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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노무현을 아느냐"

[고성국의 정치in] 차성수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2009년을 맞는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각오는 남달랐다고 한다. "선거에 신경 쓰지 않고 소신 있게 국정에 매진할 수 있는 유일한 해"라는 말에 일종의 비장감마저 묻어났다. 정권으로서는 가장 힘 있는 집권 1년차를 '쇠고기 촛불'의 덫에 걸려 흘려보낸 셈이니 오죽 답답했겠는가. 그러나 '답답함'으로 풀어갈 국정이 아니었다. '촛불' 때문에 못했던 걸 속도전으로 밀어붙인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이명박 정부의 조급증과 밀어붙이기는 새해 벽두부터 '용산참사'를 일으키더니 급기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라는 사상 초유의 비극적 사건으로 이어졌다. 500만 명이 넘는 추모인파의 의미는 이같은 정치흐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국민장은 끝났으나 추모 분위기는 식지 않은 6월 초의 어느 날 오전, 참여정부의 시민사회수석으로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한 차성수 동아대 교수와 마주 앉았다.

▲ 노무현 정부 시절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차성수 동아대 교수 ⓒ프레시안

"이렇게 많은 추모 인파를 예상했나?"
"예상 못했다. 지지자들이 모일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지지자를 넘어서 참여정부 기간 동안 등을 돌렸던 분들까지 찾아올 거라고는 솔직히 예상 못했다."


"추모하는 국민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참여정부에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우선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이었다. 대통령의 책임으로 떠넘기고, 참모들이 주도적으로 끌고 가지 못한 점이 있었다.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그분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한 데 대해 죄송한 마음이다."


"대한문 앞 분향소 철거 등에 대한 항의도 있었는데?"
"전체 흐름에서 보면 큰 문제는 아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었고 거기에 일부 경찰이 과잉반응 했지만 시민들이 다 복원했다. 시민이 힘을 합치면 거대한 물결이 된다. 이런 것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민주화 10년'이 뿌려놓은 성과다."

MB 정부,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차 전 수석은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기 때문에 경찰의 분향소 철거 등은 큰 흐름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정부도 국민장을 치르는 데 잘 협조해 줬다고도 했다. 그러나 아쉬움이 없을 수 없었다. '대통령의 사과'대목에서 그는 한숨을 쉬었다. 얘기가 검찰 수사로 가자 반응이 좀 더 격렬해졌다. 오랜 교수생활로 단련된 절제된 어법이었지만 감정이 묻어나오는 것을 어쩌지는 못했다.

"검찰수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검찰수사가 과잉이었다. 목표가 미리 정해져 있었고 표적수사에 가까웠다."
"표적 수사 했다면 뭘 노리고 한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의 도덕성을 추락시켜 참여정부가 가졌던 역사적 성과를 무너뜨리는 것, 그래서 제2, 제3의 새로운 노무현이 등장하지 못하도록 우리 정치판에서 비주류라고 지칭될 수 있는 세력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 아니었을까?"
"누가 그랬다고 보나?"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집권세력 전체가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추진하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제어하고 막지 않은 측면이 있다."
"상황이 그랬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심정은 어땠을까?"
"정치인으로서 좌절도 컸겠지만 마지막까지 의연하게 대처하려 하셨다고 생각한다. 임기 말에 대통령으로부터 자주 들은 이야기가 '역사는 강물과 같은 것이어서 때로는 거꾸로 흐르고, 천천히 흐르기도 하지만 결국 바다로 향해 간다'는 것이었다. 새 정권에 의해 (자신의 가치가) 부정되고 왜곡되더라도 큰 틀에서는 바다로 갈 것이다. 거기에 '작은 단초나마 씨앗을 남기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런 생각이었다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극단적 선택이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 말씀대로 어느 정도 왜곡되고 거슬러 갈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사실 대못이 무참하게 뽑히는 과정들을 경험했다. 가장 상징적인 것이 종부세다. 거기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굴욕적인 수사가 있었다. 대통령께서 버틸 수 있는 한 뼘의 땅조차 허용되지 않았지 않은가."
"어느 정도 역류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그렇다. 예를 들면 탈권위주의 민주화 부분에서 굉장히 애를 쓴 것 중 하나가 권력기관들, 국정원, 검찰, 국세청에 독립성을 준 것이다. 실제로 한쪽에서는 끊임없이 '권력을 이용해서라도 개혁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지만 단호히 거부해왔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 허망하게 뒤집어져 버렸다."
"정치적으로 순진했다는 평가가 있다."
"동의할 수 없다. 역으로 그런 권력기관들을 통제해서 반대자를 제압하려 했다면 사회 전체가 변화하고 발전하면서 선진화로 가는 데 있어 역작용이 훨씬 더 컸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정적이나 정치적 비판자를 제압하는 행태가 국민들에게 구태로 비쳐지는 것을 보라."

