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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최순실, <밀회> 그리고 <출생의 비밀>

[헬조선 경제학] <밀회>, <출생의 비밀> 그리고 <21세기 경제학>

한국은 서방 7대 자본주의 강국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은-원화 가치 변동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2015년 말에 2만7000달러를 넘었으며 2016년 말에는 3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5년에 우리나라 국민 한 명이 벌어들인 소득이 6년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원화 기준으로는 처음 3000만 원을 넘었지만 원화 가치가 떨어지며 3만 달러 고지를 달성하는 데는 실패했다.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2015년 국민 계정(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달러화 기준 2만7340달러로 2014년보다 2.6% 줄었다. 1인당 GNI가 6년 만에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원화 가치가 떨어진 영향이 컸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연 평균 7.4%포인트 상승한 바 있다. 원화 기준으로 1인당 GNI는 전년 대비 4.6%포인트 늘어난 3093만5000원으로 3000만 원을 처음으로 웃돌았다. 가계 구매력을 나타내는 1인당 가계총처분가능소득(PGDI)은 1756만5000원으로 1년 새 4.7% 증가했다.)

정부와 언론은 우리나라가 곧 '3050' 그룹, 즉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이면서 동시에 인구 규모가 5000만 명이 넘는 나라에 속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인구가 5000만 명 넘으면서 동시에 1인당 국민 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나라는 미국과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 6개국뿐인데 여기에 한국이 합류할 경우 7개국으로 늘어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종합적인 경제력은 세계 7위권이다.

한국의 종합적인 과학기술 능력은 세계 7위권이다. 특히 국내 총생산(GDP) 대비 과학기술(R&D) 투자액의 비율은 4.3%(2014년)로 세계 1위이며 세계 2위인 스웨덴의 4%보다 높다. (미국과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의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은 2~3% 가량이다.)

연구개발(과학기술) 투자의 절대 액수 역시 세계 6위로 이탈리아를 앞서고 있다. 또 기업 부문에 한정해 보더라도, 기업들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 투자비 비율에서 한국의 기업들은 3.4%로 세계 1위이다. 기업 부설 연구소가 3만5000개에 달할 정도로 민간 기업에서의 기술 능력이 높다. 예컨대 삼성전자와 현대/기아차가 생산하는 제품들의 기술 및 품질 수준은 이미 글로벌 선진 업체의 그것과 비등해졌거나 어떤 영역에서는 더 앞서고 있다.

또 한국의 군사력은 세계 9위권이다. 세계 106개국의 무기와 병력, 국방비 등을 평가하는 웹사이트 글로벌 파이어 파워(Global Fire Power)는 세계 군사력 순위에서 한국을 세계 9위로 평가했다.

또한 현대 군사력의 핵심인 군사 과학기술 면에서 한국은 세계 9위이며 이탈리아(10위)보다 앞섰다(<2015 국방 과학기술 수준 조사서>(국방기술품질원 펴냄)). 참고로 군사 과학기술의 세계 순위는 미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영국, 일본, 중국, 이스라엘, 한국, 이탈리아 순인데, 즉 군사 과학기술 면에서도 한국은-러시아와 중국, 이스라엘을 제외할 때-서방 G7에 속하는 강국이다.

중국 사회과학원은 2006년에 이어 2012년에도 한국의 종합 국력을 세계 9위로 평가했다. 또한 그 동안 '선진화' 담론을 이끌어온 한국의 '한반도선진화재단' 역시 2015년에 한국의 종합 국력을 세계 9위로 평가했다. 세계의 강대국 순위는 1위 미국, 2위 중국, 3위 일본, 4위 인도, 5위 독일, 6위 영국, 7위 프랑스, 8위 러시아이다. 러시아 다음의 세계 9위가 한국이다.

주목할 점은 서유럽의 이탈리아, 북미의 캐나다의 국력이 한국의 그것보다 낮게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와 캐나다는 그간 서방 7개국 정상 회담(G7)의 일원으로서 국제 사회에서 강대국 행세를 해왔다. 이렇듯, 전 세계적 차원에서 볼 때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이제 G9 또는 서방 G7에 속해 마땅한 강국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한국을 약소국으로, 개발도상국으로 여기는 사고관습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먼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대 강국인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가 세계 최강국에 속한다는 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에 비교할 때 한국은 경제력 또는 군사력 등에서 열위이다.

