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가 휩쓴 정국은 외교안보 정책에도 비선 실세의 개입 흔적을 남겼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독트린이라고 불린 독일 드레스덴 연설문이 사전에 최 씨 손에 넘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개성공단이 돌연 문을 닫을 무렵, 최 씨가 "앞으로 2년 안에 통일 된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는 주장도 있다.
그럼 사드는? 혹자는 "작년 말부터 최 씨가 사드를 얘기하고 다녔다"고 했다. 의혹을 넘어선 물증은 아직 없다. 다만 분명한 건, 한반도와 동북아를 격랑 속으로 몰아넣은 사드 배치 결정을 지지율 5%짜리 식물 대통령이 그대로 밀고 나가도 되느냐는, '국정'에 관한 물음은 합리적이고 정당하다.
중국 언론들도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사드의 운명이 어떻게 달라질지 관심이다. 마침 사단법인 <다른백년>이 주최한 '백년포럼'에 중국의 대표적인 북한 및 한반도 전문가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가 1일 강연자로 섰다. 주제는 '사드 한국 배치와 한중 관계'.
"사드, 동북아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면…"
진 교수는 사드를 북핵 문제의 산물로, 북핵을 동북아에서 벌어진 미중 간 힘겨루기의 산물로 바라본다. 한반도가 동북아 문제의 진원지이자 피해지였다는 것이다.
그는 "동북아 문제의 핵심은 한반도 문제다. 한국전쟁은 말할 것도 없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이 모두 한반도를 발판으로 벌어진 까닭은 동북아 판도를 결정하는 곳이 한반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근대사 이후 동북아 주요 강대국들의 전략적 갈등이 한반도에서 충돌과 전쟁을 불러왔다면, 중국과 미국의 전략적 갈등 역시 북핵과 사드 문제에서 집약적으로 표출되어 왔다"고 설명했다. 결국 "사드는 미국이 북핵을 컨트롤하며 전개해 온 전략의 산물"이자 "사드의 한국 배치는 중미 간의 전략적 갈등을 한반도에 끌어들이는 것"이다.
진 교수에 따르면, 미국의 전략적 입장은 북한의 붕괴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바라지 않는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한미동맹, 주한미군, 미일동맹, 주일미군의 존재를 입증해 줄 수 있는 '적대국'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 교수는 이를 "동북아에서 미일동맹을 축으로 한미동맹을 강화하며 미국의 지위에 도전하는 나라를 견제하려는 미국에게는 한반도 냉전구도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한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전개하는 데에 북핵은 충분한 구실을 제공했고, 나아가 북핵을 빌미로 중국 견제용인 사드 배치 결정에까지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 교수는 "북핵 게임의 승자는 북한이 아닌 미국"이라고 했다.
그는 "북핵 문제, 한반도 문제가 없으면 미국이 동아시아 전략을 성공시킬 수 있겠느냐"며 "한중일 3국이 협력체를 이루고 아세안(ASEAN)과 손잡아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면 미국에겐 악몽이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고 미국패권이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도 했다. 미국 동아시아 전략의 핵심은 분할 지배(divide and rule)이기 때문이다.
반면 진 교수는 "중국은 사드를 동북아의 판도라 상자로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사드배치를 군사주권이라고 하는데 사드 배치가 동북아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수십 년의 평화를 깨뜨리면 결국 한국에도 부메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며 "사드 문제로 한반도가 극동 지역의 화약고로 등장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중국은 사드를 한미일 미사일 방어체계(MD) 구축의 일환으로 본다"며 "일각에서는 아시아판 나토의 출현까지 우려한다. 중국은 한국이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함으로써 미중 갈등을 한반도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이어 "사드의 통제권은 미국에 있고 사드 기능의 업그레이드 역시 미국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라며 중국 입장에선 "사드 배치는 중국의 전략적 이익, 한반도 평화, 역내 불균형, 특히 각 분야의 한중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드에 관해서는 백이면 백 반대한다. 사드 문제는 타협이나 설득, 토론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중국은 절대 반대할 것"이라고 중국 정부와 학계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사드 정국으로 수교 후 최대 위기에 빠진 한중 관계"
한국과 중국 간에도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크다. 이는 사드 배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감지됐다. 양국의 엇박자는 지난해 9월 3일 중국의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차 방중한 박근혜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가진 정상회담 때 이미 엿보였다.
그 즈음 박 대통령이 국내에서 설파하던 '통일 대박론'은 북한의 장성택 처형사건을 계기로 등장한 '북한 붕괴론'에 근거했다. 한국에는 북한의 3차 핵실험 후 북중 관계가 냉각상태에 돌입하면서 중국의 대북정책이 바뀌었다는 인식도 퍼져 있었다.