"유시민 전 장관은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할 수 없어서 분하다'고 했는데."
"'복수'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다. 그러나 꼭 '복수'라고 표현해야 한다면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 기틀을 만든,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 10년이었다는 평가를 받는 게 진정한 복수가 될 것이다."

최근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의 화두는 민주주의 위기다.

"최근 민주주의 위기론이 제기되고 있는데?"
"위기다.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있을 만큼?"
"나도 엊그제 했다."
"80년대 하던 시국선언이 꼭 다시 나와야 하나?"
"할 수밖에 없다. 막기 힘들다. 그만큼 절박하게들 생각한다. 문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것을 '1700명 중에 120명쯤이야'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소통은 끝이다."

청와대의 대처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계속된다.

"7대 종단을 부르는데 조계종에서 불참을 선언하니까, 수습할 생각을 안 하고 '그러면 당신들은 참석하지 마라. 우리끼리 하겠다'는 식으로 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권력의 조기 쇠퇴를 자초할 것이다. 작년의 촛불 시위나 근래의 이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이명박 정부는 정책의 목표와 성과를 내는 시기를 놓치게 된다. 국가의 미래로 보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차 교수도 국정에 참여해 봐서 알 것이다. 국정 운영에 있어 법질서를 유지하고, 핵심국정현안을 힘 있게 추진하는 것은 당위 아닌가?"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특히 반대 의사 표명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된다. 노 대통령은 이 점에서 확고하게 원칙을 고수하셨다. 대표적인 게 이라크 파병, 한-미 FTA 문제였다."
"막으려 한 적이 없다?"
"예를 들겠다. 참여정부도 저지선이라고 해서 만들었다. 그러나 효자동에서 시작해서 폴리스라인을 만들지, 광장 자체를 봉쇄하거나 시민들의 통로를 차단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정도의 차이인가, 질적인 차이인가?"
"질적인 차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원칙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반대의 자유가 대통령의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고 생각했다. 한-미 FTA를 예로 들면, 반대 세력이 많을수록 우리가 협상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도 많다고 생각했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인기와 관련해서는 치명적일 수 있었지만 그것을 감수하고서라도 받아들이는 게 맞다는 입장이었다."

MB "참여정부 활용은 활용대로 하고, 대못은 대못대로 뽑고"

대통령을 모셨던 수석비서관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의 철학과 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차 전 수석의 얘기에는 짚어볼 만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참여정부는 결과보다 프로세스에 신경을 많이 쓴 정권이다. 정책의 성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속도전으로 상징되는 이명박 정부의 성과주의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과정관리를 하는 전담 부서가 있었나?"
"모든 부처가 과정을 중시했다. 대통령의 주 관심사였기 때문에. 청와대 안에서는 대체적으로 시민사회수석실이 다양한 여론 수렴의 통로역할을 감당했다."

