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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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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 사이

[서평]이대근 칼럼집 '와이키키브라더스를 위하여'

1. '거리의 정치'를 예언하다.

"정치 현실이 이렇다면, 자기의 욕구와 이익을 대변할 정당을 잃은 이들은 권력과 직접 마주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은 의사당에서 만나지 않을 것이다. 아스팔트. 다시 거리의 정치인가."(2008년 4월 17일, 54퍼센트가 말하는 것, 125면)

선거에 떨어지고 난 다음주 목요일, 버릇대로 이대근 칼럼을 기다렸다. '거리의 정치'라고 했다. 순간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예감이 그랬다. 얼마 후 이명박 정부는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적 수입을 발표했다. 5월 2일부터 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이대근 기자가 예견했듯, 다시 '거리의 정치'가 시작된 것이다. 나는 이 칼럼이 이대근 기자의 가장 기념비적인 칼럼이었다고 생각한다.

▲ 후마니타스 간 '와이키키브라더스를 위하여'

그는 독립 언론인으로서, 지식인으로서 끊임없이 발언하고 조직한다. 대선 이후인 2008년 1월 3일 그 칼럼 제목은 "지금 버리고 조직하고 발언하라"다. 그때 그는 "계급배반 투표"를 말했다. 이런 투표의 흐름은 대선에서 총선으로 이어졌고, 정치의 실패로, 정당의 실패로 연속됐다.

이대근은 <경향신문>에서 정치 국제담당 에디터로 일한다. 그는 '작지만, 강한' 신문사에서 늘 거대담론과 시대적 흐름을 조직해 왔다.

지난 3년 동안 '한국인의 자화상', '진보개혁의 위기', '지식인의 죽음', '기로에 선 신자유주의' 등의 기획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리고 그 기획은 대부분 한국 언론사의 중요한 한 획이 되었다.

이런 그가 지난 5년간 <경향신문>에 격주로 쓴 칼럼을 모아 책을 냈다. 제목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2. 정당의 실패가 근본문제다.

문제는 정치요, 정당이다.

이대근이 말하는 정치는 이렇다.


"(정치란) 인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규칙을 만드는 활동이다." (20007년 1월 4일, 노무현 정권에는 정치가 없다, 183면) 하지만 "잠시라도 한눈팔면, 무너지는 매우 허약한 것이다." 또한 정치체계란 "인간의 욕망과 욕망이 서로 충돌하고 경쟁하도록 제도화하고, 그 결과로 자원을 배분하게 하는 메커니즘이다."(2008년 4월 3일, 주막당, 194면) 그래서 "정책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경쟁, 갈등, 협력"이 요구된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치는 계급과 위임의 부조화다. "라면값 100원 인상문제를 왜 35만 원짜리 비눗갑을 쓰는 이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건지. 왜 가난한 이들은 자기의 슬픔과 분노와 고통과 꿈을 부자들에게 의탁해 풀려고 하는지. 왜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는 이렇게 어긋나고야 마는지."(2008넌 3월 6일, 라면값 걱정하는 부자들, 28면)

그리고는 이대근 특유의 잠언투로 마무리 한다. "이 부조화, 어긋남이 목엣 가시처럼 불편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사람들이 지쳐가던 2008년 9월 4일, 그 칼럼 제목은 '불안한 세상, 평온한 민주당'이다. 글은 직설적이고 거침이 없다. "새로운 전투는 패잔병에게 맡기는 법이 아니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 등 그간 모든 선거에서 패배를 거듭해 온 민주당에 대한 충고다. "야당,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민주당을 전면 쇄신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이 너무 평온하다."(167면)

칼럼집을 내면서 출판사는 '한국 정치에 대한 긴 대화'라는 제목으로 이대근과의 대담을 실었다. "민주당은 민주화 운동 세력의 잔당이다. 민주당은 파탄난 지난 10년 정권의 잔존세력이 생존을 위해 재결집한 당이다."(281면)

이미 그는 2007년 9월 13일 '신당, 그 무덤에 아무도 초대 말라'라는 글에서 "자기 원칙과 노선, 정책을 견지하며 외롭더라도 꼿꼿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 비장함이 죽은 열정을 살려 태풍을 몰고 올 수 있다.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미래가 있는 패배'는 할 수 있다. '올바른 패배'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번 칼럼집을 내면서 각 칼럼 마다 간단한 후기를 적었다. "정말 불행하게도 열린우리당 혹은 대통합민주신당에 대한 비관적 예측은 거의 틀린 적이 없다. 필자가 족집게이거나 예측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 당이 그렇게 실패의 구조를 완전하게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172면)

그가 정치칼럼을 쓰면서 꼭 지키고자 하는 자세는 "차가워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과 이념, 가치, 정치적 견해가 같다고 편들기를 하거나 옹호하는 순간 신문과 정치를 모두 죽인다.... 추구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해야 하고 그것을 향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고는 비판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뜨거운 가슴, 차가운 머리,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냉정과 열정'이 그의 무기다. 진보정당에 대한 그의 뼈아픈 지적이 그렇다.

