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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민혁명, 청년과 87세대의 결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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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시민혁명, 청년과 87세대의 결합이었다

[이충렬의 정권+교체] 민생난, 스마트폰, 세대연합

2016년 11월 12일, 백만송이의 대합창이 전국에 메아리쳤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 그대로였다. 이 나라의 주인이고자 하는 민주 시민들이 거대한 하모니를 이뤄 한목소리로 외쳤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6월항쟁 이후 최대의 시위였다. 우리 모두는 시민혁명의 물꼬가 터졌음을 그날 확신할 수 있었다. 대통령에 대한 분노, 나라의 장래에 대한 염려, 그리고 앞으로의 전개 과정에 대한 불안과 설레임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잠을 이루기 어려웠으리라.

어떻게 이런 위대한 국민항쟁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이 문제의 해답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현재의 '질서정연하고 수준높은 반정부 시위'를 가능케한 조건과 상황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 전세계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민주 대항쟁의 귀추를 주목하고 있다.

영화 예술 분야에서 일종의 선행지표가 있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중파와 종편에서 그동안 가장 많이 시간을 할애한 것이 '막장 드라마'였다. 불륜과 재벌을 소재로 다룬 막장드라마가 안방에 무차별적으로 범람하였다.

그런데 대중영화쪽으로 가면 전혀 다른 대조적인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다. 작년에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영화를 살펴보면 노무현이란 협객을 다룬 <변호인>, 1930년대 독립운동을 그린 <암살>, 재벌의 갑질을 소재로 한 <베테랑>, 기득권 카르텔의 적나라한 행태를 영상화한 <내부자들> 등이 있었다. 그 전 해에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린 <명량>이 1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한국 영화 사상 최대관객이란 기록을 세웠고, 현대사의 희노애락을 다룬 <국제시장>도 1000만 관객을 불러들였다.

정권과 기득권층이 공급하는 대중문화는 불륜이나 멜로 드라마가 많았지만, 반면에 관객이 직접 제 발로 찾아가서 돈 내고 보는 영화는 시대 상황이나 사회 모순을 다룬 영화가 압도적이었다.

1000만 관객이라고 하면 영화를 볼만한 사람은 거의 다 봤다고 할 수 있다. 영화 관객의 이러한 트렌드가 알려주는 것은, 이미 한국사회의 속살에 대해 대중들은 알 것 다 알고 있고, 판단까지 내린 상태라는 것이다. 부패한 권력과 기득권 세력의 막장 행태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이미 깊고 큰 공감대를 가지고 있었기에 별다른 복잡한 설명 없이 대통령 퇴진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순식간에 형성된 것이다.

지금의 대항쟁과 관련하여 29년 전의 6월항쟁과 최근 미국의 트럼프대통령 당선과 관련하여 비교 분석을 많이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의 시민혁명은 우리의 현재적 조건에 입각하여 '한국적 민주혁명'으로 진행될 것이다. 참고할 수는 있지만, 유사점과 차이점을 통하여 우리식 시민혁명의 항로를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필자는 우리 시민혁명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3개의 키워드에 주목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양극화를 본질로 하는 심각한 민생난, 둘째, 4500만대를 돌파한 스마트폰, 셋째, 헬조선에 절망하는 청년 세대와 6월항쟁에 주역으로 활약했으며 이제는 부모세대가 된 6월항쟁 세대의 연합이 그것이다.

ⓒ프레시안(최형락)

양극화와 민생난

우선 양극화와 민생난을 살펴보자. 먹고 살기 어렵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현재의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물론, 미래에 대한 희망조차 사치스럽다는 절망감이 우리 사회를 휘감고 있다. 6월항쟁은 3저호황이라는 엄청난 호경기를 배경으로 일어난 시민민주혁명이었다. 그 당시에는 중산층과 노동자 계층의 민주동맹이 채 형성되지 못하였고, 그것이 6월항쟁의 주요한 한계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 극소수 1%의 초기득권층을 제외한 나머지 99%를 위한 경제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이번 시민혁명의 귀결점은 기존 경제 패러다임의 근본적 수술에까지 손을 대는 쪽으로 가야 한다. 박근혜 정권이 이른바 박정희 패러다임의 정치적 표현이라면 재벌은 박정희 패러다임의 경제적 표현이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정치 기득권의 붕괴라면, 재벌 개혁은 경제 기득권의 개혁으로 가야 한다.

재벌 개혁을 부르짖는 수많은 경제학자의 책을 읽어보고 주장을 들어보왔지만, '아! 이거다' 하는 해답을 보지는 못했다. 모두다 재벌이란 코끼리의 발톱 한 조각을 붙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국가의 주권이나 국민의 생존권 위에서 사실상 군림하고 있는 삼성을 더 이상 이건희 일족의 사유재산으로 방치할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개혁 조치를 하는 게 필요하다.

최순실(박근혜)과 이재용의 빅딜설이 돌아다니고 있다. 삼성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의 기금을 동원했다고 한다. 삼성은 탄생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국가적 지원과 보호를 독점하면서 커온 공공기업이다. 애플의 아이폰이 출현하여 삼성이 흔들거리자 아이폰이 2년 동안 국내에 상륙하는 것을 저지하는 방식으로 삼성을 보호해 준 의혹도 회자된다.