시민사회 수석실은 이명박 정부 들어 없어졌다. 차 전 수석은 시민사회 수석실이 시민 참여의 통로가 되고, 정부 입장에서는 정책 과정이 제대로 잘 진행되는지 체크하는 기능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시민사회 수석실이 선임 수석실 역할을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과정관리와 관련해 특별히 생각나는 사례가 있나?"
"서해안 특별법이 생각난다. 자연 환경을 파괴하기 쉬운 그런 법에 대해 이런 저런 우려들이 환경단체에서 많이 제기됐다. 이 법은 대통령이 입법 과제로 추진하려 했는데, 우리 수석실에서 환경파괴 우려에 대한 부분을 정면으로 문제제기 했고, 대통령이 그것을 받아들여 재검토 지시를 했다. 임기 말에 '서해안 특별법'이 '동서남해안 특별법'으로 변질됐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하자 한나라당, 민주당이 비공식 협상을 통해 차기 국회에서 보완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약속은 지켜졌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17대 국회에서 한 약속을 18대 국회에 묻기는 어렵지 않나?"
"정당과 약속을 했기 때문에 책임 있는 정당이라면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국회의 책임을 물으려면 대통령과 청와대부터 먼저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하지 않나. 국정운영 차원에서."
"당연하다. 책임문제에 관한 한 노 대통령은 참으로 존경받을 만한 분이다. 노 대통령은 다음 대통령에게 짐을 떠넘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DJ 정부로부터 넘어온 카드사 부실 문제가 참여정부 출범 직후부터 정말 큰 부담이었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노 대통령은 임기 후반기가 시작되자 '다음 정부에 부담을 넘기지 말라'는 말을 계속했다. 다음 정권에 부담될 만한 문제가 어떤 것이 있는지 '체크리스트'까지 만들었다. 2007년 크리스마스이브 때, 대통령이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한-미 쇠고기 협상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했다. 결국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그런데도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 설거지론'을 주장했다. 정말 답답했다. 다음 정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생각이었는데, 무슨 '떠넘기기'냐."
"이명박 대통령은 '떠넘기기가 없었다'는 말에 동의할까?"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 전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에서 지난 10년간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의 경제 위기 극복 정책을 예로 들며 「그 결과 지금 우리 경제는 탄탄하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우리가 외환 보유고 확보 등을 통해 다음 정권에 넘기지 않아서 없어진 '빚'은 '빚'대로 활용(경제 위기 극복)하고 대못(종부세 등)은 대못대로 뽑아버렸다."

▲ 노무현 정부 시절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차성수 동아대 교수 ⓒ프레시안

"인수인계? MB쪽에서 거부, 요청도 안했다"

노무현 정부를 얘기하면서 인사 문제를 빼 놓을 수는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코드인사'라는 비판 때문에, 지금 이명박 정부가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라고 시달리는 것 못지않게 시달렸다.

"인사문제에도 원칙이 있었나? 인사가 노 대통령과 가까운 정도에 따라 이뤄졌다는 게 통설인데."
"내가 그런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는 않았지만 사람 쓰는 데 있어 합리적으로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점만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초기에는 이런 저런 오해의 소지가 있었지만, 인사시스템이 구축된 후에는 능력과 자질을 기준으로 인사가 이뤄졌다."
"'청와대 들어가니 빈 컴퓨터만 남았더라. 인사 파일도 하나 없더라'는 얘기가 있었다. 인사 파일은 원래 안 넘겨주나?"
"인사파일을 넘겨주는 관행은 없다.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다."
"그럼 이명박 정부는 뭘 인수인계 받았나?"
"참여정부가 남긴 기록물이 800만 건이 넘는데 95% 이상은 검색해서 볼 수 있는 것이다. 청와대에서는 다 볼 수 있다. 그걸 활용하면 정책이 어떻게 운영됐고 어떻게 진행됐는지, 그리고 지금 어떻게 돼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그 자료들을 안 봤나?"
"그런 것 같다.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로 참여정부를 무능력하고 실패한 정권으로 규정하지 않았나.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정당하게 평가해서 인수인계 받지 않았다."
"인수자-인계자 간에 핫라인도 없었나?"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애초에 수석실별로 별도 인수인계를 하려고 했는데 저쪽에서 거부했고 요청하지도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낮은 지지율로 고생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도 중반 이후 국정 지지율이 낮았다. 그 이유를 차 전 수석은 이렇게 설명한다.

"정치공학적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대해 대통령 스스로 거부감이 있었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초기에는 입법이 적었지만, 3년차부터는 그동안 준비한 입법안들을 내놓았다. 이같은 정책 과정 중시가 국민들에게 이해되었는지 임기 말에는 지지율이 30%까지 올랐다."