하지만 한국이 동북아시아의 끝이 아닌 서유럽의 한가운데 속한다고 상상해보라. 서유럽에서 인구 5000만이 넘는 나라는 영국(6000만)과 프랑스(6000만), 독일(8000만), 이탈리아(6000만) 뿐이다. 스페인(4000만), 네덜란드(2000만), 스웨덴(1000만) 등이 있지만 모두 인구수에서 한국보다 적다.

물론 한국의 1인당 국민 소득 3만 달러는 서유럽 평균(4만 달러)보다 아직 적다. 그렇지만 인구수와 그에 따른 경제력의 전체적 규모는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1인당 국민 소득이 아직 8000달러(2015년)인데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초강대국 취급을 받는 것은 그 인구수 때문이다. 인구 규모와 함께 전체적 경제력과 과학기술 능력, 군사력 등을 감안한다면 한국은 서유럽에서 바로 이탈리아를 제치고 독일과 프랑스, 영국에 이은 서유럽 4대 강국으로 떠오른다.

한국은 자본주의 7대 강국

이제 한국은 세계 7대 자본주의 강국이다. 우리나라의 야권과 진보는 이러한 명명백백한 사실에 상응하여 자신의 세계관을 새롭게 일신해야 한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와 한국 사회를 전근대 또는 반(半)봉건 사회 하물며 '식민지 반(半)봉건 사회'라고 보는 관점을 내던져야 한다. 한국은 1960년대 이래 근대화와 공업화 즉 자본주의적 근대화와 공업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나라에 속한다.

그것은 매판적 또는 종속적(예속적) 산업화가 아니라 자주적이고 자립적인 산업화였고 그 결과 자립적인 한국 자본주의가 세계 시장에 등장하였다. 오늘날 세계인들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민족 자본(national capital)'으로서 삼성과 현대자동차, LG와 SK 같은 재벌계 대기업들과 그리고 포스코 같은 과거 국영 기업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국 경제에 있어 민족주의(nationalism)의 과제는 자본주의자들(capitalists)에 의해, 특히 대자본가들(big capitalists)에 의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자본주의적 민족주의(capitalistic nationalism)가 성공적으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 '자본주의적 민족'으로서의 한국인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모습이 문화적으로는 한류(韓流) 열풍이다. 문화적 현상으로서의 한류 자체가 상업적 즉 자본주의적 기획사들에 의해 주도되었으며 한류의 내용 역시 매우 현대적=자본주의적=물질적으로 바뀐 한국적=민족적 문화이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근대화 즉 자본주의적 산업화(특히 자립적 산업화)가 덜 된 태국(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방문해서 한류 드라마에 등장하는 현대적 한국인의 삶(주로 부유층의 삶에 관한 것인데)을 동경하는 그곳 사람들에게 "한국은 전근대 사회이며 한국을 지배하는 삼성그룹 역시 봉건적 기업이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만약 한류 TV 드라마에 등장하는 부유층과 재벌 일가의 상류층 문화('갑질' 문화도 포함)가 '전근대적 봉건성'의 증명이라면,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부유층의 그것은 전근대보다도 못한 미개 야만 국가의 그것이라도 된단 말인가? 그런 말을 듣는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인은 아마도 모멸감을 느끼거나 아니면 그렇게 말하는 한국인을 자기 나라의 '치부'에 몰두해 과장을 일삼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치부할 것이다.

자본주의적 특권, 자본주의적 갑질

앞서 보았듯이 모든 통계는 1990년대 중후반부터 지금에 이르는 20년간 우리나라에서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는데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왜 그런 것일까?

자유주의(liberalism) 또는 시장 자본주의(free market capitalism)의 근대성을 신뢰하는 야권의 경제학자들은 그 원인으로 여전히 덜 완성된 근대화 즉 덜 완성된 고전적 자유주의를 지목한다.

한국 경제에서는 여전히 과거 개발 독재 중상주의(mercantilism)의 유산인 재벌그룹 체제와 관치 경제의 지배가 유지되고 있으며 그 때문에 빈부 격차와 갑을 관계(갑질) 같은 온갖 경제사회적 충돌과 대립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벌그룹 개혁과 관치 경제 타파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개혁, 즉 서방 선진국들이 17~19세기에 수행한 고전적 자유주의 개혁을 수행하는 것이 21세기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 발전 단계 즉 중상주의, 또는 봉건제 말기 단계에 상응하는 역사적 진보라는 것이다. 이들은 그러한 역사적 진보를 내용으로 하는 경제 철학을 자유주의적 진보 즉 진보적 자유주의라 부른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고전적-개혁적 자유주의 또는 진보적-평등적 자유주의 입장에 서있는 이들 야권의 논자들은 한국 경제를 여전히 '근대화-합리화-시장화'가 덜 된 사회로, 한마디로 말해서 시장 자본주의가 덜 발전한 경제로 보며 따라서 '합리적 시장' 즉 시장 자유주의의 원리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의 경제 구조 개혁, 즉 자본주의를 더욱 자본주의답게 만드는 시장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다고 말한다. 깨끗하고 투명한 자본주의, 약간의 복지와 약간의 노동권+인권을 가미하되, '공정한 시장 질서 즉 경쟁적 시장 질서'를 핵심으로 하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liberal capitalism)가 이들이 꿈꾸는 유토피아이다.

