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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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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프레시안 books] <82년생 김지영>

한 10년쯤 지난 것 같다. 당시 나는 백수였다. 간간이 나오는 채용 공고도 계약직 일쑤인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당시도 언론사 입사 문턱은 넘기 어려웠다. 소위 말하는 언론 고시 뺑뺑이를 돌다 지친 나는, 축 처진 어깨로 집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누나,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무슨 이유였는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대다수 남성이 자신을 향한 여성의 질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결이었을 터다. 나는 무슨 이유로 누나에게 화를 냈다. 당시 누나의 표정을 나는 잊지 못한다. 누나는 나에게 겁을 먹었다. 기세등등하게 나를 윽박지르던 모습은 내가 화를 낸 순간 곧바로 사라졌다. 순간 그는 작아졌다. 또렷이 기억나는 말은 "무섭다"였다. 누군가가 나를 두려워하는 순간을 생전 처음 경험했다. 당시 상황의 본질이, 당시 방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그게 무엇인지 당시 나는 명확히 알지 못했으나,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았다. 당황한 채 말없이 나는 집을 나왔다.

누나의 분노와 나의 분노는 달랐다. 내가 화를 내자 가해자와 피해자는 명확히 구분됐다. 누나와 나의 성별은 달랐다. 나의 성화는 위협적이었다. 이 평범함의 의미를 당시 우리 누구도 몰랐다.

지금도 나는 누나와 제법 잘 지낸다. 떨어져 산다는 이유로, 각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겉보기에 우리는 나이 들어서도 사이좋은 남매다. 그러나 그 순간은 나와 누나 사이에 일어났던 둘의 다름을 드러낸 사실이고, 돌이킬 수 없는 가족의 역사가 되었다.

최순실 국정 개입 사태로 국가 행정이 마비되다시피 한 지금도 한편에서는 남성의 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쏟아진다. 2일 고려대학교에는 2년 전 동료 학생 서모(24) 씨에게 성폭력을 당한 한 여학생이 해당 사실을 고발하는 대자보를 붙였다.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목소리는 예술계 전반으로 퍼져나간다. 남성의 권위와 폭력에 숨죽이며 살아온 피해 여성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관련 사실을 제보하고, 이를 기록하고, 공동 움직임을 취하려 한다. 이는 폭압적 정권에 유린당한 사람들이 최순실을 계기로 분노하고, 응집하고, 목소리를 내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돌이켜 보면, 남성의 폭력을 고발하는 움직임은 강남역 묻지마 살인을 계기로 본격화했다. 그러나 메갈리아 사태가 본질을 흐렸다. 당시 중요한 쟁점은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의 유효성이었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남성은 가해자다. 우리 사회는 남성의 가해를 구조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당장 고려대 대자보에 적시된 내용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남성의 가해 사실은 '전도 유망한 학생'이라는 명목으로 철저히 보호된다. 대신 피해자는 가해 남성이 다시 활보하는 학교를 거닐어야 한다. 가해 남성은 구조적으로 보호된다.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민음사 펴냄)은 철저히 여성의 시각으로 남성이 가해자인 현실을 찬찬히 그려내는 소설이다. 방송 작가 출신인 저자의 이 소설은 얼핏 이야기가 가져야 할 흥미로운 미덕을 배반하는 듯하다. 주인공 김지영은 평범한 주부다. 아들이 있는 집에서 태어났고, 외환 위기를 거치며 버텨온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 결혼했고, 아이를 가지며 회사를 그만뒀다. 배려심 많은 남편은 시부모와 갈등하는 김지영의 문제를, 출산과 직장 생활 사이에서 고민하는 김지영의 갈등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김지영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김지영은 갑자기 빙의된 듯 엄마의 목소리로, 친구의 목소리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 깨어난 김지영은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소설 마디마다 한국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는 각종 사회 통계가 제시된다. 그러므로 이 책은 전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설과 보도문의 형식을 넘나든다.

작가는 김지영 인생의 평범성을 강조함으로써 여성이 착취당하는 삶의 평범성을 고발한다. 겉보기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삶, 남성으로부터 어떤 가시적 폭력도 당하지 않은 김지영의 일상에서 남성은 잘못을 자각하지 못하는 가해자다. 어릴 적 김지영을 좋아하던 남자 아이는 김지영을 괴롭했다. 가족이 함께 모여 라면을 먹을 때, 가장 먼저 막내 남동생이 라면을 양껏 덜어갔다.

김지영이 동아리 남자 친구와 헤어지자, 평소 김지영을 짝사랑했던 선배는 "씹다 버린 껌을 누가 씹느냐"고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남편은 맞벌이하는 김지영이 힘들 때 설거지를 잘 도와준다. 남편은 출산을 위해 태어나지 않은, 직업을 통해 행복을 찾고자 하는 김지영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주고, 그런데도 아이를 위해 김지영이 직장을 그만둬야 함을 충분히 설득한다. 무능했던 아버지는 퇴직 후 엄마가 밀어붙여 차린 프랜차이즈 죽집이 성공하자, "나 인생 잘 살았다"며 행복을 이야기한다.

김지영과 주변인의 인생은 우리 모두의 삶이다. 당연히 <82년생 김지영>에 드러난 남성 삶의 일부는 나의 삶이다. 특히나 여성 독자라면 행간 곳곳에서 감정을 이입할 것이다. 애초 이 소설은 시대를 고발한다는 취지에 집중한 흔적이 역력하다.

▲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지음, 민음사 펴냄). ⓒ민음사
이 전략은 유효해 보인다. 성 차별 문제는 당사자성을 지닌다는 말은 절대적으로 유효하다. 대다수 남성은 도대체 여성이 왜 자신을 공격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당사자의 삶을 살고자 해도,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남성에게 여성의 삶을 간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 책을 읽고 난 남성 중 얼마나 많은 이가 김지영의 삶에 공감할지는 미지수다. 남성 위주의 구도는 너무나 견고하기에 평범하다. 평범함으로 우리는 이 구도를 쉽게 자각하지 못한다. 나 역시 남성이기에 내 삶의 평범성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의 빈곤한 삶, 평범한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큰 충격이 일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뿐, 그 괴이성을 자각할 수 없다.

귀기 들린 듯 여성의 삶을 전파하는 메신저가 된 김지영은 현실을 달리 보라고 소리친다. 왜 명절에는 당연하다는 듯 남편 집에 가 제사지내야 하느냐. 왜 몰카 피해자인 여성은 고개를 들지 못하는데, 이를 돌려보는 남성은 아무렇지 않느냐. 정말 이래도 괜찮은 거냐고 김지영은 독자에게 묻는다.

고려대 성폭력 피해자는 "너는 가해자임에도 잘 살 것"이라고 울분을 토한다. 얼핏 미진해 보이는 법적 책임이 끝났고, 가해자임에도 '전도유망한 학생'이라는 이유로 교수들까지 나서 가해자를 두둔했기 때문이다. 김지영은 정말 이래도 괜찮으냐고 묻는다. 김지영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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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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