자기 길을 '뚜벅뚜벅' 간 결과라는 것이다. 그런데 묘하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이명박 정부도 그런 입장 아닌가. 일희일비 하지 않고 가겠다고 하지 않나?"
"자기 길을 가는 것이 여의도 정치나 국민과 불통하는 것은 아니다. 당정 분리를 통해 여의도 정치와 정치적 거리를 두더라도 정책 측면에서 국민들과 소통하고 여론 수렴하는 과정을 거치는 게 중요하다. 입법이 3년, 4년차에 많아진다는 것은 입법 절차를 2년 이상 거쳤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입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되면서 오도 가도 못하는 형국이 된 것 같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새 출발하겠다는 각오와 의지가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국민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모든 문제를 푸는 출발점이다."

"5년 단임제가 노무현 조급하게 해"

노무현 대통령의 역사적 공에 대해 그는 네 가지로 정리했는데 막힘이 없었다. 정리에 적지 않은 시간을 들인 듯 했다.

"첫째, 민주화와 탈권위주의, 둘째,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노력, 셋째, 대북관계를 햇볕정책이라는 화해 정책에서 평화와 번영이라는 동북아 평화 정착 정책으로 발전시킨 점, 넷째, 미래 지향적 사회 투자의 틀을 만들려 한 것. 이 네 가지가 대통령의 역사적 공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다 중·장기적 과제들이다.

"이런 일들을 임기 중에 다 하겠다고 했나?"
"그랬다. 그런데 막상 청와대에서 일하다 보니 5년 단임제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국정과제의 연속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누구 좋으라고 하는 얘기가 아니다.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서 개헌은 꼭 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과'는?"
"가장 큰 것으로 5년 단임제라는 권력구조가 대통령을 굉장히 조급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대연정을 서둘렀다던가, 세력을 확보하고 충분히 공감하면서 정책을 펼치는 게 아니라 앞서가면서 뒤따라오게 한 측면이 있다."
"노 대통령의 언행에 대한 비판도 많았지 않나?"
"그 부분은 가장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사실 좀 억울한 부분도 없지 않다. 조중동의 봉쇄를 피하기 위해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것이 대통령이 선택한 방법인데 그러다보니 국민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어법과 감각이 사용될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도 그걸 편하게 생각하신 것 같고. 사실, 이 점은 부정적으로만 볼게 아니라 시민참여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퇴임 후 행보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 있나?"
"물론이다. 살아 계실 때 이런 저런 노력을 많이 하셨다. 민주주의 2.0도 그렇다. 미래전략 연구소 같은 싱크탱크도 그렇고. 이제 막 시작하려는 참에 대통령이 불의의 변을 당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제들은 노무현을 계승하려는 모든 사람들의 과제가 되어야 한다. 친노 진영만의 과제로 좁혀서는 안 된다."

▲ 노무현 정부 시절 시민사회수석을 지낸 차성수 동아대 교수 ⓒ프레시안

"민주당, 너희가 노무현을 아느냐?"

참여정부의 집권당은 열린우리당이었다. 열린우리당은 전국정당화를 표방하며 출범했다. 지금의 민주당은 전국 정당을 지향했던 그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면서 탄생했다. 노 대통령은 민주당을 어떻게 봤을까?

"노 대통령의 말씀이 기억난다. '결과를 놓고 이야기하지 말자. 호남당이랄지 이런 것을 얘기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어떻게 질서 있게 변화하느냐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열린우리당이 해체된 것보다 해체된 과정에 주목했다는 말이다. 전국 정당의 '꿈'이 날아간 것보다, 그 꿈이 날아가는 과정을 보고 실망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자. 아무리 과정을 강조해도 열린우리당의 주류, 민주당의 주류가 모두 '호남'이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차 전 수석도 이를 인정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 대통령은 어떤 노력을 했을까?