하지만 한국 경제의 기본적 대립선 즉 모순을 '전근대적이고 봉건적인 중상주의' 즉 재벌그룹+관치 경제 vs. '투명하며 경쟁적인 공정 시장 자본주의' 사이의 대립으로 사고하는 자유주의의 기획이 무엇을 낳았던가? 그들의 구상과 기획은 실제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치하에서 거의 모두 실시되었다.

자유주의적 경제 관료와 그들이 협력하여 진행한 '시장 개혁'이 바로 깨끗하고 투명한 공정 시장 자본주의로의 전환이었다. 물론 과거에 비해 투명하고 깨끗해졌다. 분명 좋은 일이며 훌륭한 성과였다. 박수와 갈채를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그것과 동시에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다.

'착한 투명한 자본주의'라는 가면을 내걸고 자본주의다운 자본주의가 등장했다. 노골적인 이윤추구와 금융 투기 재테크, 저임금의 아르바이트(알바)-비정규직 증가와 '삼포 세대' 청장년, 노인 빈곤층의 증가와 같은 전형적인 자유 시장 자본주의 현상이 도처에서 출현했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다워질수록 그 경제가 인간과 자연을 더욱 착취한다. 그리하여 부익부빈익빈과 함께 환경 파괴가 심화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목격되는 불평등 심화와 가진 자들의 갑질의 배경에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의 심화가 있다. 약자인 을(乙)에게 가해지는 갑(甲)들의 횡포와 착취는 대한항공과 남양유업 같은 대기업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중소기업과 영세 기업, 동네 카페와 동네 마트의 주인들이 그 종업원과 알바생에게 가하는 횡포와 착취, 인권 유린과 약탈 같은 갑질 역시 묵과할 수 없는 수준이다.

없는 자들, 종업원들에 대한 약탈과 갈취가 전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는 바, 이것은 명백한 자본주의적 갑질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자체를, 그것의 고유한 본성인 갑질 횡포를 비판하는 관점에 서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이 나라 역사의 진보를 이루어낼 수 없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말하는 것

노무현 대통령 치하였던 10여 년 전에 박세일을 필두로 하는 일단의 보수 지식인이 '선진화'라는 담론을 제기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라는 싱크탱크가 만들어졌고, <대한민국 선진화론>이라는 책도 발간되었다. 한나라당과 보수 진영은 선진화 담론에 열광했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정부도 선진화를 주요 국정 어젠다로 제시했다. 손학규 등 일부 야권인사들도 동조했다.

그런데 토마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이 다루는 대상은 21세기의 미국과 독일, 프랑스와 스웨덴 같은 선진국들이다. 그런데 그는 그 책에서 20세기 후반부터 그 선진국들에서 빈부 격차 심화와 함께 부와 소득의 세습 계급화가 다시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가난한 개발도상국 이야기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선진국들에서 19세기 자본주의가 부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가 열렬히 비판했던 것처럼, 그리고 미국의 수천만 20대 청년들이 열광적으로 동의했던 것처럼, 21세기 미국 자본주의는 미국의 중산층 서민들에게, 특히 청년들에게는 지옥이다. 1990년대 중후반에 시작된 '헬조선'의 지옥도 풍경은 '천조국' 미국에서 이미 1980년대 초중반부도 비슷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헬조선'은 '헬미국'의 복사판이었음이 드러났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보다 훨씬 투명하고 합리적인 자본주의의 대명사인 미국 등 서방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빈부 격차와 세습 계급 부활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선진화' 또는 '정상 국가화' 담론이 이 나라 야권과 진보의 담론으로서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제는 헬조선이 아니다. 문제는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봉건적이고 중상주의적, 전근대적인 재벌 그룹과 관치 경제로 온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21세기 선진국의 모습으로,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로 전환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천조국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도 19세기 빅토리아 자유주의의 원리 즉 자유 시장 자본주의의 원리가 경제적 삶의 모든 영역에서 관철되고 있다. 불평등 심화, 부와 소득의 세습계급화는 그 결과의 하나일 뿐이다.

