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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승리로 '워싱턴 정치'는 탄핵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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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승리로 '워싱턴 정치'는 탄핵당했다"

[기고] 미국 대선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들

이메일과 비디오 그리고 FBI가 뒤엉킨 미국 대선은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탄생시키고 끝났다. 힐러리 클린턴은 "트럼프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길 바란다"고 패배를 인정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정권 인수작업에 협조하겠다"고 트럼프의 승리를 받아들였다.

"선거 결과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동료 교수는 눈물만 글썽이면서 연구실 문을 닫아버렸고, 선거 다음날 만나기로 했던 민주당원 친구는 연락도 없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2012년 한국에서 당신들과 같은 심정이었다고 위로만 할 뿐이었다.

선거 기간 동안 내가 만난 미국인들은 이 선거가 불행한 선거(unhappy election)라고 말해왔다. 힐러리는 싫고, 트럼프는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민심이었다. 흔쾌히 뽑을 사람은 없는데 누군가는 뽑아야 하는 강요된 선거에서 미국은 트럼프에게 당선증을 안겨주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한국인들에게 "박근혜를 뽑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조롱했던 논설은 이제 자신들을 향할 차례가 됐다.

트럼프의 당선을 충격, 공포, 대이변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옳지 않다. 그 이유를 살피고, 우리에게 약이 되도록 길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 대선 결과는 워싱턴 정치의 패배다. 이번 대선은 민주-공화 양당의 대결이 아니었다. 오히려 워싱턴 정가는 당을 초월해 트럼프를 배척했다. 오바마 대통령 부부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같은 민주당 인사들은 물론이고, 부시 가문과 폴 라이언 하원의장, 존 메케인 상원의원 같은 공화당 지도자들도 트럼프와 척을 진 선거였다. 이번 선거는 권력을 분점 해온 기존 주류 정치권과 민심의 대결이었고 민심의 분노와 변화 요구를 애써 무시한 정치권이 한 방 제대로 얻어 맞은 사건이다. 워싱턴 정치는 탄핵당했다.

미국 유권자들은 이번 선거에서 힐러리를 변화의 주체이기 보다는 변화의 대상으로 규정(☞ 기사보기 : 오바마 등장에 분위기 절정, 힐러리의 숙제는…)했고, 변화와 혁신 요구에 눈 감고 귀를 막은 정당과 정치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경기침체, 양극화로 미국인들은 새로운 정치를 갈망했다. 그 분노와 열망은 이미 '월스트리트 점령시위'를 통해 표출된 바 있다. 양대 정당은 이런 민심을 연료로 더 좋은 정치와 정당, 대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했다.

그러나 그동안 공화당은 혁신은 뒤로한 채 티파티라는 극단적 정치세력에 갇혀 분노의 반사이익을 누리는데 급급했다. 민주당 또한 변화의 열망으로 오바마를 선택한 흐름을 이어가지 못한 채 힐러리가 폭발하는 민심을 억누르고 대통령 후보직을 차지했다. 이 결과로 갈 곳을 잃은 민심이 트럼프를 향한 것이다.

이번 선거는 힐러리의 패배가 아니라 오바마의 패배라고 하는게 정확하다. 힐러리는 레임덕 없는 오바마의 인기에 기대 오바마의 정책과 노선을 충실히 계승할 것이라는 점을 선거 운동의 포인트로 삼았다. 힐러리가 당선된다면 힐러리 1기 정부가 아니라 오바마 3기 정부라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오바마도 최선을 다해 8년전 자신을 지지해준 힐러리의 당선을 위해 뛰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당선으로 오바마의 업적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치열한 정치적 투쟁으로 진전시킨 오바마 케어, 대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지만 의지를 꺾지 않았던 이민개혁, 동성 결혼 합법화로 대표되는 인권의 신장, 총기규제법 추진,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협력을 통한 새로운 국제질서의 구축 등은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조지 부시가 전임자인 빌 클린턴의 정책은 무조건 부정했듯(ABC: Anything But Clinton) 오바마 케어 폐지와 미국 우선주의를 외친 트럼프는 미국을 오바마 이전으로 돌려놓을 기세다. 때문에 자신의 8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오바마는 이번 선거 최대의 패배자이며, 미국 사회는 그동안 이뤄온 진전을 잃어버릴 처지다.

▲ 도널드 트럼프 제45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 ⓒAP=연합뉴스


남일이 아니다. 아니, 이미 우리는 미국의 미래였다. 민주주의와 정치, 인권은 맥없이 뒷걸음질쳤다. 현재 대통령은 이런 파고를 넘을 역량이 안되는 무능력자이고, 손놓고 있던 정부는 이제와서 "미국의 정책 기조 변화가 예상됨에 따라 범정부적인 대응안을 마련하겠다"는 뒷북으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광장의 민심을 담아내고, 북핵과 사드 배치 문제 등으로 엄중한 정세를 헤쳐나갈 지혜와 전략이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시민사회와 야당은 또다른 괴물의 탄생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 대선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을 살펴야 한다.

먼저, 1인 1표라는 민주주의 룰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선거 연령 문제 등 현재의 선거 제도에 대한 토론 이전에 민주주의는 누구에게나 한 표가 있다는 사실을 새겨야 한다.

