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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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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십자가

[문학의 현장] 복직투쟁

임성용 시인이 시를 읽는 걸 보면서
가만 저 친구들과 어울리면 오늘밤
이 곳 평택에서 자야 될 것도 같고
아니면 대리운전을 불러야 될 것도 같아
그냥 구경꾼들에 섞여
땅 속까지 울리는 임 시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 등 바로 뒤에서 누군가가
아주 지당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니미럴, 아니 인생을, 꼭
노동만 해 먹고 살라는 법이라도 있어
다른 일도 널렸는데,-
그렇다. 노동만 해 먹고 살라는 법이라도 있는가.
사실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자식이 아니다.
쓰리꾼. 조폭, 제비족, 사기꾼, 건달,
이들은 자본주의가 낳은 자식으로
사회에서 노동자보다 더 인정받는다,
나도 사실은 복직투쟁을 왜 하는지 모르겠다.
자본주의는 노동계급이 낳은 자식이다.
자식이 성공하고 출세하기 바란다면
부모는 자식을 이겨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자식은 부모의 메타, 버전 업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계는 진화/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정기훈)

시작 노트

이 시는 노동계급이 아무리 투쟁을 해도 자본을 혹은 자본주의를 이길 수 없게 되어 있는 법칙을 말하고 있다. 만약에 노동을 전혀 착취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가 바로 인류 출현 후에 있었던 원시노동사회이다. 우리들 중 누구도 원시사회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연이 나타나고 그 자연에 인간이 출현하였다. 맨 처음의 인간은 자연을 대상으로 노동을 하면서 인식을 얻고 언어를 얻은 것이다. 이 노동을 통하여 인간은 짐승이 아닌 인간으로 진화할 수가 있었다. 노동 그 자체가 인식의 결과요 원인이듯이 자본 그 자체가 노동착취의 결과이며 원인이다. 그러니까 자연이 있고 자연에 인간의 노동이 보태지면 그로부터 이익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사회 외의 다른 사회는 나타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노동은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인식을 반영하여 결과물을 내놓게 되는데, 이것이 소위 말하는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세계는 발전하게 되어 있다. 노동의 착취를 통하여, 그 노동을 통하여 그렇게 된다. 인간이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이, 노동을 통하여 내 놓는 세계가 진화한다. 이 진화를 통하여 지금 현재 지구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인류는 도태되게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도태를 막기 위해서라면 노동을 착취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이성을 통하여 이러한 이치를 안다고 해도 우리는 문명의 진화를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 되기는 고사하고 이모든 것은 이성의 꿈이며 기획이다. 노동의 착취를 통해 지구상의 인류는 앞으로 100년 후, 지금 인구의 100분의 1정도만 살게 될 것이다. 노동의 착취를 통하여 그 노동을 통하여 인류는 도태되고 있는 것이다. 이 법칙은 절대로 인간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노동계급은 이러한 법칙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투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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