 훈시 규정으로 해석된다는 지적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 기간에 예산 국회와 국정 조사에 집중하는 것이 바른길"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질서 있는 국정 수습이다. 탄핵 가부 문제가 아니라 이른바 '탄핵 로드맵'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우선"이라는 말도 남겼다.
정 원내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겉보기에는 탄핵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종합해서 따져보면 '특검 후 탄핵'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이 대표의 주장과 다를 게 하나 없는 주장이라는 게 중론이다.
'천천히 따져보자' '질서 있게 수습하자'와 같은 말들은 '탄핵 반대는 아니다'는 착시 효과를 노린 장치로서의 표현일 뿐, 실제 속내는 최대한 탄핵 절차를 길게 끌어 다른 정치적 이해를 누리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검사 출신의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대변인은 "질서 있는 탄핵론은 박 대통령이 피의자로 입건되었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하려 드는 궤변"이라며 "탄핵은 박근혜라는 개인에 대한 절차가 아니라 대통령의 헌법과 법률 위반을 근거로 파면 여부를 결정하는 절차다. 개인에 대한 형사 절차와는 전혀 다르다"고 지적했다.
친박, 히든 탄핵 찬성표 확인하려 의총 불참했나
이날 의총에는 새누리당 의원 128명 중 60여 명만이 참석했으며, 특히 조원진 이장우 최연혜 최고위원 등 친박계 지도부마저 아예 불참했다.
아무리 비주류의 요구로 소집된 의총이더라도 최소한 당 지도부는 계파와 무관하게 참석해 소속 의원들의 의견을 듣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나, 이날은 그조차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아울러 당내 최다선 의원으로 '어른'이라는 호칭이 붙기도 하는 친박계 서청원 의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친박계의 이 같은 의총 보이콧 또한 '히든(hidden·숨겨진) 탄핵 찬성표'를 미루어 짐작하기 위한 것 아니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여러 이유로 탄핵 소추안에 대한 공개적 찬성 입장은 낼 수 없지만, 무기명으로 진행될 표결 때에는 찬성표를 던지려 하는 의원들의 숫자에 야당은 물론 당내 비주류도 적지 않은 기대를 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친박계가 비주류의 요구로 소집되어 탄핵 가부가 주요하게 논의될 것이 자명했던 의총에 보이콧한 것은, 히든 탄핵표를 노출시키는 '탄핵 부결 전략' 중 하나였다는 지적이다.
비주류의 김영우 의원은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을 만나 "친박계 의원들이 나오지 않은 것은 굉장히 비정상적"이라며 "중차대한 시기에 오랜만에 의총이 열렸는데 치열하게 논쟁을 하며 몸부림이라도 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책했다.
하태경 의원 또한 "국정을 최대한 정상화시키라는 것이 국민의 명령이고 그것이 바로 탄핵"이라며 "탄핵에 대해 오늘 결론을 내지 말고 다음 주에 다시 탄핵 의총을 열어 조기 탄핵에 동의하는 방향으로 당론을 정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정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이 친박계의 집단적 불참으로 '반쪽' 개의됐음에도 '재소집을 하자'는 의총 참석자들의 요구에마저 결국 호응하지 않았다.
정 원내대표는 대신 "국회의원 개개인이 헌법 기관"이라는 대명제를 앞세워 "탄핵 문제는 의원들의 양심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 탄핵 의총은 더 없을 수 있다는 얘기다.
정진석, 굳이 '폐족' 친박 편에 서는 이유는…
정 원내대표는 이처럼, 실제 의도가 어떠하든, 큰 틀에서 친박계의 이해를 대변하는 듯한 언행을 반복해서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22일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이날 한 일간지 인터뷰에서 친박계의 '작전 회의'를 거론한 것이 주목된다.
남 지사는 인터뷰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 서청원·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친박계 중진들이 요즘 매일 회의를 열고 당내의 탄핵·탈당 움직임을 막느라 혈안이 돼 있다"면서 "작전 회의를 당장 중단하라"고 했다.
친박계 중진들인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서청원 정우택 유기준 원유철 의원 등은 전날 여의도의 한 커피 전문점에 모여 의총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신7인회'라는 별칭마저 붙은 이들이 물밑에서 의총 보이콧 전략 수립이나 '특검 후 탄핵' 논리 생산 등의 역할을 하고, 정 원내대표와 의견 교환을 하는 중 아니냐는 시선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지적은 정 원내대표가 '낀박'이라고 자기 호명을 하는 것과는 별개로,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라는 제 목표를 위해 친박계와 정치적 행보를 함께할 상황이라는 배경 속에서 더 큰 설득력을 얻는다.
이미 오래 전부터 차기 유력한 대권 주자가 없는 친박계는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와 같은 분권형 개헌을 한 후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충청권 출신의 정 원내대표 또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와의 대화를 수차례 공개하는 등 "충청권 거물 정치인"역할을 자임해 왔고 '반기문계'라는 타이틀도 붙어 있다.
그는 지난 4일 의원 총회에서는 "당이 버림받게 생겼는데 반총장이 새누리당에 오겠느냐, 누가 오겠느냐"라는 '솔직한 걱정'도 털어놨으며, 지난 9월 미국을 방문해 반 총장과 면담을 한 후에도 연일 '반기문 대망론'에 불을 지폈다.
반기문 대통령 만들기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정 원내대표와 친박계가 현 국면에서 '연대'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니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에서도 "헌법 개정 없이 차기 대선을 치른다면 다음 정부에서도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비극은 재연되고 말 것"이라며 "대통령 탄핵과 함께 추진하는 게 맞다"고 했다.
'질서 있는 탄핵론'과 종합하면 정 원내대표의 복안은 반기문 총장의 1월 귀국 후 정치적 진지 구축에 필요한 '시간 끌기'일 것이라는 설명으로 연결된다.
친박계처럼 박 대통령에 대한 절대적 충성으로 탄핵 부결을 의도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차기 권력을 제 손으로 창출하기 위해 계산기를 두들긴 결과로서 탄핵 지연 전략을 친박계와 연대 구사 중이라는 지적이다.
정 원내대표의 개헌론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반발이 나온다.
김영우 의원은 이날 의총 후 기자들을 만나 "최순실 사태는 개헌하고 관계가 없다. 이것은 대통령의 권한이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대통령으로서의 소양, 공식적인 시스템 문제"라며 "탄핵 절차와 시기를 늦춘다든지 회피하는 그 어떤 모습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