현대적이고 자본주의적인 특권 세습 귀족

한국은 서방 자본주의 7대 강국이며 선진국 초입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것과 함께 빈부 격차와 갑질 횡포, 부와 소득의 세습 계급화 심해지고 있다. 천조국 미국과 비슷한 모습으로 전환하면서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전근대적 또는 봉건적 현상 또는 중상주의의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명백하게 자본주의적 갑질, 자본주의적 착취, 자본주의적 세습 계급화이다. '돈이 돈 버는 원리'와 '돈 가진 자가 주인'이라는 원리, 적나라한 자본주의의가 유일무이한 통치 원리로서 작동하는 경제 구조가 만들어졌다. 돈 없는 자들, 돈 없는 부모 만난 자들에겐 지옥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TV 드라마와 사건, 사고 뉴스에서 듣고 있는 가족 간 불화와 사회적 충돌은 어떤 라인(line)을 따라 발생하고 있는가를 유심히 살펴보라. 다시 말해서, 한국 사회와 한국 경제를 앞으로 크게 뒤흔들 대지진은 앞으로 어떤 단층선(폴트라인: fault lines)을 따라 진행될 것인가를 살펴보라.

<출생의 비밀>과 <밀회> 같은 TV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한국 사회 부유층과 특권층이 과연 '전근대적 재벌 오너 패밀리들'과 '전근대적 국가 관료들'이란 말인가? 그들만이 갑질하는 특권층으로 묘사되는가? 그렇지 않다. 그 드라마들에 묘사되듯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우리 주변의 가족적, 사회적 불화와 대립의 갈등선은 국민의 0.001%도 되지 않는, 그야말로 한줌도 안 되는 숫자의 전근대적 재벌과 경제 관료 특권 세력과 나머지 전체 사회 계급·계층 사이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재벌 일가와 경제 관료가 아니더라도 특권자들은 곳곳에 존재한다. 박근혜와 정유라-최순실, 장시호-최순득이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TV 드라마 <출생의 비밀>과 <밀회>를 상상해보라. 게다가 성공한 중견 기업인과 성공한 벤처 기업가들, 성공한 부동산-주식 재테크 투자자들, 그리고 교수와 언론인, 연예인, 스포츠 선수로 성공한 이들 역시 스스로를 특별한 신분으로, 부유한 신분으로 의식하고 행동한다.

이들 역시 재산이 수십억~수백억 원에 달하는 상위 1% 부자들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은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서 승진한 386 세대와 386 정치인 역시 일종의 특권적 신분으로 바라본다. 이들 역시 재산이 10억, 20억 원이 넘는 이들이며 상위 2% 이내의 부자들이다.

이들 상위 1%와 나머지 99%, 또는 상위 5%와 나머지 95% 사이에는 점점 더 넘지 못할 벽, '넘사벽'이 세워지고 있다. 양자 간에는 더 이상 신분 이동 즉 신분의 상승 또는 하락이 일어나지 않는다. '출생의 비밀' 말고는 달리 신분 상승 또는 계급 상승할 방법이 없다. 부와 소득이 세습화되고 있고, 계급 질서가 부활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TV 드라마에서 묘사되고 매일 매일의 뉴스에서 보도되는 우리 주변의 온갖 불화와 충돌, 그리고 범죄의 모습이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임박한 대지진의 단층선이다. 그 대립선은 전근대 대 근대의 대립이 아니다. 그것은 매우 자본주의적인 갈등선이며, 더구나 시장 자본주의(market capitalism)가 매일 매 순간마다 더욱 그 간격을 넓히고 있는 갈등선이다. 문제시되는 것은 전근대적 특권이 아니라 매우 자본주의적인 특권이다.

'최순실-정유라와 최순득-장시호' 주연의 <출생의 비밀>과 <밀회>

자본주의적 특권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 대 노동 간의 대립,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간의 대립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문제를 협소하게 만든다. 자본가 계급이란 누구인가? 노동자 계급이란 누구인가? 과연 펀드 매니저와 재테크 개미 투자자들(여기에는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포함되는데)을 하나의 자본가 계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연봉 7000만~1억 원의 현장 노동자 및 은행 직원들과 연소득 1500~3000만 원의 알바-비정규직 또는 영세 기업 노동자들을 하나의 노동 계급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들이 서로 연대 의식을 가지면서 '우리는 하나의 노동 계급'이라고 느끼고 있을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충돌과 갈등의 선은 '노동 계급과 자본가 계급'이라는 개념과 담론으로 환원할 수 없다. 훨씬 더 넓은 담론, 넓은 프레임으로 이해해야 한다.