트럼프의 당선에는 그동안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시골 백인들의 투표가 큰 역할을 했다. 주류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 점을 우습게 봤다. 남녀노소, 빈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한 표가 있음에도 정치를 논하는 엘리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트럼프는 이 점을 집중 공략했다. 트럼프는 그들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했다. 한국의 진보와 시민사회, 야당도 이런 점을 간과해 왔다. 시끌벅적한 SNS의 여론, 큰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의 의견을 전부로 여기고 시골의 범부, 인터넷에 글을 올릴 시간이 없는 직장인들과 취업 준비생들에게 귀기울이지 못했다.

그리고 번번히 선거에서 패배해왔다. 힐러리는 대도시에서는 승리를 거뒀지만 대부분의 소도시를 놓쳐 경합주 대부분을 트럼프에게 빼앗겼다. 엘리트의 똑똑함과 오만함이 심판 당한 선거다. 한 표를 가진 주권자들에게 겸손하게 다가가야 한다.

선거와 정치를 당위와 도덕, 옳고 그름, 이성과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된다. 마음을 얻는자가 선거를 승리한다. 논리적으로 완벽하고, 능력이 출중하며,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사람들의 선택을 받는가? 그렇지 않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대통령직에 더 적합한 사람은 힐러리였다. 2000년에도 조지 부시보다 지적능력과 논리에서 우월했던 건 앨 고어다.

그러나 그들은 선택받지 못했다. 트럼프는 도덕적이지도 않고, 정권을 운용할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으며, 인종차별과 성차별주의자로 온갖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미국인들의 선택은 트럼프였다. 트럼프는 이성과 논리가 아닌 유권자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런 선택을 비판하기는 쉽다. 그러나 비판만 한다면 계속해서 선거는 마음을 얻는 사람들의 잔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야당은 논리적으로 우월하다, 능력도 더 좋다. 당위와 도덕에서도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추구해야할 가치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인터넷에는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장차관을 혼냈다는 국회의원들의 질의 영상과 토론에서 상대방을 제압했다는 논객들의 활약이 '사이다'라며 칭찬을 받고, 거기에 열광하는 정신 승리가 횡행하지만 선거라는 현실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엉터리들이 대통령과 국회의원 당선증을 받는다. 국민을 고통스럽게 하고, 잘못된 정책을 추진하고, 색깔론을 들먹여 권력을 유지하는 수준 이하, 함량미달의 인사들이 공직자로 선출되고 그들의 집단이 정권을 잡는다.

그러나 이들을 조롱하고 비난하면 그만인가? 이렇게 이성과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손가락질만 하면서 매번 패배해 나라가 위기에 처하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을 얻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고 국민들에게 다가갈 것인가. 자존심을 세우고, 나는 옳은데 사람들이 몰라준다는 도덕적 우월함은 스스로에게는 만족을 줄지 몰라도 지금같은 혼돈을 가져오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상대의 실체를 인정하고, 그것을 이길 궁리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국에 대처하는 전략과 태도를 재정립해야 한다. 중요한 건 나이고 우리다. 수험생에게 입시 제도의 변화는 중요한 문제다. 당락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입시 제도가 변화할 경우 이를 잘 분석해서 대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입시 제도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내가 성실하게 공부해서 탄탄한 실력을 가지고 있는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미국에 대한 우리의 전략과 태도는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입시 제도 변화에만 신경을 쓰는 학생과 같다. 미국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나라이고, 한반도 문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나라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통령이 누구인가, 미국의 정책이 어떠한가만을 손놓고 쳐다본다면 그것은 우리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것과 같다.

물론 누가 미국 대통령인가는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 우리가 스스로를 지킬 의지와 능력을 키우고, 분명한 정책 목표와 전략을 세워 우리의 이익에 미국을 견인할 수 있는 역량을 갖는 것이다. 그럴때에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림없이 우리의 안전과 번영을 추구할 수 있다.

보수의 미국 의존은 재론할 여지가 없지만, 진보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어야만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또 다른 미국 의존의 모습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선거 결과에 따라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나, 정작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는 별로 논의되지 않았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지만, 미국은 엄연히 다른 나라이고, 미국 대통령은 누구든 미국의 이익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선의로 우리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를 통한 방관으로 북핵 문제가 꼬인 것이 이를 잘 보여주지 않는가. 우리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가 개척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모습은 미국의 정치 상황에 안절부절하는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큰일 났다는 무기력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호들갑을 떨 필요도 없고, 근거 없는 낙관에 빠질 필요도 없다. 우리가 중심을 잡아야 하고, 우리가 한반도 문제를 주도할 배짱과 역량을 키워야 한다. 언제까지 상황 탓, 남 탓만 할 것인가.

책상머리에서 하는 정치는 이제 끝났다. 민심의 요구와 열망을 좋은 정치로 담아내는 변화와 혁신을 하지 못할 때 그 자리에는 분열과 분노를 부추기는 정치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대다수의 서민과 약자의 몫이 된다. 미국 대선은 다시 한번 이를 확인시켜 줬고, 우리는 질리도록 그런 결과를 반복하면서 오늘의 불행에 다다랐다. 미국을 바라보며, 우리가 더 이상 실패하지 않을 길을 찾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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