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백남기 농민의 민주사회장이 오전 8시 서울대학교병원에서 발인으로 시작됐다. 지난 9월 25일, 백 씨가 세상을 떠난 이후 41일이 지나서야 공식적인 장례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서울대병원을 출발한 백 씨 운구는 이날 오전 8시 43분 장례 미사가 열리는 명동성당에 도착했다. 미사를 집전한 염수정 추기경은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는 평생 이 땅과 이웃과 하느님을 사랑했다"며 "형제님의 용기와 사랑을 남아있는 우리가 이어나가 좋은 열매를 맺길 바란다"고 밝혔다.
염 추기경은 "지금 우리나라는 큰 위기와 혼란에 빠져있다. 진정으로 이웃을 위하기보다는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세상을 불의로 적시고 있다"며 "이 미사를 통해 우리가 생명에 대한 고귀함을 잊지 말고 늘 깨어있도록 함께 기도하자"고 전했다.
이날 미사에서 강론을 맡은 김희중 히지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은 "고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님은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을 실천했다"며 "나눔을 실천하며 평생을 사신 의인이었기에, 이제 우리가 그분이 남겨준 사랑의 유산을 기억해 드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백 씨의 죽음을 초래한 박근혜 정부에 "정직하게 땀 흘려 길러낸 먹을거리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고인의 외침이 살수 대포에 의해 참혹하게 죽어야 할 정도로 부당한 요구였나"라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국가가 이래도 되는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김 의장은 "공권력의 부당한 사용으로 한 생명이 죽었는데 아직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도 없는 현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는 현 정부의 행태를 비판했다.
김 의장은 백 씨뿐만 아니라 세월호 희생자들을 거론하며 "차디찬 물속에서 죽어가는 자식을 어떻게 해보지도 못한 어버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한다. 언제 돈 벌어서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을까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어야 한다. 농사를 지어도 살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이분들의 분노가 하늘에 닿기 전에 해결해야 한다. 책임 있는 사람들, 가난하고 고통받는 국민의 편으로 돌아서라"라고 일침을 놓았다.
김 의장은 백 씨의 죽음이 농민과 노동자의 권리를 무시한 사회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백남기 임마누엘 형제의 희생은 이제까지 수많은 노동자와 농민들의 외침이 무시당했고, 우리가 무관심하게 외면했던 결과"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분들의 눈물을 닦아 드려야 한다. 이 눈물은 법과 제도로써 닦을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우리 모두가 이룰 수 있는 일"이라며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을 듣고, 이들을 위해 우리의 힘을 모을 때"라고 호소했다.
이날 미사에는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심상정 정의당 대표, 표창원‧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윤소하 정의당 의원 등이 참석해 유가족을 위로했다.
대통령과 친구들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다
장례 미사 이후 고인은 지난해 11월 14일 경찰의 물대포를 맞은 장소인 서울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으로 향했다. 장의 행렬에는 백 씨 운구 차량과 유가족 및 상여, "살인 정권 물러나라, 국가 폭력 끝장내자, 책임자를 처벌하라, 특검을 실시하라"등의 문구가 적힌 만장이 앞장섰고 일반 추모객이 그 뒤를 따랐다.
르메이에르 빌딩 앞에서 열린 노제에서 박석운 상임장례위원장은 조사를 통해 "실로 흉악무도한 저들은 선배님(백남기)을 살인 물대포로 쓰러뜨린 뒤 제대로 된 수사도, 단 한마디의 진정성 있는 사죄도, 책임자 처벌도 일체 거부한 채 오히려 선배님께서 돌아가시자 득달같이 달려들어 병사니 제3의 외력 운운하며 시신을 탈취해 사인 조작용 부검을 강행하려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박 위원장은 "살아있는 저희들이 선배님의 유산을 계승하여 있는 힘을 다해 살인 정권을 몰아내고 책임자들을 남김없이 처벌해 이 땅의 민주주의와 정의를 회복하겠다"고 밝혔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인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역시 조사에서 "대한민국 정부는 세월호 참사 1주기인 2015년 4월 16일, 억울하게 희생된 304명에게 애도의 꽃 한 송이를 바치려던 국민들의 걸음을 차벽과 물대포와 캡사이신으로 막았다. 그리고 11월에도 광기 어린 폭력적 진압과 공격이 있었고, 결국 백남기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백남기 어르신을 희생시킨 정부는 세월호 때처럼 책임을 전가했고 부검을 실시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결국 전국에서 달려와 백남기 어르신을 지키겠다는 연대의 힘 앞에 무릎을 꿇었다"면서 "이제 우리는 백남기 어르신을 돌아가시게 만든 자들을 제대로 처벌받게 하고 더 이상 나라의 주인은 대통령과 그의 친구들이 아니라 우리 국민임을 보여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길고도 고통스러웠던 1년여 시간을 견뎌주신 백남기 어르신께 감사드린다. 남겨진 이들이 당신이 일구려 했던 민주주의와 농민 생존권, 그리고 국민 모두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권리를 지켜가겠다"면서 "혹여 그곳에서 우리 아이들을 만나시거든 따뜻하게 한 번 안아주시고 우리들은 잘 있다고 전해 달라. 이곳에 남겨진 어르신의 가족들은 우리가 지키겠다"고 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30여 분간의 노제를 마친 장의 행렬은 이날 오후 2시 영결식이 열리는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세월호의 인양과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광장의 천막 뒤로 고 백남기 농민의 미소가 광화문 광장을 내려보고 있었다.
357일 동안의 사투
고 백남기 농민은 지난해 11월 14일 민중 총궐기 집회에 참석해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이후 백 씨는 뇌 수술을 받고 위급한 상황을 넘겼지만 의식을 되찾지 못했고 결국 올해 9월 25일 끝내 숨을 거뒀다.
백 씨가 쓰러진 이후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대한 목소리가 이어졌으나 경찰은 이에 대해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라고 맞섰다. 오히려 백 씨가 사망한 이후에는 사인을 규명해야 한다며 고인에 대한 부검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실제 경찰은 영장을 발부받고 고인에 대한 부검을 집행하려 했다. 하지만 유가족들과 야당 및 시민사회의 반발로 영장 집행은 무산됐고, 결국 고인은 사망한 지 41일이 지난 이날 민주사회장으로 장례 절차를 진행할 수 있었다.
고인은 지난 1968년 중앙대학교에 입학한 뒤 유신 철폐 및 민주화 운동을 벌이다 수배를 당하기도 했다. 이후 옥고를 치른 뒤 1981년 고향인 전남 보성으로 귀향해 농민으로 살아갔다. 고인은 6일 전남 보성역과 광주 금남로에서 진행되는 노제 이후 망월동 5·18 구묘역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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