진 교수는 "그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국 정부는 중국에 큰 기대를 걸고 중국이 북한 핵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주기를 바랐다"면서 "박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가장 바랐던 것은 중국이 한국이 바라는 '한국 주도의 조속한 통일'을 지지해 주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시 주석은 "중국은 한반도의 자주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천명했다. 진 교수는 "시 주석은 통일 문제에서 박 대통령이 바라는 것을 주지 않았고 줄 수도 없었다"고 했다.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은 한중 관계의 악화에 기름을 부었다. 진 교수는 "한국은 중국이 북한을 질식시킬 정도의 제재를 바랐지만 며칠 만에 한국의 기대는 분노에 가까우리만치 실망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진 교수는 "한국은 북핵의 궁극적인 해결이 제재와 압박을 통한 북한 정권의 교체나 붕괴에 있다고 보고 중국이 한국에 힘을 실어줄 것을 바란 것"이라며 "결국 중국의 대북 정책이 한국의 기대에 못 미치자 사드 문제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4차 핵실험 일주일 뒤인 1월 13일, 박 대통령은 사드 도입을 처음 거론했다.
북핵 정국은 곧바로 사드 정국으로 뒤바뀌었고 이는 중국에 대한 압박으로 비쳐졌다. 진 교수는 "7월 8일 결국 한미가 사드 배치를 결정하자 한중 관계는 언제 그랬냐 싶게 급랭했다"면서 "양국 관계의 본질적인 성격이 바뀔 정도로 한중 관계는 수교 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초토화되면 남한도 초토화된다"
그럼에도 한미가 사드 배치를 강행한다면? 진 교수는 "진통이 얼마만큼 클지 예상이 불가능하다. 중국이 강제적으로 무얼 할 수는 없겠지만 (한중 관계가)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진 교수는 중국의 경제 보복 가능성에 대해선 신중하게 전망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관계가 심화됐기 때문에 중국이 한국을 경제적으로 보복한다면 중국도 그만큼의 손실을 감수하게 될 것이다. 100을 제재한다면 그만큼의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하는 것이 경제 제재"라고 했다. 그러나 "중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았다"고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한미가 주장하는 사드 배치의 목적은 사드 본연의 미사일 방어능력으로 북한의 핵미사일을 막겠다는 것이다. 사드는 정말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막을 수 있을까?
사드의 기술적 능력과 별개로, 진 교수는 "사드 때문에 북한이 겁을 먹지는 않는다"고 했다. 북한의 장거리탄도미사일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한다면 결국은 공멸하자는 것이다. 그런 북한을 초토화한다면 남한도 초토화된다. 왜서 그럴 지경까지 가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미국과 한국 정부가 제기하는 '중국 역할론'은 중국이 더 강한 대북 제재에 동참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도 진 교수는 "중국은 북한 핵을 절대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 점에선 한국과 같다"면서 "그러나 압박과 제재를 가해서 무너지거나 굴복한 사회주의 국가가 없다. 사회주의나라들은 기본이 투쟁의 철학이라고 한다. 압박하면 압박할수록 응집력이 강해진다"고 제재 일변도의 대북 정책을 반박했다.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북한 핵 동결이 해법의 시작"
북핵과 사드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미국, 중국과 한국의 대립선이 복잡하게 그어진 한반도 정국에 해법은 없을까?
진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 실질적으로 다가오는 가장 큰 위협은 두말할 것 없이 한미합동 군사훈련이다. 이를 중단 했을 때 북한도 많은 것을 양보한 적이 있다"며 "북핵 문제 해결의 첫 번째 의제는 한미 군사훈련 중단과 북한의 핵 동결을 맞바꾸는 것"이라고 제안했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해 1월 이후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중단하면 핵 실험을 중지할 용의가 있다고 줄기차게 밝혀온 바 있다. 한미 정부는 북한의 제안을 거부했으나 이는 한반도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제안하는 북핵 문제 해결의 입구다.
결국 한반도 문제의 궁극적인 해법은 남북관계의 개선에 있다. 진 교수는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하며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라고 했다. 진 교수는 "북한에 시장경제를 확장시키는 것이 통일의 요소"라며 "시장경제가 확장되고 부가 창조되고 사유재산이 늘어나면, 가치관이 바뀌고 시스템도 바뀌고 체제도 바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진 교수가 소개한 김대중 정부 시절 평양에서 열린 정주영체육관 개관식 때의 일화가 그 단면이다.
"정주영체육관 개관식에 한국에서 1000명이 수 십 대 버스를 타고 분계선을 넘어 갔다한다. 처음 보는 고급버스에 좋은 옷을 받쳐 입은 남한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이 충격이었다고 한다. 잘 아는 북한 교수 한 분이 '햇볕정책의 가장 큰 성과는 북한사람들이 남한과 남한 사람들을 알게 된 것'이라고 했다. 북한과 같이 폐쇄된 사회에서 그만한 성과가 또 어디 있나? 교류를 해야 서로를 안다. 지금처럼 문을 닫아걸고 질식시키겠다고 해서는 적개심만 증대시킨다."
하지만 지금의 남북관계는 정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개성공단은 폐쇄됐다. 정부는 북한의 함경북도 수해 피해도 모른 척 했다. 진 교수는 "남북관계가 계속 악화되면 결국 대국들에 개입하고 이용할 빌미를 제공하여 동북아와 주변 관계를 계속 긴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진 교수는 "한반도의 냉전구도가 존재하고 남북 간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지금의 사드 문제가 해소되면 다른 무엇이 사드를 대신해 충돌의 매개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며 "결국 한반도 갈등과 충돌의 근원인 냉전구도를 해체하고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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