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14일 경찰의 물대포를 맞아 317일 동안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매다 올해 9월 25일 사망한 고(故) 백남기 농민의 영결식이 5일 광화문 광장에서 엄수됐다. 백 씨의 장녀인 백도라지 씨는 유가족을 대표에 국민들께 감사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백도라지 씨는 "아버지가 쓰러지신 뒤, 거의 1년이 다 되었고 돌아가신 지도 40일이 넘었다. 아버지는 그리 순탄한 삶을 살지 못하신 것 같은데, 가시는 길까지 이렇게 가시밭길일 줄은 몰랐다. 자식으로서는 너무나 죄스럽지만, 오늘이나마 보내드릴 수 있게 돼서 다행"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저희에게는 여러 가지 숙제가 남았다. 기소조차 되지 않은 살인범 경찰들, 처벌받게 할 것"이라며 "정치권에서 약속해 주신 대로, 꼭 특검이 실시되어 강신명(전 경찰청장) 이하 살인 경찰들이 법의 심판을 받기 바란다"고 말했다.
백 씨는 "서울대병원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헌신적으로 돌봐주셨으나 돌아가시고 나서는 의사로서의 지침이나 의료 윤리를 헌신짝처럼 버렸다. 가족들의 거듭된 요청에도 서울대병원은 사망 진단서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한다"며 "애초에 저희 가족과 경찰과의 싸움에 서울대병원이 왜 끼어들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지만, 서울대병원의 진단서를 근거로 검찰의 부검 영장이 발부되었기에 이에 대한 병원의 책임도 꼭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농촌의 현실에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백 씨는 "아버지가 지난해 11월 14일 시위에 나오셨다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시고 결국 돌아가시게 된 이유를 생각해본다"며 "해마다 떨어지고 있는 쌀값,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는 농촌의 현실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 아버지를 위해 마음을 보내주신 것처럼 농업과 농촌 문제에도 국민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백 씨는 "내년 기일에는 아버지께 승리의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다"며 "저희 가족과 투쟁 본부는 책임자들이 처벌받고, 재발 방지 대책이 포함된 적절한 사과를 받을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것이다. 잊지 말고 관심과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물대포로 쓰일 소방수, 절대 허가하지 않을 것
이날 영결식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포함해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야권의 대권 주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 심상정 정의당 대표 등 야3당 대표도 자리를 지켰다.
박원순 시장은 추도사에서 "쌀값을 조정해달라고 외치는 것이 무슨 죄인가? 그런 당신에게 돌아온 것은 살인적인 물대포였다. 건강한 청년도 견딜 수 없는, 철판을 휘게 하고 벽돌을 순식간에 부술 수 있는 살수차의 살인적인 물줄기였고, 그 물줄기가 마침내 생명을 앗아갔다"며 "이것은 명백한 국가 폭력"이라고 주장했다.
박 시장은 "오늘 집회에도 경찰은 소방수 사용을 요청해왔다. 그러나 거절했다"며 "앞으로 그 어떤 경우에도 국민의 정당하고 평화적인 집회를 진압할 목적으로 사용하는 소방수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세월호의 진실을 우리가 밝히겠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우리가 저지하겠다. 공공 기관 성과 연봉제를 막고 개성공단 폐쇄를 돌려놓겠다. 농민의 생존권을 지키고 '위안부' 할머니의 눈물을 닦아드리겠다"며 "박근혜 정권이 저질렀던 모든 국정 농단을 끝내고 당신이 꿈꿨던 상식과 정의의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추모사에서 "엄중하고 비상한 시국이다. 국민은 자격 없는 대통령이 국가의 근본을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똑똑히 목도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오로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과 국정을 볼모로 삼고 있다. 깊은 실망감과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겸 비상대책위원장은 "특검으로 반드시 백남기 선생의 사인을 밝혀내는 것은 우리의 몫"이라며 "고인이 그렇게도 걱정했던 농민 생활 향상을 위해, 특히 올해 쌀값 폭락 대책을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이제 백남기라는 이름은 우리 역사에서 인권과 민주주의의 이름이 되었다"면서 "박근혜 정부의 참담한 끝이 보이고 있다. 사필귀정이다"라고 꼬집었다.
심 대표는 "온전한 생명을 죽음으로 내몰고도 죄의식 하나 느끼지 못하는 정권이었다. 최소한의 사과는커녕 유족과 시위대에 책임을 전가하던 정권이었다. 그 무도한 정권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며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국민의 생명을 빼앗은 무도한 정권을 단호히 심판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별도의 추도사를 하지 않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백남기 선생님과 유족분들께 죄송스럽고, 이 땅의 모든 농민들께 죄송스러운 심정"이라는 소회를 밝히고 영결식장을 빠져 나갔다.
이날 영결식에는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김두관‧김영주‧박홍근‧박주민‧이언주‧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 노회찬 정의당 의원 등 야당 국회의원도 참석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또 장례위원회 관계자와 시민들을 포함, 주최 측 추산 1만 명(경찰 추산 5700명)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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