주로 직장 내에서의 기업주-경영자 vs. 직원-노동자 간의 대립으로 파악되는 자본-노동 간 계급 대립의 프레임은 취업자들의 정규 고용관계를 전제로 한다. 하지만 오늘날 21세기 자본주의에서는 미취업 청장년과 노인들, 여성들이 넘쳐난다. 하도급 업체로 위장된 저임금 착취형의 일자리도 넘쳐난다.

정리 해고와 명퇴, 저성과자 일반 해고로 인해 정규직 노동자 지위 즉 노동 계급에서 이탈한, 하지만 노동 계급보다도 가난한 영세 자영업자도 넘쳐난다. 천조국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다른 선진국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반면에 부동산-주식 재테크에 성공한 정규직 월급쟁이들(노동 계급)도 많으며 아예 직장(노동 계급 지위)을 내던지고 부동산-주식 재테크에 전업적으로 나서는 자들도 많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선진국들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벌어지는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는 보다 넓은 개념과 담론적 프레임이 있다. 프랑스 사람인 토마 피케티가 자신의 <21세기 자본>에서 '자본'을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이 아니라 일종의 '자산' 개념으로서 이해한 것은 '자본가 계급'이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자산가 계급)이 오늘날의 21세기의 세계 자본주의를 이끌고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에 해당되는 우리말이 있다. 바로 '가진 자들' 또는 '있는 놈들'과 그리고 '못가진 자들' 또는 '없는 놈들'이다. 순수 영어의 'the haves'와 'the have-nots'에 해당하는 순수 우리말이다.

산업 자본주의의 시대에는 노동 계급과 자본가 계급, 그들 사이의 대립이라는 말이 직관적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오늘날 금융 자본주의 시대, 재테크 원리가 지배하는 카지노 자본주의의 시대에 일어나는 계급 간 대립은 부르주아(자산가=유산자)와 프롤레타리아(비자산가=무산자) 간에 형성된다.

저임금에 고용이 불안한 알바와 비정규직, 그리고 중소-영세 업체 노동자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프레카리아트 즉 불안정 프롤레타리아라는 신개념이 유행하고 있다. 요즘에는 프레카리아트라는 개념이 학문적으로도 타당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것은 부르주아와 프레카리아트 간의 대립이 오늘날의 자산가 자본주의, 19세기 빅토리아 자본주의의 21세기 부활을 설명하는 더욱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계급 개념임을 보여준다.

금융 자본주의, 재테크 자본주의 시대에는 자본(capital)이 아니라 자산(property)의 소유 유무가 인간적, 사회적 차별의 근원이 된다. 자산에는 부동산과 유가 증권(금융 자산)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의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학력과 학벌 역시 상속된다. 공교육을 무너뜨리고 자신들만의 사립학교와 자사고 특권을 만든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의 부와 재산을 학력과 학벌을 통해 상속한다.

재벌 일가와 고급 관료들을 포함하여, 모든 부자들이, 즉 대한민국 상위 1%의 가진 자들이 자신의 재산과 소득, 그리고 학력을 상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자신의 계급적 특권을 대대손손 물려주어 세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유럽 19세기 빅토리아 자유주의 시대의 모습이 21세기의 한반도 남쪽에서 새로운 옷을 입고 부활한 것이다.

이것이 <밀회>와 <출생의 비밀> 같은 인기 TV 드라마가 다루고 있는 사회적, 가정적 대립과 갈등의 소재들이다. 자산가 부유층은 자신의 부르주아 지위를 유지하고자 분투하면서 행여 자기 자식들이 프레카리아트 지위로 추락할까 두려워한다. 반면에 다른 방법으로는 신분 상승, 계급 상승이 힘든 프레카리아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즉, 출생의 비밀 위조를 포함하여-귀족적 특권 계급으로 상승하기 위하여 고군분투한다.

이번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드러난 최순실-정유라와 최순득-장시호의 출생과 그간의 행적을 둘러싼 각종 비밀과 의혹들은 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출생의 비밀>과 <밀회>의 드라마 장면들을 떠올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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