"크든 작든 기득권을 지키려 하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며, 세상 물정 모른 채 고루한 것에 집착하고, 도전을 두려워하는 현상을 우리는 보수적이라고 한다. 그래도, 민노당은 진보적인가."라고 물었다.(2007년 11월 22일, 민노당은 진보적인가, 141면)

그는 '정당의 실패'가 근본문제임을 제시한다.

"진보는 아직도 자기 의사를 대표하고, 의견을 조직할 정당을 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정당을 찾지 못하고 진보가 보수당을 선택하는 왜곡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한마디로 '시민의 배반'이 아닌, '정당의 실패'가 문제였다."(139면)

그러면 한국 정치의 최대 문제는 무엇일까?

"왜 우리는 두 개의 가치가 서로 경쟁하고 실현 가능한 대안들을 놓고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정치를 하지 못하는가. 다른 정치적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 정치체제의 완고성, 이것이 바로 한국 정치의 최대 문제다."(261면)

3. 노무현, 이명박에 대한 차가운 시선

먼저 노무현에 대한 그의 비판은 5년 임기만큼이나 질기다. 그가 생각하는 노무현의 핵심은 "해체주의 정치"다. 이는 "집권세력의 자기분열증의 결과다."(45면)

노무현 정부 들어 "옳음과 그름,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불분명해졌다. 이렇게 신뢰의 위기는 정부에서 전 사회로 확산"되게 됐다.(88면) 이대근이 보기에 노무현은 "앞만 보고 뚜벅뚜벅 가지도 않았고, 원칙과 가치, 노선대로 하지도 않았다. 좌파든 신자유주의든 상관 않고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마음 내키는 대로 '실용적'으로 해왔다.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원칙과 대의 운운하며 누구를 가르치겠다는 것인가."(2007년 5월 10일, 노무현의 롤러코스터 정치, 152면)

2006년 11월 29일의 칼럼이다. "걸핏하면 '못하겠다' 툭하면 '내놓겠다' 푸념하는 대통령." 제목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채 1년도 되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 또한 날서있다. 그 비판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노무현과의 비교로부터 출발한다.

"다른 사람의 가슴에 상처를 주는 사려 깊지 못한 말투, 별 것 아닌 일로 시민들을 놀라게 하는 돌출 발언, 직설적이고 거친 거리 언어의 구사, 누구를 닮은 것 같은가."(2008년 3월 20일, 누가 이명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있나, 51면)

"노무현은 선거 과정에서 위임받은 과제를 버려두고 스스로 선정한 의제에 매달리다 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명박은 자기가 무엇을 위임받았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정책 논쟁이 없었으니 국가 운영 방향을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2007년 12월 6일, 정권교체를 위하여, 121면)

2008년 5월 15일 촛불이 한참 타오를 무렵,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여섯 가지 실수'라는 제목의 칼럼을 생산한다. 그는 예언했다. "그의 성공신화가 그와 그의 정부, 그리고 우리 모두를 힘들게 할 것이다."(48면)

이대근의 눈에 이명박 대통령은 "머슴이 주인되고, 주인이 머슴"되는 형국이다.(46면) 그래서 물었다. "시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시민을 반국가 세력으로 모함했다. 적반하장이다. 누구의 국가인가. 시민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그의 국가인가. '다른 국가'를 꿈꾸며 국가를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 그는 누구인가. 이명박 대통령의 국가 정체성을 묻는다."(2008년 6월 26일, 이명박의 국가정체성을 묻는다, 65면)

4. 포용은 운명이다.

사실 이대근은 '북한 군부의 정치적 역할'로 박사학위 논문을 쓴 사람이다. 지난 시절의 일이다. 국회를 출입하던 한 경향신문 기자가 필자를 통해 국회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곤 했다. 어느 날, 목록을 훑어보았더니 국제관계, 남북관계 등에 대한 전문서적들이었다. 넌지시 농담을 건냈다. "무슨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합니까? 기자를 그만 둘 모양이죠?" 그때는 그냥 웃기만 했다. 나중에서야 진실을 알았다. "사실은 내가 본 게 아니라 우리 신문사 정치데스크가 빌려봤던 책들이었다."

연찬의 흔적들이 한미동맹, 남북관계에 대한 칼럼으로 나타났다.