금산분리니, 순환출자 금지니, 다 언발에 오줌누기다. 이건희·이재용의 삼성이 도요타처럼 하청 기업과 동반성장하는 시절이 언제나 올까? 연목구어다. 이제 공공적 지배 구조를 고민할 때다. 경제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을 위해 발상을 혁명적을 바꾸자.

4500만대를 돌파한 스마트폰

그렇다. 스마트폰 혁명으로 부를 수도 있고, SNS 혁명이라 부를 수도 있다. 6월항쟁 때 우리는 가리방으로 불리워지는 등사기계에 의존하여 유인물을 한 장씩 긁어야 했다. 이번 100만 집회에 유인물이 거의 없었다. 왜? 유인물보다 천배 만배 더 강력한 무기가 각자의 손에 들려있었으니까. 카톡과 페이스북을 통해, 인터넷과 DMB 방송를 통해 온갖 정보를 참가자 비참가자를 가릴 것 없이 국민 모두가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전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고, 최고의 IT강대국 한국의 인프라스트락쳐가 이번 시민혁명의 SOC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의 손 안에 든 스마트폰이 옛날 군부독재정권 시절의 무력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수천 만명이 빛의 속도로 박근혜 대통령의 스캔들을 공유하면서 소통하고 있다. 무엇으로 막으리요.

그런데 여기서 심각한 딜렘마가 존재한다. 대중은 스마트폰으로 SNS혁명으로 나가는데 정치권과 정당은 아직도 구닥다리 시스템으로 움직인다는 것이 그것이다. 국회의원 다수가 컴맹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이재명 시장같은 사람은 예외이고, 거의 대부분의 정치인은 SNS를 자기홍보의 수단으로 생각할 뿐, 쌍방향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12일 광화문에 와서야 '민심을 알게되었다'라는 황당한 말을 하는 것이다.

지난 총선 때 비례대표 선정하는 과정은 어떠했던가? 여야를 막론하고 한심했다. 민주당은 김종인 당시 대표의 전횡으로 온통 떠들썩했고, 심지어 '새정치'를 내세우면서 기존정치권을 공격해왔던 안철수 대표조차 기존보다 더 심한 구태 스타일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선정했다. 이번 시민혁명은 기존 정당구조와 작동 방식에도 혁명적 변화를 강요해야 한다. 정계개편이 있다면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제3지대니 뭐니 하는, 정치공학적이고 구태의연한 이합집산은 더 이상 발붙일 자리가 없어야 한다.

청년세대와 6월항쟁세대의 세대연합

온 가족이 소풍나온 것같은 장면이 이제는 자연스럽게조차 보인다. 그러나 6월항쟁 당시 시위대의 절대 다수는 20세~35세 사이의 청년세대였고 이들의 치열한 가두투쟁(가투)으로 독재세력의 항복을 받아냈다. 87년 이후 6월항쟁의 세례를 받고 큰 아랫세대 10년 정도를 포함하면, 6월항쟁세대는 세월의 흐름을 따라 어느듯 40세~65세의 중장년 세대가 되었다. 이들은 이제 한국사회에서 가장 큰 사회집단을 이룬다.

이들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지니는 것은 이들 집단이 한국정치에서 가장 진보적 투표 행태를 지속적으로 발휘해온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들 이전에는 이른바 6·25세대가 한국사회의 주류를 대변했다. 그들이야말로 냉전극우세력의 온상이었다. 그런데 6·25세대가 고령으로 접어들면서 정치적 영향력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6월항쟁 세대는 우리 사회에서 결정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 오피니언 리더 그룹이자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연령 집단이 되었다. 가정에서는 자녀를 키운 부모 세대가 되었다. 진보적 가치를 선호하며, 또 한편 신자유주의와 재벌 체제하에서 박탈감과 불안감을 심각하게 느끼는 집단이다.

6월항쟁 세대가 두텁게 우리 사회의 허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만의 조건이다. 또 30여년 전 청년 세대만이 민주화투쟁을 감당했던 그 시대와도 전혀 다른 상황이다.

전세계가 청년의 분노와 반란으로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야권 분열이란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청년들이 열정적으로 투표함으로써 여소야대의 황금분할이 이루어졌다.

이번 시민혁명도 청년세대와 6월항쟁세대의 연합이 두드러진 특징이 되고 있다. 가족 단위의 시위 참가, 부모의 지지와 동의를 얻어 시위에 참가하는 양상은 이번 민주혁명이 한국사회를 근본적으로 바꿀 동력을 갖고 있음을 뜻한다.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전면에 내걸고 세대연합을 굳건히 한다면, 그동안 우리 공동체를 분열시켜온 정치적 분열, 즉 지역주의적 구도, 친노와 반노, 호남과 영남패권주의 등의 갈등구조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민주공화국의 완성을 향한 결정적 승리, 그리고 자유·평등·평화의 건국정신을 온전히 이 땅에 실현하는 한 길에 모두 떨쳐나서야 한다. 다시 한번 부른다. '우리 승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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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렬

『박정희 김대중 김일성의 한반도 삼국지』(2015년, 레디앙) 저자. 1957년 출생. 유신시절 민주주의 운동에 평생 헌신할 것을 맹세, 민주화운동·노동운동·정당활동에 참여하고, 김대중·노무현정부에서 미관말직을 지냈다. 2012년 대선이후 당대에 대한 기대를 접고 강화도에 귀촌, 언젠가 이 땅에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역사가 꽃피는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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