"키워드는 사람이었다. 영남에서 지역구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봤다. 그래서 다소 무리한 인사를 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합류한 경남지사 출신인 김혁규 의원을 총리로 지목했는데 그렇게라도 해야 지역주의를 넘어설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결국 실패하지 않았나?"
"2004년 총선 지지도를 보면 호남에서 55%(열린우리당)대 35%(한나라당)였다. 영남에서는 역으로 55%(한나라당)대 37%(우리당) 정도 됐다. 최소한의 경쟁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90%대 10% 같은 패권주의가 17대 총선에서는 일시적으로나마 위축됐다. 그런 정신이 계승되고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미세 조정되면서 진행됐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 추모 흐름을 타고 영남 친노 세력이 정치를 재개해 영남지역에 교두보를 마련하는 것도 대통령의 구상을 실현하는 한 방안이 될 수 있나?"
"지금은 정치세력화를 얘기할 때가 아니다. 생각 있는 사람들은 다들 정치 세력화가 공학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통령이 당신의 몸을 던지시면서까지 이루려고 한 것에 대한 정당한 평가, 그것을 체현하려는 자기반성이 전제가 안 된 상태에서 당장의 추모 분위기를 이용한 세력화는 바람직하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세력화 생각하는 사람들이 전혀 없나?"
"전혀 없지는 않다. 왜 없겠는가, 정치판인데."

민주당은 어떨까, 민주당은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서거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역풍'이 현실화 될 위험은 없을까? 차 전 수석도 민주당에 우려를 표했다.

"민주당은 2006년 이후로 끊임없이 '탈 노무현'을 기조로 움직여 왔다.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는 과정도 그 연장선상에 있었다. 그에 대한 자기반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민주당은 국민장 기간에 상주를 자임했었는데."
"자임하는데 하지 말라 하기는 어려운 것 아닌가? 민주당은 그래도 대통령이 끝까지 함께 하려고 했던 정당이다. 이런 저런 불만이 있긴 하지만 함께 가야 할 세력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통령은 민주당이 참여정부의 성과를 계승했으면 하는 기대를 끝까지 가지고 계셨던 것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큰 틀에서 노무현 세력과 민주당이 함께 할 것이라고 생각해도 되나?"
"그렇게 가야 하지 않겠나. 아직은 막연한 기대지만."
"민주당이 참여정부에 대한 재평가작업도 없이 '노무현 계승'을 정치적 수사로 내세운다는 얘긴데 어느 대목이 부족하다고 보는가?"
"노 대통령이 하려고 했던 일, 단순히 특정 정책의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개선하는 일이 아니라 근본적인 의미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경제 투자를 중심으로 했던 국가모델을 사회투자 중심의 국가로 전환하려는 시도, 비전2030이라는 참여정부 임기 말에 제기했던 문제 등 '철학적 측면'을 민주당에서 보다 정확하게 흡수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비전2030은 참여정부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직접 제시한 국가 비전이다.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노 전 대통령의 철학과 구상이 담겨있지만, 임기 말, 그것도 '지지율의 덫'에서 좀체 헤어 나오지 못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어서 '대통령이 딴 짓만 한다'는 비판도 받았던 프로젝트였다. 차 전 수석은 이를 노 전 대통령의 대표적인 '국가 발전 비전'으로 보는 듯 했다.

"비전2030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절박한 문제의식은 이해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적으로 한가하고 무모한 일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노 대통령은 초기부터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대통령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변화의 단초들을 놓을 수 있을 뿐이다. 임기 말까지 변화의 단초를 놓는 게 중요하다'고. 비전2030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민주당에 한마디 한다면?"
"'너희가 노무현을 아느냐'라고 말하고 싶다. 내부적으로 정치적 역학관계도 있고 고려할 것이 많이 있겠지만 민주당이 진정한 국민정당으로 새로운 신주류 정당으로 거듭나려면 지난 5년의 성과에 대해, 또 노무현의 리더십에 대해 전면 재평가하고 이 부분에서 자기반성을 치열하게 해야 한다. 정치적인 분위기를 타고 일시적으로 지지를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정치를 어떻게 할 것인지 진심으로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원칙과 정도의 정치가 끝내 이긴다는 교훈을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역정을 통해 배웠으면 한다."

인터뷰를 끝내고 차 전 수석은 「노무현 다시 읽기」가 당분간 자신의 화두가 될 수밖에 없겠다면서 멀어져 갔다. 그의 「작업」이 빠른 시일 내에 「공론과 담론」으로 구체화되기를 기대한다. 정권에 참여했던 지식인이 숙명처럼 안게 되는 '꼬리표'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로. 정략구도에 매몰되지 않는 책임 있는 논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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