그는 한미동맹 만능주의자들에 대해 강력하게 경고한다. "이명박 사람들은 한미 관계만 잘되면 우리의 안보와 평화도 다 잘된다는 동맹만능론에 너무 빠져 있다." 그의 말이다. "정권교체는 북한 정부를 남한 정부로 바꾸는 것도 아니고, 한국 정부를 미국 정부로 교체하는 것도 아니다. 정말이지 우리는 영혼을 교체할 생각은 없다."(2008년 1월 31일, 정권교체인가 영혼교체인가, 116면)

그런데도 "이명박은 취임하자마자 미국에 주권 일부를 넘긴 대통령이 되었다. 따지기는커녕 미국 앞에 무장해제 되었다."(212면)

그가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한미관계는 이렇다. "피할 수 없다면, 갈등을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시민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고 국익도 지키고 지속 가능한 한미 관계를 담보하는 길"이다.(212면)

그는 포용정책을 "운명"이라 여긴다. 북한은 "무겁다고 내려놓을 수 없는 짐이다. 북한의 기아, 위기, 고통에 대한 연민과 동정이 우리 마음 구석에서 꿈틀거리는 한 우리는 북한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포용정책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포용정책의 포로다. 바꿀 것도 수정할 것도 재검토할 것도 없다."(2006년 11월 12일, 포용정책은 유죄인가, 249면)

그래서 압박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압박은 북한 문제, 남북문제 이전에 우리 자신의 문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시민이 되기를 원하는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2008년 7월 24일, 갑을관계에 갇힌 대북정책, 236면)

우리 사회의 핵무장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이 있다. "핵이라는 신의 강림인가. 우리 모두 비핵화의 가면 속에 핵에의 열정을 숨기고 있었던 것인가. 북핵 실험이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핵의 구원'을 갈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한반도 비핵화는 사기였나 보다."(217면) 그렇다. 지금도 국회에서 우리의 핵무장을 주장하는 한나라당 의원이 여럿 있으니 말이다. 북핵실험이 있었던 2006년 10월의 글이다.

하지만 그는 낙관적이다. "미래는 당사자들이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고정관념이다."(256면) 그래서 북핵 폐기를 위해 다함께 노력하자는 것이다. "과잉대응은 금물이다.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대화다."(244면) 그렇다. 대화와 관용이다.

5. 낭만에 대하여

뜨거운 열정은 남다르되, 차갑고 냉정한 시선을 가진 그에게도 따뜻한 가슴은 있다. 그는 동화의 비유를 즐겨 인용한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동화가 상당히 흥미 있는 장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008년 8월 21일자 칼럼은 '전국노래자랑'이다. 재밌는 후기를 달았다. "초등학교 6학년 큰딸 수련이는 이 글을 보고는 단박에 '아빠는 위선적'이라고 공격했다.... 일요일도 출근하느라 낮에 집에서 TV를 볼 일이 없는 아빠가 남들에게 일요일 낮 집에서 TV를 보라고 하는 것은 이중적인 태도가 아니냐는 항변이었다. 유구무언. 사실 <전국노래자랑>은 필자가 일요일 점심 때 신문사 근처 식당에서 즐겨 보는 프로그램이었다."다. 그때는 제대로 항변하지 못하고 후기의 조그만 글씨로 먼 훗날 딸을 위해 기록해 둔 가슴이 콩알(?)만한 사람이다.

영화제목이 칼럼제목이 됐고, 책 제목이 됐다. 3류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그곳에서 그는 보통사람들의 삶과 행복을 엿보았다. 정치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좌절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정치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 제목으로 삼았다고 했다. 2006년 8월 31일자 칼럼 제목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다. 그것이 바로 그가 꿈꾸는 정치다. "아무리 고고한 이상을 좇고, 날카로운 이성을 숭배한들 '서러운 세월만큼 안아 주세요'하는 감정 절제도 없고, 끈적이고 경박스럽기까지 한 속된 유행가 가락과 술 한 잔에 중년의 사나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은 왜인가."(32면)

원고지 11매로 이루어지는 기명 칼럼은 사실 따지고 보면, 이대근 본인의 말대로, 지극히 파편적이다. 당시의 시사성에 얽매인 나머지 시대적 보편성을 획득하기는 더욱 어렵다. 특히 대한민국 정치판처럼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생각이 중복될 가능성도 높다. 사유의 한계 때문이다. 일관성을 유지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생각이 변하기 때문이다.

5년 전의 활자가 지금의 활자로 되살아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이대근 칼럼은 이런 한계와 불편함을 넘어섰다. 파편이 모여 하나의 모자이크가 되었고, 그 모자이크는 우리가 꿈꾸는 보통 사람들의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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