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사망한 고(故) 백남기 씨를 수술한 백선하 서울대병원 교수가 1000여 건이 넘는 수술 중 '주말심야 수술'은 백 씨 수술이 유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백 교수는 백남기 씨가 받은 수술을 3년 동안 두 차례밖에 하지 않은 게 알려져 논란이 된 바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4일 서울대학교병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4년간(2013년~2016년 9월) '신경외과 수술 목록'을 보면 백남기 씨 수술을 집도한 백 교수의 신경외과 수술 실적은 총 1055건에 달했다.
이 중 백 교수가 '토요일 및 일요일'에 집도한 수술은 총 19건으로 전체의 1.8% 수준에 불과했으며, 주말 수술(시작)시간대는 오전 9시 40분부터 오후 8시 10분 사이에 한정되어 있었다.
또한 심야 시간대에 해당하는 '23시~ 6시'에 집도된 수술은 전체 요일 기준 15건(1.4%)으로, 백남기 씨 수술을 제외한 모든 '심야 수술'은 주말이 아닌 '평일'에 이뤄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인재근 의원은 "백 교수의 1000번이 넘는 수술 중 '주말심야 수술'은 백남기 농민의 사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며 "이처럼 '극히 이례적'이었던 이번 수술에 대해 모든 국민이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당직 교수는 가망 없다는데 수술 감행
고 백남기 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된 2015년 11월 당시 간호 기록지, 유가족 증언 등을 토대로 백남기 투쟁본부가 작성한 의료 기록을 보면 오후 9시 30분께 백 씨를 진단한 신경외과 조모 교수는 "가망이 없으니 요양 병원으로 옮기라"고 유가족에게 설명했다.
이후 10시 5분께 응급중환자실로 옮겨졌으나 10시 30분께 등산복을 입고 병원을 찾은 백선하 교수가 손가락에 반응이 있다며 수술을 하자고 유가족을 설득했다. 이후 10시 35분께 백 씨는 수술장으로 이동, 3시간 50분 동안 수술을 받았다.
백남기 투쟁 본부는 모든 의료진이 가망이 없다고 했던 백남기 씨를 뒤늦게 찾아온 백선하 교수가 굳이 수술을 한 점에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것.
백 씨의 사고 당시 CT 소견서를 보면, 전문가들은 백 씨의 당시 상황을 두고 수술을 안 했으면 곧 사망했을 거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당시 집도의인 백선하 교수는 백 씨의 생명을 연장하는, 즉 뇌압을 낮추는 수술을 진행했고, 이후 백 씨는 열 달 동안 병상에서 의식 불명 상태에 있다가 지난 25일 사망했다.
백선하 교수, '백남기 수술' 2번에 불과
11일 열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백선하 교수가 2014년부터 2016년 9월 말까지 진행한 응급실 수술 734건 중 백남기 씨에게 실시했던 '두개절제술 및 경막하혈종 제거술'(Craniotomy and SDH removal) 수술이 2건에 불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구나 백선하 교수는 최근 3년 동안 '경막하혈종 제거술'을 처음 집도한 환자였다. 백 교수는 2015년 11월 15일 00시 10분에 백남기 씨를 처음 수술한 이래, 2016년 9월 7일 임 모 씨에게 두 번째 시술을 했다.
백남기 씨가 병원에 실려오던 날 당직 의사였던 조 모 교수는 뇌출혈 전문의였고 조 교수가 유족에게 가망이 없다며 요양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는데, 갑자기 나타난 백 교수가, 그것도 처음 하는 수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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